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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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어가고 있다.

오래 전부터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나이를 먹고 굼떠지기 시작했고, 종종 내 몸속 깊숙히서 겉잡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정신이 나가서 몽롱할 때도 있었다. 내가 모르는 새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빛의 점과 점 사이를 불과 몇 분 만에 오가는 것 같았지만, 알고보니 사실 그보다는 더 걸리는 일이었다. 나는 늙어가고 있었고, 우리 종족은 늙음을 사랑하였다. 내가 최후를 맞으면 새로운 시작이 태어난다. 이로써 나의 삶은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그 누구도 죽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이들이 갈구하는 목적을 위해 내게서 세상 만물을 볼 수 있는 시력을 앗아간다. 내게 그것은 갖고 싶지 않은 명예였다. 나는 광막 속에서 지내는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장소와 존재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그 장소와 존재들은 모두 제각각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이로써 만족했다. 하지만 내 몸은 그렇지 않았다. 몸은 벌써 나를 버리려 하고 있었다. 내 정신이 몸과 작별할 준비가 되었는지 아닌지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내가 어찌 생각하든 그것과는 별개로, 이제는 드러누울 자리를 찾아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오락가락하는 늙은이였다. 내 존재는 내 종족과 그들의 여정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우리 종족의 풍습에 따라, 나는 드러누울 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나의 시간이 다할때 까지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러고 나면 나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이 태어나고, 나는 내가 최후를 마친 그곳의 축복이 되리라.

나는 다소 오랜 시간을 찾아다녀야 했다. 내 종족 대부분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광막 속을 헤집는 모험은 포기했으나, 그래도 죽음과 황량이 지배하는 자리에서 내 최후를 맞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아름다운 땅을 찾는 데 시간을 보냈다. 내게 때가 온 이상, 나의 짐들과 내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나는 내 눈이 감기기 전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길 갈망했다. 하지만 매우 힘든 여정이었고, 나는 내가 최후를 맞을 장소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눈을 감고 희망만 바랄 뿐이었다.

내가 눈을 다시 떴을 때, 나는 어딘가 새로운 곳에 도착해 있었다. 또 한번 시간이 내 의사와 관계없이 지나갔고, 나는 한 무리의 자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흘러온 것이다. 자리들의 대부분은 매우 흥미로웠지만 죽은 땅들이었다. 나는 바람과 빛깔이 지배하는 거대한 자리 두 개를 지나쳤다. 둘 다 매우 아름답고 기묘하게 생겼지만, 내게도 내가 짊어진 짐에도 적절하지 못했다. 나는 파편 부스러기들이 잔뜩 모여있는 곳을 지나쳤다. 간혹 파편이 내 겉을 때려 아팠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나는 붉은색으로 떡칠이 된 자리를 지나쳤다. 한때 그곳에 생명체가 살았음을 알려주는 줄이 그어져 있었다. 나는 내가 오기 전 이미 사라져 버린 그 아름다움을 애도하며 흐느꼈다.

그리고 발견했다. 흰색 줄기가 꿈틀대는 번데기처럼 돌아 감싸는, 청색과 녹색과 갈색이 어우러진 자리를. 이 땅은 온갖 생명들로 가득차 있었고, 나도 온갖 굉장한 경험들을 겪을 수 있을 터였다. 이곳이야말로 내 종말의 수평선이요 내 짐의 고향이 되리라. 내가 시들어 말라 죽어가는 동안 이곳은 내 주위로 자라날 것이요, 나의 존재는 이곳에 사는 이들에게 가장 중대한 의미가 될지니. 나는 나의 영토를 세우고 푸른색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이곳의 토착민들이 이곳을 지구라고 부르게 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이름이 좋아질 것이고, 그들의 시간이 왔을 때, 나의 짐들 역시 그러하리.


내 안의 천둥이 지나간 긴 역사를 잊게 만든다. 눈 앞에는 고요한 어둠이요, 귓가에 울리는 이명이 때가 가까워옴을 일깨운다.


도시 전체에 종이 울리며 시민들에게 때가 왔음을 알렸다. 거리는 빠르게 텐타보인(Tentaboin)들로 가득찼고, 그들은 각기 공회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두 명의 술법사가 무대를 울카란스(ulcarans)로 짙푸르게 꾸미는 동안 군중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기대에 찬 사람들이 발걸음을 바삐 놀렸다. 후다닥거리는 발소리와 메아리 되어 울리는 목소리가 모든 건물마다 골목마다 가득찼다. 모든 홍예문들을 지나고 모든 포석 깔린 거리를 지나, 수많은 다리와 목소리의 행렬이 공회당을 향해 행진했다.

바깥의 군중들의 규모는 불어났고, 여러 사람의 집합적인 웅얼거림이 공기를 채웠다. 오늘의 모임을 소집한 것은 시장인 헤르불트(Hervult) 본인이었다. 참석이 의무였고, 숭배의 날에만 베풀어지는 예우가 적용되었다. 무장한 군인들이 거리를 순찰하며, 모임에 빠질 정도로 대담하거나 불경스러운 누군가가 있는지 집집마다 뒤지며 확인하고 다녔다. 군중들은 이번 모임의 중요성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각각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이는 공회당과 거기 딸린 텅 빈 연단을 향했다. 술법사 한 명이 곧 연설이 시작될 것이라고 알렸었다. 그게 한 시간 전이었고, 군중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이웃 동굴의 히라케뢰크(Hirakeroek) 시와의 전쟁이 일어나려는 모양이라고 속삭였다. 다른 일부는 종교적 중요성이 있는 일이 아닌가, 구원의 날이 도래한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날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 뿐. 예언가이자 술법사인 안자크(Anzak)가 공회당 안에 서서 창문으로 초조하게 군중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져온 소식이 신성모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군중들이 공황에 빠질 것이라는 도 알고 있었다. 자신도 저 밖의 무리들 속에 있었다면 역시 공황에 빠졌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져온 소식을 거의 믿을 수 없었고,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를 절망적으로 빌었으나, 사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안자크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증오했다.

그는 시장 아스타이르(Astair)가 연단으로 가는 소리를 듣고 쪽지와 자신이 할 말을 초조하게 재확인했다. 아스타이르가 군중들 위에 우뚝 서자 군중의 머리 위로 표토가 떨어졌다. 아스타이르 역시 선언을 듣기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경애하는 예언가 아르템(Artem)이 시장에게 전언을 보내왔었다. 기름 먹여 부드럽게 윤이 나는 우단(羽緞)과 다공성 백돌로 새긴 선언문을 읽어달라는 것이었다. 우단이나 백돌 같은 사치품들은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시장 헤르불트는 헛기침을 하고, 활짝 웃은 뒤, 군중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경애하는 텐타보에(Tentaboe) 시민 여러분. 본인은 이 가장 중요한 날 여러분을 불러모았습니다. 경애하는 예언가 아르템 선생이 오늘 여기 성스러운 대상(隊商)을 보내왔습니다. 여기 뿐 아니라 연결된 모든 도시와 동굴들로 보냈습니다. 바로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공회당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의 눈이 그를 따라갔다.

“예언자 안자크, 함께 무대 위로 나와 주시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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