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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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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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E-1820-아라베스크 (분서꾼들),
환상통의 주장, 마보로시,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함

개요

今日此矣散花唱良
巴寶白乎隐良汝隐
直等隐心音矣命叱使以惡只
彌勒座主陪立羅良


오늘 이에 산화 불러
뿌린 너는
올곧은 마음의 명을 받아
미륵좌주 뫼시거라.

월명사(月明師), 도솔가(兜率歌)) 中

아주 오래 전부터 수없는 존재들이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의 사이를 탐구했고, 실존하지 않는 것과 실존하는 것의 경계를 궁금해했다. 어떤 이들은 날 때부터 이에 대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 경계를 허무는 법을 후천적으로 배웠다. 이는 그러한 시도 도중 만들어진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참 번잡스럽게도 쓴다."

한참 녹회색 종이에 글을 써 가며 서술에 몰두하고 있던 강나루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사실 화들짝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하마터면 의자 뒤로 넘어갈 뻔 한 강나루는, 다시 자세를 고쳐앉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새카만 머리칼에 야상 재킷을 입은 여성이 그를 언제나 그렇듯 노려보고 있었다. 강나루는 헛기침을 하면서 대강 대꾸했다.

"뱀의 손 선배들 문체를 배운 거예요."

"그러셔?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은 애초 들어본 적이 없는데."

호야는 기지개를 켜면서 빈정거렸다. 재킷에 배인 담배 냄새가 강하게 났다. 강나루 대략 눈치를 보다가 펜을 잠시 놓으려 했다만, 호야가 다시 쏘아붙이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너 할 일 많지 않냐?"

"왜요. 저만 하는 거 아니지 않아요?"

"맞는데. 너만 하는 거."

순간 강나루는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 대상에 대한 기록의 각주나, 관찰 및 내역 란 작성에 참여하는 뱀의 손 인물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도저히 강나루 혼자서는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대장은 어디 가시는데요?"

"청대장이랑 모임. 모리안이랑 림, 서율이도 같이 간다."

"그럼 병길이랑 기남은요?"

"걔들도 따로 할 일이 있어서리."

강나루는 이제야말로 피할 수 없는 진실을 순순히 수용했다. 그는 괜스레 웃어 보이면서 타개책을 살폈다. 물론 그가 자신의 반쪽이라 칭하는 멤버, 꼬마 휘영이야 남아 있겠다만 아무리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는 어디 속담이 있어도 휘영에게 그 복잡한 일들을 떠맡길소냐. 그건 애초 말이 안 되는 일이니 답은 결국 강나루 본인이 차차 해결해야 할 일이였다.

강나루는 탁자 위에 놓인 지팡이를 쏘아보고는 다시 펜을 들었다. 까짓 것 한번 해 보자.

도해

Stafffff

손에게 입수되기 전 찰영된 지팡이.

지식

특징: 사라지는 것의 지팡이 이하 지팡이는 길이 약 60cm의 목제 지팡이로, 전체적으로 참나무 재질이며 손잡이는 도금된 쇠로 만들어져 있다. 이 지팡이의 모양과 몸체의 내구도를 미루어보아 짚고 다니는 용도라기보다는 바닥이나 벽 등에 기적학적 문양이나 인발을 새기는 마도구로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손잡이에는 날린 글씨체로 "말에 힘이 있는 자Strong-Worder"라는 사인이 새겨져 있다.

성질: 지팡이는 그 자체로 강력한 마도구로, 이를 맨손으로 붙잡은 자는 일반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볼 수 있게 된다. 이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란 유령에서부터 더더욱 어두운 어떤 없음과도 같이 애초 보이도록 설계되지 않은 더 희미한 것들까지 다양하다.

지팡이를 만약 마도구 사용에 능숙하지 못한 자가 다루게 되면, 그는 지팡이가 지닌 능력을 조절하지 못해 길과 길 사이를 오가는 찌꺼기들과 보면 안 되는 어떠한 밈적인 괴물들, 자연 상태에 팽배한 기억조작자들의 존재를 인식한다. 불행히도 이러면 그 존재들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고, 그 자들의 끔찍한 본모습을 보는 것은 정신에 극히 해로우므로 미치거나 죽게 된다고들 한다.

즉 이 지팡이를 쥐고자 하는 자는 마법과 세상의 법칙에 익숙해야 할 것이다. 지팡이를 어르고 달래 내가 봐야 할 것만 보고 나머지 불가시한 세계들은 무시해버리는 것이 낫다. 물론 처음 보는, 남이 만든 마도구와 교감하는 것은 몹시 힘들기 때문에 극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척 보고 마도구의 힘에 대해 알아내는 데 능숙한 자가 다루기를 권한다.

"좋아."

강나루는 펜대를 내려놓았다. 어느새 노란 머리의 꼬마도 나타나 강나루의 기록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강나루의 반쪽, 일명 달의 조각이라고들 하는 휘영이였다. 강나루는 옆쪽을 바라보고는 글에 몰두하고 있는 휘영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작가님."

"응, 휘영아."

"이거 작가님이 써도 되는 거 아녜요? 뭘 보고 그 힘을 측량하는 거, 작가님 특기잖아요."

휘영이 지팡이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강나루는 미소하면서 대답해 주었다.

"주석이 허락 안 해줄걸….. 그리고 세상에는 안 봐도 되는 게 많아. 보면 안 되는 건 더 많고."

강나루는 조심스레 장갑을 끼고 지팡이를 쥐어 보았다. 물론 맨손으로 쥔 것은 아니니 무엇이 보인다거나 하는 효과는 없었지만, 나름 힘이 느껴졌다. 각인으로 아로새겨진 늙고 섬세한 기운은 마치 그가 다루던 달빛이 짜낸 힘을 연상케 했다. 그는 도로 지팡이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이제 뭘 써야 하죠?"

"내력 및 관계, 관찰 및 이야기, 의문점."

탁자 위에서 몇 권의 책을 집어든 강나루는 책갈피로 고정시켜 놓은 페이지를 펼쳤다. 으레 방랑자의 도서관 출신의 고대 장서가 다 그렇듯이, 빛바래고 낙엽처럼 바스락대는 그 책장들을 강나루는 조용히 넘겼다. 내력 및 관계, 관찰 및 이야기. 이건 이제 강나루의 시대 이야기가 아니였다. 이 지팡이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백 년이 되었다면 백 년 짜리 내력이 천 년이라면 그 정도의 내력이 있지 않겠는가.

강나루는 한숨을 푹 쉬었다. 즐겁고도 골치 아픈 일이였다. 역사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내력 및 관계: 사라지는 것의 지팡이는 대략 1910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이 지팡이는 기록에 따르면 인근 암시장에서 누군가가 팔고 누군가가 샀다고 하는데, 팔았다는 자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사람이라는 것을 빼면 불명이고 샀다는 자는 아예 그 정체를 알 수 없다고들 한다.

이후 사라진 지팡이는 다시 암시장에 나타난다. 2000년 초반 유한회사 마셜, 카터&다크의 장사치들이 사들여 비싼 값에 팔았다가 존 녹스Jhon Knox라는 남자가 구매했는데 이 사내는 기적사나 숙련된 은비학자가 아니였기에 즉시 보아선 안 되는 무엇을 보고는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장사치들은 이 지팡이를 회수해 다시 팔아치웠는데, 이번에는 한 가족 모두가 유령들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전원 사망했다. 곧 지팡이는 이후 저주받은 것으로 유명해졌고, 이를 분서꾼들이 재회수해 오랫동안 연구 목적으로 안전금고에 쳐박아두었다. 그러던 2010년 3월 9일, 뱀의 손의 구성원이 분서꾼의 플로리다 시설을 습격하던 도중 이 지팡이를 회수했다.

그런데 길을 타고 도서관으로 돌아오던 지팡이는 다시 제3세력의 습격을 받았다. 포악성으로 악명 높은 신낼캐 교단 아뒤툼 각성회가 손의 멤버들을 기습해 이 지팡이와 여러 마도구를 훔쳐간 것이다. 아뒤툼 각성회가 이후 이 지팡이를 어디다 썼는지는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차원조작으로 신과 접촉하고 세계를 뒤흔들던 그 자들의 특성상 아마 건전하진 않을 것이라고 대략 추측할 수 있겠다.

이렇게 잊혀지나 했던 지팡이는 다시금 암시장에 등장한다. 왜 각성회가 지팡이를 또 분실했는지 알 수는 없다만 옥리와 분서꾼이 2014년 루마니아의 각성회 둥지를 습격한 사건 당시 웬 불청객이 이 기회를 틈타 마도구를 잡아채고 달아났을 것으로 추청할 따름이다. 이후 이를 구입한 사람은 놀랍게도 검은 드레스를 입은 사람, 즉 전 주인 자신이였다.

기록은 다시 여기서 끊긴다. 그러다가 2023년 1월 9일, 심야클럽이 유령들에 위협을 끼칠 수 있는 물품들을 조사하던 도중 이 물건을 암시장에서 재회수한다. 어째서 전 주인이 굳이 이 물건을 구매하고 다시 내팽개쳤는지는 불명이나, 이때부터 지팡이에 "말에 힘이 있는 자Strong-Worder"라는 사인이 새겨져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손과 직접적 친선 관계에 있는 심야클럽 특성상, 능구렁이 손이 이들을 통해 이 물품을 전달받았다.

"끝."

"복잡하네요. 지팡이 하나라는 게."

휘영은 하품을 하며 의자에 올라앉았다. 강나루는 녹회색의 기록지 아래에서 금빛 테를 두른 다른 종이들을 꺼냈다. 강나루 특유의 필체가 아닌 여러 사람의 필체로 쓰여진 이 종이들은 확실히 여러 사람이 썼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다. 뱀의 손 서식의 관찰 및 이야기는, 뱀의 손의 일부 편향되었을지도 모르는 목소리를 바로잡고 내력 및 관계 문단에서 기록된 것들의 근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성자에게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문단이기도 하다.

으레 모든 정보가 다 그렇다지만, 만일 잘못된 정보를 인용하면 골치 아파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테면 누군가가 이러이러한 말을 했다고 인용해두었다가 아니라고 하면 인간 관계에 있어 골치도 아프고 손의 신뢰도에 있어 썩 좋지도 않을 것이다. 강나루는 이 지팡이에 대해 기록해둔 자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정보도 검증할 겸, 능구렁이 손의 부주석인 자신의 얼굴을 알려두기로 했다.

"휘영아. 도서관을 좀 돌아다녀야 할 것 같은데, 같이 안 갈래?"

휘영은 영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위험한 사람 찾아가는 건 아니죠?"

"아냐."

"도서관 외곽 위험지대나 뭐 그런 데는 안 가는 거죠?"

"당연히 안 가지."

"주석님한테 혼나거나 그러지는 않겠죠?"

"그런 것도 아냐."

휘영은 잠시 뭔갈 생각하나 싶다가, 몇 초 후 일어섰다.

"그럼 가 봐요."

관찰 및 이야기

방랑자의 도서관. 이 세상 도서관, 아니 온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도서관. 영원의 알렉산드리아도 제후티의 도서관도 이 거대하고 웅장한 공간의 손톱만큼도 되지 않았으리라.

천 년 묵은 나무보다도 거대한 책장들이 수천 미터를 줄지어 서 있고 보이지도 않는 천장 그 너머로 무한한 책꽂이가 우뚝 서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고 정돈하는 거미 같은 급사들은 책장과 책장 너머를 원숭이처럼 누빈다. 빛이 드는 구석에서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마법사와 방랑자들이 제각기 어떠한 책을 찾아 어딘가로 떠나고 있다.

"작가님. 그래서 우린 뭘 찾는 거죠?"

휘영이 종종걸음으로 강나루를 따라가며 물었다. 완연히 외출 복장을 한 강나루는 도서관 이곳저곳을 살피며 계단을 내려갔다. 솔직히 찾으려는 이들을 전부 만날 수는 없겠지만 도서관의 적막하고 생기 넘치는 공간을 걷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는 첫 번째 기록지를 꺼내 들여다보았다. 이 글을 쓴 자가 아마 첫 번째로 만나야 할 사람이리라.

"음, 아사 에른데헤."

"이상한 이름이네요."

"실례야. 이름 가지고 놀리는 건."

사실 강나루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사 에른데헤. 솔직히 지구상의 어디 이름 같지는 않고, 아마 다른 세계 출신이리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문체 또한 온갖 미사여구가 가득 박힌 것이라 아마 방랑자 축에서도 늙고 오래된 존재가 아닐지 의심이 되었다.

환상통의 주장, 사라지는 것의 지팡이는 아주 오래된 것이자 오래되지 않은 것들, 즉 보이지 않기에 의미를 잃어버린 신들, 이질적인 퍼즐 조각, 유령들을 위한 것이였다. 나는 이를 구매했다가 사망한 남자— 존 녹스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허장성세는 눈 먼 부자의 그것이라 잘 표현할 수 있었고 미친 놈들의 물주였다. 그가 무엇을 보고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위험한 지식이 너무도 많고, 알지 않는 것이 더 낫다.


— 아사 에른데헤, 퍼즐 짜는 자.

"아아, 당신이 강나루군요."

목제 덩굴에 칭칭 감긴 열람실의 높다란 의자를, 둘은 올려다보고 있었다. 예상외로 아사 에른데헤는 젊은 여자였다. 사실 젊다기보다도 어려 보여서 휘영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보였다. 물론 그 경이에 대한 지식을 보면 외면만 젊은 부류겠지만. 주석이나 모리안처럼.

"반갑습니다. 아사 에른데헤."

강나루가 진지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꼭 보고 싶었어요. 능구렁의 손 사람들은 항상 바쁜 것 같아 약속을 잡을 엄두도 나지 않더군요."

마법사가 높은 의자 위에서 단번에 뛰어내려, 바닥에 사뿐이 안착해 보였다. 땋은 흑발이 홱 갈대처럼 흔들렸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죠? 강나루. 절 찾아오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강나루는 장갑 낀 손으로 쥐고 있던 지팡이를 내보였다. 이를 본 마법사의 눈이 흥미로 커졌다.

"환상통의 주장이군요. 아아, 그래. 동경자들이 능구렁이 손에 넘겨주었다 들었어요."

"소식이 정말 빠르군요."

그는 아사 에른베헤가 적었다던 기록을 보여주었다.

"당신께서 쓰신 글이 맞는지요?"

"맞아요. 제가 더 어릴 적에 썼던 글이죠. 자료 조사 능력이 정말 철저하군요. 멋지네요."

에른베헤의 검푸른 눈이 지팡이를 향했다가, 이번에는 휘영을 향했다. 휘영 또한 슬며시 마법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마법사는 휘영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강나루를 보았다.

'저 애가 그 달의 조각이군요? 휘영.'

에른베헤는 정작 입을 열지 않았는데, 그 목소리가 강나루의 머릿속에서 윙윙 울렸다. 텔레파시라 하는 그것과 흡사했지만, 목소리에서 날카롭고 정교한 마술의 힘이 느껴졌다. 강나루는 대략 이러한 힘과 비슷한 것을 들은 바가 있었다. 아주 머나먼 자줏빛 궁정에서 여왕의 아이들이 쓴다는 언어와, 검은 금고 너머 알라가다인들의 음침한 말들. 강나루는 들은대로 생각을 통해 말을 전달했다.

'그렇습니다.'

'어머, 어쩌다가요?'

'일련의 불운한 사고, 뭐 그렇게만 해 두겠습니다.'

'좋아요. 비밀은 중요하니까요…'

에른베헤는 씩 웃으면서 휘영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휘영은 영문을 모른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볼 뿐이였다.

'저 애를 잘 돌봐줘요. 하늘에서 떨어진 별들도 가끔은 하늘이 그리운 법이니까요.'

'물론입니다. 에른베헤.'

마법사는 검은 로브 소매에 왼손을 넣더니, 작은 별 모양의 금속을 꺼냈다. 그 금속은 마치 루비마냥 붉은 빛으로 번들번들 반사광이 났다. 에른베헤는 이를 휘영에게 건네주었다.

"받으렴. 선물이란다."

"이게 뭔데요?"

순간 에른베헤의 손가락 끝으로부터 빛이 번뜩이더니 물방울이 생겨났다. 그 물방울들이 뱀처럼 휘어 금속 표면에 떨어지자, 하얀 김과 함께 사탕 몇 알이 에른베헤의 손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만나의 모조품. 여기다 물을 떨어뜨려서 신호를 주면 사탕을 떨어뜨리지. 마음 속으로 사탕을 얼마나 만들지만 생각하고 있음 돼."

강나루는 금속을 주시해 보고는 딱히 수상쩍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자 안심했다. 휘영은 그의 눈치를 보고는 두 손으로 "감사합니다" 하며 금속을 받았다. 휘영은 사탕을 만들어내는 물건에 몹시 놀라면서도 기뻤지만 이것을 이림이 훔쳐가 하루에 수천 번을 써먹게 된다는 미래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이제 저흰 가 봐야 겠습니다."

손목시계를 본 강나루가, 다시 지팡이를 쥐고 채비를 시작하며 작별을 고했다.

"다른 이를 찾으러 가나요? 다음은 누구죠?"

그 지팡이는 신의 것이였다. 우리의 신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섭리이며, 우리들의 강대한 신의 힘을 지팡이가 비추면 다시금 어둠이 열린다. 그러면 우리의 우울하고 강대한 제국 아뒤툼이 다시 부활하는 것이다.


— 카르시스트 카르바스

"농담이죠?"

강나루와 휘영은 도서관의 길 끝에 서 있었다. 저 멀리, 기준차원의 음울한 성이 보였다. 낼캐교도 사이에서 떠도는 저곳. 아뒤툼 각성회의 재건된 본거지는 악명이 높았다. 그 마을은 온갖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약물 없이는 그 꼴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고들 했다.

"어. 농담 맞아."

제아무리 강나루라도 검수 한 번 받겠다고 저 위험지대에 발을 디디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휘영의 눈이 순간 금색으로 변했다. 달빛 기반의 기적술이였다. 휘영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식은땀을 흘리면서 강나루의 코트 자락을 잡고 길 안 쪽으로 끌었다.

그때였다.

— 캬학!

어느 쪽에서 거대한 짐승 같은 것이 우는 소리가 났다. 일순간 둘은 얼어붙었고, 무언가가 대지를 진동하는 소리가 울렸다. 길은 갑작스런 충격에 뱀처럼 빠른 속도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강나루는 식은땀을 닦았다.

"분명 이쪽까진 영향 범위가 아니랬는데."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이 사실이라면 이 종파의 실체는 특정한 마약성 약물로만 직관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하나, 강나루는 그런 약물을 챙겨다닐 만큼 약쟁이가 아니였다. 둘, 애초에 특정 약물이든 뭐든 이 마을을 통제하는 옥리나 분서꾼이 아니라면 챙겨다닐 리가 만무할 것이 뻔했다.

— 그르르르….

휘영은 위험을 느끼고 산산히 부서져 달빛의 형상으로 변해 공간 속에 숨었다. 강나루는 아직 휘영이 자신의 등 뒤를 맴도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휘영이야 짐승의 물리적 공격에 극도로 유리하지만, 강나루는 그게 아니였다.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타격을 허용하면 그대로 끝이였다.

보이지 않는다라.

일순간 강나루의 머리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분명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마도구라면 저 짐승도 훤히 들여다보도록 도와주리라. 그는 장갑을 벗어버리고 지팡이를 쥐었다. 순간 눈이 별이 된 듯 환해지고 동시에 심장에 아픔이 느껴졌다. 마도구에게 압도당해서는 안 된다. 그는 다시금 생각을 되짚었다. 그동안은 눈을 감아 그 무엇도 볼 수 없도록 했다. 명백히 봐야 하는 보이지 않는 것만. 그것만이 보여야 한다.

강나루는 눈을 떴다.

대략 오 미터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짐승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털은 전무하고 붉은 피부로 덮인 그 짐승은 아홉 개의 눈으로 강나루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숨결까지도 느껴지는 듯, 강나루의 온 신경이 곤두섰다.

뛰어야 한다.

강나루는 휘영을 부르면서 뛰었다. 물론 결국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같았지만, 보이는 것에서 탈주하는 것이 휠씬 나았다. 남자가 등을 보이는 순간, 괴수는 흥분한 듯 숨을 두어 번 거세게 쉬더니 달려오기 시작했다. 잘못 생각했다고, 강나루는 독백했다. 짐승은 등을 보이는 순간 덮쳐오는 법이였고, 지금이 그 상황이였다.

— 카악!

그때 달빛이 회전하면서, 즉시 야수의 얼굴을 덮쳤다. 갑작스런 빛에 당황한 짐승은 멈춰섰고 강나루는 몇 초의 시간을 번 셈이였다. 그가 길 쪽을 향해 손을 뻗자, 길의 빛깔이 다시금 그에게로 다가왔다. 강나루는 반대손으로 휘영을 붙잡았다. 휘영은 다시금 인간형으로 변해 그 손을 잡았고, 남자는 빠르게 아이를 잡아당겼다. 두 사람이 모두 오자 길의 황록빛이 진동하며 빠르게 그들을 도서관으로 재전송시켰다.

둘은 그냥 길으로 사라져버렸고 저 멀리 마을에서는 피 냄새만 진동했다.

글쎄요. 그 지팡이는 다른 물건들에 비하면 유령에 대한 저주받은 능력은 없지만 시전자에게는 아주 위험한 물건이죠. 웬만하면 다루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 윤성재, 심야클럽의 인사부장

"괜찮으신 거 맞죠?"

가쿠란을 입은 소년 유령은 지쳐 의자에 널브러지듯 앉은 강나루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상황 판단, 마도구 사용, 탈주를 한 번에 해야 했으니 체력적이든 정신적이든 지칠 수 밖에 없었다.

"……물론이죠."

"저보다 그쪽이 더 죽은 사람 같아요."

"아, 죽을 사람이 더 맞을 표현 같기도 해요."

윤성재는 당사자로서는 소름끼치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쨌든 이 글은 제가 쓴 게 맞아요. 어쨌든 전 다희 양이 오기 전에 가 볼게요."

"예, 살펴가세요."

손님이 떠나자 강나루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일은 해냈고, 이제 누가 오든, 더 이상의 일은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의문점 란을 그냥 남겨두고 눈을 감았다.

이제 더 이상은 일을 떠맡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의문점

말에 힘이 있는 자란 누구인가? 그리고 그가 이 지팡이를 창조했다면, 그 능력의 상세 특성은 무엇일까?

  • 만일 이 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 지팡이의 창조에 가담했을까? 이러한 기술은 우리로서는 본 바가 없다.
  • 만일 이 자가 존재한다면 우리에게 우호적일 것인가?

지팡이를 임의로 사용해도 될까? 이 지팡이가 분명 저주받은 것이기는 하나 분명한 유용성을 증명했다. 허나 마도구가 다 그렇듯 주의해 다루기를 권한다.

강나루에게 다음부터 문서 작업을 맡겨도 될까? —Hx

  • 난 반대. —mrg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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