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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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더는 그를 사랑할 수가 없어.

사실 네가 단 한 번을 빼면 그 이전부터 무엇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건 아니야. 그게 초등학교 시절을 심란하고 아름다운 날들 속에서 영원히 기록해 왔던 짝사랑이든, 어느 중학교 시절 칠흑 같은 머리칼에 여름날 바다처럼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어느 남자애나 여자애와 상호 간에 존경과 동경과 상호 구속의 성격을 모두 갖춘 그런 연애가 되었든 똑같아.

그때까지 네가 무엇을 사랑해 왔던 적은 가장 오래된 기억인 세 살 때의 것부터 단 하나도 없었어. 어머니든 아버지든 간에 널 사랑하기는 했지만 딱 자신들이 지어낸 실패작과 성공작 그 사이에 보내는 눈빛이었고, 또래 애들은 유독 당신을 그리 사랑하지도 않았고, 애초에 당신 자체가 좋게 말하면 자립심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항상 고독과 악수를 해 온 사람이니까.

그래서 어느 날 학교에 새로 온 젊고 잘생긴 사회 선생을 보았을 때, 아마 그때가 모두가 광량의 변화로 어지럽고 들떠 있던 봄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너는 한 순간에 그에게 끌림을 느낀 거야. 그때 알게 되었지? 당신은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어둠을 보았던 것을. 지금까지 누굴 사랑할 만큼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을.

물론 네가 성격이 이상하거나 하다는 것은 아니야. 이건 이해해 주기를 바래.

그러니까 그 선생님을 잘 따랐던 거지. 나도 그래. 언제가 되었든 간에 항상 끌리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되니까. 생명의 법칙 같은 거지. 그래서 고등학교 이 학년의 거센 풍파도 잘 이겨낼 수 있었을 거야. 사람은 저 멀리서 보이는 불빛 만으로도 수천 리를 더 갈 수 있는 존재니까. 그리고 그 불빛이 너를 성심성의껏 도와주기만 한다면 사람은 그 불빛에 의존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니까.

당신은 아마 그때까지도 그게 사랑인지 몰랐을 거야. 당신은 이전부터 그 어떠한 것도 사랑한 적이 없으니까 받아들일 수 없는 변화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그러나 네가 잘못된 길로 떠나려 했을 때, 객지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그리고 풍파에 견딜 수 없는 희망을 마침내 버려야 할까 고민하게 되었을 때 너는 계속해서 가슴이 뛰는 경험을 느꼈을 거야.

그리고 네가 그날, 어둠을 보았을 적에, 그 어둠에 직면했을 적에, 그 검붉은 초자연적인 어떠한 것에 의한 죽음을 맞으면서, 너는 죽어가면서 선생님과 했어야 했던 마지막 대화를 생각했어. 네가 이상하다는 것이 아냐.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미련을 가지니까. 그 이질적인 어떠한 것에 대한 죽음보다도 네가 느낀 것인 네 사후, 선생님이 네 죽음에 대해 보인 냉담스러운 반응이 아닐까 나는 생각해.

당연한 일이야. 이미 그 남자가 학교에 파견된 것 자체가 선생으로서가 아니라 그 어떠한 괴물을 추적하기 위한 것이었을 테니까. 그가 당신이 죽은 것을 보고, 그 무언가의 위치를 파악한 후에 본부에서 그걸 잡아낼 팀을 호출한다. 너도 느끼고 있겠지. 그건 일종의 거대한 비밀 조직이 대중 전체에 시행한 기만이라고 할 수도 있겠어. 네가 이 형태로 되살아난 후,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모습이 되었을 때야 알게 되었겠지. 나도 마찬가지야. SCP 재단이라는 거대한 조직은 비과학적인, 마술적인 모든 것을 격리하는 집단이니까. 너도 나도 그 붉은 괴물 같은 것도 매한가지야.

그런 사실을 알고도 당신이 그 남자에 대한 외사랑을 버리지 않았다는 건 내가 타일러서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쁘다는 것도 전혀 아니야. 다만 너는 지금 유령과도 같은 존재고, 지금은 그 재단에게 격리되어 있으니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 뿐이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떠나버리자.

여기서 떠나자는 말이야. 네가 미련을 가지면 가질수록 너는 네가 죽은 이 고등학교에서 떠날 수 없게 될 거야. 지박령(地縛霊)이 된다는 말, 알지? 잘못하면 수백 년을 이 건물에서 나가지 못하고 살면서, 바위가 으레 비와 물과 풀뿌리에 맞아 침식되어 버리듯이 서서히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은 무너지고 감각은 날카로워지며 감정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아 버리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우리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지금은 너를 보지도 못하고 너도 접촉할 수 없는 이 학교의 후배 친구들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냐.

상대를 찾아가든 아니면 훌훌 잊어버리든 기다리면서 상대가 와 주기만을 바랄 수는 없을 거야. 떠나버리자. 네가 지금까지 사랑을 찾아간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너는 동화든 드라마든 간에 사라진 연인을 찾아 나서면서 거센 세상의 풍파와 싸우는 멋진 주인공 이야기나, 추억을 배반한 사람에게 왜 나를 배반하였냐고 묻기 위해 그를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 보았을 테지. 그러니 너도 그렇게 행동할 필요가 있어.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네가 죽었다 살아나는 것까지 경험한 후에는 배울 만한 이야기가 될 거야. 울지 말고 천천히 일어나는 거야. 괜찮아. 네 마음먹기에 달려 있어.

지금은 밤이고, 사람들은 없어. 재단 요원들도 감시를 느슨히 하고 있을 테지. 조용히 빠져나간 후에 처우를 생각하는 거야. 어떤 곳으로 갈지, 어떻게 살아갈지. 네가 너 자신을 포르말린 병 속에서 영원히 늙지 않는 한 마리의 나비 마냥 영원한 18세 여고생으로 생각해도 되겠지만 반대로 벌써 3년이 지난 지금이니 너 자신을 어엿한 어른으로 생각해도 문제 될 것은 없어. 어떤 일이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내가, 우리가 성심성의껏 찾아보도록 할게. 네가 알고 있는 사회의 이면에 어떤 것이 있는지 넌 상상도 못 할 거야. 마법의 거리와 가로등만이 총총한 밤길을 걸어가면서 그 어떠한 것도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대과거나 박제당한 학창시절의 과거에서 떠나버리자. 그냥 배반당한 추억에서는 떠나가버리는 거야.

이 밤을 봐. 이 밤이 더는 두려워지지 않는다면, 그 살인 괴물에 대해 더는 겁내지 않고 네가 그런 것들보다도 더욱 긍정적인 의미의 괴물이라는 점을 배운다면, 그리고 떠나간 외사랑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할 지만 계획하고 있다면 너는 더 이상 위축될 필요가 없어. 누가 너를 봐 주기를 바랄 필요도 없어. 사람처럼 지금도 네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거야.

나는 너를 존중해.

그리고 나는 네가 새로운 사랑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기를 바래.

그리고 네가 어떤 길을 택하더라도 너는 한 명의 당당한 사람임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

떠나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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