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한 우연

큐빅 박사가 격리실에 들어오고 다시 키패드를 조작해 문을 잠그고 불을 켰다. 다섯 명이 모두 잠에 취한 눈으로 그 쪽을 쳐다보았다. 카일리가 눈을 비비며 큐빅 쪽을 쳐다보았다. 예상외로 태평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에 당황했는지, 그가 입만 벌리고 있다가 가까스로 말을 내뱉었다. “지금 여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이렇게 자고 있는 겁니까?”

다섯 명이 피곤한 듯 눈을 비비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자, 큐빅이 안 되겠다는 듯이 가운 안쪽에서 태블릿을 꺼내 스크린을 꾹꾹 누르더니 내밀어 보였다. 감시카메라 영상이 스크린에 나오고 있었다.

스크린 영상에서는 어두운 격리실이 나오고 있었다. 큼지막한 격리실에는 탁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낡은 타자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때 격리실 문이 열리고 연구원 하나가 그 안으로 내동댕이쳤다. 엉거주춤하게 연구원이 일어서는 찰나 갑자기 타자기가 타닥거리며 혼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SCP-700-KO 아니야?” 고디스 연구원이 태블릿에 얼굴을 가까이 대며 물었다. “저기 사람을 집어넣게 되면-”

영상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연구원이 황급하게 타자기 쪽으로 달려들었지만, 타자기에 손이 닿기 직전에 지우개로 지워버린 듯 사라져 버렸다. 큐빅이 태블릿을 끄고 말을 이어갔다. “보셨죠? 지금 카잔 관리자님이 내규를 싹 갈아엎었어요. 식량, 물, 전기 사용, 뭐 그런 것들을 다 규정해 놓고 위반하면 저 안에 집어넣는 거죠. 이 기지는 완전히 도시국가 같은 상황, 아니면 기지국가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런 상황이라고요. 도대체 이런 폐쇄적인 곳에 왜 온 거에요?

“어… 말해도 될지 모르겠군요.” 풀그림이 망설였다. “지금 이 기지에 대해 당신의 생각부터 듣고 싶군요.”

“이 기지?” 큐빅 박사가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멀쩡한 상황은 아니죠. 카잔 관리자님은 자기가 왕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고. 교신도 전부 끊고. 기지 밖으로 나가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고. 뭔가 변화가 필요하기는 하다고 봐요.”

“그럼 얘기하죠.” 풀그림이 자세를 고쳐앉았다. “지금 재단과 지역사령부 사이에서 상당한 분쟁이 있었고, 지역사령부가 붕괴된 상황입니다. 노래마인 관리자님이 사망하기 직전에, 지금 TF급 세계멸망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고, 시나리오를 실험하는 기지가 이곳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왔고, 그 시나리오가 뭔지 알아내려고 했지요.”

“그 시나리오의 내용을 만약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막아야죠. 최대한.” 하사드가 끼어들었다. “어쨌든 간에 세계멸망 시나리오 아닙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면 막아낼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겠죠.”

“좋습니다. 시나리오, 시나리오라.” 큐빅이 뒤통수를 긁으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시나리오들을 실험하는 건 맞지만, 그 정보가 여기 저장되는 건 전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그런 정보는 특급 기밀이니까요. O5 평의회만 제대로 열람할 수 있을 뿐이고.”

“그럼 여기서는 그 시나리오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겁니까?”

“만약 진짜로 그 TF급 시나리오라는 게 존재한다면, 여기서 실험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실험 기록은 확인할 수 없지만, 모든 변수 설정은 저장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 시나리오가 무슨 내용인지 재현해 볼 수는 있겠죠.”

“재현해 보겠다고요? 지금 전기나 장비 같은 게 충분한 상황이에요? 그 곳에 접근할 수 있고?” 카일리가 물었다.

“어..물론 지금 지하 시설은 지금 전부 꺼져 있는 상황이지만.” 큐빅이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저한테 접근 권한이 있으니 접근할 수 있습니다. 아웃풋도 우리 쪽에 표시되도록 컴퓨터를 연결하면 되고, 전기야 어떻게 끌어오면 되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문제는 재현을 시작하게 되면 일어나는 일이지.”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거죠?”

하사드의 질문에 큐빅 박사가 더듬거리며 답했다. “어… 그러니까… 내 경험에 따르면 시나리오를 실험하게 되면 엄청난 소음과 열과 빛이 발생하는데, 원래대로라면 차폐벽과 쿨러가 작동해서 무시할 수 있는 거지만 지금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단 말이죠. 그러니까 시나리오 실험을 시작하는 순간 그게 아마 근방에는 전부 눈에 띌 걸요.”

“그래서 그 시간 동안 방해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카일리가 당황스러운 듯 물었다.“음… 시나리오를 다 보려면 8시간은 걸릴 걸요.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하는 게 좋겠죠.” 큐빅 박사가 태블릿을 조작해서 다시 격리실 문을 열고 밖으로 다섯 명과 함께 나왔다. “감시카메라를 조작했으니 우리 모습이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최대한 빨리 움직입시다. 바로 지하에 있는 재현 시설로 가죠.”

앞장서 걸어가던 큐빅이 갑자기 떠오른 듯 물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네요. 시나리오 관리는 O5-3가 관장하고 있고, 그 사람은 틀림없이 모든 시나리오를 봤을 거란 말이죠. 그럼 평의회도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고 있을 텐데, 왜 상황이 이 지경으로 흘러가게 방치하고 있는 걸까요?”

“재단도 뭔가 꿍꿍이가 있겠죠. 뭔가 노리는 게 있어서 이러는 거일 테고. 그나저나 그 시나리오 정보는 어디로 간다는 겁니까?”

“모나코에 있는 데이터베이스요. 제가 알기로 모나코에 있는 작은 시설에 시나리오 결과가 저장된다고 들었어요.”

“모나코라?” 고디스가 뒤에서 툴툴거렸다. “몇 번 가보기는 했다만 못 찾겠던데. 그 크지도 않은 도시 어디에 그런 시설을 숨겨놨는지 모르겠네.”


이트륨과 란란맥이 비틀거리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란란맥이 기지개를 쭉 폈다. “원래대로라면 파리까지 가려고 했는데 빨리 땅 좀 밟으려다 보니 여기 내리게 되었군요. 그래도 유클리드급 변칙 개체를 싣고 다니니까 좋은 점도 있군요. 가는 재단 시설마다 기름 주면서 빨리 꺼지라고 해주니까.”
“기름이야 확실히 충분히 얻었는데, 그러다 보니 땅을 별로 밟아보지는 못했네.” 이트륨이 맞장구쳤다. “하늘만 계속 떠서 다니니까. 우리가 5분 이상 마지막으로 대화해 본 사람이 그 아무도 아닌 자였지 않나?”

“그랬죠. 그나저나 여기 내려도 괜찮은 곳이에요? 다른 기지하고는 다르게 아무 교신도 없고 사람도 전혀 없는데.”
란란맥이 스트레칭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다른 재단 시설과는 달리 버려진 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문과 벽에는 이끼가 군데군데 있었고, 오랫동안 청소도 하지 않은 듯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트륨은 헬기 뒤쪽에 놓인 유클리드 격리 용기를 점검하고 입구 쪽으로 다가가 이끼를 손으로 쓸었다. “아무래도 바이러스 때문에 대피령이 내려졌나 본데. 여기 모나코까지 어떻게 조치를 취할 만한 자원은 없었을 테니까.”

란란맥이 보안 장치가 드러나자 카드를 밀어넣고 문을 열었다. 안쪽으로 모나코 데이터베이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두컴컴한 복도로 란란맥이 손전등을 비추자 줄지어 있는 서버와 컴퓨터의 모습이 보였다.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며, 둘이 복도로 들어서자 발걸음 소리가 조용한 복도를 울렸다. 그 소리에 서버실 깊숙한 곳에서 붉은 눈 한 쌍이 번뜩였다. 11호, 나무로 된 형체가 달그락거리며 몸체를 움직였다. 카에스틴 차장이 말한 대로 시나리오 일지를 찾아서 움직이고 있던 11호가 천천히 발을 떼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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