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옷에서 절단된

피코 윌슨은 제 시체 더미 한복판에 앉았다.

"만약 신의 힘을 갖고 있다면 뭘 할 겁니까?"

시체는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어느 정도는 뭐라 대답할지 분명하지 않아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대체적인 이유는 아마도 죽은 상태이기에 그런 것이리라.

"대다수는 그 힘을 다루지 못하죠. 어떤 이들은 나가서 세계 기아를 해결하거나, 가난, 질병,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에 사용할 겁니다. 어떤 이들은 세계를 자신만의 놀이터로 바꿔, 온갖 걸 파괴하면서 아수라장으로 만들 거고요. 또 어떤 이들은 자기가 통제를 잃을 경우 일어날 일을 두려워하며 숨겠죠."

피코는 시체 더미에서 뛰어내려, 나무 바닥에 고양이처럼 착지했다. 그는 이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건물을 제 새집으로 삼았다. 쥐가 벽 안에서 돌아다니고, 녹슨 파이프에서는 천천히 물이 새는 건물이었다.

"이렇게 볼 수 있죠, 뭐랄까…만약 누군가를 신으로 만들고, 현실을 주무를 힘과 초기화할 수 있는 열쇠를 준 뒤,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이나 보복의 공포를 면제해준다면? 그는 더는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만약 모든 문제를 손가락 튕기는 걸로 해결할 수 있다면, 갑자기 모든 것에서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되죠. 존재라는 것 자체가 재미없어질 거예요."

시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자료에 따르면 70퍼센트라고 하더군요. 그게 얼마나 많은 신이 - 죄송해요, '현실 조정자'들이 자살하는가예요. 그게 얼마나 많은 신격화된, 영광스러운 존재들이 현실을 빡종하기로 결정했는가이죠. 무섭죠, 안 그래요? 그런 존재들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그냥 가치 없는 것이라 여긴다는 게 무섭죠. 70 퍼센트나 되는 이들이 그냥 더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 더 쉽다고 판단한 거예요. 영원히 말이에요. 그 정도 되는 수치에, 우리 같은 개미들이 어떻게 비견되겠어요? 그렇게 위대하고 강력한 이들도 그러는데, 나 같은 게 시발 어떻게 존재를 이어가는 걸 정당화하죠? 어떻게 모두가 그러겠어요?"

시체는 아직도 말이 없었다. 피코는 깊은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겼다.

"답은 간단하죠. 사람들이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선, 만족한 상태가 유지되기 위해선, 한결같기 위해서는 문제를 던져줘야 하죠. 사람들이 신경을 쓰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는 없는 그런 문제를요. 마치, 수학과 교수를 데려다가 덧셈 문제를 한가득 주는 거예요. 분명 다 풀 수는 있겠지만, 안 풀 거예요.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요, 대수로 넘어가겠죠. 그러면 우린 더 어려운 문제를 던져주는 거죠. x값을 구하다가, 그것도 재미없어지면 난이도를 조금 더 올려서 함수를, 집합을, 초한수와 초월수를, 허수와 사원수 같은 온갖 헛소리와 별 개소리를 다 던져주는 겁니다…하지만, 일단 이해를 하고 나면, 다시 지루해하죠. 사람들은 언제나 지루해해요. 그러므로 문제를 섞고, 바꿔줘야 해요. 그래요, 이전에 준 문제에 대한 답을 바꿔야 한다 이거죠. 이해했나요?"

시체는 계속해서 말이 없었다.

"그럼 이제 그 사람들 생각엔, 모든 게 자기보다 낮게 보이니까 짜증 나는 애새끼들처럼 떠나는 거죠. 그렇지만 말이죠, 저 높은 곳에 계시는 위대한 분께서는, 그게 싫었던 거죠. 그래서 보낸 게…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가장 신성한 이라고나 할까. 개인적인 구원자를 보냈다 하죠. 어쨌든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다니는 멍청한 박사 나부랭이가 하나 있었단 말이죠. 그리고 저 위에 계신 분은,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한 번 흘낏 보셨어요. 박사도 온 세상을 쳐 만드신 창조주를 올려다보고는 '생명을 만드는 중'이라 말했어요. 박사는 하던 일을 계속했지만, 위쪽 분께서 그가 만들던 생명 중 하나를 좀 비틀어놓은 건 몰랐단 말이죠. 그러고는 그 생명체에게 '정리정돈'이라는 이름을 붙이셨답니다. 정리정돈 씨라 불렀죠. 말이 안 되는 이름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그리곤 정리정돈 씨는 내려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훈을, 가르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교훈을 가르쳤습니다. 신이라는 존재가 되었다는, 계속해서 변하는 유일한 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방법은, 스스로가 그 문제가 되는 것이라는 걸, 자신을 혐오하고, 제 영혼과 대립하며 결국에는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이 미쳐버리는 것뿐이라는 걸 말이죠. 정리정돈이 꼭 예수 같지 않나요? 그리고 저 위에 계신 분이 바로 이름을 준 장본인인데, 꽤 기발한 발상이라 할 수 있겠네요. 왜냐하면 그 이름은 어찌 보면 정리정돈 씨 본인을 본뜬 것이니까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사실 엄청 뻔하다고도 생각해요. 정리정돈(Redd) 씨는, 주홍왕(Scarlet King)의 화신이다 이거죠."

시체는 다시 한번 말이 없었다.

"헉하는 소리도 없나요? 놀랐다는 듯한 표정도? 댁들 꽤 엄한 관중이로군요. 좀 전의 이야기, 꽤 대단한 반전이었다고요? 세계는 바로 그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아래에 별다른 기반도 없으면서 폭로에 폭로만 거듭되고 있죠. 주제를 돌려볼까요. 어쨌든 정리정돈 씨는 지상으로 내려왔고, 기본적으로 예수라고 할 수 있어요. 진짜 예수요. 그러곤 어떻게 신성을 다룰지에 대해 가르쳐주곤 다녔죠. 그는 사람들을 가르치려 했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어요. 그래서 정리정돈은 저랑 제 형은 확실히 듣게 했죠. 자, 이제 제 형은 존나 이단자인데, 을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 들었죠. 전 듣고 또 제대로 들었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답니다. 말을 전하고, 사람들이 듣게 하지만, 사람들은 결코 들으려 하지 않아요. 댁들은 너무 멍청하니까. 미치기에는 너무 멍청해요. 저도 신성을 다룰 수 있다고요? 완벽하게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피코는 '청소부'가 문가로 걸어들어온 바로 그때 몸을 돌렸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청소부'는 그에게로 걸어오면서, 피코의 목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절단사'라는 칭호를 되찾도록 하죠."

'청소부'는 걸음을 멈추고는, 팔을 내렸다. '절단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 아직도 거기에 얽매여 있군요. 얼마나 슬픈지. 왜 자유롭지 못하죠?"

"전 자유롭습니다."

"아뇨, 안 그래요. 이미 한 번 얘기했잖아요, 기억나요? 이미 한 번 얘기했어요."

'절단사'는 '청소부'를 향해 걸어갔다.

"그래서 이거 당최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네? 칭호에 작은따옴표 붙는 인간들한테는 모두 완전히 복종하는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은 그 시스템을 악용하기 딱 좋을 때거든요."

"그건-"

"조용!"

'청소부'는 입을 다물었다.

"봐요, 자유롭지 않죠? 아직 얽매여있어요. 어쨌든, 뭔가 하고 있었는데. 연설 끝마칠 때까지 앉아있어 봐요."

'청소부'는 쭈그리고 앉더니, 곧 양반다리를 하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앞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광인을 올려다보며, 방독면을 통해 쇳소리를 내며 숨을 쉬었다.

"좋아요. 어쨌든.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더라… 만족감이었죠, 맞아요. 있죠,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단 하나는 바로 행복해하지 않는 거예요. 존나 멍청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멍청한걸요. 그래서, 사람이 한 무더기 있다 해보죠. 근데 그 사람들이 전부 불공평하리만치 '타고났다'고 해보자고요. 물론 성기 크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괴랄한 능력 말하는 겁니다. 열 명 중 일곱 명은 떠나가고, 그럼 남은 세 명은 뭘 할까요? 위대한 악인께서는 그들이 서로 서로에게 시간을 할애하도록 했죠. 그렇지만 이단자인 제 형은 그걸 딱히 좋아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형은 이 커다랗고, 정교한 개소리 계획을 짜서 그를 죽이려 했어요. 바로 그때 제가 들어와서는 재빨리(like Nobody's business) 뇌를 날려버렸죠."

'청소부'는 잠자코 있었다. 피코는 앉아있는 검은 인영 주변을 돌아다니며, 그 짙은 트렌치코트를 밟아댔다.

"딱 그때였어요. 어쩌면, 내가 아주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 건 아닐까, 하는 걸 깨달았죠. 전 그냥 당신을, 이토록 아름다운 당신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까 은유적으로 말했던 그 남아있는 세 사람인, 가장 강력한 준군사 조직 세 곳을 단 한 명이 뒤에서 결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말았지 뭐에요. 아, 물론 그 점액 사건을 벌이긴 했죠…안타깝게도 당신이 멈추었지만 말이에요. 참 인상적인 사건이 되었을 텐데. 괜찮은 자가소작적인 상처가 되었을 거라 이 말이에요. 이젠 모두가 절 죽이려고 들죠. 개인적으로는 꽤 호들갑 떤다 생각하지만요."

피코는 발걸음을 옮기더니, 제 시체 더미 위에 얼굴부터 해서 엎어졌다. '청소부'가 여전히 앉은 채로 빤히 쳐다보는 동안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말은 웅얼거리는 소리가 되어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절단사'는 다시 시체 더미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손에 잘라낸 머리를 들고 있었다.

"제가 무엇보다 경멸하는 게 뭔지 아세요? 전부 말이 되게 하려는 노력이에요. 말이 되는 건 없어요. 뭣 하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거죠. 그냥 받아들이고 넘어가면 돼요, 알겠어요? 논리 정연한지 안 한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청소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절단사'는 뛰어오더니 그 앞에 앉았다.

"마스크 벗겨도 될까요?"

"안됩니다."

"움직이지 마세요."

피코는 '청소부'의 목에 손을 가져가서는, 방독면 가장 밑 부분에 닿을 때까지 손을 쓸어내렸다. '청소부'는 피코가 마스크를 위로 들어 올리고, 공기 차단 부분을 떼어낸 뒤, 필터가 머리 뒤로 넘어가도록 검은 고무줄을 당기는 동안 순종적으로 가만히 있었다. 막 마스크가 벗겨져 얇은 분홍색 입술이 보이려는 순간, '청소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피코의 얼굴을 무릎으로 쳤다. 그러고는 피코가 막 찢어진 입술에서 피를 닦아내는 동안 돌아서서는 달아났다.

"좋아요. 당신은 그냥 마스크군요. 마스크 위에 마스크 위에 마스크…에라 시발."

피코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제 시체 더미에 누웠다. 그는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두들겼다.

"이쯤 되면, 그냥…자극이 전혀 없는 그런 상태네. 일들이 그냥 일어나고는 있지만…그 뒤엔 아무것도 없잖아. 깊이가 없어. 전부 알아서 무너지는 그런 상태라고.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지. 이제 끔찍한 결정을 내릴 차례구만."

수신자: 형
하트퍼드(hartford)가 16번지 와서 날 뚜까패던가 말든가

수신자: '조각사'
하트퍼드가 16번지 이젠 저뿐이에요

수신자: 좆밥 여단
하트퍼드가 16번지 절단삽니다 안뇽

수신자: '청소부'
난장판이 될 겁니다

"이젠 아무 의미도 없어. 그냥 끝내도록 하지."

그는 휴대전화를 반대편 벽에 집어 던졌고, 전화기는 산산이 조각났다. 피코는 시체 더미 속으로 파고 들어가, 꿈꾸지 않는 잠에 빠졌다.

하나 중 중간은 모집된 암
둘 중 중간은 완치된 암.
중간은 암의
그 모든 것의 위에, 심심해진 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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