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987-KO

SCP-987-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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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45+x


IV 등급
보안 인가 요구됨






일련번호 등급 담당 기지
987-KO 케테르 제02K기지


1998. 11. 6.





특수 격리 절차: SCP-987-KO는 제02K기지의 강화 인간형 격리실에 수용한다. 격리실에는 3개 이상의 스크랜턴 현실성 닻을 설치하여 내부 현실성을 2000 ± 5 센티흄으로 고정하며, 주기적으로 SCP-987-KO의 흄 준위와 아키바 준위를 측정해야 한다. 식사 및 지급품 제공, 정기 정신과 상담, 건강 검진 등 기초적인 관리 사항은 표준 인간형 대우 규약을 적용한다. SCP-987-KO를 정규 격리실에서 이송하는 경우 제02K기지 이사관의 승인이 필요하다.

제02K기지 과학부가 SCP-987-KO의 연구를 담당한다. 현재 연구팀 책임자는 최두익 박사다. 격리실에 규약 밖의 제공물을 반입하기 위해선 연구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최근 한국사령부 관할지역 내에서 적대 요주의 단체의 활동이 활발하므로 격리 태세에 만전을 기하며, 특히 SCP-987-KO에게 탈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미검토 정보가 제공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POI-0813과 POI-0814의 존재는 SCP-987-KO의 격리 절차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사령부 정보국과 기동특무부대 갑호-1("모략가")의 공조를 통해 두 요주의 인물을 추적하며, 첩보 사항은 모두 제02K기지 이사관보에게 보고한다.

대한민국 국군기무사령부 부지 내에 위치해있던 두 채의 조선조 건축물은 분해하여 다른 위치에 이건한다. 우물은 매립하고 우물돌은 원래와 다른 위치에 복원한다. SCP-987-KO 이외에도 해당 유적과 연계가 가능한 변칙 개체가 존재할 수 있으므로 부지와 유적은 기무사, 문화재관리국과 협력하여 지속적으로 관리감독해야 한다.

1985년자 지역사령부 관리이사관 결정사항에 따라 과학부 무속분과는 SCP-987-KO를 포함한 현역 변칙 개체의 취급, 연구, 관리에 참여할 수 없다. 무속분과로부터 연구 성과를 인수받은 연구팀은 모든 내용을 원점에서부터 검증한 후 격리 절차를 재검토해야 한다.

1968년부로 프로젝트 디어사이드는 중단되었다. 관련 사실은 부인될 것이다.


설명: SCP-987-KO는 VIII 등급 인간형 현실조정자 독립체이다. 외형상 신체 특징으로는 한국계 몽골로이드 여성, 신장 약 110 cm, 겉보기 나이 10~14세, 흉부의 명확하고 반복적인 절개술 회복 흔적 등이 있다. SCP-987-KO는 최소 5세기 이상 생존해온 것으로 추정되며, 처음 외형이 기록된 1906년 이후 90여년 동안 노화나 성장이 전혀 없이 외형을 유지하고 있다.


15세기 조선 왕실에서 SCP-987-KO로 추정되는 현실조정자 개체를 포섭하여 활용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과 이금록 등에 남아있으며, 당시 문헌에서 나타나는 변칙성 상당수를 실험에서 소규모로나마 재현하는 데 성공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이는 SCP-987-KO 본인으로 추정하는 것이 현재로선 합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해당 기록들은 모두 민간으로부터 회수되었다.

SCP-987-KO는 16세기 말엽 이후 한동안 문헌 증거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20세기 초 돌연 한반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1919년 일본제국 이상사례조사국(이자메아)에 의해 확보됐다. 이자메아는 대상을 연구해 활용하고자 노력했으나 패망 이전까지 성과를 보지 못했다. 1945년 일제가 무조건 항복하면서 연구 관련 자료가 재단에 인계되었으나, SCP-987-KO 자체는 북한 지역에 놓인 탓에 확보할 수 없었다. 이 시기 동안 이자메아 출신의 요주의 인물 두 명(POI-0813, POI-0814)이 SCP-987-KO와 동행했음이 여러 증거로 확인되어있다.

SCP-987-KO가 다시 감시망에 포착된 것은 한국전쟁 도중인 1951년이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남북한의 대치선이 북위 38도선 이북으로 이동한 1950년 10월, 기동특무부대 알파-88("최전선")은 화천에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되던 구 이자메아 안전가옥을 급습했으나 SCP-987-KO를 발견하지 못했다. 알파-88은 전선이 재차 남하할 때 후퇴했다가 1951년 4월 다시 화천에 입성했는데, 이때 동행자 없이 안전가옥에 혼자 남아있는 SCP-987-KO를 발견했다. 후방으로 이송되어 제06K기지에 격리된 SCP-987-KO는 분리불안과 우울증 증세를 나타냈지만 별다른 저항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정전 협정 체결 후 SCP-987-KO는 제02K기지로 옮겨졌으며, 이후 20여 년 동안 SCP-987-KO의 격리는 큰 이변 없이 정상 수행되었다.

1964년 5월 10일 장기간 소재 불명이던 POI-0814가 돌연 제02K기지에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POI-0814는 정규 출입구에서 보안대원에게 체포되었지만, 언어장애 환자가 기지에 침입했다는 보고 내용을 엿들은 SCP-987-KO가 격리 파기를 일으켜 POI-0814와 함께 도주하고 말았다. 격리실의 스크랜턴 닻 설치가 지연된 탓에 SCP-987-KO의 변칙성을 통제할 수단이 없던 것이 당시 격리 실패의 최대 원인이었다.

간헐적으로 입수되는 첩보 외엔 60년대 내내 재단의 추적을 벗어나 잠적해 있던 SCP-987-KO와 두 요주의 인물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시점은 1973년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재단과의 협력 노선을 파기하고 중앙정보부 산하에 독자 초상조직 제10국을 설립했을 때 POI-0813이 자문 역을, POI-0814가 국장 직책을 맡았으며, SCP-987-KO도 중정 10국의 관리 하에 놓였다.

중앙정보부 제10국은 SCP-987-KO의 현실조작 능력으로부터 모종의 이익을 취하고자 구체적인 활용 방법을 연구했으며, 이를 「소격 사업」1으로 명명했다. 해당 계획은 크게 두 단계의 목표로 구성되는데 그 첫 번째는 소격동에 남은 구왕실 유적을 이용하여 SCP-987-KO의 변칙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렇게 증폭된 변칙성으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요인, 나아가 국가 자체의 미래를 원하는 대로 조정하는 것이며, 계획 진척에 따라 이는 1980년대 초엽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수준에 다다랐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 사이의 갈등이 대통령 저격 사건이라는 파국으로 종결됨에 따라 SCP-987-KO 관련 안건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이후 정권을 승계한 전두환 대통령이 1981년 「한반도의 변칙 문제에 관한 한・재단 합의각서」2 체결에 동의함으로써 중앙정보부 제10국은 폐지되었으며, 폐지 당시 남아있던 10국의 모든 자산과 자료는 재단에 인수되었다. SCP-987-KO도 이때 반환되어 제02K기지에 재격리되었고 현재에 이른다.

최근 제02K기지 이사진은 지난해 "정신전자공학국 내 반동세력의 쿠데타 음모" 연루자의 집단 탈북으로부터 촉발된 혼란 상황이 SCP-987-KO의 격리에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주의깊게 검토하고 있다. 당시 혼란을 틈타 김영삼 정부가 국립 대초상기관 재건을 추진한 건은 경제적 문제 탓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73년 이래로 북한 내 초상문제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이상교화국이 탈북한 P국 인사를 처단하겠다며 보낸 남파 요원들은 상당수가 체포를 피한 채 불안요인으로 남아있다. 정보국 데이터에 의하면 이상교화국 역시 이자메아 자료를 통해 SCP-987-KO의 존재를 파악하고 그 유용성에 주목한 바 있으므로 이들이 탈취나 파괴 공작을 벌일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혼란 정국이 완전히 수습될 때까지 사령부 관할권 내 의심 징후에 대해 철저한 탐지와 통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SCP-987-KO의 현실조작 능력은 매개체가 될 인간을 통해서 주로 실현된다. SCP-987-KO는 목표로 삼은 인간의 향후 현실성에 간섭할 수 있으며, 대상에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사건을 의도대로 유발할 수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이는 전형적인 VIII 등급 독립체의 아키바-흄 교환 현실조작 회로 작동 양상과 동일하다.

변칙성 활성화 도중의 SCP-987-KO는 겉보기로는 어떤 특이사항도 구별할 수 없지만, 장비를 통해 관측하면 SCP-987-KO의 전신에서 급격한 아키바 방사선량 감소와 이에 비례하는 흄 준위 상승이 나타난다. 현실조작을 중단하면 이 변동치는 곧 통상 수준을 회복한다. 이는 SCP-987-KO가 3형 비등가 아키바 회로임을, 즉 수급되는 양을 상회하는 아키바 방사능을 일시에 소모하여 더욱 강력한 조작을 구현하는 현실조정자임을 의미한다.

매개가 되는 인간의 내부 흄 준위는 유지되거나 소폭 감소하며 인체 외부를 감싸는 국소 영역에 배경 현실과 구분되는 고준위 흄장이 형성된다. 이 흄장은 SCP-987-KO의 활성화 여부와 독립적으로 유지되며, 흄장의 현실성은 SCP-987-KO의 의사에 따른다. 흄장 작동의 양상은 아키바 회로가 활성화하여 흄장이 형성되는 즉시 완전히 결정되며 흄장이 작동하기 전이면 이를 임의로 해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SCP-987-KO의 변칙성 매개가 된 인원은 SCP-987-KO가 정한 시간에, SCP-987-KO가 정한 대로의 현상을 경험한다. 인원의 외부 흄장은 작동 전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다가 활성화되면서 미리 입력된 현실조작을 수행하는데, 활성화의 유지 시간이나 현실조작의 내용 등 모든 상세사항은 SCP-987-KO의 의지를 따른다.

SCP-987-KO 자신의 신체 역시 현실조작의 매개가 될 수 있는데(즉 본인에 대해서도 똑같은 변칙성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신체 외부에 흄장이 형성되는 것은 동일하지만 내부의 아키바 방사선량과 흄 준위는 일반적인 경우와 전혀 다른 변동 양상을 나타낸다. 실행하는 현실조작에 따라 이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특히 중요한 이론적 모순점은 현실조작의 주체인 외부 흄장의 흄 준위가 조작의 객체인 SCP-987-KO의 체내 흄 준위보다 현저히 낮다는 점이다. 하지만 SCP-987-KO 자신을 매개로 삼는 실험은 격리 파기의 위험이 높은 탓에 추가 실험은 보류되었으며, 해당 경우에 대한 특수 이론은 수립되지 못했다.

또한 현시점에서 SCP-987-KO가 아키바 방사능을 나타내는 이유도 불명확하다. 주류 학설에 따르면 아키바 방사선은 특정 인구 집단의 숭배 행위로부터 기원한다. 특히 SCP-987-KO의 변칙성이 한국계 이외의 인원에겐 상당히 약소하게 발휘되는 것을 고려하면 SCP-987-KO의 아키바 방사능이 한국인의 신앙에 바탕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현재 한반도에서 SCP-987-KO에 대한 숭배 문화로 추정할 만한 것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를 해명하는 설득력 있는 가설은 아직까지 제시된 바 없으며, 일본지부 등의 사례를 참고하여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요주의 인물 추적 보고: POI-0814는 중정 10국 폐지 당일 출근하지 않은 뒤 그 행적이 묘연하다. 단편적인 목격 정보는 일부 보고되었으나 1987년 이후로는 포착된 사례가 전무하다. 정보국은 POI-0814의 연령이 80대를 넘긴 것을 고려할 때 POI-0814가 사망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한민국 경찰로부터 매년 신원불상 사망자 명단을 제공받아 대조하고 있다.

POI-0813은 1979년 중순 이미 행적을 감추어 정보국이 추적해왔는데, 최근 확인된 바에 따르면 그는 위장 신분을 이용해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가장으로 행세한 것으로 보인다. 신분과 자금의 준비에는 중정 간부를 맡았던 POI-0814가 도움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가정은 1991년 충청북도에 사망 호주승계 신고서를 제출한 것이 밝혀졌는데, 실제로 POI-0813의 신원 및 외견 정보와 일치하는 시신으로 장례를 치르고 매장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고령에 의해 POI-0813이 사망했을 개연성은 높다. 그러나 제출된 사망신고서가 위장 신분 명의인 점과, 70년대까지도 이중 생활을 유지하며 한반도 초상사회에 적극 개입해온 인물이 사망 전 10여년 간 아무 활동도 안했을 리 없다는 합리적 의심을 감안할 때 사망을 단언할 수는 없다. 또한 설사 POI-0813이 정말 사망했더라도 이자메아 잔당의 '숨은 장군' 직위는 혈연으로 세습하여 유지한 전례가 많기 때문에 POI-0813의 가정은 계속해서 감시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다.


무속분과 처분에 대하여: 무속분과는 SCP-953 초도 확보를 계기로 한반도 토착 괴생물체 및 심령체의 연구 격리를 담당하는 부서로써 한국사령부 설립과 함께 과학부 산하에 조직되었다. 분야 특성상 전문가를 단기간에 양성할 수 없다는 문제는 이자메아에서 한국 무속학을 연구하던 인원을 상당수 채용하여 극복했고, 한국전쟁 와중 확보한 SCP-987-KO를 통해 상당한 임상적 연구 자료까지 축적하면서 무속분과는 기적학 및 현실성 이론이 완비되지 못했던 50년대 당시 재단 전체에서 가장 선도적인 변칙 연구 부서 중 하나로 발돋음할 수 있었다. 이런 자신감은 1955년 SCP-987-KO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토착신앙 배제 작업을 통해 위협적인 변칙 개체들을 억제할 수 있다는 이론을 발표하고 이에 기반한 프로젝트 「디어사이드」를 발족, 주도하는 행보로 이어졌다.

그러나 프로젝트 디어사이드의 전개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첫 10년 동안 실시된 1차 계획에서 토착 신앙 파괴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지역은 이미 외부적 요인으로 세속화 또는 기독교화 경향이 강했던 곳이었고, 정작 토착 심령체 등의 위협이 강한 일본 등의 지역에선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규약 자체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또한 한국사령부에서도 프로젝트의 성과와 무관하게 SCP-987-KO의 변칙성이 전혀 감소하지 않자 회의적 시각이 점차 확산되었다. 무속분과는 이런 비판에 객관적으로 접근하기보단 부서의 영향력 감소를 더 우려하여 프로젝트 추진에 강경한 주장을 내세웠지만, 1964년 SCP-987-KO의 격리 파기 사건으로 더이상 입장을 고수할 수 없었다. 프로젝트 디어사이드는 2차 계획부터 대폭 축소 시행되었으며, 그나마도 정해진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3년만에 중단되었다. 실제로 재격리 후 연구 결과 1955년 논문은 변수 통제에 실패하여 인위적 숭배 집단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한 것으로 밝혀졌기에 해당 프로젝트는 전제부터 잘못되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1973년 박정희 정부가 재단과의 협력을 중단하고 중앙정보부 제10국을 창설한 것은 위축되었던 무속분과의 입지에 변곡점을 제공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재단이 베트남전에서 모호한 입장을 취한 것과 대북 초상안보 문제에 그리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가져 중정 10국을 만들었는데, 결론적으론 정권에 복무하는 권력기관에 변칙 분야의 권한까지 부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중정 10국은 ICSUT 등지에서 전문 인력을 대대적으로 초빙해 양상방사선과를 조직하는 등 전문적인 변칙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자 하는 한편, 비체계적 변칙 기술을 전승해온 무속인과 도사들 또한 대거 채용하여 이론과 전통 양면에서 빠르게 성취를 내고자 했다. 이 실용적 투트랙 전략은 의외로 큰 효과를 보아 1975년 시점에서 중정 10국은 응용변칙과학 방면에서 같은 시기 한국사령부와 비교해도 크게 뒤쳐지지 않는 성취를 달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엄정인 관리이사관은 중정 10국의 무속 기술력에 대처하기 위해 무속분과를 다시 전면에 세우기로 결정했다.

60년대의 실패 이후 무속분과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 상태였다. 한 쪽은 지난 실패의 원인을 무속변칙이론의 미비에서 찾으며 사령부의 후원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연수를 떠나 이론의 체계화를 도모했고, 나머지 한 쪽은 현장 인력 중심으로 부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엄정인 이사관의 결정이 발표된 후 급거 귀국한 유학파와 대(對) 중정 인력으로 재편된 현장파를 두 축으로 한 무속분과는 70년대 동안 제10국 측의 무속공학 기술을 상대하는 주요 인력으로 활용되었다.

1981년 해산된 중앙정보부 제10국의 무속 기술인을 흡수하는 등 짧은 전성기를 보낸 무속분과는 그러나 1985년 올라시 관리이사관의 결정으로 사실상 해체 상태에 놓였다. 각지에 잔존했던 중정 10국 자산의 회수가 완료되고, 현실성 이론과 귀기공학의 고도화로 무속공학의 가치가 격하되면서 무속분과가 더이상 효용성이 없다 판단한 올라시 이사관은 분과 소속 현장 인력들은 보안부나 기특대 소속으로 재배치하고 연구원들에게는 사표를 제출받으며 분과 폐지 수순을 밟았다. 성융진 박사 등 소수 인원이 자진퇴직을 거부하고 폐지에 반대했지만 올라시 이사관은 업무 배제 조치로 대응했다.

김정회 관리이사관이 부임한 후 무속분과에 대한 업무 배제 지시는 해제되었지만 무속분과는 단순 무속공학 이론 연구와 옛 프로젝트 기록 관리만 담당하는 소분과로 축소된 채 존속되었다. 무속분과에서 일반 과학부로 이첩된 SCP 대상들의 연구가 단기간에 더 나은 성취를 달성한 점, 60년대는 물론 7~80년대에도 무속분과의 비체계적 업무 처리로 각종 문제가 불거졌던 것 등을 고려할 때 현 시점에서 무속분과에 SCP 대상 관리를 맡길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었다.

1981년 재격리 후 SCP-987-KO는 무속분과 성융진 박사 팀과 제02K기지 과학부 최두익 박사 팀이 협력하여 담당하고 있었지만, 1985년의 조치로 무속분과가 배제되면서 이후 최두익 박사 팀이 전담해오고 있다. 무속분과 방식으로 탐구, 기술되었던 사항은 모두 백지에서부터 검토, 재작성되었으며 최신 이론에 기반한 서술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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