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듣지 않았다. 어떻게 듣는지 몰랐다. 어쩌면 지금은 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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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8살 때부터 하늘을 나는 게 무서웠다. 그다지 큰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날고 싶지 않으면 안 날면 되니까. 나는 차를 운전했다. 가끔은 기차도 타고… 버스도 한 번 탔는데 다시는 안 타고 싶다. SCP 재단은 이동 수단 문제에는 참 유연했다. 어차피 그렇게 많이 움직여야 하는 직무도 나는 아니었다만.

중요한 건 비켜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8살 먹었던 그때는, 비켜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내 방에 죽치고 앉아 룬스케이프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랑 아빠가 또 싸우기 시작했다. 목소리들이 컸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창밖으로 올라가, 지붕에다 앉아서 별들을 바라봤다. 아직도 그 소리들은 웅얼웅얼 들려왔지만 그닥 나쁘지는 않았다.

바깥에서 하늘을 보는, 그곳이 내 안전공간이었다. 바깥에서 보는 세상은 느릿느릿 움직여서 내가 다들 지켜볼 수 있었다. 저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차들이 움직였다. 사람들이 웃었고, 아이들은 놀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추워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일어섰을 때, 나는 미끄러졌다. 한 발이 지붕 위로 날아오르더니 이윽고 내 몸도 따라가며 괴상스럽게 빙글빙글 돌았다.

그때가 바로 내가 날아본 첫 경험이었다.

나는 등을 바닥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채로 착지했다. 숨이 턱 막히고 머리가 멍해졌다. 기억하기로는 그렇게 몇 분을 있었다가 아빠가 바깥에 나와서 나를 발견했다. 온 세상이 뱅뱅 돌아가고 멈추지 않는 듯했다. 부모님은 날 병원으로 데려갔다. 멍이 든 것 빼고는 다 괜찮았다. 그러자 나는 이번에는 정신과로 끌려갔다.

그냥 사고였다고, 자살하려던 게 아니라고 나는 말해봤지만, 병원에서는 감정을 억제할 수 있게 몇 가지 약을 먹어야 한다고 완강하게 나왔다. 부모님은 결국 나한테 약을 먹여버렸고, 그 이후로 약 때문인지 사고 때문인지 몰라도 누워서 자려고 할 때마다 자꾸 온 세상이 다시 뱅뱅 돌아가는 기분이 찾아왔다.

학교 다니기는 힘들었다. 모두들 내가 자살 위험자라고 생각하다 보니 친구 만들기가 어려웠다. 고등학교에서는 추락이Crash라는 별명을 얻었다. 물론 그런 별명이야… 따지고 보면… 세상에 더 기분 나쁜 별명은 많지만, 그 유래가 생각나서 내가 항상 괴로웠다. 다시는 지붕 위로 올라가지 못했고, 그 안전하고 평온한 기분을 느껴보지도 못했다.

졸업하고 바로 나서 부모님은 나한테 자기들이 이혼하겠다고 말했다. 기쁘지 않은 소식이었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어차피 누구나 다 안 기쁘지 않을까? 더 괴로웠던 점은, 두 분은 오로지 나 때문에 함께 계셨다는, 내가 독립하고 나니 더 이상 서로가 의미 없는 줄 깨달으셨다는, 그 생각이 나한테 다가왔다는 점이었다. 두 분은 친구로조차 남지 않았다. 각자 이 나라 정반대편으로 떠나 버렸다. 서로를 더는 마주칠 일이 없도록.

휴가철에는 힘들었다. 특히나 하늘을 날지 못하는 나한테는.

대학을 나오고 나서 나는 SCP 재단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내가 맡은 자리는 위험한 아이디어들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무슨 파시스트 짓으로 들릴지 모르겠는데, 타당성 있게 위험한 아이디어 말하는 거다. 내가 분류 및 격리한 정보재해 하나는 생각하는 것만으로 맹장 위에 있는 걸 싹 다 토해내게 만드는 놈이었다. 재단에서 일해보면 생각의 힘이 끝이 없는 줄을 알게 된다.

아내는 이곳에서 일하는 중에 만났다. 내 상사의 담당 접수계원이었다. 아내는 아름답고 똑똑하고 재미있었다. 나는 하나도 해당 없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날 사랑했다. 한창 클 때는 부모님처럼 결혼하지는 않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을 싫어하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랬던 적도 없었다.

그런데 한 1년 전쯤 아내는 보면 안 될 문서들을 보고 말았다. 이런 종류의 실수는 간혹 일어나는 일이었다. 예의상 사람들은 기억소거제를 권유했다. 부작용을 잘 지켜보라고 말했다. 며칠 동안 아내는 기억을 새로 생성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 일환으로, 날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내 가슴이 찢어졌다. 여전히 아내는 명랑하고 활기찬 사람이었지만, 내가 만났던 그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다 아내에게 기억이 천천히 돌아왔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부터, 그러다가 어느 날 내가 일어나자 아내가 입을 맞춰 줬을 때, 아내가 돌아온 걸 깨달았다. 적어도 그런 줄 알았다.

기억소거제는 정밀한 과학의 산물이 아니다. 이따금은 기억 하나만을 표적으로 삼아 지우지 못할 때가 있다. 그때 이후로 아내는 전혀 예전과 같지 않았다. 다들 대개 몰랐지만 나는 알았다. 가끔은 열쇠를 잊어버리기도 했다. 잃어버리는 것도 있었다. 가끔은 일어나지 않은 일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다지 심각한 사건이 발생했던 건 아니었지만… 아내는 더는 내가 결혼한 그 여자가 아니라는 걸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나는 아내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아내 잘못이 아닌 줄은 나도 알았다. 하지만 생각이란 통제하는 물건이 아니다. 그리고 나한테도 똑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나는 알았다. 문서를 잘못 읽었다가 내가 더는 내가 아니게 되고, 그냥 원래 나랑 많이 비슷한 복사본이 되는 일이.

은퇴를 요청해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매번 똑같았다. 지난한 기억소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재단에서 나올 수 없었다. 아내가 받은 것보다 더한 처치가 필요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계획을 꾸몄다. 마셜, 카터 & 다크에 연락을 넣었다. 내 지식을 알려줄 테니 나올 방법을 강구해 달라고 했다. 이 회사는 내가 바라던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거래를 제시했다. 두말없이 나는 수락했다.

그렇게 나는 세스나 172를 타고 12,000피트 상공까지 올라갔다. 내 마음을 나는 다스리지 못했지만, 아내는 어쨌든 날 진정시켜 주려고 했다. 여전히 아내는 날 걱정했다. 나도 그랬지 싶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우리는 아이오와의 옥수수밭에서 추락사했다. 생존자는 없었다. 재단이 아는 한 우리는 제88기지 어느 한구석에 묻히게 되었다. 내 장례식에는 나도 찾아갔다. 똑바로 나를, 혹은 텅 빈 관짝을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일은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내 장례식에 내가 찾아간 건 아내를 찾는 것 때문이었다. MC&D가 우리한테 건네준 가면은 제대로 기능했다. 재단 직원들은 우리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재단 직원이었다. 아내는 그렇게 사라졌다. 다시 볼 수가 없었다. 정말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이 모든 것에게서 보호해 주려고 그랬는데. 말이라도 해줬다면 아내는 분명히 내 계획의 결점을 찾아냈겠지.

잠깐 동안은 그래도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냥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사람 없이 사는 건, 내가 아주 약간 싫어하는 사람과 하는 것보다 어렵다. 그래서 아내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영영 모르겠지. 죽어갔을지도 모르겠다. 또 아침에 열쇠를 잃어버리고 다시는 집에서 못 나왔을지도.

그래서 나는 돌아갔다. 이 상황을 해결해달라고 말했다. MC&D는 알겠다고 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문제는 항상 있었다. 나는 제19기지로 침투해 몇 가지 파일들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내가 훔쳐낼 수 있는 쓸 만한 SCP를 찾으면 갖다 주기로 했다. 누워서 떡먹기였다. 재단에서 나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예 나를 파악할 수 없으니까. 절대로 날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기다리고, 건물 주위를 정찰하다가, 어제 침투에 성공했다. 곧장 이 방으로 먼저 들어왔다. 여기 뭐가 있는지 알고, 재판매하기도 딱 좋은 물건이었으니까.

그때 그들이 날 여기 가뒀다. 나는 내 생각만큼 똑똑한 사람은 분명 아니었나 보다. 그들이 날 기억하진 못했지만, 내가 열어놓은 채로 둔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만은 참 잘 기억했다. 그래서 난 갇혀버렸다. 등을 바닥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는 채로 누워서. 내 삶이 어쩌다 이렇게 통제불능이 되었는지 생각하며. 주위에서 뱅뱅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이 소리를 찾아서 읽을 수 있다면, 나는 여기 있다. SCP-055의 격리실에. 그저 이 문을 열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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