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남자

미국의 어느 조그마한 국립공원에, 자전거도로가 있었다. 아주 평범한 도로였다. 길이는 대강 12마일 되었다. 조그만 호수를 감싸고 돌았다. 길옆에는 웬만하면 나무가 서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잠시 바람 쐬고 평온한 마음 찾기 좋은 조그맣고 아름다운 곳으로 꼽았다.

도로를 따라 조깅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가끔, 혼자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마주치는 달리는 남자가 있었다.


마크Mark가 길가에 자전거를 살며시 댔다. 그리고 올라탄 채로 물통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집에 틀어박혀서 세금 내지도 않고 잔디 깎지도 않고 지붕 고치지도 않는, 모처럼 진짜배기 휴가를 나온 날이었다. 공원으로 나온 시간도 딱 좋았다. 사람이 사실상 자기 하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공원 구역에 앉은 가족이라든가 부두에서 낚시하는 노인 정도일까.

마크는 팔로 입가를 대충 닦고 물통을 끼운 다음 페달을 밟으려 했다. 그때 어떤 남자가 뒤에서 튀어나왔다.

남자가 말했다. "날씨 좋죠?" 남자는 젊은 외모에 키는 크고 말랐고, 회색 후드 추리닝과 검은 러닝팬츠를 입었다. 얼굴은 스카프와 선글라스로 가리고 있었다. 아직 봄 날씨가 여름만큼 더워지진 않아서 마크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네. 바깥 구경 나오기 좋네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섰으면서도 몸을 안절부절못했다. 움직이지 못해서 불안한 듯이.

"자전거랑 저랑 경주 한 판 하실래요?"

"경주요? 자전거면 불공평하잖아요."

"뭐 그렇겠지만, 삶이란 원래 불공평하잖아요?"

마크가 픽 웃음을 흘렸다.

"좋아요. 달려보죠. 어디까지 할까요?"

남자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10마일 표지까지 가요. 옛날 폭풍 대피소까지."

"저야 좋죠. 그런데 10마일이면 여기서 꽤 먼데. 따라올 수 있겠어요?"

"10초 먼저 출발하세요. 준비되면 아무 때나 자전거 출발하시면 돼요."

마크는 이 이상한 남자를 보고 여기저기 수상하다 여기기는 했지만 이내 그런 생각은 털어냈다. 뭐 괴상한 점은 있어도 사람은 착해 보이니까.

마크가 페달을 밟고 먼저 출발했다. 속도는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10초나 일찍 출발했으니 금방 속도가 붙어서 달리는 남자한테 흙먼지가 다 튀길 테니까.

"에이, 그런 정도로는 금방 따라잡히죠."

마크가 왼쪽을 봤다. 남자가 떡하니 옆에, 자전거와 똑같은 속도로 설렁설렁 조깅을 뛰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10초 차이는 온데간데없었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마크가 바로 기어를 변속하고 제대로 힘을 줘서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가 길을 따라 쏜살같이 움직였다. 마크는 머리를 숙여서 공기역학적으로 완벽하게 공기를 갈랐다. 바람이 쌔액 지나가며 허파에 찬 공기를 가득 채웠다. 옆으로 지나가는 나무는 초록색과 갈색이 대충 섞인 것처럼만 보였다. 마크가 더욱 박차를 가하며 움직였다. 빨리, 빨리, 더 빨리. 이렇게나 밟았는데 설마 그 사람이 보이기라도 하겠어.

옆을 돌아보자 마크가 경악했다. 남자가 여전히 옆에서 자전거의 속도를 딱 맞춰 따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달리는 곳은 길도 아니었다. 나무 사이를 쭉 지나가며 사슴 달리듯이 모든 장애물을 다 피해다니며 달리고 있었다. 아니 달리는 것도 사실 아니었다. 날아다녔다. 한 발을 땅에 내딛었을락말락하는데 벌써 다른 발을 앞으로 성큼 내밀었다. 스카프기 꼬리처럼 뒤로 휘날렸다. 마크는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달리는 모습을 보고 지금 웃고 있을까 상상했다.

그렇게 마크가 놀라고 있다가 갑자기 지금까지 높여놓은 속도에서 나오는 감각들이 소용돌이치듯이 밀려왔다. 들리는 것은 귓가를 스치는 바람뿐이었고, 향기와 맛은 코와 입을 스쳐가는 차가운 공기의 느낌뿐, 보이는 것은 초록색 바다에 난 회색 줄무늬, 만져지는 것은 자전거 손잡이뿐이었다.

그때, 눈앞의 길섶에 대피소가 나타났다. 결승선이었다. 마크가 나무 사이를 들여다봤다.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놔두고 떠난 모양이지. 마크가 다시 눈길을 대피소로 돌리고 마구 헐떡이며 브레이커를 꼭 쥐었다. 끼이이익, 하면서 자전거가 나무로 된 오랜 폭풍 대피소 앞에 멈췄다. 고무 두 짝이 길을 따라 타들어가듯이 긁혔다. 앞에는 그 남자가 서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남자가 숨소리 하나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마크는 숨이 차서 대답 한 마디 꺼내지 못했다. "처음에 나갈 때 나가떨어지신 줄 알았는데 결국에 결승점까지 닿으셨네요. 이런 경주는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어… 어떻게… 하신… 거예요?" 마크가 힘겹게 말했다.

"뭐가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도 아무튼, 제가 상을 드릴게요."

"무슨 상을?"

"당연히 위로상이죠!" 남자의 말이 욕처럼 들릴락말락했다. "그 정도 노력이면 상을 안 받을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나은 분이셨잖아요."

마크의 눈앞이 갑자기 바뀌었다. 숲이 더 어둡고 비현실스러운 모습으로 변했다. 남자의 몸도 더 크고 어렴풋하게, 더 불가사의하게 바뀌었다. 숲 이곳저곳에서, 도저히 있지 말아야 할 그림자와 형상이 타나났다. 시체. 온갖 시체들. 묘목에 꿰뚫린 시체, 바위에 머리가 깨진 시체, 무슨 잔악한 힘이 훑고 갔는지 좌우로 뜯어진 시체, 내장이 나뭇가지에 묶여 대롱대롱 매달린 시체. 날카로운 막대기로 된 울타리에 피 묻은 자전거 헬멧이 수두룩이 올라 있었다. 그러다, 그 모든 것들이 다시 사라졌다. 현실에서 상상으로, 다시 잊혀진 것 속으로.

"상은 바로 오래된 격언이에요." 세상 그 누구에게도 나올 법하지 않은 목소리로 남자가 말했다. "모든 것을 바치지 않는 자는 나중에 무덤 외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리라."

그리고 남자는 대피소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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