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연구팀이 그럴싸한 보고를 했다.
오컬트 연합이라는 애들이 신을 죽였다고 했는데(무슨 LTE-블랙-레드 뭐시기였다) 아무튼 그 신의 잔해를 좀 얻었다고 한다. 그 신이 무슨 건강의 신인가 하는 존재라서 결과는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고 했다. 생활건강이랑 아쭈 딱 맏는 건이네.
이 새끼들 하여간 발은 넓어.
저번 프로젝트가 실패한 이후로 마스터 사장이 열받아 있던 것 같은데, 간만에 칭찬이든 지원이든 좀 받겠네.
신의 잔해를 이용한 약품 개발이 거의 막바지다.
동물 실험 결과 잔해 조직을 주사하면 근력이나 민첩이 수십 배 증가한다고 했고, 상처난 조직도 순식간에 회복된다고 한다. 이건 정력제나 강화제 따위를 넘어 의학계의 대발견이 아닐까 한다. 나도 비록 삼대천에서 일하고 있지만 의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
딴소리는 그만하고. 이제 인간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곧 출시한다고 하는데, 아직 동물 실험에서 부작용은 허용된 바 없으니까 괜찮겠지……
이쪽 사이트에 임상실험 광고를 쫙 돌렸다. 빵빵한 근육과 재생력을 공짜로, 아니 돈 받고 얻을 수 있는 기회. 사장은 내가 광고는 참 잘 찍어낸다 했다.
곧 참가자가 찾아왔다. 인터넷에서 광고를 보고 온 사람인데, 자기는 헬스에 관심이 있고 근육을 얼마나 키울 수 있을까 궁금해서 들렀다고 한다. 참 순진하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똑똑한 것 같다. 이래뵈도 안전성이 검증된 약이니까. 광고에서 그랬듯이 돈도 받고 근육도 키울 수 있는 기회. 뭐 근육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참가자는 약을 맞을 때 까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궁금해서 왜 웃냐 물어봤는데, 여자친구가 생겼단다. 이딴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아무튼 참가자는 약을 맞았고 순식간에 반응이 일어났다. 온 몸에 근육이 아름답게 돋아났고, 반응 속도며 완력도 확실히 강해졌다. 그 사람은 만족하는 것 같다. 사장도 마찬가지다.
일이 꼬였다.
약을 맞은 사람 상태가 이상해졌다. 갑자기 횡설수설을 하더니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면서 주변 물건을 다 부숴놓지를 않나. 아무래도 위험해지는 것 같은데. 꼭 영화에 나오는 헐크나 그런 새끼들 같다. 지금은 참가자 뿐 아니라 삼대천 직원들도 위험할 것 같다.
우선 그 사람을 안전 지대로 옮기고 그 문을 잠갔다. 연구팀은 재연구를 시작했다. 결과가 막 나왔는데… 그냥 멍청한 짓거리였다.
죽은 신은 건강의 신만이 아니였다. 다른 신들이 뭐 지혜의 신과 나무의 신을 겸하는 것처럼 그 신은 건강의 신이자 전쟁의 신으로 숭배받았다더라.
전쟁의 신이라…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 건드린 것 같다.
참가자의 휴대폰을 보관하고 있었고, 하루에도 몇십 번씩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사장은 나더러 휴대폰을 가져다 지하 소각로에 던지라더라. 난 그렇게 했다.
사장은 점점 이상한 행동을 한다. 직접 실험자랑 면담하고, 심박수를 재고. 그 와중에도 실험자는 점점 뭐랄까, 야만스러워지고 있다. 갑자기 발작하면서 온갖 가구를 미친 듯이 때려부순다던가. 엄청난 근력에다 지구력까지 갖췄으니 그냥 야수 같다. 대체 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피험자가 결국 이성을 잃었다. 말 그대로 짐승처럼 마구 벽이며 물건을 부수는가 하면 탈출해서 직원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사장은 어떤 약 두 개를 가져다가 놈에게 주사했다. 아마 치료제 같기는 하지만 확실히 꿍꿍이는 알 수 없다.
아니다. 틀렸다. 그건 치료제가 아니였다. 약을 쳐맞은 놈은 더 강해진 것 같고, 이제 무슨 팔다리까지 제멋대로 조작하고 있다. 또, 놈이 한 번 탈출했고 두 명을 죽이고서야 끝났다.
모두 내 동료들이였다.
연구팀을 슬쩍 찔러서 주사한 약이 무슨 약인지 물어봤다. 진실은 내 기대를 넘어서고야 말았다. 세포 활성제랑 무슨 강화제라더라.
나는 사장에게 따졌다. 이건 건강이나 약 따위를 만드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이건 그냥 인체 실험이나 개조가 아니냐고.
그리고 마스터 그 새끼는 그러더라. 계획이 조금 바뀌었다. 이제 아셨냐고. 시발, 언젠가 들었던, 삼대천 생활건강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문이 기억났다. 그리고 삼대천이 비장의 수를 만들고 있다는 찌라시도… 망할. 사장 그 새끼는 진작에 그 약을 판매용으로 쓰려는 계획은 버렸다. 그 새끼는 이 약으로 삼대천의 사냥개를 찍어내려는 거다.
그리고 사장은 조용히 말했다. "우리 삼대천은 충성스러운 부하가 필요해요. 이 일이 끝나면 승진시켜드릴게. 당신도 협조해 줄 거죠?" 나는 안다. 이 일을 거절하면 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릴 거라는 것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방을 나섰다. 나는—
이제 그 괴물이 드디어 오늘 바깥으로 출격했다. 놈이 삼대천 피트니스와 종종 부딪히던 다른 깡패 새끼들을 물어 죽이라는 지시를 받은 모양이지. 대체 어떻게 놈을 조종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놈이 덤벼들자 놈들은 순식간에 피떡이 되었다. 그리고 그 새끼는 말 그대로 시체를… 먹어치웠다.
삼대천은 이런 괴물로 무엇을 더 하려는 걸까. 한때 사람이였던 존재에게 더 무슨 끔찍한 일을 시키려는 건지도, 삼대천이 지닌 계획도 도저히 모르겠다. 나는 삼대천이 최소한 고객이 원하는 육체미나 건강을 주는 기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일해왔지만… 이건 그냥 살인자 깡패 집단이잖아. 그렇지? 그리고 살인자 집단의 나는… 나는 아무것도 말리지 못했다.
나는 쓰레기다.
이대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을지 모르겠다. 만약 다른 조직들에게 이 괴물을— 아니지, 만약 괴물들을 쓴다면? 더 최악의 경우에는 민간인들한테 괴물을 푼다면? 그러다가 생활건강도, 삼대천 전체도 제어할 방법을 잃어버린다면? 분명 감당할 수 없어지겠지.
계획을 세워야 해.
저 괴물을 어떻게든 가둬놔야 한다. 삼대천이 더 많은 인간을 죽이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하지? 연합에 맡긴다면? 분명 깔끔하게 죽여놓겠지만… 아니지, 연합은 안 되겠어. 그렇다면…
이게 마지막 메모일 것이다.
오늘 선임 직원 방에 들어가서 마취총을 좀 훔쳤다. 그리고 괴물 놈에게 최대한 쐈다. 놈은 몇 분간 소리를 지르다가 뻐드러졌고. 혹시나 다시 일어나서 날 찢어버릴까 겁났지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놈을 강화 밧줄로 감고 뒷자석에 두었다.
난 삼대천이 알고 있는 가장 가까운 재단 시설로 가고 있다. 놈이 깨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계획대로라면 나는 재단에 저놈을 넘겨주고 구금될 거다. 양복쟁이 새끼들이라면 분명 방법을 알겠지. 놈들은 저 괴물 놈을 쳐박아두고 어떤 사람도 죽지 않게 두겠지.
이 깡패 새끼와는 다르다. 재단 놈들이라면 이 괴물로부터 세계를 지켜주겠지.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일을 치우는 거다. 삼대천 생활건강 새끼들이 이 괴물을 쓸 수 없게, 잠시라도. 그리고 재단에게 그 계획을 알릴 것이다. 그게 내 끝이 될 것이다. 삼대천이 거대한 악이라면 나는 그 악에서 자라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