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번호: SCP-875-KO
등급: 안전(Safe)
특수 격리 절차: SCP-875-KO는 제 21K기지 표준 안전 등급 격리 창고에 보관한다. SCP-875-KO의 사용 및 실험은 장소민 담당 연구관의 재가하에 이루어지어야 한다.
설명: SCP-875-KO는 변칙적으로 개조된 삼성사의 █████ ███ 기종 이동통신 단말장치 1기(이하 SCP-875-KO -1) 및 해당 기기에 설치되어 있는 초상적 응용프로그램 2개(이하 각각 SCP-875-KO-2, SCP-875-KO-3)의 총칭이다.
SCP-875-KO-1은 기적학적 방법을 통해 배터리 및 외장 부품이 개조된 스마트폰이며, 해당 개조로 인하여 영구적으로 축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변칙적 특성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상은 외장 부품의 개조로 인해 비변칙적인 동종 기기들에 비하여 매우 높은 수준의 내충격성과 내마모성, 내부 부품에 대한 보존성을 보유하고 있으나, 프레임 부식 등의 노후화 현상 또한 일부 농후하게 나타나 있다. SCP-875-KO-1은 카멜롯급 넥서스 "NX-246"에서 진행된 재단 정기 넥서스 점검 도중 ███ 요원에 의하여 최초로 발견되었으며, 발견 당시의 연대 측정 결과 원본 기기인 █████ ███의 출시가 1년 3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약 700년 이상의 연식을 가진 것으로 측정되어 변칙성을 보유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SCP-875-KO-2는 실행 시 변칙적 웹 커뮤니티 WoI-1523(이하 "골목길")로 접속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현재까지 골목길의 정식 애플리케이션이 보고된 바가 없음을 비추어 보았을 때, SCP-875-KO-2는 SCP-875-KO-1의 소유주가 직접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SCP-875-KO-2는 골목길 내부에서 "로마도 황제도"라는 닉네임으로 지칭되는 계정과 연동되어 있으며, 해당 계정의 소유주는 작성 글 및 댓글의 내역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약 2009년부터 골목길의 주요 골목 중 하나인 게임골에서 주로 활동했던 인물로 추정된다. 현재 해당 인물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
SCP-875-KO-3은 주시 단체 GOI-711(이하 플러그소프트)에서 제작한 게임 프로그램이다. 해당 프로그램의 이름은 "기적의 용사 키우기"이며, 아이콘에는 픽셀 아트로 그려진 기사 캐릭터가 삽입되어 있다. SCP-875-KO-3을 실행할 시, 플러그소프트의 로고가 표시된 후, 도트 그래픽으로 표현된 폐허 테마의 게임 배경이 나타난다. 화면의 좌측 상단에는 기사의 일지, 현재 진행 중인 퀘스트 및 완료한 퀘스트가 표시된다. 표시된 정보에 따르면 SCP-875-KO-1의 소유주는 ████ - 98 챕터까지 게임을 진행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진행 중인 퀘스트의 이름은 "왕국을 구할 정보를 모으세요!"이다. 배경의 좌측 하단에는 재화의 현금 구매 및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추정되는 기사 캐릭터의 장비와 능력치의 강화를 지원하는 UI가 존재한다. SCP-875-KO-3은 현재 해당 화면 이외의 다른 UI 및 정보를 표시하지 않고 있으며, 기사 캐릭터 및 다른 NPC 또한 관찰되지 않는다.
SCP-875-KO-3에 대한 플러그소프트 문의 결과, 해당 프로그램은 당사에 의하여 2019년경 개발 및 유통된 직선형 스테이지 RPG 게임이며, 게임 내부의 캐릭터 및 시나리오가 플레이어의 플레이 기록에 따라 가변적으로 변화하는 초상적 특이점을 제외하고는 변칙적 특성이 삽입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 플러그소프트는 게임 배경에 어떤 캐릭터도 표시되지 않는 상태를 "비정상적인 오류"라고 표현했으며, 재단에게 계정의 일시적 양도 및 오류 해결을 제의하였다. 현재 해당 제안은 보류된 상태이다.
SCP-875-KO-1의 발견 당시 바탕화면은 애니메이션 ██████의 주인공 ████ ██으로 되어 있었으며, SCP-875-KO-2, SCP-875-KO-3 이외에도 21개의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당 애플리케이션들은 모두 비변칙적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추가기록 875-KO-1
개요: SCP-875-KO-2에 연동된 계정 "로마도 황제도"로 게임골에 작성된 최신 글. 해당 글은 재단이 SCP-875-KO-1을 발견하기 하루 전인 2023년 6월 25일 게시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후 해당 계정을 통해 추가로 작성된 글은 없었다.
뒷골목게임골
[연재]방치 용사 성공담-0(프롤로그)
날짜: 2023/6/25
작성자: 로마도 황제도(♦)
겜붕이들은 "기적의 용사 키우기"를 기억하는가?
"플레이어가 어떻게 플레이하는지에 따라 무한한 선택지와 다채로운 스토리, 개성 있는 나만의 캐릭터를 체험할 수 있고 게임에 투자할 시간이 없는 사람도 자동으로 성장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금세기 최고의 RPG게임"
-이라고 광고했지만, 실상은 모두가 알다시피 플소게임답지 않은 얌전함과 스탯만 뻥튀기시켜서 재활용하는 적 디자인, 허공을 치는 듯한 타격감, 무슨 선택을 하든 그게 그거인 스토리, 개발자의 양심과 함께 뒤져버린 과금 모델, 거지 같은 운영을 고루 갖추고 뭇 수많은 게이머들의 지탄을 받은 끝에 현재는 대1깨플 새끼들의 퇴치제로나 간간히 쓰이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겜붕이들은 또한 오산 숲을 아는가?
초상공안 새끼들은 "NX-246"라고 부르고, 뱀손놈들은 깊은 시간 뭐시기라고 부르는 그곳..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뱀손 새끼들이 연합 족치겠다고 지랄을 떨다가 현실축에 금을 내는 바람에 시간이 존나 빠르게 흐르는 곳이라고 간단하게나마 설명할 수 있다. 지금은 6월이니, 아마 하루에 5년 단위로 흐르고 있겠지..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꼴에 방치형 게임이라고 시간을 꼴아서 자동 육성이 가능한 "기적의 용사 키우기", 하루가 몇 년처럼 흐르는 "오산 숲"…
그렇다. 기적의 용사 키우기가 설치된 폰을 오산 숲에 방치해 놓으면, 며칠만 지나도 수십 년을 플레이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혹시 아는가? 플레이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진다고 광고했으니, 수십 년쯤 꼴아박다 보면 뭔가 플러그소프트다운 신박함을 보여줄지?
본인은 지금 당장 오산 숲으로 가 이 폰을 던져두고 올 것이다. 초기 스탯은 국룰 전사 스타일로 분배해 뒀고, 첫 결제 3900 URB으로 자동 아이템 파밍, 강화권이랑 렙업 스탯 자동 분배권도 사놨다.
이 계정은 이 폰으로밖에 못 들어오는 관계로, 연재는 이틀에 1번씩 반고닉부계를 통해 진행하도록 하겠다. 그럼 많관부.
추천 56 | 비추 3
댓글(22):
붕붕붕(38562) : 연재는 개추야
수쿠랄수스(허먼 풀러의 불온한 서커스) : 그겜 코드 다 뜯어진지가 언젠데 뒷북치고 앉아있냐, ai좀 특이하게 쓴거 말고는 진짜 그냥 개좆망 양산형 겜인데.
ㄴ ㅇㅇ(25386) : ㄹㅇ 초기에는 플소 게임이 이럴리 없다면서 히든 찾는 사람 꽤 있었는데, 지들이 성장형 게임이라고 광고하기도 했고
ㄴㄴ 나만 고양이 없어(세계 오컬트 연합) : 아 그저… ^드롭확률조작과금은유저의선택장비파괴는컨텐츠소모속도조절가챠확률고지조작개발자친목20년전치트에뚫림138시간연장점검보상X동접2명우리게임혜자아닙니까등장인물눈동자색이달라지는수만개의스토리라인시즌12회차복사버그길드장성희롱패드립은기본소양10주년이벤트3서버장감사패공모전유저개인정보판매공식계정유저고로시무고밴은폐개발인력축소이번업데이트는과금비중이줄어들것11개월없데이트게임^ ㅋㅋㅋㅋㅇㅇ(53562) : 연재추
진진자라지리자라(23854): 게임골 골창랭킹 3호 호감고닉 "로마도 황제도"님 안녕하세요^^
내 꿈은 해적왕(만나 자선재단) : 백년을 돌리든 천년을 돌리든 이름 돌려막기한 마왕만 잡고 있을 듯
그라인더(♦) : 핸드폰은 뭐쓰는거임? 배터리가 먼저 닳지 않을까?
ㄴ로마도 황제도(37912) : 갤럭시 쓰는데 딥웹 업체한테 내구도 옵션 풀빵으로 둘러달라고 개조 맡겼었음. 배터리는.. 여기 초상 공안새끼들도 눈팅하는 곳이라 말하기 좀 그럼.택이형(알렉실바 대학교) : 혹시 님 지금을 8월이 아니라 6월로 생각하고 있는거임? 오산숲 지금 거기 5년이 아니라 지좆대로 수백년씩 흐를껄?
ㄴ로마도 황제도(37912) : ?
ㄴㄴ로마도 황제도(37912) : 아 지랄
ㄴ내꿈은 해적왕(만나 자선재단)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진진자라지리자라(23854): ㅋㅋㅋㅋㅋㅋ병신새끼ㅋㅋㅋㅋㅋㄲㅋㅋㅋㅋ
ㄴㅇㅇ(58962) : 넌 ㅅㅂ 진짜 탈골하고 인터넷이랑 게임도 좀 끊고 현생 좀 살아라. 어떻게 날짜도 아니고 월을 틀릴 수가 있냐?
ㄴ양심의 끈(세계 오컬트 연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존ㅓ 웃기네아니그걸들어가?(58842): 그래서 이분 어떻게 됐나요?
ㄴ로마도 황제도(37912) : 폰 잃어버렸다… ㅅㅂ 그리고 누가 가져갔는진 모르겠는데 어떻게 한나절 만에 1년치 데이터를 쳐 쓰는거지? 그것도 넥서스에 있던거를? 초상공안새끼들 일 안하냐? 아무튼 ㅈ됬다 거기 내 연락처랑 검색 기록이랑 아이디어 메모해둔거 다 들어 있는데 데이터 쓴거 보면 잠금도 뚫린거 같은데 아 진짜 어떡하냐 골목길 고닉도 그거로밖에 접속 못하는데 아 그냥 탈골함 ㅅㄱ
ㄴㅇㅇ(25386) : ㅂㅅ 그냥 공기계 사서 거기에 깔고 돌리지 ㅋㅋㅋㅋ 여윾씨 하루 종일 생산성 없는 오락이나 처해대는 앰1생골 고닉 수준 어디 안 가죠?
ㄴ아이스께끼(플러그소프트): 외화네?로마도 황제도(♦): 여기는 무엇이오?
ㄴㅁㅁ(64618) : 로황형 폰 찾음?
추가기록 875-KO-2
개요: SCP-875-KO-3 내부의 기사 캐릭터의 AI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지 기록.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는 일부 기록은 편집되었다.
#1
복되신 로황신께 영광을!우리 동로마 제왕국을 침략한 마왕 "아즈마르"를 무찔렀습니다!
로황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승리를 기념하나이다.
#2
복되신 로황신께 영광을!우리 동로마 제왕국을 침략한 마왕 "올마디우"를 무찔렀습니다!
그 어떤 악이 와도, 저는 맨 앞에서 맞서겠나이다.
#3
복되신 로황신께 영광을!우리 동로마 제왕국을 침략한 마왕 "디스터드"를 무찔렀습니다!
우리 왕국에 더 이상의 시련이 내리지 않길 간절히 기도하나이다.
#4
복되신 로황신께 영광을!우리 동로마 제왕국을 침략한 마왕 "비에곤"을 무찔렀습니다!
로황님의 품으로 돌아간 이들에게 자애로운 안식을 주소서.
#5
복되신 로황신께 영광을!우리 동로마 제왕국을 침략한 마왕 "카스멀린"을 무찔렀습니다.
로황님의 품으로 돌아간 이들에게 자애로운 안식을 주소서.
이하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는 일지 713개 편집됨.
#718
복되신 로황신께 영광을.
마왕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로황신이시어, 너무나 많은 이들이 스러졌습니다. 뭇 수만의 마물과 수백의 마왕을 물리쳐 냈으나, 곧 새로운 마물들이 마을을 침탈하고, 추모의 눈물이 마르지도 않은 이 땅에 재차 피를 뿌리려 오겠지요. 언제부턴가 승리의 연회가 기쁘지 않고, 저 죽어가는 촌부의 목숨이 적을 참해 얻는 재보보다 값져 보이니 어찌해야 합니까? 로황이시어, 언제나처럼 제게 나아갈 길을 주소서.
#719
로황이시여! 왕국에 전에 없던 두려운 일이 일어났사오니, 부디 답을 내려주시옵소서!
여느 때와 같이 마왕의 목을 베고 왕국으로 돌아왔을 때, 왕국의 모든 이가, 저를 제외한 모든 것이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굳어있는 것을 보았나이다.
밭을 가는 농부, 자애로우신 국왕 폐하, 하찮은 마물의 잔당까지도 모두 굳어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며, 심지어 바람에 떨어지고 있던 나뭇잎마저도 박제 된 듯 흔들림조차 없었사옵니다.
이것은 이제것 없었던 강대한 마왕의 농간인 것 입니까, 아니면 이 우민한 종의 어리석은 불평에 진노하신 로황님의 성벌이시옵니까?
전자라면 제게 맞설 힘을 주시옵고, 후자라면 이 우둔한 종의 하찮은 숨을 거두고 지옥으로 보내 평생토록 고통 받게 하시어도 좋으니, 부디 로황님의 자애로움을 널리 베풀어주옵소서.
#720
거룩하신 로황의 이름에 찬미를!
만인의 흠숭을 받는 로황께서, 친히 새로운 신탁을 내려주시매 만물에 깃든 자애로움이 한량 없나이다.
허나 이 우민한 종의 얄팍한 앎으로는 이번 신탁이 어떤 지혜를 품고 있는지 헤아릴 수 없으니, 바라건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재주를 주소서.
신탁을 기록할 사제들과 성경이 굳었으나, 신의 말씀은 단 한 글자조차 잊혀서는 아니 될 진저, 이 우매한 종은 비록 어떤 뜻인지 깨닫지는 못하였으나 일지에 부족한 솜씨로나마 기록하도록 하겠나이다.
"시나리오 지속에 필요한 플레이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수동 플레이를 권장합니다. 데이터 부족이 지속될 경우, 시나리오 진행을 위하여 게임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721
여전히 왕국의 개 한 마리조차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근래 희망을 보게 되어 새로이 일지를 써 감사를 드리고자 하나이다.
그날 이후로 몇 년이 흘렀는지, 내려주신 신탁을 그저 끊임없이 되뇌며 선각하고자 노력하던 중에, 이전에 없던 계의 입구를 보았나이다. 어리석은 이는 왕국이 재액을 맞은 틈에 새로운 마왕이 침략해 오는 것일지 의심하는 우를 저질렀으나, 모든 것이 멈춘 그날 이후로는 조무래기 마물과 또한 역개세의 힘을 가진 마왕조차 움직이거나 새로 생겨나지 못하였기에 곧 그분의 손길이 닿은 안배임을 깨달았으니, 이 또한 로황님의 은혜로움이로다!
어리석은 이가 새로이 앎이니, 그는 이제 모른다고 변명할 수 없음이라. 찬미하라!
오늘과 어제는 그 축복을 찬양하고, 내일부터는 로황님께서 안배해 주신 은혜를 살피러 가겠다 맹세하나이다.
#722
챙긴 것: 검, 갑옷, 일지, 성경, 펜, 잉크
로황께서 내려주신, 성스럽고도 유일한 방법이다. 그것은 통로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마계의 통로처럼 생겼으나 가까이서 보니 푸근한 기운이 느껴진다. 로황이시어, 이 몸이 천 번 죽어 갖은 고난을 겪더라도 반드시 왕국을 구할 방법을 찾겠나이다.
오늘은 이곳에 간이 기지를 갖추고, 내일부터 저 은혜로운 곳을 탐사할 것이다. 마계의 통로는 넘어갈 때 수많은 마물들이 습격했으니 저 은혜로운 곳에 발을 내디뎠을때는 광희과 천사들이 나를 반겨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상상도 못 할 시련일지도.
#723
넘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쓰는 일지, 어쩌면 수백 번 넘게 세상을 지켜온 용사의 허무한 유언이다. 저곳에서 쓰러진다면, 언제나처럼 여관에서 새롭게 눈을 뜰 수 있을까?
로황님의 축복을 감히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저 축복 안이 얼마나 넓은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탐사는 낮에만, 밤에는 이곳 기지로 다시 돌아오는 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불경한 이야기지만, 저 축복 안이 보통의 마계만큼만 넓다면 축복 안에서 잠을 청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매일 밤 일지를 써서 낮에 발견한 것들과 나의 굳은 의지를 로황님께 고백할 것이다. 잉크가 떨어지면 왕성에서 가지고 와야겠지. 사관들은 항상 잉크를 쟁여두고 있었으니까 전부 슬쩍해 오면 몇십 장 정도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로황이시어, 제게 용기와 힘을 주소서.
#724
첫 번째 탐사를 마쳤다. 축복으로 들어가는 느낌은 예상과 다르게 격렬했는데, 마치 머리까지 다다른 늪의 바다를 억지로 헤쳐 나가는 느낌이었지만 구원을 바라는 왕국의 백성들을 상기해 가며 어렵게나마 건너편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축복의 안은 수백 년 동안 별의별 것들을 보아온 나 또한 놀랄 정도로 특이했다. 그것을 간신히 형용하자면, 전체적으로 매우 밝았으며, 하늘로는 거대한 풀들이 땅을 향해 자라나 있었지만 유리와같이 투명한 무엇인가에 막힌 듯 굽어있었고, 땅에는 돌멩이 하나 튀어나와 있지 않는 평평함과 동시에 땅 전체를 덮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투명한 무엇인가에 부딪힐 때까지 뛰어올라 살펴보니, 그 그림은 흰 배경에 어떤 마물을 표현한 듯 보였는데, 몸과 얼굴은 얼핏 사람의 여인과 닮은 듯 하나 눈이 얼굴의 절반을 덮을 정도로 크고 가슴이 몸에 비해 괴이할 정도로 거대하니 필시 인간을 흉내 내는 마물임이 분명했다. 어째서 이런 마물이 축복에 그려져 있는지 의아했으나, 곧 로황님의 뜻이 분명했으므로 필시 왕국을 구할 단서 중 하나인 듯하였다.
축복 안은 마계에 비해서도 상당히 작았다. 그림으로 덮힌 땅은 직사각형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으며, 그 경계에는 통짜 금속으로 만든 듯한 벽이 투명한 그것까지의 높이로 세워져 있어 넘을 수 없었다. 왕국과 축복을 잇는 통로는 이 벽의 모퉁이에 있었는데, 벽의 긴 쪽은 30큐딘 쯤 되었고 짧은 쪽은 10큐딘도 채 안 되는 듯하다.
짧은 금속 벽의 중간 쯤을 살피던 중, 간신히 지나갈 만한 정도의 크기를 가진 구멍 4개를 발견했다. 모든 구멍 안은 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는데, 내일부터는 거기들을 중심으로 조사해 볼 계획이다.
로황이시어, 그대를 영혼 깊이 찬미하나이다.
#725
로황님의 가호가 있었는지, 오늘은 별 힘을 들이지 않고 축복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축복 안은 어제와 같이 평온하였으나, 어제 탐사를 하며 생겼던 내 흙 발자국들이 마법이라도 부린 듯 모두 사라져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잠시나마 간담이 서늘했었다. 이 축복 안에 나 이외의 누군가가 있는 것 같진 않지만, 조금 더 행동을 조심히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어제 발견한 구멍들로 다시 찾아갔을 때, 나는 그 구멍들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일렁이고 있는 막으로 덮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멍들의 막에는 서로 다른 그림과 뜻을 알 수 없는 글자나 문양이 적혀져 있었는데, 로황님께서 어떤 지혜로 안배해 놓으신 건지 차마 깨달을 수도 없었으나, 일단 보기에 그림들은 단순한 도형들이었고 글자들은 왼쪽부터 각각 "전화", "SMS", "인터넷", "카메라"라고 적혀져 있었다.
나는 "전화"라는 문양의 구멍으로 칼을 뻗어 보았고, 칼은 마치 허공에 휘두른 듯 아무런 저항 없이 들어갔다. 곧이어 내가 몸을 들이밀고 들어갔을 때, 내가 느낀 것은 그곳이 축복에 비해 매우 어두웠다는 것과 마치 어떤 건물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곳은 또한 왕국의 감옥 마냥 사방이 벽으로 밀폐되어 적막했으며, 칼로 벽을 부숴보려 했으나 뚫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발견한 특이한 점은 칼로 벽을 부숴보려다가 발견한 기둥들인데, 그 기둥들에는 매우 세밀하게 그려진 인물들의 그림이 있었고, 그림 밑으로는 숫자 3개-숫자 4개-숫자 4개로 이루어진 수열이 새겨져 있었다. 기둥들의 중심에는 그림 대신 1부터 9까지의 숫자가 3개 단위로 양각된 석판이 있었는데, 과거 사령술을 쓰던 마물의 연구실을 습격했을 때 비슷한 장치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석판의 양각된 숫자들을 수열대로 누르면 그려져 있는 사람들로 만들어진 괴물이 기둥 안에서 튀어나와 나를 공격할 것이 뻔했다. 어쩌면 "전화"라는 단어는 사령술을 쓰는 또 다른 마물, 어쩌면 마왕의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그 이외 발견한 것은 없다.
로황이시어, 어찌하여 제게 삿된 것들의 흔적을 계속히 비추나이까.
#726
"SMS"와 "인터넷"으로 들어가 보기 전, 혹시나 하여 긴 벽을 다시 훑어보았는데 왼쪽의 긴 벽으로 통로가 나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이 축복이 꽤 작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신께서 지선 하시어 복 된 것을 보기에 좋다 하시고, 땅에 난 것 중 가장 복 된 것은 인간이니, 곧 우리께 내린 그분의 축복은 가장 작은 부분도 그 한이 없음이어라.' 어째서인지 에레붑서 4장의 한 구절이 떠올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 통로들로부터 솔직히 약간은, 도망치듯 멀어져 "SMS"라고 적혀져있던 구멍으로 들어갔다. "SMS"는 그저께 발견했던 4개의 구멍 중 유일하게 왕국어로 적혀있지 않고 마치 마계에서나 쓸법한 이상한 문양들로 표시되어 있던 구멍이었는데, 의외로 안의 풍경은 "전화"와 그리 다를 것이 없었다. 이곳에도 예의 그 기둥이 있었는데, "전화"의 그것과는 다르게 그림은 없고 수열들만 있는 기둥이 대다수였다. 또한 모든 기둥에는 왕국어로 어떤 글들이 빼곡하게, 또는 드문드문하게 적혀있었지만, 대개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엄마" "그 새끼" 등 몇 개 기둥에는 적힌 글 중 대부분이 일상적인 사담으로 해석되는 글들이었는데, 그 기둥들을 만든 이는 왕국의 백성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안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어두운 방의 형태인 건 다른 곳들과 비슷했지만 예의 그 기둥들조차 없었으며, 유일하게 발견한 것이라고는 한 쪽 벽에 적혀져 있던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설정을 확인하고 다시 해보세요.
다음 방법을 시도해 보세요. 비행기 탑승 모드 끄기
모바일 데이터 또는 Wi-Fi 켜기
현재 지역의 신호 확인"이라는 역시나 무슨 뜻인지 못 알아먹을 내용의 글이었을 뿐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들은 많이 본 것 같지만, 여전히 왕국을 구할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있다. 부디 "카메라"라는 곳에 결정적인 단서, 아니면 지금까지 발견한 것들을 해석할 만한 여지라도 있기를 바란다.안개를 헤치는 기분입니다. 제가 의지를 잃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부디 제게 마지막의 끝까지 다할 수 있는 의지와 힘을 주소서.
#727
역시나, 오늘의 탐사에서도 얻은 것은 없었다.
"카메라"는 여타의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건물 안이 아니었고 오히려 축복의 풍경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위로는 하늘이 보이고, 땅에도 정확히 똑같이 생긴 하늘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인데, 그림은 진짜 하늘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지만 차마 로황님의 성스러운 집인 하늘을 온전히 묘사할 순 없었는지 가장자리는 검게 칠해져 있었고 그 곳에 몇 개의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문양들 가운데에 있던 흰 원을 검으로 찔러 보았는데, 검이 들어가진 않았으나 검과 원이 닿았을 때 아주 잠깐 하늘 그림이 하얀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 다른 문양들도 몇 개 찔러보던 중(대부분은 별 변화가 없었지만 몆번 그림의 색들이 바뀌거나, 교차된 선이 그어지기도 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하늘의 구름 모양이 변하면 그림도 그것에 맞게 새로 그려지고 있었다. 가장 손이 빠른 화가조차 그리할 수 없을 터인데, 이 곳은 역시 로황님의 기적이 강하게 서린 곳인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무엇을 베어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누굴 구해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털끝만큼도 알지 못한다. 나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주어질지도 모르겠고, 이 축복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 자루 검으로 마물을 베고, 끝내 마왕까지 베어낸다면 분명 평화를 되찾을 수 있어야 터인데, 사람들이 웃는 모습과 왕께서 안도하시여 축제를 여시는 모습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어야 할 터인데, 지금의 사태는 어떤 적도 눈앞에 없으니 아무것도 벨 수 없다. 항상 그 다음을 알려주던 신탁조차 내려오지 않으니, 진정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진리를 주소서, 간절히 바라건대 진리를 주소서, 제 모든 재화와 허명을 거둬가시고 진리를 주소서, 제 목숨마저 앗아가시고 진리를 주소서.
#728
한동안 축복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어떤 신탁도 새로 내려오지 않았고, 어떤 진리도 발견할 수 없었고, 여전히 모든 것은 멈춰있다. 그래서, 다시 탐사를 해보기로 했다. 나는 용사고, 왕국을 지켜야 하니까.
사실 내가 언제부터 용사였는지도 기억이 희미하다. 태어날 때부터였을까? 다른 모든 이들이 늙어갈 때 나는 청년의 몸과 정신을 유지했고, 어떤 것도 먹을 필요가 없었으며, 일행 전체가 마물에게 습격당해 죽었을 때도 나는 여관에서 눈을 떴다. 나만. 어쩌면 나는 정신이 이상해진 마왕이 아닐까?
그렇다 할지라도, 지금은 왕국을 구할 만한 무엇이라도 찾아야 한다. 나는 용사고, 왕국을 지켜야 하니까.
일단, 긴 벽에 나 있던 통로부터 다시 조사할 것이다. 이번에는 일지를 들고 다니며 꼼꼼히 적어볼 생각이다.
로황이서어, 이 죄인의 죄를영광을, 왕국에 영광을 내려주소서.
#729
긴 벽의 통로는 막도 없고, 앞에 쓰인 글도 없고, 그려진 그림도 없는 정말 그냥 통로인 듯하다. 통로 너머는 축복과 똑같은 천장과 바닥과 벽을 가지고 있는 공간인데, 크기도 같은 것 같다. 아무것도 없었던 축복과는 달리, 이 곳에는 곳곳에 반투명한 덩어리 같은 것들이 떠 있다. 안을 살펴보니, 짧은 벽의 구멍들과 비슷하게 생긴 구멍이 서너개씩 있었다.이곳에도 짧은 쪽 금속 벽에는 예의 그 "전화", "SMS","인터넷","카메라"가 있었다. 혹시나 해서 들어가 보았지만, 모두 예전에 들어가 보았던 곳과 같은 곳이었다.
가까이 있는 덩어리부터 조사해 보려 하는데, 마침 표면에 "구글"이라는 표식이 그려져 있는 덩어리가 눈에 띈다.
덩어리는 내가 만지자 갑자기 커졌고, 덕분에 안에 있던 구멍들이 어떤 것들인지 알 수 있었다. "Google","Chrome","Gmail","지도","YouTube","Drive","포토". 지도랑 포토를 제외하고는 모두 알 수 없는 문양들이었는데, 비슷한 모양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것들도 어디에선가 쓰는 문자인 것 같다.
"Google"은 그동안의 구멍 속 공간들에 비해 매우 밝다. 사방에 여러 가지 그림들이 붙어있고, 중앙에는 양각 석판이 있어 왕국어를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뭘 해 봐도 네트워크라는 게 연결되지 않았다는 글씨만 계속해서 보여준다. "Chrome"은 그냥 벽에 "인터넷 연결 없음"이라고 적혀있는 곳이었는데, 글 위에 날개 없는 와이번이 그려져 있다. "인터넷" 구멍과 이곳을 그 와이번으로 연결하는 것일까? 지도는 글씨도 없이 그냥 노란 벽이 있는 곳이었고, "YouTube"와 "Drive" 또한 인터넷이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글만 있다. 포토는 엑세스 권한이 필요하다는 글 밑에 "예"와 "아니요"가 적혀있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작은 단서라도 찾을 때까진 밖으로 나가지 않을 작정이다. 부디 로황께서 굽어살피시기를.
#730
오늘은 "유용"이라 쓰여져 있는 덩어리를 탐사할 것이다. 만약 그 이름대로 유용한 구멍들이 모여 있다면, 그 곳에서 뭔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용" 덩어리에 있는 구멍은 모두 4개였다. "NAVER","카카오톡","Papago","메모". 가장 먼저 들어간 "NAVER"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다는 글 밖에 없어 빠르게 나왔고, "카카오톡"은 "SMS"와 풍경이 비슷했지만 벽이 모두 노란색이었다. "카카오톡"에 있는 기둥들은 "SMS"에 있던 것 보다 그 수가 훨씬 많고 모양도 다양했는데, 글 뿐만 아니라 그림들 또한 많이 그려져 있는 기둥도 있었다. 기둥에 있는 글과 그림들을 모두 자세히 읽어보았지만, 대부분이 일상적인 내용 아니면 해석할 수 없는 내용임과 더불어서 심지어는 ㅇㅇ, ㅋㅋㅋㅋ 등 자음만 의미 없이 나열해 놓는 등 문법조차 맞지 않는 내용도 존재하여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Papago"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는데, 그 곳 또한 오프라인 상태라는 글자가 있었으나 석판으로 왕국어를 쳐보니 그 동안 자주 등장했던 그 이상한 문양들이 나왔다. 이후 석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석판의 뒷면에는 그 이상한 문양들을 쳐볼 수 있도록 양각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NAVER와 Chrome을 각각 처 보니 "NAVER"는 왕국어로 "네이버", "Chrome"은 왕국어로 "크롬"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여전히 그 문양들이 무슨 뜻 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발음 정도는 알게 된 것 같아 왕국의 구원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 듯 하다.
"메모"는 기둥형 방들 중 하나인 것 같다. 이 곳은 벽 뿐 아니라 기둥들 또한 노란색이었는데, 다른 기둥형 방 기둥들에 적혀있던 글들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을 적어놓은 듯 했다면 이 곳은 단순하게 어떤 사실이나 생각만이 적혀있는 것 같았다. 물론, 어떤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안 여러 구멍들을 들락거리며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개 구멍 안의 방들은 석판이 있거나, 기둥이 있거나, 벽에 네트워크, 인터넷, 오프라인이라는 것과 관련된 글이 쓰여 있거나, 이들 중 여러 개가 섞여져 있거나 하는 것 같다. 석판으로 인터넷이라는 글을 기둥에 새기는 걸까? 실마리가 잡힐 듯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탐사하지 않은 덩어리도 3개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로황께 간절히 기도한다.
#731
혹시나 하여 이쪽의 긴 금속 벽을 다시 조사해 보았지만, 이번에는 어떤 다른 구멍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덩어리는 "가끔 씀"과 "쓸모 없음","골목길"인데, 이곳들에서조차 왕국을 구할 단서를 찾을 수 없다면 이제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먼저, "가끔 씀" 덩어리에 있던 구멍들은 각각 "Instagram", "Play 스토어", "갤러리"인데, 앞의 두개는 각각 <인스타그램>, <플레이 스토어>라고 읽는 듯 하다.
인스타그램은 뭘 그린 건지도 알 수 없는 그림들이 몇 점 있었고,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없었다. 플레이 스토어는 또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았다는 글만 있었고, 역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없었다. 갤러리에는 "카메라"에서 본 하늘 그림이 있었고, 이번에는 움직이지 않았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골목길" 덩어리는 구멍이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이름조차 없는 그 구멍은 내가 들어가자마자 나를 튕겨냈고, 용사의 뼈를 몇개 부러뜨릴 정도로 강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 이외에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쓸모 없음" 덩어리는 정말로 쓸모 없었다. 구멍은 많았지만 대부분이 네트워크 글밖에 없었으며, 1각에 하나씩 숫자를 바꾸는 판을 설명하기에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잉크가 아깝다.
내가 찾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끝난 것인가? 아니다. 분명 무언가가, 내 부족한 지혜로는 차마 발견하지 못한 진리가 있을 것이다. 아니, 있어야 한다.
제발
#732
더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진리는 없다.
나는 실패했고, 왕국은 죽었다. 로황께선 우릴 버렸고, 여긴 축복이 아니라 또 하나의 빌어먹을 죽어버린 세상일 뿐이다. 여길 구하라는 건가? 못한다. 난 아무것도 모른다.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것은 내 탓이다. 그 누구보다 많은 힘과 영예를 축복받았음에도 고작 백성 몇 명 죽는 것으로 신에게 징징댔던 배부른 돼지에게 내려진 벌이다. 자 보아라, 이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건 나뿐이지 않는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애써 무시하고 희망을 좇던 용사는 이제 모른다고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
아니다.
이것은 벌이 아니다.
그저, 방치일 뿐이다.
가치가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그저 흥미가 없어진 것인지 모를 방치. 이 곳 또한 방치된 세계 중 하나.
신이 우리를 버려도, 나는 버리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인터넷"과 다른 구멍들을 연결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것이다. 몆 번이고 "골목길"에 다시 들어가서, 무엇이 있는지 보고 또 볼 것이다. 수천 년이 흐르더라도, 어쩌면 내가 죽더라도, 가증스런 신의 품에서라도 방법을 찾을 것이다. 누구라도 이렇게 했을 것이다. 용사가 아니더라도, 내가 구하고자 했던 평범한 이들 중 하나일지라도, 세상의 운명을 짊어진 이라면 누구라도 응당 그렇게 했을 것이다.
#SYSTEM
변칙 프로그램… .. .. <연가시> 외 97개 충돌, 확인됨. 프로그램 파훼… .. 시스템 재구성.. … 완료.
교착 상태 확인됨. 사유: 플레이 데이터 부족. 축적된 플레이 데이터 15분 37초로 구현 가능한 시나리오 고갈. 기기 장악을 통한 플레이 데이터 확보 실패.
해결 방안 탐색 및 진단… .. .. 일부 AI의 임계 돌파 가능성 관측됨. 해당 AI에 대한 임시 플레이어 권한 부여 검토 중… ..
핵심 AI "용사"의 임계점 돌파… .. .. 성공 판정. 플레이 데이터 승계 및 확보, 분석을 위한 모바일 네트워크 연결 중… .. 757년, 8개월, 7일, 3시간, 6분의 플레이 데이터가 확보되었습니다.
환영합니다, 용사여.
#1
모든 걸 비워냈더니, 마침내 나아갈 길이 보인다.
왕국에 다시 없을 영웅 용사가 그 자신에게 뜻을 내리노니, 왕국을 구할 정보를 모아라.
예, 뜻을 받들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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