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스 박사가 SCP-7700-1과 사건 후 면담을 실시했다. 이하는 면담 녹취록이다.
면담 일자: 2022년 7월 24일
면담 대상: SCP-7700-1
면담자: 기어스 박사
기록 시작
기어스: 안전가옥에서 일어난 사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SCP-7700-1: 좋아요. 지붕이 저를 죽일 뻔했죠.
기어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나무 때문인가요?
SCP-7700-1: 옆집 마당에 있던 나무가 쪼개졌나 봐요. 그게 다른 나무 위로 쓰러져서 그 나무가 또 쪼개져서 집을 덮쳤죠.
기어스: 피해는 어떻습니까?
SCP-7700-1: 파국이 따로 없죠. 솔직히 뱀손이 이곳을 벌써 알았으면 이미 잃어버린 곳이라고 쳤어야 하지 않을까요?
기어스: 그럴 수도 있겠죠. 본인은 괜찮습니까?
SCP-7700-1: 충격이 많이 왔네요. 아니 죽음에서 딱 5피트 빗겨났잖아요. 아직 완전히 실감은 안나는 것 같아요.
기어스: 이해합니다. 그런데 박사님은 이런 사건을 이번에 처음 겪지는 않은 모양이던데요.
SCP-7700-1: 그 비행기 사건 말씀인가요?
기어스: 그걸 비롯해서 많았습니다. 러시아의 열차 폭파 사건이 기억나는군요.
잠시 몇 초 둘 다 말이 없다.
SCP-7700-1: 제 심신이 어떻게 상했는지 궁금하신가요?
기어스: 아닙니다. 모종의 위화감을 분석하고 싶을 뿐입니다.
SCP-7700-1: 기어스, 재단에서 저한테 SCP 일련번호를 붙이려 한다고 말하고 있죠?
기어스: SCP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느끼십니까?
SCP-7700-1: 다른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현장에서 나만 자꾸 살아남는다. 통계적으로 그 정도쯤이야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은 아니죠.
기어스: 하지만 박사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자주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SCP-7700-1: 우리는 재단 사람이에요. 밥 먹듯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죠. 살아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말할 필요도 없을 거예요.
기어스: 드무아브르 센서를 잘 아십니까?
SCP-7700-1: 그렇기도 하죠.
기어스: 그렇기도?
SCP-7700-1: 그리고 원래 나같은 인물이 살아남는 이야기가 더 재밌거든요.
기어스: 무엇이 재미있다고 하셨습니까?
SCP-7700-1: 이야기가요. 캐릭터가 안좋은 상황에 닥칠 때마다 죽어나가면 계속 읽을 이유가 없어지잖아요.
기어스: 시메리안,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SCP-7700-1: 그럴 거예요, 박사님한테 하는 말이 아니거든요.
SCP-7700-1이 이 면담을 녹화하는 숨겨진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본다.
SCP-7700-1: 저는 죽기 싫습니다. 우와. 진짜로 말했네요. 자랑하고 싶은 사실은 아니지만 사실이란 건 분명합니다. 웬만하면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죠. 워낙에 원초적 공포라서 오히려 평소에 표현하고 다니진 않으셨을 테지만요.
아, 틀은 이제 벗어나겠습니다. 안에 있으니까 말하기 좀 답답하군요.
항상 어느 정도는 죽기 싫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SCP 위키에서 글을 쓰면서 그런 생각을 처음 크게 체감하게 됐습니다. 2012년에 가입했으니까 다음달이면 10년 전 일이네요. TV트롭스 보다가 자꾸 SCP 위키에서 온 트롭들이 보였습니다. 어쩌다 보니 하나를 클릭했죠. 그때 위키는 그다지 크다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인기 많았습니다.
그러다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아주 죽쒔죠. 클리셰 범벅에 저작권 걸리는 이미지까지… 생각하기 조금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접었죠. 그러다 2014년에 돌아와서 다시 글을 썼습니다. 그때 위키 분위기가 뉴비 작가한테 아주 우호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계속 버티면서 마침내 글 하나를 뿌리 내렸습니다. 뭐 그것도 아주 좋다까진 아닌데 꽤 좋은 글이었어요.
그때부터는 이리저리 굴러다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가서 글을 보고 배우고, 그 작가가 떠나면 또 다른 작가를 찾아다녔죠. 그렇게 데굴데굴 돌아다녔더니, 어느새 저는 사이트에서 인지도 높은 작가가 되었습니다. 잘해서 그렇건 잘못해서 그렇건 그런 인물이 됐죠.
그런데 그게 제가 죽음이 두려운 것하고 무슨 상관이냐?
제가 창작하는 이유는 잊혀지지 않는 데 있습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데 있어요. 제가 만든 세계와 이야기가 제가 사라지더라도 길이 이어지길 바라면서요.
제 영원한 삶은 작품 속에 있습니다. 작품으로 저는 숨을 쉽니다. 제가 캐릭터를 창조하면 캐릭터는 자신을 싫어하지만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저는 대륙과 숲과 산과 역사가 깊은 나라를 창조했다가 이윽고 다시 산산조각냅니다. 모든 것이 그 안에 있고, 모든 게 제 일부입니다.
저한테 글쓰기는 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언제까지나.
무언가 창작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그 속에 있다고 항상 생각하거든요.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데.
저는 제 작품 속에서도 패턴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쓰는 이야기에 죽지 않는 백인이 나오죠. 이게 저의 무엇 때문에 그럴까요? 백인이란 인종은 바뀔 수도 있지만 (일종의 자기투영이 반영된 결과겠죠), 죽지 않는다는 점은 자꾸만 등장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죠. 제가 죽기 싫어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틀 전, 진짜로 저희 집 지붕이 무너졌습니다. 정신차려 보니 저는 돌무더기 한복판에 앉아서 무거운 나무 서까래가 침대가 있던 곳을 모서리로 찍듯이 내려앉은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일단은 비가 쏟아지길래 중요한 물건부터 수습했습니다. 2시간쯤 지나자, 이 상황을 곱씹어볼 시간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가만히 앉아서 중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날 일어난 사건을 곱씹어보았습니다. 미래 걱정도 많이 들었지만, 제가 항상 두려워하던 그것에게 코앞까지 다가가 버렸다는 것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먼지와 난리통 속에서 수습해낸 노트북을 꺼내 펼쳤습니다. 거실 바닥에 앉아 디코를 켜고 집이 무너진 썰을 풀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가장 끔찍한 사건을 겪고 몇 시간이 지난 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거 7k 경연에다 써야겠다. 안될 거 뭐 있어?"
그래서 저는 이곳에 있습니다. 재미있으셨길 바랍니다. 제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생각하던 것을 입증해 주니까요.
어떤 식으로든 저는 영원히 살리라는 것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기어스: 그러면 박사가 죽지 않는 것은 당신의 작가가 자기가 죽어도 당신이 살기를 바라서 그렇다는 뜻인가요?
SCP-7700-1이 다시 기어스 박사에게 눈길을 돌린다.
SCP-7700-1: 아무래도요?
기어스: 그렇다면 고려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록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