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로맨스
평가: +4+x

나와 같은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이얀 피부가 내 칙칙한 피부와는 명확히 대비된다. 그녀는 마치 화학 약품을 향수 대용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늘 특이한 냄새를 풍긴다. 그 냄새는 언제나 위험하고도 유혹적이었다. 또한 믹스커피에 각설탕 다섯 개를 넣어 마신다. 언제나 당이 부족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초콜릿처럼 달콤한 것을 선물한다면 굉장히 기뻐한다.

이설연, 이름은 이설연이다. 폭설의 설과 인연의 연을 쓴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에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과 이름이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젠가 그 사람이 누구냐 물어봤을 적, 그녀는 자신이 읽었던 로맨스 판타지 소설의 남주인공 이름이라 대답했다. 결국 그녀는 자기소개를 할 때도 자신의 이름을 제 입으로 내뱉지 않는다. 그래서 나 또한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려 한다.

그녀의 입술은 장미나 피처럼 진한 붉은색을 띠지 않는다. 복숭아처럼 연한 분홍빛이다. 자신은 원래 입술이 파리하니 예쁜 립스틱을 사용한다는 것을 자랑스레 말하고 다닌다. 내가 보기에도 참 어울리는 모습이기에 괜스레 그녀의 입술을 바라볼 때마다 묘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읍!"

멍하니 바라보다 입술을 포갠다. 그것을 나의 입술과 겹쳤을 때, 분명 나와는 다른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같은 입술인데 이렇게 다를 리가 없을 테니까. 같은 피부인데 이리도 다를 리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정말 사람이 아니었을 줄이야. 나는 종이에 손가락이 베여 새어 나오는 그녀의 핏방울을 본 적이 있다. 초록색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이를 비밀로 해 달라 부탁했다. 둘만이 공유하는 비밀이 하나 더 늘었다는 사실에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저열한 도취감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과 유사한 존재인, 외계인과도 같은 존재가 격리되고 실험의 대상이 되는 것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며 티비를 보던 눈빛과 그닥 다른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아무런 생각이 없을 수도 있고, 그녀의 깊은 생각을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 아무튼 녹색, 나는 그 초록빛 액체가 참 마음에 들었다.

"흐읏!"

나는 그녀와 성관계를 맺다 목덜미를 살짝 물어뜯었다. 그녀는 아프다 하였다. 흐르는 녹색 피가 마치 식물의 진액과도 같았다. 나는 살결에 흐르는 핏물을 핥았다. 나의 침으로 인해 연해진 핏물이 피부에 발라졌다. 이것으로 몸 속에 같은 피가 흐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녀는 나를 마주 끌어안았다. 나는 그녀가 아니고, 그녀 또한 내가 아니니 서로를 알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이 미치도록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 덕에 서로를 더욱 알아갈 수 있으니 모순된 기분에 이상한 고양감이 들었다. 그래도, 결국 마지막까지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퍼 피를 마셨던 것이다. 나는 바로 다음 날 그녀를 아프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였으며, 그녀 또한 사과를 받아들였다. 대신 내 손 끝을 바늘로 살짝 찔러 피를 흘리게 하였다. 붉은 피였다. 그녀는 내 손가락을 핥았다. 손가락이 피와 침으로 끈적였는데, 이는 이상하게도 색정적이었다.

"이제 반반이네."

그리 말하는, 피가 살짝 묻은 분홍빛 입술 또한 위험하게도 고혹적이었다. 그녀는 목에 널찍한 사각형 밴드를 붙인 채였다. 주변인이 그녀에게 어쩌다 다친 것이냐 물었다. 그녀는 키우는 애완견에게 물렸다 답했다. 나는 상처로 인해 약간 부어오른 손끝을 바라봤다. 나는 어째서 손가락이 부었을까. 글쎄, 가시에 찔렸다 중얼거렸다.

녹색 가시였다.

가시를 품고 있는 변칙 개체에 대한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나는 실험을 하며 온통 그녀의 생각만을 하였다. 이 개체를 그녀와 겹쳐 본다는 것이 실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사랑인걸. 실례되는 사랑. 안타까운 현실이다.

실험이라 하니, 그녀의 직급에 대해 말하자면 꽤나 높은 계급인 3급 연구원이다. 반면 나는 후임 연구원. 그녀와는 달리 기억소거를 받을 일이 많다는 의미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모르는 나를 알고 있다는 것이 자신을 기분 좋게 만든다 하였다. 나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나는 그녀도 모르는 그녀의 모습을 내가 찾아내겠다 말하며 목덜미를 쓸었다. 그녀는 간지럽다 툴툴대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의 사랑은 불처럼 빨갛지 않다. 천천히 자라나는 식물과도 같았다. 햇빛을 받아서도 자라며, 떨어지는 빗망울 또한 기분 좋게 받아마신다. 추적이며 비가 내리는 날, 나와 그녀는 바깥으로 나갔다. 우산은 쓰지 않았다. 머리에 온통 쏟아지는 비, 차가워지는 몸, 하지만 늘 그렇듯 입가에 걸린 미소. 비를 온몸으로 받아들여 보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사랑하는 사랑과 함께라면 더욱. 다음 날에 감기에 걸릴 각오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나중에 떠올려보자면, 비에 젖은 연인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연인은 의외로 눈이 오는 계절을 싫어했다. 눈이 내리는 풀밭에서 뛰는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씹어 삼켰다. 겨울만 되면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놓은 채로 이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노크를 하고 그녀의 개인 연구실에 들어선다. 말이 개인 연구실이지, 이미 자취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 오래다. 여기저기 흩어진 종이, 이불, 갖가지 잡동사니… 맥주 또한 마신 것인지 방의 구석에 캔이 굴러다닌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내 정체가 궁금하진 않아?"

나는 허리를 숙인 채 행동을 멈추었다. 내가 그녀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그녀가 생각한다면 기꺼이 정체를 물어볼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밝히기 싫다면 물어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온 외계인일지도.

"흐흣. 너무 아이디어가 빈약한 거 아니야?"

내게 중요한 건 그녀가 언제까지고 나와 함께할 것이라는 사실이니까.

"언제까지고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적어도 그녀가 살아있을 때까진.

"로맨틱하네."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내 볼을 손등으로 쓰다듬었다. 참으로 간사한 여인이다.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으니.

그녀는 언젠가 3등급 연구원들 사이에서 진행하는 회의에 참가했다. D계급 죄수뿐 아니라, 연구원들까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실험이 위에서 내려왔다 하더라. 그녀는 반대했다. 마치 실험을 그대로 진행한다면 하극상을 일으킬 것이라는 듯 격렬하게. 하지만 이미 결정된 사안을 통보하는 방식이었다. 그저 연구원일 뿐이었던 그녀는 무력할 뿐이었다. 그녀는 방에 돌아와 울었다. 너무나도 서럽게 울어 내가 더 울적해졌다. 그녀의 등을 토닥였지만,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나는 괜찮을 것이다. 최대한 죽지 않도록 해 보겠다. 나는 무책임하게도 확신 없는 약속을 내뱉었다.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주일 후, 나는 죽었다. 허무한 죽음이었다. 늘 그렇듯 무능한 상부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개체에 대한 실험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느티나무의 이파리에 목이 졸려 죽는, 그저 그런 연구원 1의 죽음이었다. 언젠간 죽으리라 생각하긴 했으나, 그녀를 단 하루만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아쉬움과 슬픔이 죽기 전에 전신을 지배했다. 그러자 뭉툭한 감각이 생겨났다. 묘한 부유감이 들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려갈 때 드는 느낌이 연속적으로 느껴지는 듯 했다. 눈이 뜨이고, 내 자신을 바라봤다. 하늘에 떠 있었다. 죽었구나. 나는 그 때 깨달았다.

…그녀를 보러 가자. 나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다리를 움직였다.

그녀는 자신의 방에 있었다. 식물이 시들어 있었다. 날카로운 가시도 예기를 잃었으며, 고혹적인 꽃잎도 제 색을 잃었다. 심장이 가시에 갈기갈기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나에게서 등을 돌려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에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 하였지만 닿지 않으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이 너무나도 컸기에 손을 거두었다. 어린애같다고 생각했다. 그저 무서워서 사랑을 외면하는 모습이 유치했지만, 나에게 있어 그런 두려움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

나는 홀린 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그 말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애타게도 불렀다. 고개를 숙여 나 또한 눈물 흘리며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머리에서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니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내가 무엇을 착각한 것일까. 꽃은 여전히 미를 잃지 않았으며, 그 날카로움 또한 무디지 않았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이름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그렇구나. 그녀의 변칙적인 능력이라 한다면,

"죽어도 너를 볼 수 있으니까."

나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너를 다시 볼 수 없을까봐 무서웠어."

나도 두려웠다.

"네가 유령이 되고도 다시 돌아올까, 걱정했어."

참으로 별 걱정이다. 나는 웃었다.

유령과 외계인의 이상한 로맨스라니. 어이가 없어서 다시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진정 행복하다는 듯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시들어 있었지만서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는 그녀와 입을 맞추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 입에 스며들었다. 키스에서 짠맛이 났다.

실례되는 사랑, 안타까운 사랑. 그리고 아름답지만 이상한 사랑이었다.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