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방송해 드립니다

한때 전쟁밖에 몰랐던 어떤 나라에, 왕과 보좌관이 살았습니다. 왕은 평화를 사랑했고, 보좌관은 전쟁을 사랑했어요. 보좌관은 왕의 아버지도 섬겼고,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도 섬겼지만, 지금 섬기는 왕이 가꾸어 나가는 평화라는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어요. 전쟁은 이 나라 사람들의 삶 그 자체였죠. 전쟁을 저버린다는 말은 스스로를 저버린다는 말이었어요.

매일 밤 왕궁 정원에서 보좌관은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날은 고대 정복자 이야기를 해주고, 어느 날은 평화만 좇다가 패가망신한 멍청이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왕이 자기 방식이 틀렸음을 깨우치게 해줄 이야기만 골라 가면서요.

하지만 왕은 깨달을 줄 몰랐죠.

어느 겨울날 밤 정원에서, 보좌관은 이제 포기할 때가 됐나 좌절했어요. 어쩌면 전쟁의 시대는 영영 지나갔을지도 몰라, 이제 왕에게 바칠 이야기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이야기가 보좌관의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아니, 스스로 생각했다기보다는 차라리 누가 대신 생각해 준 걸까 착각까지 들 만한, 그런 이야기가요.

"왕이시여." 보좌관이 입을 열었습니다. "타락광대 벨Bael the Decadent Jester의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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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Jeffrey)는 포기했다. 다들 그랬지만.

이제 구원은 없었다.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모두들 영원히 이곳에 갇혔다. 이 배라먹을 TD 가든에. 이 길고 긴 농구 경기에… 정확히 얼마지? 몇 년인가? 적어도 아무도 못 참을 만큼 긴 건 확실했다.

이번 루프가 시작하고, 웬만한 사람들은 그냥 바닥에 퍼질러 누운 채로 있었다. 자살도 의지가 있어야 하지, 아무도 그런 의지를 구태여 짜낼 생각이 없었다. 온 체육관이 사람은 어디 가고 전부 따개비가 돼 있었다. 제프리는 따개비를 딱 한 번 봤다. 집 근처 수족관에서. 요즘 제프리는 머릿속 수족관에만 콕 박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이 어디더라? 기억도 안 났다. 그냥 기억이 싸그리 다 희미해 갔다.

어느 새 조명 불이 빨간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쩌라고? 조명 색깔 바뀌는 것 따위, 몇 분 지나고 관심도 없어졌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들이쉬었다. 제프리가 숨을 내쉬었다.

경기장 문이 열렸다.

벌떡, 제프리가 바닥에서 일어났다. 혼자만 일어난 게 아니었다. 경기장의 모두가, 눈 동그랗게 뜨고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뭔가… 뭔가 일어나고 있어. 씨발 뭔가 일어나고 있어!

삽시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서로 밀치고 헤집어 가며 이 갑작스런 사건을 보려고 너나없이 야단이었다. 드디어 구원이 찾아왔나? 이제 용서받는 거야? 아님 드디어 죽을 수 있는 건가?

만화풍 광대 하나가, 열린 문으로 발걸음 경쾌하게 들어왔다. 이상하게 생긴 놈이었다. 2D 캐릭터가 3D 세상으로 들어온 듯…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봐도 확실히 3D인 듯. 뭐랄까 존재하지 않을 법하게 생긴 놈이었다. 그런 생각이 딱 보자마자 들었다.

광대가 사람들 앞에 멈춰서서, 엉덩이에다 두 손을 올리고 활짝 웃는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찾았다!" 광대가 말했다. "너희 찾느라 내가 농구 경기 테이프 몇 개를 뒤졌는지 알아?"

그리고 광대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얘들아! 여기야!"

혼자 오지 않은 모양이다. 다른 놈들이 문으로 들어왔다. 역시, 이상한 놈들이었다. 만화풍 펠리컨이 날개마다 산탄총 하나씩 부여잡고 들어오고, 검은 망토 입은 놈이 바닥을 스르르 미끄러지며 들어오고 (그리고 그 뒤를 로널드 레이건이 충성스레 따라오고), 마지막으로 정장 입은 남자가 들어왔는데 이 남자의 얼굴은 아무리 바라보려 해도 보이지 않았다.

"자업자득해라." 펠리컨이 중얼거리며 산탄총을 꼼지락거렸다. "자업자득해라, 새끼들아."

광대가 한 팔을 오만하게 휘휘 내저었다. "그래그래, 잠깐 쉬자, 얘들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기한텐 괜찮은 상황이었는지, 광대는 다시 사람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반가워!" 광대가 말했다.

자기도 모르게, 제프리는 입을 열었다. 사실, 이 짓거리가 시작될 땐 자기도 이상한 광경들 보면서 무서웠지만, 루프가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무서움은 옅어졌다. 최악의 상황이 벌써 일어났을 것 같으면, 이제 더 무서울 건 뭐야?

"저기, 선생님." 제프리가 나직이 말했다. "죄송한데 뭐 하시는 분인가요?"

"오호!" 광대가 말했다. "굉장한 질문이야, 우리 친구! 우승상감이야! 나는 존경받는 미국 만화 아이콘, 광대 보블이야. 내 이름은 다 알겠지?"

제프리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 아니요, 모르는데요."

광대의 얼굴에 빡친 기색이, 아주 잠깐 떠올랐다 재빨리 사라졌다. "하아, 요즘 애들은 참! 검은 망토를 돌아보며 광대가 말했다. "얘네는 기계요정machine elf 이름도 하나도 모를 거야!"

검은 망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말이지." 다시 사람들 쪽을 보며 보블이 말했다. "여러분들 모두 나 보고 보블 장군님이라고 불러주면 좋을 것 같아."

"왜요?" 제프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뭔가 상황이 좋지 않아, 라고 생각하며.

"그야 지휘관은 졸병들한테 존경을 받아야 하니까 그렇지." 보블이 말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여러분은, 나의 작은 도우미가 되는 거야! 스스로한테 축하의 쓰담쓰담 해 주자. 너무 오래 하면 안 돼. 앞으로 일정이 빡빡하니까."

그때 사람들 가운데서, 화난 고함소리가 들러왔다. 제프리는 흘끗, 보블의 웃음이 더 환해지는 모습을 봤다. 갑자기 굶주린 사자랑 한 방에 있게 된 기분이었다.

"기분 안 좋은 사람 있나 보네?" 보블이 말했다. "불만 있으면 해결해 드리겠습니다요."

고함 친 사람은 사람들을 비집고 광대 앞으로 나왔다. 신실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아님 다들 포기하기 전에 속한 적 있었다고 해야 할까나. 많이 분개했는지 이 신실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너 지금 우리 보고 농구 경기 테이프라 그랬지? 나 다 들었어!" 광대한테 계속 가면서 신실자가 소리쳤다.

"귀 밝은 친구구나! 정확히 그렇게 말해줬지, 우리 착한 친구!"

신실자가 광대 코앞까지 다가가 그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보블의 입가에서 웃음이 더욱더 활짝 커지고, 또 눈길이 사나워졌다.

"이 짓거리 꾸민 놈이 너였어? 여기 가둬놓은 놈이?! 네가 이 망할 장난 —"

그리고 신실자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보블이 무심하게 팔을 뻗어 장갑 낀 손으로 머리통을 툭 뜯어버렸기 때문에.

아무도 말 한 마디 없었다. 참수야 이제 다 무던히도 익숙했으니.

"자자, 주목." 뜯은 머리를 농구공처럼 튀기며 보블이 말했다. 머리가 땅바닥에 부딪칠 때마다 나는 철퍽 소리가 말소리를 내내 장식했다. "나는 관대한 상관이야. 되게 괜찮은 놈이라고. 자화자찬 좀 하자면 말야. 누가 봐도 천국 갈 인물이잖아. 근데 말이야, 얘들아. 너네 상관 같으면 너희가 말본새 그렇게 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뭐 지금은 내가 그 상관이니까 말인데, 나는 기분 나빠. 그래서 이제 이 빡돈 아저씨는 우리랑 같이 못 가게 되었다구."

"어딜 가는 건가요?" 제프리가 말했다. 이 광대를 이제는 함부로 거스를 수도 없으니까.

"내가 꼴리는 대로 갈 거란다, 우리 친구. 내가 꼴리는 대로. 이제 우리 젯슨 가족도 만나고, 스프링필드도 불태우고, 스쿠비 두 면상도 후려갈기러 갈 거야! 우리가 혁명의 방송이다!"

그러고 나서 보블은 정장 입은 남자를 가리켰다. "야! 드디어 텔레뷰션televution이야! 어떻게 생각해, 넌?"

"즐거운 일입니다! 정말 재미있겠군요! 우리 함께 웃읍시다! 같이 웃어요! 함께 웃으세요!" 남자가 말했다.

"그래, 좀 이따가."

"그래! 좆같은 스쿠비 새끼!" 아주 광분한 목소리로, 펠리컨이 외쳤다.

보블이 옆으로 한 걸음 내딛고, 화려한 손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문 바깥에 빛이 보였다. 아, 아니, 빛이 아니었다. 잡음 화면이었다. 텔레비전 잡음. 하지만 출구이긴 마찬가지였다.

"아님…" 보블이 말했다. "남은 시간 동안 여기 있어도 되고."

제프리는 더 망설일 게 없었다.

재생 ████ 신실파에 속하던 인원 단 한 사람만이 보인다. 재생 기간 내내 이 사람은 경기장 문을 주먹으로 두들기며 나가려 시도한다. 재생이 끝나기 직전에, '빠앙' 소리가 한 번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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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계속 이어졌고, 보좌관은 입에서 문장들을 우수수 쏟아냈습니다. 자기도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요. 학살과 도륙이, 잔학함과 대재앙이 어릿광대 벨의 손으로 화려하게 피어났어요. 이야기는 내뱉어지자마자 보좌관의 정신 속에 뿌리를 내렸고, 보좌관은 머릿속에서 타락한 광대가 깔깔 웃는 소리를 들었죠. 부드럽고 따뜻한 소리였어요. 갓난아기를 더그덕더그덕 짓밟는 말발굽처럼요.

그리고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왕은 조언자를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입가에 웃음이 활짝 피어났어요.

"군대에 통지하라." 흥분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왕이 말했습니다. "내일 출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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