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별과 상어들의 노래
깊고도 넓은 바닷속에서 시작된 합주곡
한밤의 바닷가에서
우리의 지친 마음과 영혼을 어루만지는 힘을 지닌 노래는 때때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도 흘러나오곤 하지요. 주말 오후의 한적한 골목에서, 어느 시골의 햇빛이 내리쬐는 풍경에서, 이삿짐 사이에서 찾아낸 오랜 추억에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할 뿐, 한 때 누군가가 부른 노래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다른 누군가에게로 전해지는 법입니다.
그것이 어렸을 적의 본인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생전 본 적 없는 사람이든, 우리는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들의 노래를 듣고, 그 속에 담긴 감정과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함께 공명할 수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 언어와 인종, 종교와 성별,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큼 노래에는 강하고 아름다운 힘이 있지요.
그리고 그것은 비단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닙니다. 누쿠 이 무아, 태양의 바다라 불리는 드넓은 남태평양을 관리하는 떡갈나무의 가지에 속한 사람들은 한 해에 한 번 떡갈나무의 날과 같이 특별한 행사를 하곤 합니다. 부러 특별한 이름을 지어 부르지는 않지만, 우리들 중 가장 시적인 친구가 말하기를 "바다와 별과 상어들의 노래를 듣는 날"이라고 하더군요.
동지, 겨울이 깊어지고 밤이 가장 길어지는 그 하루, 우리는 해가 저물어갈 즈음 다 함께 모여 바닷가를 걷습니다. 그날의 풍경은 해마다 제각각입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별이 뜨거나 구름에 가려지거나, 파도가 치거나 달에 밀려 사라지거나… 그 모든 풍경에서, 우리는 바닷가에 앉아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바다가 전해주는 그들의 노래에.
아름다운 영혼의 소용돌이
노을이 잦아들고 밤바다의 고요함이 짙게 내리깔리면, 그들의 선율이 바다를 따라 흘러나옵니다. 그것이 무슨 노래인지, 어떤 가사를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노래와 같이 쉬이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바다 저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면, 누구든지 그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노래에는 일정한 리듬이랄 것이 없습니다. 바다에 가라앉는 부드러운 베일처럼, 가라앉듯이 또한 흔들리듯이, 일종의 성악곡처럼 흐름에 따라 자유로이 들려오곤 하지요. 청각으로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높고 낮음을 구분할 수 없고, 그 가사를 알아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노래가 그러하듯이 그 속에 담긴 이야기만큼은 우리의 영혼에 담을 수 있습니다.
진혼곡, 슬픔과 위로의 노래. 바다 너머의 그들은 해가 저물고 다시 떠오를 때까지, 달이 떠오르고 다시 저물 때까지의 그 짧다고도 길다고도 하기 어려운 한 밤의 시간동안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해 노래했습니다. 단지 슬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딘가로 돌아가는 그들의 여정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며, 새로이 태어나는 이들의 축복을 바라며, 가장 깊고 어둔 그들을 기억하겠노라고.
우리는 그 멜로디에 몇 마디 가사를 실어 보냈습니다. 악기를 들고 그 흐름에 따라 즉흥적인 합주를 하였고, 또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 바다와 함께 노래했습니다.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행복하고 평온하기를 바라며 노래를 했습니다. 결국 닿지 않더라도 좋았습니다. 우리 또한 기억하겠노라고, 그리 말하며 달이 차올라 저물 때까지 그곳에서 이름 모를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노래의 끝은 항상 같았습니다. 한 마디 음절과 함께 모든 선율이 한데 모여 휘감겼습니다. 나선을 그리며, 가장 깊고 낮은 곳을 향하여 소용돌이쳤습니다. 무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그 선율이, 영혼의 흐름이, 심해의 어느 한 곳으로 회귀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역시 합주를 마치고 그들의 영면을 바라며,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다시 해변을 떠나곤 했습니다.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그들의 노래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땅의 어느 곳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는 전해져오지 않았습니다. 바다가 침묵했고 별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노래가 우리에게 닿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듣지 못하게 된 것일까요. 우리는 노래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찬란하게 소용돌이치던 영혼의 흐름도, 떠오르는 달과 함께 고조되는 그 음조도,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모든 곳에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설프게나마 기억을 헤집어가며 그들의 노래를 따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다시 함께 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은 몇 년에 걸쳐 계속되었지만, 결국에는 헛수고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노래를 잊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해마다 그들과 함께 하였던 바닷가를 찾았고, 이번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를 했습니다. 언젠가 바다 저편의 그들에게 우리의 노래가 닿아, 다시 재회할 날을 기다리면서요.
그리고 어제, 유독 밤이 길었던 한 해의 동짓날에, 우리는 기어코 다시 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들을 수 있던 것은 그들이 들려주었던 아름다운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비명. 우리는 그들의 비명을 들었습니다.
살려달라고, 절박하게 삶을 구걸하고 애원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살이 피와 함께 터져나가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이를 붙들고 비참하게 쓰러지는 한 부모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물 속에서 내뱉는 한 아이의 마지막 숨소리를 들었습니다. 망가진 육신에서 튀어나온 한 무리의 영혼들이 비명이 되어 마구 날뛰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비명이었습니다. 수천명의 어른과 아이가 동시에 질러대는 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이전과 같이 부드러운 나선을 그리는 대신 날카로운 파형이 되어 세상을 향한 원망과 분노를 담아 주변으로 솟구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심장을 꿰뚫는 서슬퍼런 창날과 같았고, 그 불협화음을 마주한 우리는 누구 하나 함부로 입을 떼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그들의 목소리가 지금에서야 닿은 것일까요. 그들의 비명은 동이 터오를 때가 되자 한 마디 음절과 함께 다시 멎었습니다. 나는, 우리는, 그 한 마디 음절이 이전의 그것과 같지 않음을, 그리고 그 음절에 담긴 의미까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살려줘."
재회를 위하여
우리는 듣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노래가 어찌하여 끊길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이 어째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는 바다를 건너 진실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들에게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우리의 이야기를 허황된 것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다가 전해준 그들의 이야기를 마음과 영혼으로 들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는지, 어떤 마음으로 영혼을 위로하였는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내고야 말 것입니다. 알아낸다 한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한 왜 그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표할 것입니다.
우리는 노래에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래가 더 이상 영혼을 인도하지 못한다면, 갈 곳을 잃은 그들의 날카로운 영혼의 비명이 어디로 향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한낮의 떡갈나무에서 자라난 우리가 그들을 모른다는 이유로 또는 힘에 부친다는 까닭으로 그들의 비명을 듣지 못한 체할 수는 없지요.
시작의 음률이 울려퍼지고 최초의 싹이 자라났던 그 순간에 그러했듯이, 우리는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자들을 위해 또 한 번 무대에 오를 것입니다. 그들의 노래가 깊은 밤바다를 건너와 다시금 부드러운 나선을 그릴 그 순간까지.
글 카키테
달 아래의 떡갈나무
하늘에서 반짝이는 눈밭으로 돌아오는 다섯번째 하얀 까치
누쿠 이 무아, 돛단배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