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주제: 노래가 걷는 길

행진이 끝나면 다음 순서는 바로 자유 공연이었다. 광장의 정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떡갈나무 극장 주변에 전 세계에서 찾아온 수백의 잎들이 저마다 준비해 온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수백 명의 예술가들이 한꺼번에 공연을 시작하면 관객들의 귀에 들려오는 것은 온갖 잡동사니가 하늘에서 굴러떨어져 내려오는 소리 뿐이지만, 다행히도 떡갈나무 유랑극단은 수백 가지 공연이 서로를 방해하는 일 없이 한 번에 치러지도록 하는 데에는 이미 40년 전부터 이골이 나 있었다.

전통적으로 유랑극단 기술 감독의 역할 중 하나는, 바로 떡갈나무 광장에 설치된 이른바 '유랑극단 공연 매니저'를 정기적으로 유지/보수하는 일이다. 정확히 몇 대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 창의성과 신비학적 지식을 동시에 갖춘 매우 유능한 기술 감독 한 사람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5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그 변칙 프로그램 덕분에 누가 어디에서 어떤 공연을 하든 상관 없이, 그 어떤 소리도 공연 중에는 공연 장소를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 탓에 떡갈나무 광장은 축제 날에도 생각보다 조용하고 한산하다는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소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축제든지 부가 시설들은 존재하는 법, 광장 곳곳에 세워진 노점들과 가판대는 사람으로 가득했고,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란은 오늘이 떡갈나무 유랑극단 최대의 축제날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소란의 한가운데에는, 늘 그렇긴 하지만, 술집이 있었다. 빌리스Billy's는 매우 유서 깊은 건물로, 떡갈나무 광장과 역사를 함께했던 빌리라는 이름의 어느 음악가가 세우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후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떡갈나무 광장 주점의 제일인자였다. 평소에도 붐비는 빌리스였지만, 떡갈나무의 날 축제 중에는 사람으로 꽉꽉 들어차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광장의 모든 소음 중 70퍼센트 이상의 지분은 이 오래된 클럽이 가져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한낮의 떡갈나무 유랑극단의 3대 단장 장산은 빌리스의 2층 테이블 중 하나를 잡고 앉아 아주 특별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특별한 손님은, 고의인지 우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와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나가서 찾아 볼까'라는 생각을 하는 그 순간에 나타나는 습관이 있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손님은 단장이 담당자에게 전화라도 걸어 볼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에 나타났다.

"데려왔습니다, 단장님." 개척자의 리더 페레그린이 말했다.

"문게이저." 단장이 말했다.

"단장." 문게이저가 검은 모자를 벗으며 말했다. 페레그린은 문게이저를 마치 길을 잃은 어린아이를 데려다 주듯이 문게이저를 그곳에 데려다 놓고는 자기 할 일 하러 계단을 내려갔다.

단장은 말 없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앞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문게이저는 자리에 앉았다. 곧 웨이트리스가 나타나 주문을 받았다. 단장은 버번 위스키, 문게이저는 진토닉을 주문했다.

그들은 잠시 가만히 앉아 술을 잔에 따르며 빌리스의 중앙 홀을 내려다보았다. 한가운데 설치되어 있는 무대에서 사람들이 유명한 재즈 명곡들을 연주하고 있었고, 가득 들어찬 사람들은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고 있었다.

"슬슬 오케스트라를 소집해야 하지 않나?" 침묵을 깬 것은 문게이저였다. "한 번이라도 더 연습을 해야 할 상황에 이렇듯 유유자적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 단장은 본 적이 없군. 자네는 안일하네."

"느긋하다고 해 주십시오." 단장이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피날레 공연은 차질 없이 잘 진행될 겁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행사고, 이번 오케스트라에 선발된 사람들 모두 이날을 위해 수도 없이 연습해 왔으니까요. 오히려 저는 어르신이 걱정됩니다."

"내가 걱정되다니, 그건 무슨 말인가?"

"어르신은 오늘에야 처음으로 연습에 참가하는 거잖습니까. 더 일찍 부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도대체 어떻게 연락해야 할지 감이 잡혀야 말이죠. 페레그린도 연락처를 모른다고 하고.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어르신이 제일 걱정됩니다. 더구나 이번 공연을 개척자가 주최하는 것으로 결정한 건 사실상 어르신 때문이란 말이죠. 실은 그것 때문에 단원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습니다. '그 괴짜 늙은이를 믿다니, 단장도 이제 사람 보는 눈이 녹슬었군.' 운운." 단장은 장난스럽게 말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문게이저는 진토닉을 한 모금 마시고는 웃었다. "뭐 괜한 걱정이라고는 하지 못하겠군. 그래도 걱정은 관두게. 늙은 버드나무는 볼품없이 뒤틀려 있을진 몰라도 여전히 억세고 질기니까."

단장은 미소를 지으며 잔에 술을 따랐다. 두 사람은 다시 말없이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떻습니까?"

"어떻다니, 뭐가?"

"이곳, 빌리스 말입니다. 듣기로는 어르신이 딘을 만난 것도 여기랑 비슷한 곳이라고 하던데."

"아아, 그것 말이군. 글쎄……"

문게이저는 생각에 잠긴듯 술잔을 내려다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추억에 잠긴 듯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깎아내리는 건 아니지만, 여기 이곳도 스페이드 에이스보다는 못하군."


스페이드 에이스Spade Ace에는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려는 젊은 음악가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모든 예술가들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이 클럽에서는 정기적으로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무대에 설 수 있게 해 주었고, 그 시절 무대에 서기를 싫어하는 음악가는 아주 드물었다. 물론 어디에나 괴짜는 있어서, 한 음악가는 자신이 음악가라는 티조차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창문과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 다른 사람들이 공연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한 음악가는 청교도 목사 마냥 검은 코트에 검은 모자 차림을 하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반짝이는 눈과 아까 전부터 무대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는 시선 때문에 그 클럽 안에 있는 사람들 중 아무도 그를 재밋대가리 없는 종교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한편 무대 위에서는 한껏 멋을 낸 젊고 목소리가 좋은 가수가 흥겨운 밴드의 연주와 함께 디온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검은 옷의 음악가는 여성 관객들 중 절반이 가수의 노래보다 가수 자체를 보고 있다는 것을 관객들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녀들은 로맨스 작가가 '그 순간, 그 어떤 노래도 그녀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라고 서술할 법한 상황에 처했을 때 짓는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가수는 이 바닥에 흔히 있는 잘생긴 음치는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었고 노래에 대한 이해도 완벽했다. 무엇보다 그의 정신에 담긴 무언가, 아주 강력한 힘이 담긴 무언가가 그 모든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나는 한 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는 남자
예쁜 여자들이 있는 곳, 내가 거기에 있지
그녀들을 키스하고 사랑하지, 내게는 다 똑같아
그녀들을 껴안고 주물러, 그녀들은 내 이름도 몰라

그녀들은 날 방랑자라 부르지
그래, 방랑자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돌아다녀, 돌아다녀…

공연이 끝나고 젊은 가수는 열광적인 여자들의 환호를 뒤로 하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잠시 후 밴드가 차분한 재즈곡을 연주하고, 조용히 술잔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려 스페이드 에이스를 찾는 이들만 남았을 때 젊은 가수는 다시 나타나 창가로 다가갔다.

검은 옷의 음악가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젊은 가수가 처음 봤을 때 예상했던 대로 검은 옷의 음악가는 그와 비슷한 나이의 청년이었다.

"있잖아, 만약 당신이 술은 안 마시고 싶지만 노래는 듣고 싶다면," 젊은 가수는 말을 걸었다. "그때는 그냥 뭐라도 시키는 쪽이 좋아. 안 그러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걸."

검은 옷의 음악가는 창가로부터 시선을 돌려 젊은 가수를 바라보았다. "일리 있는 제안이군. 충고 고마워. 아, 그리고 공연 잘 봤어. 대단하던데. 이름이…?"

"딘 미첼Dean Mitchell." 젊은 가수가 대답했다. "만나서 반가워, 문게이저."

"만나서 반ㄱ… 뭐?" 문게이저라고 불린 그 청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딘을 쳐다보았다. "누가 날 그렇게 불러?"

"사람들. 아주 많은 사람들." 딘이 말했다. "아니, 그냥 웬만큼 사교성 있는 인간들은 다 그렇게 부른다고 보면 아마 문제 없을 거야."

"왜 그렇게 부르는데?"

"진짜 모르는 거야, 아니면 농담이야? 늘 보름달이 뜬 밤이면 아무것도 안 하고 달만 빤히 쳐다보는 검은 옷의 피아니스트라면 이미 이 바닥에서 소문이 자자하다고."

"젠장, 어쩐지 다들 내 이름을 안 물어보더라니……"

"그래서, 스페이드 에이스에는 무슨 일로 온 건가, '문게이저'?" 딘은 문게이저를 마주보는 자리에 앉아 물었다. 문게이저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시선을 창가 쪽으로 돌렸다. 딘은 그것을 보고 문게이저의 시선을 따라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창 밖에는 아름다운 푸른 달이 떠 있었다.

"멋지지, 안 그래?" 문게이저는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자리에서는 달이 아주 분명하게 잘 보이지."

"그래, 오랫동안 쳐다볼 가치가 있는 달이군." 딘이 말했다. "뭐 그걸 감안해도 당신의 그 달에 대한 집착은 좀 과도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뭐 때문이야?"

"뭐 때문이냐니?"

"늑대인간마냥 달을 멍하니 쳐다보는 그 이유 말이야. 물어봐도 되나?"

"왜?"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그냥 궁금해서."

"두 번째는?"

"'이상한 짓 하는 놈 치고 로맨틱한 사연 없는 놈이란 없다'가 내 신조야. 그래서 말해줄 거야, 아니야?"

"너가 생각하는 것보다 긴 이야기야. 훨씬 길지."

"그러면 말하는 동안 목을 축여야겠군." 딘은 그렇게 말하더니 손가락을 튕겨 종업원을 불렀다. "스카치 하나, 그리고 여기 빌리 조엘의 노래에 나오는 늙은이처럼 구는 녀석한테는 진토닉 하나."

"아니, 저기, 나는 술 안 마시는데-"

"-다들 첫 잔 들이키기 전에는 그렇게 말하더군. 됐고, 이건 이야기 값으로 생각하라고." 딘은 이렇게 말하고는 술이 나오자 직접 진토닉을 문게이저의 술잔에 따라주었다. "이제 노래를 불러 주시지, 피아노 맨."

문게이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길었지만, 딘은 자기가 듣자고 한 이야기를 외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딘은 문게이저가 이름모를 '벨의 딸'을 만나기 전에 겪었던 불우한 삶, 푸른 달 아래에서 노래를 불러주었던 여자아이, 그리고 '블루 문(이 단어를 발음할 때 문게이저의 표정으로 보아, 그는 그 의문의 소녀를 이렇게 부르기로 한 것 같았다)'에게 받은 노래로 여기까지 왔던 문게이저 본인의 이야기에 극도로 몰입했고, 이야기가 끝났을 즈음에는 스카치도 진토닉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역시 지루하지?" 문게이저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라고나 할까." 딘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러면, 네 목표는 그거야? '달 아래의 소녀'를 찾아내는 거?"

"그렇지."

"흐음." 딘은 마치 문게이저를 자세히 관찰하려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아까부터 든 생각이지만, 넌 진짜로 노래에서나 나올 법한 사람 같다."

"그래?"

"아니, 생각해 봐. 외로움 타는 남자에게 찾아오는 블루 문 아래의 사랑? 꼭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같잖아. 그 벨……" 딘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잠깐, 그 아이 아빠가 벨이라고 했냐?"

"그랬는데."

"……잘은 기억 안 나는데, 그 벨이라는 사람 누군지 알 것 같아."


단장은 축제 첫날 저녁에 오케스트라를 소집했다. 일반적인 축제날의 소집 시간보다 늦은 편이었지만, 단장이 선발한 100명의 오케스트라는 정확히 제 시간에 도착해 연습 준비를 모두 끝마쳤다. 오케스트라가 다 모이자 단장이 문게이저와 함께 연습장 안으로 들어왔다.

"우선 이렇게 모여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단장이 말했다. "이번 푸른 벌새의 해에 열리는 떡갈나무의 날 피날레 공연은 처음으로 개척자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또한 다섯 번째로 돌아오는 푸른 벌새의 해에 열리는 공연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이 공연을 통해서 떡갈나무의 노래에 새로운 멜로디가 섞여 들어가, 우리 떡갈나무 유랑극단의 비전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수와 함께 단장은 문게이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문게이저는 헛기침을 했다. "문게이저라고 합니다. 오늘 이렇게 오케스트라 여러분과 함께 연주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저는 세 번째 푸른 까치의 해부터 지금까지 개척자의 일원으로서 연주해왔습니다. 계산해 보자면 대략 55년 정도 되는군요. 오랜 시간 동안 저는 푸른 달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이번 공연 때 제가 연주할 곡은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곡한 것들입니다. 이 곡이 연주를 듣는 누구보다도 여러분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요. 그럼 시작해 봅시다."

문게이저는 그렇게 말을 끝내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지휘석에 오른 단장이 문게이저를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장은 조용히 지휘봉을 치켜 들었다.

단장의 지휘봉이 아래로 내려오자, 문게이저의 손끝에서 피아노가 달빛처럼 차분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긴장했군?"

문게이저는 피아노를 닫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딘을 보았다. "티가 나나?"

"멜로디가 지진 난 것 마냥 덜덜 떨고 있다고. 그걸 어떻게 못 본척 할 수 있겠어?"

문게이저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그의 두 손은 마치 자기들만 남극에 떨어진 듯이 부들부들 떨며 진동하고 있었다.

"넌 너무 필요 없는 긴장을 많이 해." 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발, 문게이저. 그냥 벨한테 인사나 한 번 하려고 온 거잖아. 그 사람이 네 미래 장인이라는 건 알겠지만 오늘 모든게 다 결정나는 건 아니니까 진정 좀 해 봐."

"네 말이 맞아, 진정해야겠군. 후우." 문게이저는 심호흡을 했지만,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만약 블루 문이 벨과 같이 나타난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등등의 온갖 시나리오를 상상하면서 몸을 긴장시키고 있는데 진정 따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프랑스의 작은 카페에서 벨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미국부터 프랑스까지의 여정은 길다면 길다고도, 짧다면 짧다고도 할 수 있었지만 그 여정 동안 문게이저의 세상은 거꾸로 뒤집혔다. 알고 보니 딘은 '한낮의 떡갈나무 유랑극단'이라고 하는 단체의 일원이었고, 벨이라고 하는 남자와 그의 딸인 블루 문 역시 그렇다고 했다. 문게이저는 처음 유랑극단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들을 호칭이 이상한 일종의 음악가 버전 프리메이슨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역시 더 자세히 알게 될 것이지만, 그때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문게이저는 만약 그가 블루 문과 함께하려면, 그 유랑극단이라는 것에 무조건 가입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다. 물론 몇 번을 고민하더라도 그가 내린 결정은 똑같았지만.

블루 문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문게이저는 그 어떤 것이든 포기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 도착하자 딘은 여러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 벨이 그에게 연락했고, 두 사람은 벨이 자주 찾는 카페에서 모이기로 했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문게이저는 (그의 관점에서는)모든 일이 너무 빠르고 비현실적으로 진행되는 탓에 눈이 빙빙 돌 지경이었다.

벨은 약속한 시간에 맞춰 나타났다. 문게이저는 그를 처음 보자마자 블루 문을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눈 앞의 이 사람은 내게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문게이저는 벨의 표정을 읽고 예감할 수 있었다. 벨은 두 젊은 청년을 바라보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

딘이 황급히 손을 내밀었다. "딘 미첼입니다."

벨은 주름진 손을 내밀어 딘과 악수했다. "미첼 씨, 반갑습니다."

"그냥 딘이라고 불러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쪽은……"

"문게이저입니다."

"좋은 이름이군요." 벨은 미소를 지었다.

세 사람은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말을 했던 건 딘과 벨이고, 문게이저는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유랑극단의 근황이나 그런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으니 두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 이렇게 만나자고 한 이유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벨이 말했다.

문게이저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천천히 말했다. "블- 아니, 벨 씨의 따님 얘기입니다." 문게이저는 자기가 붙인 별명을 그 아버지에게 말할 뻔 했던 것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지만, 이미 늦었다.

"내 딸? 아, 내 수양딸을 말하는 거군?"

"수양딸이었습니까? 그건 몰랐는데." 문게이저가 우물거렸다.

"뭐, 그 애는 날 아빠라고 부른다네. 그러니 뭐 수양딸이든 친딸이든 상관 없지. 그런데 문게이저 군은 내 딸을 뭔가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 같은데?"

"이 친구는 블루 문이라고 부르죠. 푸른 달 아래서 만났거든요." 딘이 문게이저의 눈빛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밀을 말해 버렸다. "그 낭만적인 추억 대문에 일생일대의 사랑이 되어 버린 거죠."

갑자기 벨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면 그 아이를 만나려고 여기까지 온 거군."

딘과 문게이저 두 사람 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이 사람이 굳은 표정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잠시동안 어색한 침묵이 테이블을 감돌았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게이저가 살얼음을 걷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벨은 한숨을 쉬었다. "자네들이 헛걸음했네."


잠시 후, 문게이저는 카페 앞에 놓인 벤치에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앉아 있었다. 딘이 조용히 그의 옆에 앉았다.

"또 알 만한 사람이 누가 있지?" 문게이저가 불쑥 물었다.

"벨이 말했잖아, 그 아이는 그 사람 말고는 그렇게 친한 사람이 없었다고. 벨이 그녀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면, 아무도 모를거야."

"이건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지, 아무렴. 하지만 세상이란 놈은 가끔 그런 짓거리를 한다네." 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벤치에 앉은 두 쳥년은 뒤를 돌아보았다. 벨이 두 사람 뒤에 서 있었다.

"난 혼자서 유랑극단의 존재를 알아내고 그들의 위치를 찾아서 그 일원이 된 게 아니야.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날 여기로 인도한 건 메이라고 하는 사람이었네. 좋은 사람이었고, 내게는 최고의 스승이었지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리 곁을 떠나 버리고 말았지. 그게 슬프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거야. 그때 나는 세상이 내 주위로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네. 그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노래를 듣지도 부르지도 않았지. 하지만 신은 또 내게 그 아이를 보내 주셨네."

문게이저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벨은 두 사람의 앞으로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었고, 유랑극단에 대해 가르쳐 주었네. 그렇게 해서 내 안에 있던 노래를 그 아이에게 전해 주었고, 동시에 내 마음 속의 꺼진 불씨를 되살릴 수 있었지. 노래라는 것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라네. 마치 인류가 아담과 이브로부터 지금 여기까지 내려온 것처럼 말이야."

벨은 그렇게 말하더니 웃음지으며 문게이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메이는 내게 노래를 전해 주었고, 나는 또 내 딸에게 그것을 전해 주었지. 이제 노래가 다시 내 아이로부터 자네에게 전해졌군. 그러면 이제 자네가 뭘 해야 하는 지 알고 있겠지?"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문게이저가 몸을 세우고 말했다.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또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따님을 찾겠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노래 하나 만큼의 가치는 있겠죠."

문게이저는 그렇게 말하고는, 벨에게 인사하고 온 길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두 발짝 쯤 걸음을 옮긴 문게이저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다시 뒤로 돌아와 벨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벨 씨, 따님의 이름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 그 아이에게도 이름은 있지." 벨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 직접 듣는 쪽이 나을 걸세. 지금 그녀는 자네에게 있어 블루 문이라네."

"그렇게 말할 것 같더군요, 안녕히 계세요."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돌아가는 길에 딘이 문게이저에게 말했다.

"뭔데? 말해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부르고 있던 노래 기억나? 디온의 노래 말이야."

"물론 기억하고 있지."

"그 노래처럼 해 보는 거 어때? 세상을 돌아다니는 거야."

문게이저는 걸음을 멈추고 딘을 돌아보았다. "진짜로?"

"그래. 클럽은 전부 다 거기서 거기야.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곳을 찾아가 내 노래를 불러보고 싶은데, 어차피 너는 블루 문을 찾으러 지구를 한 열두 바퀴 정도는 돌 테고, 그럼 같이 다니는 쪽이 훨씬 재미있지 않아?"

"말 되네." 문게이저가 말했다. "그러면 한 번 해보자. 딘 미첼과 문게이저. 두 사람의 방랑자가 한 번 되어보자고."

"좋아. 하지만 이름은 좀 더 나은 걸로 바꿔 보지." 딘이 말했다. "만약 진짜로 그 여정을 시작하려면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모험가들Adventurers이 되어야 할 거야. 흠, 이거 마음에 드네. 어드벤처러스. 어때?"

"마음대로 해. 난 상관 없어."

"좋아." 딘은 그렇게 말하며 문게이저에게 손을 내밀었다. "목표를 이룰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자신 있어?"

"잘 모르겠군." 문게이저가 말했다. "사실 벨 씨에게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녀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 지 아직은 전혀 모르겠어. 내가 그냥 손을 뻗어서 저 푸른 달을 움켜쥘 수는 없겠지. 하지만……"

문게이저는 그렇게 말하며 딘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나는 이제부터 죽는 순간까지 블루 문을 위해 노래를 부르게 되겠지. 이 노래는 분명 푸른 달까지도 닿을 수 있을 거야. 닿아야만 해."

딘은 웃으며 그의 어깨를 쳤다. 두 사람은 다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야. 생각해 보니 내가 부른 노래의 주제는 단순한 방랑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여행의 절반을 여자랑 노닥거리면서 보낼 작정이라면 꿈도 꾸지 마."

"오, 그건 장담 못해."

"They call me the wanderer, yeah, the wande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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