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5-1의 고백서

자네가 이 글을 받아보고 있을 때쯤이면 이미 평의회는 결정을 내렸을 걸세. 자네도 들었겠지만, O5-11이 죽었네. 부서진 신의 교단에게. 매우 치욕스럽게. 평의회는 복수를 원하겠지.

자네도 동의할 지도 모르겠군. 그게 어쩌면 당연할 거일지도. 그러나 나는 자네에게 하나 고백할 게 있네. 내가, O5-1로써, 가장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세계멸망 시나리오를 하나 들려주겠네. 바로 TF급 세계멸망 시나리오일세. 무엇 때문에 세상이 망하냐고? 바로 재단일세. 재단이 세계를 멸망시키지.
무슨 소리인가 싶은가? 간단하네. 재단은… 너무 강력해졌어.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수도 없이 가두어 놓고 있고,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한 기술을 발전시켰지. 밈적 인자, 인식재해 인자, SCP-984-KO, SCP-2000에 적용된 수많은 기술들, 온갖 무기들… 그것들이 이 세상을 향해 돌려진다면 어떻겠나? 재단의 목적이 SCP들을 격리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것이 된다면?

그래, 바로 지금 상황처럼 말이야. 재단은 곧 부서진 신과의 전쟁을 선포할 걸세. 재단과 전면전을 붙으면 웬만한 국가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어. 부서진 신은 아무것도 아니지. 문제는 그 전쟁이 수술처럼, 암덩어리만 도려내고 깔끔하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거야. 불이 붙을 걸세. 전차는 계속 구르고, 전쟁은 점점 커질 거야. 이미 평의회는 부서진 신이 반란의 도움을 받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네. 그래, 지금의 진짜 목표는 반란이지. 어차피 부서진 신 같은 한 종교를 완전히 밀어버리는 건 불가능해. 대신 재단의 불구대천의 원수이자, 가장 짜증스러운 반란을 이참에 밀어버리는 거지. 그게 성공하면, 다음은 마샬-카터? GRU? 유물발굴청? BE? 멈출 수 없이 계속될 걸세. GOC도 끼어들겠지. 미국, 러시아, UN도. 세계 대전이 시작될 거야. 모든 것이 파멸에 이를 때까지. 그게 바로 TF급 세계멸망 시나리오의 결론일세.

이 시나리오를 이 세상에서 아는 자는 이제 자네와 나뿐이군. 그 이유는 이 시나리오를 방지하는 게 내 업무 중 하나이기 때문일세. 실무자 하나에게만 알게 하는 기본적인 정보 차단의 원칙이지. 나를 비롯한 O5-1은 간단하게 그걸 이뤄냈네. 바로 거짓 SCP 항목들을 만들어 내는 거지. 그래, 생각해 보게. 자네가 SCPiNET을 열람하면서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 있지 않았나?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나?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들? 그런 것들은 모두 내가 작성한 것들이네. 나는 거짓 SCP 항목들을 만들어 내서 등록시켰고, 존재하지 않는 가짜 연구원과 요원들을 거기에 배치했네. 격리에 필요한 예산, 무기, 시설, 설비 등을 받아서는 전부 비밀리에 폐기했고. 그런 식으로 나는 재단의 힘을 약화시켰네. 그래서 평의회가 자신들은 항상 인력이나 예산이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했지. 그래서 재단이 요주의 단체를 밀어버린다든가 하는 생각을 하지도 못하도록.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점이 있었네. 내가 격리하기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SCP를 만들어내면, 그들은 그 SCP를 효과적으로 격리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했네. 악순환이지. 따라잡으려는 자와 도망치는 자의 경주였지. 나는 최대한 상상력을 짜내 세상이 특정 시기에 망한다는 SCP-2003 같이 말도 안 되는 SCP들을 만들어냈고, 다른 O5들은 그걸 격리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도록 기술자들과 과학자들을 쪼아댔네. 재단의 기술력은 점점 진보했고, 내가 만들어낸 SCP들은 오백을 넘겨버리면서, 지금 상황은… 미안하군. 솔직히 말하겠다고 말했으니 그렇게 하지. 재단의 기술력으로는 전면전으로 나서면 일 년도 안 돼서 반란을 밀어버릴 수 있어. 내 업무는 실패했네. 그래서 자네에게 부탁하는 걸세. 나름 그쪽도 SCP들이 200개는 되지 않나. 유능한 인원이나 병력도 꽤 있는 편이고.

재단을 배신하라는 뜻이냐고 묻고 싶겠지. 그렇네. 하지만 그 배신이 재단을 위하는 길이야. 그 시나리오대로 그대로 갈 수는 없어. 다른 변수가 필요해. 그 시나리오를 바꿀 만한 변수는 자네와 자네의 지역사령부뿐이라네. 나는 이제 평의회에서 물러날 걸세. 다른 O5들이 내 사임을 요구하고 있거든. 전쟁에 회의적이므로 사령관을 맡으면 안 된다는 거지. 마음 같아서는 자네에게 TF등급 시나리오의 전문을 보내주고 싶지만, 못 그러는 것도 이것 때문일세. 그들은 이미 내 보안 등급을 없애 버리는 절차를 시작했거든.

이만 작별이군. 나는 아마 기억 소거를 받겠지. 어느 조그마한 도시의 셋방에서, 연금으로 먹고 살아가는 독거노인이 될 테고. 하지만 자네는, 세계멸망 시나리오를 막아야 할 짐을 떠안고, 평의회에 도전하고, 재단에 맞서야 할 테고.

행운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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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마인, 대한민국 지역사령부 총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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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5-1, O5 평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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