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원, 사각과 삼각.
눈앞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이 기분이 좋지 않은 듯 먹구름에 자취를 감춘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저 어둠, 어둠만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은 또 누군가 죽어 하늘의 별이 되었을까. 세상에 별이 수없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많은 생명이 스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로 죽음을 별로 만드는 개체가 있다면 마음이라도 편할 터인데.
담배를 피우다 사레가 들린다. 온종일 되는 것 하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한번 울적해진다. 기침을 하기를 네 번, 고개를 들다 다시 기침이 나온다. 기침을 하기를 여섯 번, 오른손 검지로 눈가의 물을 닦아낸다. 이놈의 사레는 한 번 들리면 기침이 멈추질 않는다. 기침을 하기를 열 번, 창가에 팔을 얹고 고개를 기대어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에 본래 떠 있어야 할 보름달은 여전히 부끄럼을 탄다. 모습을 보고자 하여도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 다만 먹구름의 뒤편에 살그머니 빛나는 동그란 모습이 달의 위치를 짐작게 한다. 달은 태양의 빛을 받아 빛난다더라. 한데 별은 저 스스로 빛을 내는데도 달보다 더욱더 초라해 보인다. 크기가 작아서 뿐이 아니다. 그저, 그저 처량해 보인다. 저것이 사람이 죽어 남긴 유품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숙인다. 죽음과는 다르게 미약하게라도 반짝이는 그것이 별이다.
다시 고개를 든다. 이제 기분이 풀어졌는지 달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 그리 완전하지는 않은지 제 모습의 절반을 이불로 덮어놓고 있다. 반달은 보름의 절반을 나타내어 시간의 흐름을 깨닫도록 한다. 초승달은 담배를 피우며 바라보는 나름의 운치가 있다. 달이 완전히 가리워졌을 때는 다음 날 다시 찾아올 달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보름달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동그란 모습을 그저 쳐다보고 있다 보면, 다음 이불을 끌어당길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태양을 도는 지구를 도는 달의 모습을 보며 눈을 데굴 돌린다. 달이 내린다면 다시 다음 달이 뜬다. 누군가가 남의 힘을 빌려 돌아올 다음 날을 기다리며 방아를 찧고 있을 그것이 원이다.
눈이 아파 위아래로, 양옆으로 굴린다. 눈을 꾹 감고 다시 뜨면 한순간 시야가 새까매진다. 그럴 때마다 눈을 다시 감는다. 눈을 뜨지 않고 손을 더듬어 담배가 이젠 두 대밖에 남지 않았을 담뱃갑을 만지작거린다. 다 헤졌기에 모서리가 날카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원형이 나름대로 유지되어 있다. 담배는 나를 아프게 하지만, 그걸 알고 있어도 끊을 수 없다. 또한 밤공기를 맞아 서늘해진 창가를 만진다. 창가를 손가락으로 여리게 쓸다가 채 처리되지 않은 못에 손이 찔린다. 아프다. 아팠다. 그 사람들도 아팠을 것이다. 목이 졸려 죽은 사람, 괴물에게 몸이 갈가리 찢긴 사람, 자기가 자신의 뇌를 파낸 사람 또한 아팠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아픔을 상기시키는 그것이 사각이다.
그 사람들을 떠올린다. 즐거움과 기쁨에 웃는 얼굴이 좋다. 외로움과 슬픔에 사무치는 표정 또한 싫어하진 않는다. 그런 표정이라도 다시 지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는 아무런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그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그들이 웃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들이 우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들이 죽은 모습을 떠올린다. 웃음과 울음, 무표정의 세 얼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다 다시 돌아온다. 잊어버릴 수 없다. 그저 지나가도록 하기엔 아쉬운 세 기억, 그것이 삼각이다.
별과 원, 사각과 삼각.
눈앞에 죽음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달은 이미 저만치 가버려 더는 보이지 않는다. 별 또한 이미 해가 반쯤 떠버려 빛을 잃었다. 어둠이 지나 다시 빛이 찾아왔다. 나는 빛이 싫다. 이미 떠나간 자들을 잊은 채로 다시 오늘을 살라고 강요하는 것만 같아서. 또한 이곳이 싫다. 아픈 기억이 있다면 그저 잊어버리기를 종용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확보하고자 하며, 사람의 안전은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격리하고자 하며, 사회에서 격리된 삶을 살도록 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보호하고자 하며, 정작 사람의 생명은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듭된 혐오를 참지 못하여 담배를 창가에 지져 끈다. 추모에는 옳지 못한 분노를 식힌다.
기억을 머리의 깊은 곳에 쌓아놓는다.
수백 개의 별과 수백 개의 원, 수백 개의 사각과 수백 개의 삼각 위에 새로운 것들을 올린다.
내일이 된다면 또 다른 별과 원, 사각과 삼각이 오를 것이다.
오늘은 이런저런 생각에 떠나간 자들을 추모하였다. 내일은 또 다른 이런저런 생각으로 떠나갈 자들을 추모하겠지.
다른 모습의 별과 원으로.
다른 모습의 사각과 삼각으로.
아침이 다 되어서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