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 아니 다섯 명이 차에서 내렸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들고, 다섯 명은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제5기지를 바라보았다. 5기지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던 27기지와는 달리 멀쩡해 보였고, 외벽의 문 역시 굳게 닫혀있었다. 하사드가 햇빛을 손으로 가리고 언덕 쪽을 쳐다보았다. “여긴 네탈시포 사제한테 공격받지는 않은 모양이군.” 기지로 성큼성큼 다가갈 때, 외벽 초소에서 요원 하나가 소총을 겨누고 일어섰다.
“움직이지 마!” 요원이 천천히 초소에서 나와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 “신원을 밝히고 허튼 수작 부리지마!”
즈소가 늘 그렇듯 미소를 잃지 않고 목에 건 신분증을 내밀었다. “27기지 소속 B계급 즈소 연구원입니다. 5기지에 방문하려고 하는데요.”
요원이 경계심에 찬 눈으로 즈소를 쳐다보며 신분증을 확인했다. 힐끗 신분증을 확인해 보고, 요원이 뒤로 물러나 다섯 명에게 손짓했다. 요원이 앞서 이동하고 외벽의 문이 열리자, 다섯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제5기지는 완벽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지나다녔고, 전기나 보안 시스템도 계속 작동하고 있었다. 계속 기지 깊숙이 들어가 이들은 방 하나로 안내받았다.
“D계급까지 돌아다니는 거 보니 실험 작업까지 계속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나본데.” 하사드가 중얼거렸다.
“물론이죠.” 뒤에서 갑자기 말소리가 들려왔다. 회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기지 관리자 카잔이 서 있었다. “우리 기지는 최소한 7년은 이 상황을 유지하면서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카잔이 뒤로 돌아서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따라오시죠. 우리 기지가 어떻게 지금 버티고 있는지 견학시켜 줄 테니.”
다섯 명은 카잔을 따라 5기지 연구동으로 들어갔다. 긴 복도를 따라 걷자 유리로 된 벽 너머로 박처럼 생긴 덩굴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D계급들이 지나다니며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있었다.
“SCP-532-KO잖아?” 카일리가 유리에 얼굴을 들이대며 중얼거렸다. “지금 42기지에만 있고 다른 곳에는 없는 걸로 아는데, 저걸 어디서 저렇게 많이 확보한 거에요?”
“대단한 식자원 아닙니까?” 카잔이 기분 좋게 웃었다. “지역사령부와 통신을 끊기 직전에 42기지에 연락해서 얼마 보내오라고 했죠. 원래 만나 자선재단에서 기아 문제 때문에 만들었다지만, 지금 같이 세상이 돌아갈 때도 충분히 좋은 거라니까요. 그럼 계속 가시죠.”
“우리 농장에서도 연구용으로 정말 조금밖에 못 받았었는데. 어떻게 약간이라도…” 카일리가 아쉽다는 듯 힐끗힐끗 돌아보았다. 하사드가 그러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고 끌고 갔다.
다음으로 연구동을 지나 밖으로 나가 다시 다른 건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주방 건물이 나왔다. 카잔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며 말을 이었다. “이 기지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건 첫째가 식자원, 둘째가 식자원, 셋째가 식자원이었습니다. 전기는 자체 발전기를 가지고 계속해서 공급하는 중이고, 기름이나 약품도 충분히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앞서 보셨듯 SCP-532-KO도 있었다만, 그걸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대단히 파격적인 선택을 했죠.”
주방에 있는 거대한 냄비 위에 가방 하나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한 번 돌아갈 때마다 무언가가 쏟아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가방이 흔들리며 덜컹거렸다. 풀그림이 실눈을 뜨고 그 쪽을 쳐다보았다. “잠깐만, 저거 설마…”
“아, 바로 SCP-505-KO죠. 보고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찜찜한 느낌을 받았을.”
“저걸 D계급 식사에 이용한다는 거죠? 나도 보고서는 읽어봤다고요.” 즈소 연구원이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게… 뭐 격리 절차나 보고서에는 D계급 식사에 이용한다고 나와 있죠.” 카잔이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유출 이후로 근처에서 지원을 받는 게 거의 불가능해져서 말이죠. 보다 강경한 방법을 사용해서, 모든 인원의 식사에 저걸 적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뭐라고요? 저걸… 이 기지의 모든 사람들이 먹는다고요?” 카일리가 기겁해 물었다.
“오, 물론 반발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상당한 부담이 있는 결정일 수 있죠. 그래서 약간은 임의성을 추가했습니다.” 카잔이 이마의 땀을 닦았다. “멀쩡한 식사와 SCP-505-KO에서 나온 식사를 섞어서 임의로 배정하는 거죠. 자신이 뭘 먹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모두가 찜찜함을 안기는 하지만 505-KO 식사를 먹는 누군가가 불만을 가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맙소사. 하지만 저건…” 고디스가 말문이 막힌 듯 웅얼거렸다. 즈소 연구원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분명히 505-KO는 이런 방식으로 쓰라고 있는 거죠. 뭐 식량 수급이나 효율성이나 어느 면에서 봐도 현명한 방법이네요.”
카잔이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과찬입니다. 그럼 이동하죠. 여긴 볼 게 없으니 격리동 쪽으로 가 볼까요.”
그들이 주방동에서 나와 지하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격리동으로 들어갔다. 격리동은 쭉 길게 뻗은 복도에, 벽 양쪽에 격리실들이 간간이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풀그림이 뒤에서 카잔에게 말했다. “그래도 이 정도로 기지를 보전했다면 재단을 재건할 때 크게 보탬이 되겠군요.”
카잔이 갑자기 멈춰 서서 뒤를 홱 돌아보았다. “재단을 재건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당황해서 풀그림이 물었다. “재단을 재건해야죠. 지금 평의회가 이런 식으로 움직이고 있고, 지역사령부는 무너진 상황이니, 재단의 가치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 언젠가는 재단을 다시 세우고 확보 – 격리 – 보호를 실현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카잔 관리자가 풀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그가 차갑게 말했다. “재단을 재건하겠다니, 정말 꿈같은 생각이군요. 난 그럴 생각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이 가장 이상적이죠. 재단의 가치인 확보 – 격리 – 보호라? 그 중 두 가지야 괜찮지만, 격리라는 건 그리 좋은 필요한 게 아니니까요.”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풀그림이 발끈해서 반박했다. “격리가 왜 필요하지 않다는 겁니까? 격리라는 건 변칙 개체가 위해를 가할 수 없도록 가둔다는 뜻인데요?”
“모든 변칙 개체는…” 카잔 관리자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보고서를 보면 분명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SCP-532-KO는 기아를 없애겠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고, SCP-505-KO는 어느 살인자가 자신의 희생양을 모아놓기 위해 만들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 겁니다. 변칙 개체가 왜 존재하는지 그 목적을 알고 그것을 연구한다면 제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그걸 실현하고 있고.”
“그러다가 당신도 좋은 결말 못 날 겁니다.” 하사드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재단 규정이라는 건 다 벌써 크게 데여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거거든요.”
“하!” 카잔이 코웃음쳤다.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경비! 이들 전부 다 저기 격리실에 집어넣게.”
복도에 서 있던 요원들이 일제히 다가왔다. 요원들이 붙잡기 시작하자 카일리가 몸부림쳤다. “당신! 당신이 지금 기지 관리자라는 직책을 달고서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재단 직원이라는 명함을 달고서?”
“재단에게 SCP는 격리의 대상이지, 마음대로 써먹을 대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지금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재단 직원 직책은 내던져버릴 수 있습니다.”
다섯 명은 모두 격리실 하나에 내던져졌다. 카잔이 미소지으며 직접 문을 잠가버렸다.
깊게 잠에 들어 있던 고디스가 눈을 떴다. 격리실 문이 갑작스레 열리고 있었다. 컴컴한 격리실 안으로 가운을 입은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큐빅 박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