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거짓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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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이 소리를 좋아했다. 저 멀리서부터 파도가 한가득 밀려와 해안가의 모래들과 부딪쳐 부서지는 소리. 눈을 감은 채 계속해서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듣고 있다보면 아무런 걱정도 아픔도 없이 모든 걸 잊고 금방이라도 파도에 씻겨나가는 모래알이 되어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눈꺼풀 밖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시체들과, 코를 찌르고 있는 불쾌한 피비린내와, 나를 향해 내지르는 비명소리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지금 당장에라도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영원토록 가라앉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젠장, 황금 휴가철에 이게 무슨 꼴이야."

대원 하나가 전투복에 묻은 피와 살점들을 대충 털어내면서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런 일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민간에서 으레 그렇듯이 내가 속해 있는 상어 죽빵 센터에서도 초여름이 다가오면 다들 눈치를 보며 휴가를 쓰기 시작하고, 이맘때 즈음이 되면 다들 팀 단위로 자리를 비우고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긴급 임무에 투입된 재수없는 기동 부대를 제외하고.

"대충 다 정리되었으니, 얼른 치우고 돌아가자고. 다른 팀들은 다들 쉬고 있을 때 우리만 일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부대장이 아직 굳지 않은 피가 묻어있는 손으로 잿빛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며 높은 음색으로 소리쳤다. 주위에서 현장을 정리하는 다른 대원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호리호리한 체형을 가진 부대장이었지만, 그녀가 단신으로 쓰러뜨린 상어들의 수만 헤아려보아도 다른 대원이 아닌 그녀가 왜 부대장의 직위에 올랐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대원들은 일을 마치고 쉬고 싶다는 일념 하에 손에 쥐고 있던 상어 사체들을 분주히 나르기 시작했다. 곧 모래사장 한 켠에 힘을 잃고 늘어진 고깃덩이들이 쌓이고 쌓여 산을 이루기 시작했다. 사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긁히거나 잘린 상처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몇몇 구멍으로 튀어나온 선홍색의 무언가들은 그것이 확실히 죽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괜찮아?"

부대장이 다가와 멍하니 서있던 나를 툭툭 치면서 말을 걸어었다. 내 뺨을 건드리는 손에서 특유의 불쾌한 피비린내가 진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밀쳐내고 싶은 충동이 잠깐 일었지만,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기에 그만두었다.

"너가 더위를 먹으면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돌아가라고. 정 못 버티겠으면 바다에 들어가 있어도 돼."

웅얼거리며 짧은 대답을 한 뒤 빠르게 등을 돌려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걸어갔다. 밀려오는 파도는 평소였다면 푸른 하늘색과 초록색 에메랄드빛을 뽐내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기분 나쁜 검붉은 색만을 띄고 있었다. 이런 물에 몸을 담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뒤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부대장 때문이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발목이 물에 잠기기 시작하자,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숨을 골라 쉬었다. 눈을 뜨지 않은 채로 그대로 몇 발자국을 더 나아갔다. 나아갈 수록 몸이 물에 잠기고 있었으나 그닥 무섭지는 않았다. 물은 나를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점차 파도 소리가 거세져가면서도 물의 수위가 낮아지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계속해서 걸어갈 수록 다른 감각들은 더욱 선명해져 갔다. 바다에 더욱 가까워질 수록, 처참한 현장에서 멀어질 수록, 나는 더욱 진정되고 있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상어 죽빵 센터에서 지내면서 몇 번이고 봐왔던 광경이지만 아직까지도 저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고역으로 다가왔다. 다른 대원들은 모두 '시간이 지나면 무심해진다'라는 투로 말해오곤 했지만, 살아있는 것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것을 보는 것이 도무지 익숙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더 이상 햇빛이 느껴지지 않을 때 즈음에, 머리 위로 물이 몇 방울 떨어졌다. 많이 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가 내가 다룰 수 있는 최대치였다. 나는 서서히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까지 걸어온 모래바닥이 보였다. 물은 길 양옆으로 갈라져서 내 키보다 훨씬 높은 벽을 이루고 있었고, 그 너머에서는 바닷풍경이 어둡게나마 엿보이고 있었다.

저 멀리서 이 쪽을 바라보고 있던 부대장은, 바다가 갈라진 모습을 보면서 옅은 미소를 내비치고는 다시 대원들에게 다가가 일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고작 몇 십초 사이에 사체들이 이룬 붉은 산은 멀리서 한눈에 봐도 방금 전보다 훨씬 높아져 있었다. 더는 그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다시금 눈을 감자, 좌우로 갈라져있던 물이 굉음과 함께 서로 쓸려 부딪치면서 내가 있던 자리까지 한순간에 물이 차올라 바닷길이 닫히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파도가 나를 덮치자 깊은 해안에서 가라앉은 꼴이 되었지만,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이 발버둥을 치거나 숨막혀 할 필요는 없었다. 바다 속에서도 눈을 뜰 수 있었고 숨이 쉬어졌으니까. 잔뼈 굵은 베테랑들만 모이는 기동 부대에 내가 배정될 수 있었던 이유다. 어떤 방식으로든 물에 길을 내는 것이 나의 특기였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어릴 적부터.


첨벙.

작지 않은 욕조에 넘칠 듯이 담긴 따듯한 물에 피로해진 몸을 담갔다. 꼬박 하루가 넘도록 바다 한가운데에서 헤엄치느라 긴장해있던 온몸의 근육이 미약한 통증과 함께 노곤하게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와는 달리, 작전이 끝난 직후에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고 바로 숙소로 향할 수 있던 것은 부대장이 대원들을 향해 베푼 작은 배려였다.

욕조에 담긴 물 중 일부를 허공에 띄웠다. 떠오른 물은 동그란 구체가 되어 공중에 머물러 있었다. 몰려오는 피로를 간신히 참아내며 물 속의 손가락을 휘젓자, 공중의 물방울은 내 의식의 흐름에 따라 휘적거리며 모습을 바꾸어갔다. 무엇을 떠올리냐에 따라서 토끼, 작은 눈송이들, 소용돌이 등 여러 형상으로 변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눈을 감고 오늘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사실 떠올릴 것도 많지 않았다. 소형 잠수정에서 내린 우리들은 인근 지역을 수색하다가, 무리 지어 이동하고 있던 상어 떼를 찾을 수 있었다. 상어들이 모여있다는 브리핑을 들은 대원들이 흥분하며 달려드는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대원들은 상어떼를 마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는 신체 능력으로 상어들을 무참히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날카로운 이빨과 강력한 턱은 주먹질 몇 번에 무력하게 으스러졌다. 광기에 사로잡혀 상어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평소에는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대원도, 상어가 눈앞에 나타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상어가 피를 흩뿌리며 죽을 때까지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평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상어를 죽이는 일에만 열중했다. 상어들이 무참히 죽어나가는 학살의 현장에서 오직 나 혼자만이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몇 번이고 기동 부대의 일원으로써 여러 차례 상어 학살의 현장을 마주했지만, 그 때마다 느껴지는 원인 모를 공포심과 위화감은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어를 때려죽이겠다는 특유의 광기로 가득차 있는 SPC 센터에서 이를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끔찍한 몰골로 죽은 상어들의 시체는 한데 모아다가 흔적이 남지 않도록 소각했다. 그게 다였다.

짧은 회상을 마친 나는 몸에 힘을 풀고 물에 몸을 맡겼다. 어서 목욕을 마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자고 싶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피로가 파도처럼 몰려와서, 점차 생각하는 게 귀찮아지려 하고 있었을 무렵..



"그런 표정을 하면서도 꾸역꾸역 사는 이유가 뭐지?"

어두워.

"내 눈 보여?"

추워.

"겨우 숨어들어왔네."

아파.

"마침내 성공작이 완성되었단 말이다!"

졸려…

"개같은 것들."

"여기서 도망쳐야 해."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너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 당장."

손짓 한 번에 바닥에 고여있던 물웅덩이가 들쭉날쭉한 날을 세웠다.

"一一一一一一一一"

"一一一一一!"

"一一一一, 一一一一一一一一一"

으직.


첨벙!

갑작스러운 물장구 소리에 깜짝 놀라 졸음에서 깨어났다. 의식이 흐려지자 허공에 띄워두었던 물이 힘을 잃고 욕조에 떨어진 것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여기서 잠들어버릴 것 같아서, 서둘러 욕조에서 빠져나와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았다.

'뭔가 꿈을 꾸었던 것 같은데…'

욕조 마개를 뽑아 하수구로 물을 흘려보내려 할 때, 문득 물을 띄워 작고 날카로운 칼의 형상을 띄게 했다. 눈으로 보기에는 제법 날카로웠지만, 손가락이 날 부분에 닿자 힘을 잃고 팔을 따라 흘러내렸다.

'기억이 안나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곧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하수구 마개를 뽑아 물을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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