지저귀지 않는 카나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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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아의 엄마는 노래를 잘 했다고 했다. 카나리아 본인은 가수인지 성악가인지 모르겠다 했지만, 나중에 기록을 보니 성악가로 나왔다. 사실 신문에 대서특필된 인물이기도 하기에 누군가는 카나리아의 성을 알기도 했다. 이런 인지도는 카나리아가 재단에 올 때 잠깐 발목을 잡았었다. 하지만 동시에 카나리아에게 준 그 사건 덕에 재단에 들어올 실력을 얻었다.

카나리아가 10살 때였다. 카나리아의 부모님은 딸의 나이가 두 자리 수가 된 것을 기념하여 여행을 떠났다. 카나리아 손에는 기르던 새 (그 새도 카나리아였다)가 사는 새장이 들려있었다. 평범한 가족 여행이었다. 마지막 날 전까진.

그 날 밤, 생각보다 오래 달린 차는 길가에 퍼져버렸다. 카나리아의 가족들은 묵으려던 호텔 대신 더 가깝고 낡은 숙박업소 에 들어갔다. 침대가 부족했기에 부모님은 장롱 안에 카나리아의 이부자리를 펴줬다. 카나리아는 불평하지 않았다. 10살이면 성숙해져야한다는 생각이 있기도 했고, 새장을 안고 잘 수 있어서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은 무언가 부족하지만 내심 즐거워 보이는 여행 마지막 밤을 보냈다.

누군가에겐 인생 마지막이기도 했지만.

고함소리. 의문의 열기. 비명소리. 카나리아 가족은 모두 일어났다. 카나리아는 장롱 밖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문을 막고 빗장까지 질러버렸다. 어머니는 이제 카나리아의 비명을 달래야했다.

아버지는 창문을 내다봤다. 십자가인지 뭔지 모를 조잡한 나무 판자가 주차장에서 불타고 있었다. 그 앞으로 복면을 쓰고 도끼를 든 인간들이 비척거리며 호텔로 향했다. 몇몇은 아래층에서 머리가 갈라진 시체를 들고 불구덩이로 걸어갔다.

아버지는 경찰에 신고하라 소리쳤다. 어머니는 그 전에 신고를 했다. 아버지는 이제 자기 쪽으로 올라오는 복면들을 보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바로 창문에서 벗어나 문을 물건들로 막기 시작했다. 비명소리 가운데에서 마지막으로 침대를 세웠을 때, 문에서 격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이 부서지면서 물건들이 흔들렸고, 아버지는 그걸 몸으로 막았다. 어머니는 기도하듯이 손을 모으고 카나리아를 달랬다. 카나리아는 이 모든 광경을 장롱 틈 사이로 보았다.

모든 게 카나리아 눈에 새겨졌다.

가구가 무너지고 아버지를 덮쳤다. 그 위로 도끼들이 난무했다. 피의 호가 방 여기저기로 튀었다. 유난히 높은 어머니의 비명이 울렸다. 카나리아는 귀를 막을지 새장을 더 꼭 붙잡을지 고민했다. 순간 어머니의 비명이 멈췄다. 카나리아에게 뇌수인지 피인지 모를게 울쿡하며 튀었다. 카나리아의 생각이 돌아오기 전에 빗장이 어머니의 시체와 함께 갈라져 부서졌다. 복면을 쓴 인간 다섯명이 카나리아들을 내려다봤다. 그 중 유독 피가 신선해 보이는 한 명이 도끼를 들었다. 얼굴에 쓴 복면만큼 비인간적인 움직임이었다. 도끼가 머리 위로 번쩍 들렸다. 그러다 단호한 이별을 고하듯 담담하게 내리쳤다.

카나리아는 눈을 감았다. 무언가가 얼굴에 튄 느낌. 그리고 등에 무언가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고통은 없었다. 카나리아는 의아해하며 눈을 떴다.

새장 속 카나리아의 머리가 갈라져 있었다.

복면들은 느리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나리아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카나리아의 눈은 저들 복면의 눈구멍과 비슷해졌다. 보지만 보는 게 아니고, 듣지만 듣는 게 아니었다. 머릿속의 생각이 점점 빠져나가 하얗게 되었다.

복면이 다시 천천히 도끼를 들었다. 카나리아 시체가 딸려 올라가다 새장에 걸려 떨어졌다. 도끼는 다시 머리 위로 높게 쳐들렸다.

단조로운 권총 소리가 들린건 그때였다. 경찰이 밀고 들어오며 5명을 향해 불을 뿜었다. 다섯 명 모두 쓰러졌다. 한 명은 카나리아를 향해서였다.

시체의 피가 카나리아에게 떨어졌다. 그러면서 새하얘진 카나리아의 정신에 붉은 점이 한두 개씩 찍혔다. 어떤 소리도 없이, 붉은 색과 흰 색만 남았다.

"히끅."

카나리아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분노가 단순한 화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러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유란은 카나리아의 심리 보고서에 담길 첫 줄을 썼다가 지웠다. 보고서에 이런 어투는 별로 좋지 않았다.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르겠는 내담자의 상태에 유란의 속이 복잡했다.

'차를 타두길 잘했군.'

유란은 의자에 몸을 묻으며 미지근한 차를 홀짝였다. 눈앞에는 빈 공간에 깜빡이는 커서가 보였다. 유란은 스크롤을 올렸다. 바로 위에 복사해둔 인터넷 신문 기사가 떴다. 사이비 신도들이 호텔에 쳐들어가 여자아이 한 명 빼고 모두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그 여자아이 하나가 이 보고서의 주인공이었다.

유란은 스크롤을 더 올렸다. 인사부에서 작성한 인원기록이 떴다. 카나리아의 경력은 화려했다. '특수부대'라는 단어가 이력 곳곳에 박혀있었다. 참여한 작전 목록은 이력보다 더 길었다. 유란은 잠깐 카나리아의 나이 가지고 셈해보다 얼굴을 찌푸리고 다시 셈했다. 잘못 계산하면 미성년자가 입대한 결과가 나왔다. 아래 기사에서 주는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막 10대가 된 소녀와 막 성인이 된 여자 사이의 간극이 이리 컸나, 하고 유란은 다시 생각했다.

유란은 스크롤을 더 올렸다. 이번엔 임무 보고서로, 가장 최근 부서진 신의 교단을 습격했을 때의 보고서였다. 지휘관은 카나리아였다. 원래는 그럴 수 없었다. 카나리아는 지시를 내릴 수 없으니까. 모두에게 수화를 익히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카나리아는 그런 건 필요없다고 했다. 거기서부터 눈치챘어야 했다고 간부 몇 명은 말했다. 팀원들은 보통 저격수 포지션이던 카나리아가 돌격소총을 들었을 때 알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카나리아의 말이 맞았다. 지시는 필요없었다. 카나리아는 도착하자마자 예고도 없이 작전지로 돌격했다. 모두가 말리려던 순간에 카나리아는 문을 부셨다. 모두가 겨우 지원을 갔을 땐 슬슬 시체로 언덕이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작전은 성공했다. 동시에 실패했다. 보고나 연구를 위해 남길 표본이 없었다. 다 박살이 났다. 이들이 임무를 끝내고 가져온 건 다량의 톱니바퀴 뿐이었다.

유란은 스크롤을 맨 위로 올렸다. 여기는 면담기록이었다. 카나리아와 유란 사이에서 오간, 침묵과 손들의 면담. 카나리아는 대체로 담담했다. 아무리 봐도 막무가내로 돌격할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임무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카나리아의 반응은 격해졌다. 손이 대화의 수단이 아니라 화풀이 대상인 양 이리저리 흩뿌려졌다. 종래에는 그것도 부족했는지, 말을 하고 싶어도 옷하는 목을 잡고 켁켁거렸다. 유란은 카나리아의 입 안에서 마음으로 굳어버린 혀를 보았다.

면담은 다음과 같이 끝났다.

'저희는 의사소통을 위한 음성보조기구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왜 사용하지 않죠?'

'나 자신의 고삐를 늦추고 싶지 않아서.'

카나리아는 여기서 얘기를 멈추고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리고 가만히 유란을 째려봤다. 약간의 눈물이 카나리아의 눈에서 비져나왔다. 유란은 면담이 여기까지임을 직감했다.

지금의 유란은 그랬던 과거의 유란을 떠올렸다. 커서는 면담의 마지막 부분에서 깜빡였다. 이 커서가 지운 내용에서처럼, 분노는 다양하게 표출될 수 있다. 누군가는 화산처럼, 누군가는 설산처럼,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을 향한 채찍처럼 나타난다. 카나리아는 채찍이었다. 자신의 모든 걸 앗아간 모두를 없애버리려고 카나리아는 분노를 이용했다. 힘들면 카나리아의 머릿속은 용광로가 되어, 카나리아는 그 힘으로 입을 다물고 앞으로 나아갔다.

여기까지만 보면 인간승리 드라마로 보이지만, 카나리아는 그리 간단하게만 머물지는 않았다. 카나리아의 분노는 평소엔 채찍이었지만, 요소가 갖춰지면 화산이 되었다. 그것이 카나리아가 분노와 함께하는 법이었다.

유란은 한숨을 쉬며 파일을 닫았다. 보고서를 빨리 써야했지만 전부터 영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주일 전, 친구와의 잡담 중에 카나리아가 소재로 나왔다. 가루만 남긴 작전 현장에 많은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고, 그렇기에 친구는 유란의 얘기에 유난히 귀를 기울였다.

유란의 얘기는 이런 농담으로 끝났다. 그냥 생각났는지, 친구가 인사부에서 일한다는 걸 노리고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유란은 제발 전자였으면 했다.

"그 사람을 우리 히키코모리 크툴루에게 붙이면 어떻게 될까? 분명 격리 파기하러 온 얘들 다 박살나겠지?"

며칠 뒤, 카나리아는 특무부대 타우-9("호전적인 경호원")으로 발령되었다. 책임자는 유란의 친구였다.

유란은 따지려고 올라갔다. 하지만 친구는 뭔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유란은 농담이었다고 했다. 친구는 논리적으로 따지면 맞는 말이 아니냐고 했다. 유란은 누군가가 끔찍하게 죽을 거라고 했다. 친구는 그럼 그들을 살려두냐고 했다. 왜 화내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덤이었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후회 비슷한 감정이 유란의 몸을 감았다. 이후 복도가 언제쯤 화약 냄새로 가득 찰까란 두려움이 몸을 움켜쥐었다.

유란은 두 손을 말아쥐었다. 언젠가는 책임감에 짓눌리리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작은 크툴루는 컨트롤러를 내려놓았다. 실은 던지려고 했지만 지난 번에 교체하는 데 3개월이나 걸린 걸 감안해서 참은 거였다. 화면에는 'YOU DIED'라는 글자가 나오고 있었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그리고 죽을 것이다. 6시간 동안 괴물이 반복하던 행위였다.

처음에는 게임에 대한 분노가, 다음은 이 게임을 가져다준 요원에 대한 분노가 등 뒤의 촉수로 분출되었다. 하지만 점점 이런 감정이 식더니, 컨트롤러를 내려놓을 때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평이한 피로만 남았다. 해탈이란 진중한 표현을 쓰기엔 너무 저열한 체념이 온 몸에 내려앉았다.

크툴루께서 고개를 드셨다. 오랜만에 주위를 둘러보셨다.

너무 작으신 것 아닌가? 그 분은 아직 성장기이니 이런 방이 작아보임도 당연직하다.

크툴루께서 손깍지를 끼시어 몸을 뒤로 젖히셨다. 오래 전부터 들렸던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었다. 눈을 여기저기 돌리시어 방을 한 번 쭉 훑으셨다. 그리고 이 벽지를 얼마나 오랫동안 봤는지, 그리고 자기 나이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헤아리셨도다. 아아, 여기서 늙어죽기까지 천 년도 오래 남았으니, 크툴루께선 우렁찬 한숨과 함께 똑바로 앉아 생각하시었다.

체념과, 무력감과, 무료함에 사로잡히시어, 벽지도 안 바뀌는 방에서 원초적인 본능이 되살아나셨으니,

그 분은 나가고 싶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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