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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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은 한국어 이름 안 지으세요?"

"어…" 슈판다우가 대답했다.

"왜요?"

이 질문에, 슈판다우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수천 개의 광원이 반짝이는 서울의 야경처럼 그의 머릿속에서 수천 개의 대답이 오갔지만, 항상 그랬듯이 입 밖으로 나올 대답은 결국 하나밖에 없었다.

"그냥… 그냥. 별 이유는 없어.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니까."

"그럼 진짜 중요한 건 뭐에요?"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일을 하느냐는 거지. 내가 만약에 일을 조금이라도 잘못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어."

"안 힘들어요?"

"힘들지. 하지만 내가 없으면 그 사람들도 위험해져. 게다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그렇구나…"

슈판다우는 그런 대답을 하는 자기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최근에, 그는 자신이 하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한 일을,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횡령. 의도가 어떻게 되었든,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선 람다-92의 부대원들에게 환영을 받고, 또 조카에게 충고까지 해준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겐 너무나 가식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응. 너도 언젠간 알게 될 거야."

"근데, 삼촌이 그 자리에 없어도 사람들이 다치지 않을 수는 없어?"

"있기야 하지. 그런데 왜?"

"삼촌이 요즘 너무 힘들어하는 거 같아서… KTX 타고 남산 오기로 약속한 거 벌써 두 달 전이잖아."

"그래서 오늘 왔잖아. 그리고 원래 주인공은 항상 그런 거야."

슈판다우가 말을 끝맺자, 남산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오랜만에 한산함이 깃든 남산 꼭대기의 전망대에서 움직이는 존재는 오직 한 줄기의 차가운 바람 뿐이었다. 그러한 고요 속에서, 슈판다우는 다시 한 번 죄책감을 느꼈다. 극단적인 선택도 고려해 보았지만, 지고 있는 짐이 너무 많은 슈판다우에게는 그것마저도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는 비겁한 행동일 뿐이었다.

"재미 없었나 보네…"

"나는 주인공이나 그런 건 안 할 거야."

조카의 말에, 슈판다우가 물었다.

"왜?"

"없어지는 건 난데 위험해지는 건 사람들이잖아. 불공평한 거 같아. 내가 없어져 버려도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 게 차라리 더 나을 거 같아서."

슈판다우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람다-92의 사령관이 아닌 말단 중대장이었다면, 람다-92의 모든 부대원들을 책임질 수는 없었겠지만 최소한 그런 범죄를 저지를 필요 역시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저질러 왔던 모든 죄악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말 안 들리세요? 삼촌?"

슈판다우가 몽롱한 상태로 일어났다. 조카였다. 아리따운 정장을 입은 채 그의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연서냐?"

"네. 아, 저 취업했어요." 연서가 활짝 웃어보인 뒤, ID 카드를 꺼내 슈판다우에게 보여주며 대답했다. "법의학과 소속 2등급 연구원 백연서, 취업하자마자 출장을 오게 되었습니다! 마침 장소가 여기라서 오랜만에 인사드릴 겸 온 거에요."

"그렇구나." 2등급 연구원, 말단직이었다.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주인공이 되기 싫다던 연서에게 딱 어울리는 직책이었다. "우리가 못 만난 지 얼마나 되었더라?"

"6년 정도요? KTX 타고 남산 갔던 게 마지막이었죠."

"꽤 지났군…" 슈판다우가 중얼거렸다. "많이 변했구나."

"네. 그동안…" 연서가 대답하려던 순간, 누군가를 찾는 방송이 울려퍼지며 그녀의 말을 끊어 버렸다.

"145K기지 법의학과 출장 연구원 백연서, 즉시 21K기지 연구동 다목적실 14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저 혼나기 전에 빨리 가봐야겠어요. 다음에 뵈요!"

"그래. 빨리 가 봐라…" 떠나는 연서를 바라보던 슈판다우는 영혼 없이 중얼거리며 그녀가 확실히 많이 성장했고, 또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은 6년 전과 다름없이 많은 짐들을 여전히 지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부끄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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