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755-KO
평가: +38+x

ObsP-322K에서 SCiPNET 접속 감지됨

보안 인가: ERROR:SECURITY_IDENTIFICATION_DRIVE_MISSING

일자: 2030-09-28

여기가 무슨 용도로 존재하는 장소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처음에는 생존주의자가 건설한 벙커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이 단말기는 완전 처음 보는 인트라넷에 접속하는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다. 서버 상태는 매우 나쁘다. 따로 관리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원래는 나 같은 민간인이 함부로 접속할 수 없어야 정상이었던 듯 하다. 다른 사용자와 연락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적는 용도로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미래는 내가 여기 있는 기기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 같다. 솔직히 걔가 맞을지도 모른다. 여기 처음 접속했을 때의 경고문도 그렇고, 뭔가 험악한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곳곳에서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다. 더군다나 내 손이 이렇게 된 이후로 펜으로 글을 쓰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니까.

아무튼 이 은신처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고,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양의 물자도 저장되어 있으니까 살아남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이 악몽이 끝날때까지는 우리 목숨이 붙어 있었으면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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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P-755-KO-A의 신체 변형을 묘사한 이미지

일련번호: SCP-755-KO

등급: 아폴리온(Apollyon)무효화(Neutralized)

특수 격리 절차: SCP-755-KO는 2032-11-23 현재 무효화되었다. 더 이상 SCP-755-KO-A/B 개체의 발생 사례는 보고되지 않고 있으며, 만약 사망하지 않았다면 유이하게 남아있는 SCP-755-KO-A 개체인 A-ap145와 A-mt990은 재단 및 인류 문명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을 확률이 높다.

설명: SCP-755-KO는 급격한 신체 변형 현상 및 그와 연관된 밈적 현상을 지칭한다. 대상의 발생은 2030-01-12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그 직후 전세계에서 보고되었다. SCP-755-KO의 영향을 받은 사람1이 주로 사용하는 손의 바닥에서는 키틴질의 흑색 가시가 돋아나 검지와 엄지 사이로 뻗어나간다. 돋아난 가시의 길이는 사람에 따라 편차가 있으나, 평균적으로 20cm 정도를 전후한다. 이 가시의 경도, 강도는 극도로 높아서 부러지거나 휘어지는 등 모양이 변형되기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ObsP-322K에서 SCiPNET 접속 감지됨

보안 인가: ERROR:SECURITY_IDENTIFICATION_DRIVE_MISSING

일자: 2031-01-02

말하는 법은 여전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 벙커에 틀어박혀 있던 지난 3개월 동안 그 능력을 되찾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짜증이 난다. 문제는 미래도 마찬가지라는 거지. 이 벙커에는 두 사람밖에 없는데, 그 두 사람이 서로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서로 최대한 마주치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암묵적으로 합의한 상태다.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은 아니다. 이 가시가 돋아난 이후로 내 정신을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멋대로 헤집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 귀신인지, 기생충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무언가는 내 목과 입을 움직여서 말을 입 밖으로 내는 법을 내 머리에서 지우고, 그 빈 자리를 가시에 대한 것으로 채우려고 한다. 미래와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나도 모르게 입보다 가시가 더 효율적인 의사소통 기관이라고 의식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게 몇 번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어쩌면 진짜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벙커에 들어오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가시를 움직여서 어떤 의미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을 본 적 있다. 어디서 배우거나 한 적이 없는데도, 손에 가시가 돋아난 사람들은 전부 그런 제스처가 무엇을 뜻하는 지 정확하게 이해한다. 나와 미래도 마찬가지고.

문제는 그 제스처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험악하다는 거. 어쩌면 내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영향을 준 것일지도. 고통스럽지만, 하나하나 분석해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만에 하나 이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SCP-755-KO-A에게는 신체 변형뿐 아니라 정신적인 변성도 발생한다. SCP-755-KO-A는 가시가 돋아나고 나서 1분 내로 성대를 통한 의사소통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수화나 필담 등 다른 신체기관 및 도구를 이용한 소통은 그 이후에도 여전히 가능하나, 성대와 구강을 통해 음운을 조음하는 방법을 대상의 뇌가 완전히 망각하게 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의사소통 상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손에 돋아난 가시를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임으로서 의사를 전달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이 SCP-755-KO-A 개체들 대부분에게서 관찰되었다.

ObsP-322K에서 SCiPNET 접속 감지됨

보안 인가: ERROR:SECURITY_IDENTIFICATION_DRIVE_MISSING

일자: 2031-03-11

발화와 단순한 휘두르기를 구분하는 기준은 '찌르는 것'이다.

ObsP-322K에서 SCiPNET 접속 감지됨

보안 인가: ERROR:SECURITY_IDENTIFICATION_DRIVE_MISSING

일자: 2031-05-02

핵심 규칙을 깨달았다. 이 가시를 손에 쥐고 상대를 향해 정면으로 겨누었을 때를 기준으로,

0° = "뒤져"

위로 올리면,

45° = "지랄하지 마"
75° = "좆 같은 새끼"
90° = "저리 꺼져"

아래로 내리면,

-60° = "귀찮게 굴지 마"
-90° = "이리 내"

등등.

SCP-755-KO-A 개체들은 대체로 극도로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며, 이는 높은 확률로 주변 사람이나 다른 개체들의 부상 및 사망으로 이어진다. SCP-755-KO-A 개체들은 자신의 손에 돋아난 가시를 마치 단검처럼 쥐고 상대를 찌르는 방식으로 공격하며, 비변칙적인 냉병기와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개체의 공격은 고도로 훈련된 인원도 방어할 수 없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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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 인가: ERROR:SECURITY_IDENTIFICATION_DRIVE_MISSING

일자: 2031-06-11

도시 전역의 CCTV 수천 대가 이 벙커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이제야 발견했다. 이제 바깥 상황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소통이 없었지만, 미래를 불러서 폐쇄회로를 통해 전달된 영상을 같이 보기로 했다.

우리처럼 손에 가시가 돋아난 사람들 뿐이다. 모두 가시를 단 한 가지 용도로 쓰고 있다.

가시로 타인을 죽인 사람은 사라졌다. 처음에는 소멸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투명해진 것 뿐이다. 아무것도 없는 광장에서 가슴에 구멍이 나 죽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이나 다른 SCP-755-KO-A 개체를 가시로 찔러 살해한 개체에게는 다시 변형이 발생해, 인간의 감각 기관 및 기타 비변칙 장치들에 감지되지 않는 f급 비존재 사념체로 변화한다. 이렇게 변형된 개체3는 여전히 현실의 물리 법칙을 따르나, 다른 비존재 사념체가 아닌 현실 세계의 존재에는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SCP-755-KO-A의 공격 대상이 되지 않고, 행여나 공격당하더라도 공격한 개체의 가시가 대상을 그대로 통과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SCP-755-KO-B 개체들 역시 변형 이전의 개체들과 비슷한 수준의 폭력성을 보일 뿐 아니라 비존재 사념체로서의 이점 역시 가지고 있으므로 주변의 비변칙 생물체들 및 다른 SCP-755-KO-A 개체들에게 극도로 위험한 존재가 된다.

ObsP-322K에서 SCiPNET 접속 감지됨

보안 인가: ERROR:SECURITY_IDENTIFICATION_DRIVE_MISSING

일자: 2031-06-13

학살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자신의 공격성을 억누르려고 무진 애를 쓰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려고 하고, 눈 앞에 다른 사람이 보일 때마다 눈을 감고 이를 악무는 식으로 버티곤 한다. 보통은 끝까지 참지 못한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죽거나. 그렇게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딱히 살인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죽기 싫어서 다른 사람을 죽이고 모습을 감추는 사람들도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고민이나 갈등도 없이 그냥 죽이고 사라졌다. 시체와 시체를 만드려는 사람들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말에 가시가 돋쳤다고 했지. 이제는 가시가 말이다.

비유가 실체를 얻어 수십만 명을 죽였다. 그리고 수십만 명을 또 죽이고 있다.

추신. 미래가 우울해하고 있다. 내가 보여준 영상 때문에 나를 원망하고 있는 것 같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억울하다.

부록 1: SCP-755-KO의 격리 현황 및 피해 개요

SCP-755-KO는 완전한 격리가 불가능하다. 재단 정보국에서 독자적으로 계산한 바에 따르면, SCP-755-KO-A 개체의 수는 하루에 수십만 명 씩 증가하고 있다. SCP-755-KO-B 개체의 수는 대상의 특성상 집계가 거의 불가능하나, 재단이 추정한 바에 따르면 2031-05-03 현재 7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SCP-755-KO 감염 개체가 급속도로 증가한 결과, 전 세계에서 SCP-755-KO의 변칙 현상에 의한 희생자가 연간 수천만 명 이상 발생하고 있다. 급격한 인구 감소는 민간 사회와 국가 뿐 아니라 재단의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어 있는 대부분의 초상 단체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현재 재단은 대상의 격리보다는 상황이 안정화되기 전까지 재단이 이 사태로 인해 받을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인구 감소 추세가 완화되지 않을 경우, 늦어도 2037년에는 지구상의 인류가 절멸하게 되어 GH-0 "죽은 온실" 시나리오가 발생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록 2: 개체 A-ap145의 SCiPNET 접속

SCP-755-KO의 급속한 확산은 재단의 활동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대상의 확산 초기에 각 지부에서 전달된 보고 내용에 따르면, 각 관측소 및 보안 시설에서 보유 중이던 변칙 대응 자산의 핵심 운용 인력들이 살해당하거나 SCP-755-KO에 감염된 결과 그 중 70% 이상이 효력을 상실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재단의 SCiPNET 네트워크로, 유지보수 인원이 전멸해 사실상 평상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네트워크 관리 AI의 도움으로 서버의 붕괴는 면했으나, 네트워크의 보안 유지를 위한 인적자원이 사라져 비허가 인원이 SCiPNET에 접속하는 것을 막는 것이 불가능했다.

2030-09-26에 두 SCP-755-KO-A 개체, A-ap145와 A-mt990이 대한민국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제322K관측소에 침입한 것이 시설 내 보안 장치에 감지되었다. 이 두 개체는 각각 20대 아시아계 남성과 여성으로, 다른 개체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해당 시설로 도피한 것으로 보인다. 이틀 뒤 개체 A-ap145가 시설 내의 SCiPNET 단말기를 작동시켜 데이터베이스에 무단으로 접속하였으나, 재단의 당시 상태로는 이를 차단하거나 대상을 체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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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2032-06-11

물자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가만히 있으면 길어봤자 세 달이 한계다.

이 인트라넷을 사용하다가 근방에 존재하는 다른 비슷한 벙커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유령들이 주변에 도사리고 있을 테지만, 운이 좋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떠나지 않으면 무조건 죽을 테니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미래다. 걔는 내 계획에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였다. 작년에 받은 충격이 여전히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차라리 여기서 굶어죽겠다고 했다. 작년 1월 이후로 이렇게 답답하고 화가 나는 건 처음이다. 미래가 이 이상 내 발목을 붙잡지 않는다면 좋으련만.

ObsP-322K에서 SCiPNET 접속 감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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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2032-07-13

물은 아직 괜찮다. 문제는 식량이다.

미래는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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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2032-08-30

미래가 자기 방 문을 잠갔다.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견고한 문은 아니니 부수고 들어가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잘못이다.

오늘 먹을 것이 다 떨어졌다. 더는 미래의 마음이 바뀌기를 기다릴 수가 없어서 죽기 싫으면 따라오라고 했다. 평소에 하던 것처럼 글이나 다른 방식이 아니고, 가시로. 걔는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도망쳤다. 나는 미래가 걸어잠근 문을 걷어차며 소리를 질렀다. 방 안에서는 약하게 흐느끼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일도 달라진 게 없다면 난 미래를 두고 갈 것이다. 걔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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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2032-08-31

계획을 수정해야겠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미래의 발소리였다. 비몽사몽하는 와중이었지만 갑자기 그녀 손에 나 있던 가시가 유별나게 길었던 것이 떠올라 겁이 났다. 문을 잠갔다. 미래는 몇 번 문을 두드렸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 옆에서 기다렸다. 혹시라도 문이 부서지면 들어올 때를 노릴 생각이었다. 미래는 몇 마디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더니 울면서 물러났다.

예전에 이 벙커에 있는 건 두 사람 뿐인데, 그 두 사람이 서로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었지. 이제는 서로를 죽이려 하고 있다.

이러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죽기 싫다.

혹시 잊어버릴 때를 대비해서,

0° = "뒤져"

ObsP-322K에서 SCiPNET 접속 감지됨

보안 인가: ERROR:SECURITY_IDENTIFICATION_DRIVE_MISSING

일자: 2032-09-01

저 바깥에서 찔려 죽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들의 얼굴에 미래의 얼굴이…… 내 얼굴이 겹쳐 보였다.

정말 멍청한 짓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어쩌면……

ObsP-322K에서 SCiPNET 접속 감지됨

보안 인가: ERROR:SECURITY_IDENTIFICATION_DRIVE_MISSING

일자: 2032-09-01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나 말고는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만약 있다면…… 행운을 빌어달라. 나를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동이 트고 있다.

부록 3: SCP-755-KO의 무효화

2032-09-01에 아직까지 남아있던 SCP-755-KO-A 개체들의 손에서 가시가 떨어져 나갔다. 동시에 해당 개체들이 영향받고 있던 밈적 현상이 사라져 다시 의사소통 능력이 회복되고 공격성이 완화되었다. O5 평의회는 이튿날 SCP-755-KO로 인한 비상사태가 종식되었음을 선언하고 살아남은 모든 시설에 재단이 입은 피해의 복구 및 변칙 존재들의 재격리를 명령했다.

일주일 뒤인 2032-09-09에 그동안 감지되지 않던 SCP-755-KO-B 개체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전부 사망한 상태였으며, 성대 부분에서 비슷한 형태의 가시들이 돋아나 경동맥을 비롯한 목의 중요 부위들을 손상시킨 것이 주된 사인으로 드러났다. 현재 집계된 해당 개체들의 시신 수는 10억 구 이상이나, 일반적인 시체들처럼 부패하지 않고 말단부부터 서서히 소멸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대량의 시체가 발생했을 경우 생기는 문제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2032-09-27에 SCiPNET이 원상복구되었다. 보안 시스템이 재설치된 이후 개체 A-ap145의 SCiPNET 접속을 계속 허용할 것인지에 대하여 담당자들 간에 긴 의견 대립이 있었으나, 결국 해당 개체의 접속을 차단하고 제322K관측소에 현장 요원들을 파견해 개체 A-ap145 및 개체 A-mt990을 생포 또는 사살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애초에 해당 개체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이 둘이 이미 사망했거나 다른 시설 근방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게 요원들의 예측이었으나, 해당 관측소에 진입한 요원들은 두 개체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이후에도 근방의 다른 관측소에서 그 모습이 발견되지 않았다.

사흘 뒤 관측소의 기능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개체 A-ap145가 종이에 펜으로 적은 마지막 기록이 회수되었다.

마지막 기록이다. 원래는 늘 하던 것처럼 인트라넷에 입력하려고 했는데, 허가되지 않은 접근이라며 더 이상 접속할 수가 없게 되었다. 덕분에 몇 년 만인지 종이에 손으로 글을 쓰고 있다. 기분 좋긴 하지만, 수 년 간 손글씨를 쓰지 않은 사람의 글씨가 그다지 예쁘지 않은 것은 양해 바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마도 또다른 생존자, 높은 확률로 내가 머물렀던 이 벙커의 원래 주인이거나 그 주인의 지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SCP 재단'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그 마지막 새벽 이후로 여기서 일어난 일을 처음으로 알게 되는 사람인 것이다.

나와 미래의 손에서 가시가 떨어져 나간 직후에, 우리 머릿속에서 그 목소리들 역시 사라졌다. 우리는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서로를 의심하는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찾아왔다. 정말 이상하긴 하지만 '그들'이라는 대명사 말고는 그 존재들을 달리 지칭할 방법이 없다.

그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떻게 이 벙커 안으로 들어왔는지 우리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를, 아니 정확히는 나를 칭찬했다는 것 뿐이었다.

전지전능한 신이 아끼는 것은 능력이나 지식이 아니다. 이미 그런 것들은 신에게 무한히 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스스로 신적인 힘을 지녔지만, 동시에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을 숭배하고 우러러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숭상하는 그런 이들을 찾아 까마득히 오랜 시간 동안 온 우주를 떠돌아다니며, 자신들이 만난 지적 생명체들과 그 사회에 하나의 시련을 내렸다. 마치 여왕개미를 찾기 위해 개미굴을 헤집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그 시련을 극복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고, 시련의 종료를 선언했다. 내게 자신들이 한 짓에 대하여 용서를 구했다. 수십억 명을 죽게 만든 행위를 용서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그들은 이 시련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 그 시련의 잔혹함을 용서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만큼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것 말고도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여기에는 다 적을 수 없다. 몇 마디만 더 하고 줄이도록 하겠다.

나는 내일 떠난다. 그들은 미래를 이 여정에 동참시키고 싶다는 내 요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녀가 아니면 나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내 행적에 관심을 가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이 뒤따라가기에는 너무 먼 곳으로 향할 테니 무모한 계획은 세우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당신은 어쩌면 나와 미래가 당신들을 버리고 떠나가는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 남겨 두고 가겠다. 이거면 충분하다.

만에 하나 우리가 겪은 것과 같은 시련이 또 닥치더라도, 그래서 가시 돋친 말이 당신들 문명의 존속에 또다시 절망적인 그림자를 드리우더라도, 단 하나만 기억하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 당신들도 나처럼 극복해낼 수 있다.

가시를 손에 쥐고 상대를 향해 정면으로 겨누었을 때를 기준으로,
위로 올리든 아래로 내리든,

180° =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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