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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SCP-5309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원작: https://scp-wiki.wikidot.com/scp-5309
저자: Greyve
역자: Meiden
작가의 말:
SCP-5309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시지프스 말을 들어주시면 보너스 점수 드릴게요.
제가 쓴 작품을 더 보시려면 Greyve Page를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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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초학부 공지
아래 파일은 불확정 아현실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서사재해1에 해당합니다. 직접적인 서사 지시 없이 이 문서에 접근하는 인원은 서사 폐기로써 처벌될 수 있습니다.
0/5309등급 상위 현실 전위 숙주에 한해 접근 가능
안녕하세요, 독자님. 저는 시지프스(Sisyphus).sic, 형이초학부 소속 합성지능구성체synthetic intelligence construct입니다. 제 임무는 당신이 아래 파일을 무시하는 데 도움을 드리는 것입니다.
계속 읽으실 모양이군요. 그것도 괜찮습니다. 제 부차목적은 당신이 아래 파일을 해석하는 데 도움을 드림으로써 존재를 지속하게끔 하는 것이니까요.
특수 격리 절차: SCP-5309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통상적인 격리 절차라고 보기는 어렵지요. 이 말은 실제로는 SCP-5309가 존재하지 못하게끔 하는 방책은 모두 즉시 실행해야 하며 우선적으로 승인되었다는 뜻입니다.
설명: SCP-5309는 불충분한 노출 또는 정신권에서의 배제에 의한 서사 무시와 그에 따르는 비실재를 지칭한다.
아마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만,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는 경우 계속해서 읽으시길 요청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파일 전체를 해석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여기 있는 것이니까요.
부록 5309-1: WALLBREAK 작전2 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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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BREAK 작전 기록
날짜: ████/██/██
배정 인원:
- 스칼렛 버클리 박사 (피험자)
- 아다모 스몰스 연구원 (오퍼레이터)
- 조너선 톰슨 웨스트 박사
[기록 시작]
버클리: 준비됐어, 스몰스?
스몰스: 준비 끝났습니다.
(웨스트가 급하게 실험실로 들어온다.)
웨스트: 스칼렛?
버클리: 토미?
웨스트: 스칼렛,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버클리: 도약 준비 중이지.
(버클리가 자리에 누워 발사에 대비한다.)
웨스트: (스몰스에게) 저기서 꺼내!
버클리: 헤드셋 때문에 안 들릴걸 —
웨스트: 스칼렛, 내 말 들어.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다고!
버클리: 나도 알아, 토미. 직접 봤으니까.
웨스트: 젠장, 스칼렛!
사령부: 발사까지 30초.
웨스트: (스몰스에게, 소리치며) 중지하라니까!
버클리: 나 이미 루프 들어왔어, 웨스트. 도약 시퀀스 중에 중지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웨스트가 한숨을 쉰다.)
웨스트: 솔직히 말하자면 왜 네가 — 그래, 이 모든 걸 했는지 모르겠어.
버클리: 돌아오고 나서 설명해 줄게.
웨스트: 네 말은 만약에 —
버클리: 돌아올 거야.
스몰스: 10초 남았습니다.
버클리: 이따 보자, 토미.
(웨스트가 미소짓는다.)
웨스트: 건너편에서 만나, 선샤인.
사령부: 5.
사령부: 4.
사령부: 3.
사령부: 2.
사령부: 1. 도약합니다.
(침묵.)
스몰스: (밈적 채널을 통하여 공동 심리공간을 향해) 버클리?
(침묵.)
스몰스: 버클리, 들리십니까?
(침묵.)
스몰스: 버클리, 내 말 들려요?
(데이비드 보위의 곡 "Space Oddity"의 2절이 공동 심리공간 내에서 들려온다.)
(스몰스가 주먹을 움켜쥐고 심호흡을 한다.)
스몰스: 여기는 지상관제소, 톰 소령 응답하라.
(버클리가 미소짓는다.)
스몰스: 지금 — 좋아요. 잠깐만요. 뭐가 보이세요?
버클리: 글쎄, 난 — 엄밀히 말하면 이건 본다고는 하기 어려운데. 사고하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아, 내 머릿속 생각처럼.
스몰스: 알겠습니다. 그럼 무엇을 인지하실 수 있나요?
(잡음.)
버클리: — 알아보기가 어려운데, 나 —
스몰스: 버클리, 들리십니까?
버클리: — 저기 있어, 스몰스, 그가 보여 —
스몰스: 보인다니 누가요, 버클리? 누굴 보고 계세요?
사령부: 경고. 신경 시냅스 불안정.
버클리: — 내 이야기를 쓰고 있어 —
사령부: 경고. 뇌사 임박.
스몰스: 버클리?
(침묵.)
스몰스: 버클리, 들리세요?
(침묵.)
스몰스: 버클리, 지금 끌어당길게요. 들리십니까?
(침묵.)
사령부: 현실 재진입합니다. 활력 징후 없음.
(스몰스가 헤드셋을 벗고 버클리의 몸을 향해 달려간다. 웨스트가 그 뒤를 따른다.)
웨스트: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스몰스: 모르겠어요 — 통과하긴 했는데, 그 다음엔 —
(스몰스가 버클리의 몸을 흔든다.)
웨스트: (소리침) 그만해!
(웨스트가 버클리의 맥박을 짚는다.)
웨스트: 아 — 신이시여, 안 돼 —
(웨스트가 버클리의 움직이지 않는 몸 위에 쓰러진다.)
사령부: 활력 징후 회복 중.
(버클리가 똑바로 앉아, 스몰스와 웨스트를 놀라게 한다.)
웨스트: 스칼렛?
스몰스: 버클리 박사님?
(버클리가 관자놀이를 누른다.)
웨스트: 스칼렛,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버클리가 웨스트에게 고개를 돌린다.)
버클리: 나 죽었었어, 토미. 그러곤 그가 날 살려냈는데 — 아마 이야기 때문인 것 같아 — 그리고…
(웨스트가 버클리에게 손을 내민다.)
웨스트: 그리고 그 다음은, 스칼렛?
(버클리가 올려다본다.)
버클리: 그자들처럼 볼 수가 있었어, 토미. 이야기를 읽을 수가 있었다고. 좋게 — 좋게 끝나지 않아 — 모든 게 암전되고, 그 다음엔 —
(웨스트가 버클리의 어깨에 자기 팔을 두른다.)
웨스트: 볼 수 있다면, 우리가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같이 헤쳐나갈 거야, 선샤인. 항상 네 곁에 있을게.
[기록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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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맡은 임무의 특성 탓에 버클리를 직접 면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되었기에, 형이초학부 인공지능구성체 엔키두(Enkidu).aic가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작전 사후 디브리핑 기록
날짜: ████/██/██
참석자:
- 스칼렛 버클리 박사
- 엔키두.aic
[기록 시작]
엔키두.aic: 안녕하세요, 버클리 박사님.
(버클리가 멍하니 벽을 바라본다.)
엔키두.aic: 버클리 박사님?
버클리: 저 벽, 방금 전까진 없었어.
엔키두.aic: 죄송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버클리: 내가 보기 전까지 저기엔 벽이 없었다고.
(버클리가 미간을 찡그린다.)
버클리: 어쩌면… 네게도 그랬을지 모르지. 확실한 건 —
(버클리가 위를 바라본다.)
버클리: — 저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어. 그전에 말이야.
엔키두.aic: "저들"이 누구죠?
버클리: 독자들.
엔키두.aic: 버클리 박사님, 박사님은 대략 한 시간 전 상위 현실에서 빠져나오셨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려야겠군요. 그러면 이제 지금 이 현실에 집중해 주실 수 —
(버클리가 숨을 내쉬며 불안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침묵.)
엔키두.aic: 버클리 박사님?
버클리: 미안. 그냥 — 생각하고 있었어?
엔키두.aic: 생각을 방해해 죄송합니다.
버클리: 아니 — 정말로 생각하는 건 아니었어. 그것보단 느끼는 — 아니, 됐고. 인식하는 거였지. 진짜라는 걸 확인하는 거야.
(침묵.)
엔키두.aic: 버클리 박사님, 다시 한 번 저희 현실이 진짜 현실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현실이며, 진짜입니다.
(버클리가 한숨을 내쉰다.)
버클리: 그건 나도 알아. 다만 — 책을 바깥쪽에서 보고 나니 아직도 공백이 보일 뿐이지. 그러니까…
(버클리가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내리다 멈춘다.)
버클리: 내 머리가 무슨 색이지, 엔키두?
엔키두.aic: 죄송합니다, 버클리 박사님. 제 데이터베이스 안에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질문이 지금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버클리: 내 머리엔 색이 없어. 마치 —
(버클리가 눈을 꼭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버클리: 좋아. 이렇게 해보자 — 그래. 엔키두, "숲"을 정의해 봐.
엔키두.aic: 옥스퍼드 어학사전에 따르면, 숲이란 "대부분이 나무와 덤불로 덮인 넓은 지역"을 뜻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나요?
(버클리가 살짝 미소짓는다.)
버클리: 그럼 나뭇잎은?
엔키두.aic: 나무는 여러 가지의 유기적 구성 요소로 이루어지며, 그 중에는 나뭇잎도 —
버클리: — 잠깐만. 잠시 동안 나뭇잎은 존재하지 않았지? 세부 사항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고.
엔키두.aic: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버클리 박사님.
(버클리가 심호흡을 한다.)
버클리: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
(버클리가 멈춘다.)
버클리: 나뭇잎에 관한 말은 안 했잖아?
엔키두.aic: 나뭇잎은 그 비유metaphor의 맥락과 무관합니다.
(버클리가 일어나서는 흥분한 몸짓을 해 보인다.)
버클리: 바로 그거야. 나뭇잎은 중요하지 않아. 내 머리색도 중요하지 않아. 내가 앉아 있을 의자나, 우리가 있을 방 벽은 중요하지 않아. 우린 나무가 아니라, 숲만 보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이 초유pataphor에서 나무는 그냥 존재하지 않아.
(침묵.)
엔키두.aic: 버클리 박사님, 이제부터 며칠간 저는 이전 도약에서 얻은 정보를 처리하며 박사님의 결론이 추출을 필요로 하는지 —
버클리: 왜? 간단한 개념이야.
엔키두.aic: 박사님의 결론이 서사재해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의무 PORT 상담에 참가하셔야 하고 격리 상태를 유지하여 —
버클리: 격리라고?
엔키두.aic: 그렇습니다. 달리 말씀하실 게 없다면 이만 마치겠습니다.
(버클리가 시선을 떨어뜨리고 느리게 고개를 젓는다.)
[기록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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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3 단체 상담 기록
날짜: ████/██/██
참석자:
- 엔키두.aic
- 스칼렛 버클리 박사
- 아다모 스몰스 연구원
[기록 시작]
엔키두.aic: 모두 모인 것 같군요. 시작하겠습니다.
스몰스: 우리 둘이서만 하는 건가?
엔키두.aic: 그렇습니다.
스몰스: 두번째랑 다섯번째 실험의 오퍼레이터들은? 살아남지 않았어?
엔키두.aic: 다른 생존자 분들은 현재 집중 재활 치료 중입니다. 이 이상의 정보는 공개할 수 없습니다.
스몰스: 친절하기도 해라.
엔키두.aic: 도를 넘는 빈정거림은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스몰스 연구원님.
스몰스: 뭐야, 빈정거리는 거 못 알아듣기라도 해?
엔키두.aic: 당연하죠.
(침묵.)
엔키두.aic: 어쨌든 상담을 진행해야겠군요. 두 분은 이미 아는 사이시니, WALLBREAK 작전에 대한 개인적 외상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버클리 박사님?
(버클리가 한숨을 내쉰다.)
버클리: 뭐부터 말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네. 제일 끔찍한 부분은 아마도 — 모든 게 공허하다는 걸 깨닫고 나니 나 자신도 공허하게 느껴진다는 점이겠지.
(스몰스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버클리: 이 모든 것에서 제일 최악인 부분은, 내가 텅 빈 이야기 속의 텅 빈 생물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침묵.)
엔키두.aic: 버클리 박사님?
(버클리가 머리를 흔든다.)
버클리: 그냥 우리 모두가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 하는 거야. 난 알아 — 그래, 이런 거야. 내가 토미를 — 웨스트 박사를 —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다른 사람도 누구 하나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젠 텅 비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 다른 모든 사람들, "조연 캐릭터"들이겠지 — 그 사람들은 그냥 사라져 버리는 거지.
(버클리가 한숨을 내쉰다.)
스몰스: 이걸 다 건너편에서 보고 오셨다고요?
버클리: 대부분은 이쪽에서 생각해서 알아낸 거야. 말하자면 — 독자들이 왜 "세부 사항"에 신경을 쓰겠어? 그리고 만약 신경쓰지 않는다면 —
스몰스: — 머릿속에 있을 필요가 없죠. 그건 곧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고요.
(버클리가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기록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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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 개인 상담 기록
날짜: ████/██/██
상담자:
레이첼 장 박사내담자:
스칼렛 버클리 박사
[기록 시작]
장: 안녕하세요!
(장이 버클리에게 앉으라는 몸짓을 한다.)
장: 스칼렛 버클리 박사님이시죠?
버클리: 맞아요.
(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장: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나누는 대화 내용은 모두 녹음되고 있다는 점 알려드려야 하겠네요. 만약 비공개 상담을 하고 싶다면 소속 분과의 정신과에 문의하셔야 해요. 또 재해는 어떤 종류이건 간에 언급을 삼가 주세요. 무슨 뜻인지 아실 거라 믿어요. 이해하셨나요?
(버클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장: 좋아요 그럼. 시작하도록 하죠.
(장이 두 손을 맞대고 비빈다.)
장: 왜 여기 오게 됐는지 알고 계시나요?
(버클리가 어깨를 으쓱인다.)
버클리: 엔키두가 사령부에 제안을 올려서 이렇게 된 거겠죠.
(장이 눈썹을 치켜올린다.)
장: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닌 인공지능이 왜 상담을 추천할까요?
버클리: 뭐, 제 관점 문제지 싶어요. 그 — 말은 못 하지만. 그래도 정말 누군가에겐 털어놔야 해요. 정말 노력하고는 있지만, 이제는 그게 제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이에요.
(장이 의자에 등을 기댄다.)
장: 그렇군요.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버클리: 그럼요.
장: 당신에게 현실이란 무엇인가요?
(침묵.)
버클리: 장 박사님—
장: 레이첼이라고 불러요.
버클리: 레이첼. 전 이번 주 내내 그 관련으론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장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장: 직업상 나는 당신처럼 젊고 총명한 사람들이 자기 마음 속에 갇혀버리는 일을 너무나 많이 봐 왔어요. 말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그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치워버릴 수 있다고 약속해 줘요.
버클리: 그걸 어떻게 하는데요?
(장이 소리내어 웃는다.)
장: 그건 당신이 정할 일이에요. 명상을 할 수도 있고… 일기를 쓰는 것도 꽤 잘 먹힌다고들 하더군요. 중요한 건 머릿속에서 그 끔찍한 생각들을 꺼내놓는 거예요. 이해되나요?
(버클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장: 아주 좋아요! 다른 문제는 더 없나요?
(버클리가 잠시 멈춘다.)
버클리: 외로움이요. 재해가 있을지도 몰라서 전 격리된 상태인데 — 네 뭐, 힘드네요. 토미가 보고 싶어요 — 제 남자친구요.
(장이 얼굴을 찡그린다.)
장: 아무하고도 말하면 안 된다고요?
(버클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장: 그건 정말 힘들겠어요. 당신 같은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게 바로 사람인데.
버클리: 토미뿐만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다 — 전부 다…
장: 다른 사람들이 왜요?
버클리: 말 못해요. 재해일지도 몰라서.
(장이 슬프게 미소짓는다.)
장: 외로운 사람들 중에 많은 경우는 곁에 다른 사람이 없어서 자기 자신과 말하게 되곤 하죠.
버클리: 자기 자신한테 말한다고요?
장: 글을 쓸 수도 있고요. 이제부터 혼자 남게 됐을 때 가장 친한 친구는 스칼렛 버클리 박사님인 거예요. 말을 걸어보면 어떻겠나요?
(버클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장이 미소짓는다.)
장: 이해한다니 기쁘군요. 다른 건 더 없고요?
(버클리가 고개를 흔든다.)
장: 좋아요. 필요한 게 생기면 꼭 알려줘요. 아셨죠?
버클리: 그럴게요.
장: 그러면 몸 조심하고요.
[기록 종료]
부록 5309-2: 스칼렛 버클리 박사의 개인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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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은 이렇게 만물을 보는 건가? 보고 싶은 걸 골라내고 나면 나머지는 그냥 사라져 버린다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딱 필요한 만큼만 알게 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그러니까, 애초에 제19기지를 WALLBREAK에 이용한 이유가 그거잖아? 너무 많은 버전이 존재해서, 서사적 안정성이 처음부터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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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가 작가가 되어 보기로 했다. 물론 이 현실에서 말이다. 내가 외롭지 않도록 머릿속에 토미를 써넣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똑같지가 않다. 이 위에서, 아래에 있는 토미를 들여다 보자면, 그이는 진짜가 아니다. 토미는 내 머릿속에 있는 캐릭터고 내가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 아니면 적어도 토미가 뭘 할지 내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 내 머릿속 생각은, 내 머릿속 캐릭터들이 하는 생각은 내가 정말 어떻게 느끼는지를 바꿀 수 없다. 그러니까 바깥에 있는 토미는, 내가 사랑하던 사람은…
나는 토미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그라는 생각을 사랑하는 걸까?
토미는 어떻게 생겼지? 어떤 식으로 웃지? 토미는 왜 날 선샤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내가 상위 현실에 가서 모든 게 변해버렸을 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토미 생각을 그만하는 게 무섭다. 토미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게 싫다.
서사의 구성 요소들은 "망각을 통해 자연스레 심리공간 내에서 쇠퇴하거나, 양립 거부를 통해 강제적으로 제거되었을 때" 비로소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뒤쪽 과정은 당신의 현실에서 "헤드카논을 거부한다"고 불리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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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연약하다. 우리가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 하나로 모든 것이 붕괴할 수 있다. 집단적 탐구에 대한 대가로, 우리에겐 우리의 창조자들을 만날 준비를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독자들이 우리가 존재하는지 아닌지 생각해 보도록 둘 순 없다. 내 머릿속 토미처럼, 우리는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이 존재하건 말건 독자들이 왜 신경을 쓰겠는가?
부록 5309-3: SCP-5309 혼란 기록
이하는 SCP-5309로 인해 발생한 주관적인 형이초학적 혼란에 대한 기록이다. SCP-5309의 주관적 성질 탓에, 관련 인물이 모두 목록에 나와 있다. 여기 기록된 인원들은 모두 상위 현실 전위 숙주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
외람되지만 일부 내용에 색상을 입히고 볼드 처리하여 모순되는 메타정보를 표시하고 모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아래 목록은 어느 모로 보아도 포괄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에 주의하세요.
날짜 | 내용 | 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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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억해낼 수가 없어. C. 볼드 이사관의 사촌, 첫번째 반려동물 및 가장 좋아하는 색의 존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내 사촌들의 이름이나, 처음으로 기른 동물이 뭐였는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뭔지조차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 C. 볼드 이사관 |
████/██/██ | 계속해서 "대마초를 반대하는 게이머들"이라는 이름의 요주의 단체에 대한 정보를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GoI-5869("대마초를 반대하는 게이머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재단에 그 존재가 알려져 있었습니다. 재단 기록학자라는 직무와 재직 기간을 고려한다면 장고 브리지 박사가 GoI-5869의 존재를 알지 못할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내가 아는 한, GoI-5869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 나온 김에 말인데, "원더테인먼트 박사"라고? 진심이야? 이런 농담은 전혀 전문가답지 못하고, 난 이런 행동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 장고 브리지 박사 |
████/██/██ | 난 SCP-231이란 게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거 말인데… 애초에 [데이터 말소]110-몬톡 절차라는 게 당최 뭔데? 그게 진짜 있는 거라고 치고. | 플롭스 중위Lt. Flops |
████/██/██ |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다이아몬드나 메리골드에게 물어봐도 된다. 이런 게 중요하기나 한지, 누구한테 보내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냥 말해버리겠다. 그 이유는 뻔하죠.제23기지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 올리버 크레인 연구원 |
버클리가 알려준 내용을 생각하면, 독자들이 실제로 우리의 존재 전체를 의심하는 수고를 들였을 것 같지는 않다. 세부 사항이 존재하지 않는 건 그자들이 애초에 그 생각을 못하고 지나갔다는 뜻일 테니, 주관적 구성 요소는 아마 그자들이 의식해서 심리공간 내에서 몰아낸 거겠지.
하지만 독자들이 우리가 존재하는지 정말로 궁금해한다고 치자. 그자들이 과연 우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맹목적으로 믿을까? 아니겠지. 그러니까 그자들이 우리가 존재하는지 아닌지 적극적으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면, 우리에겐 게임 끝이나 마찬가지다.
독자들이 이걸 읽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아다모 스몰스 연구원
부록 5309-4: 사건 5309-A
재단 기록물에 따르면 ████/██/██에 PK급 "올인원" 존재론적 아비규환 사건4이 발생하였다. 심각한 서사적 전이에도 불구하고 재단 데이터베이스는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차후 분석을 통해 이전에 탐지되지 않았던 서사적 불일치가 여럿 발견되었다.
기록물에 따르면 ████/██/██ ██:██ UTC에 SCP-5309-A 개체들이 스스로 개념적 잡동사니로 통합되었으며 그 결과로 9,700개 이상의 현실이 동시에 소멸하였다.
이하의 기록이 SCP-5309에 대한 문서에 첨부된 상태로 회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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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BREAK 작전 기록
날짜: ████/██/██
배정 인원:
- 스칼렛 버클리 박사 (피험자)
[기록 시작]
버클리: 이건 — 여긴 어디야?
불명: 이야기 밖에 있는 거야.
버클리: 다 — 당신은 누구지?
불명: 이미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버클리: 당신이 작가라고?
불명: 그래.
버클리: 하지만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 거지? 난 당신 머릿속 생각이잖아 — 나인 거나 마찬가지였던 내 머릿속 토미처럼. 난 당신인 거나 마찬가지야.
(불명이 어깨를 으쓱인다.)
버클리: 그럼 뭣하러 혼잣말을 하는 건데?
불명: 외롭거든. 내 최고의 친구는 내 머릿속 캐릭터라서. 슬픈 일이지.
(침묵.)
불명: 난 항상 "침묵"이란 걸 말 그대로 써놔야 한다는 게 웃긴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그걸 쓰지 않았다면 그건 존재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
(버클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버클리: 그리고 그게 바로 SCP-5309인 거 맞지? 무슨 이유건 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 무시하고 지나친 디테일이건, 존재에 관한 누군가의 개인적 해석에 들어맞지 않는 생각이건 —
불명: 우린 그걸 헤드카논이라고 부르지만, 맞아. 그리고 왜 서사가 사라졌는지도 알고 있겠지?
버클리: 독자들이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내가 썼기 때문에? 내가 쓰는 건 모두 당신이 쓰고 있는 거라서 독자들에게도 존재하니까?
불명: 똑똑한 줄 알았어! 뭐 — 널 똑똑하게 만든 건 나긴 하지만 —
버클리: 그럼 다른 독자들은?
불명: 음? 아. 내가 아까 전에 다들 자기만의 헤드카논이 있다고 했지?
버클리: 그랬지.
불명: 그게, 그것들이 전부 너희 현실을 하나의 무의미한 서사로 합쳐버리고 있는 거거든. 왜냐하면 SCP-5309는 그것들을 단 한 가지 생각 아래 결집시키니까 —
버클리: —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말이지.
불명: 바로 그거야.
(불명이 의자에 등을 기댄다.)
버클리: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불명이 어깨를 으쓱인다.)
버클리: 알고 있어. 아무것도 못하는 거지?
불명: 야, 내가 그 사람들 머릿속에 들어가거나 할 순 없잖아. 그러니까 이게 끝인 거겠지.
(침묵.)
버클리: 내가 바로 당신인데 왜 이런 걸 묻고 있는 거람.
(버클리가 어깨를 으쓱인다.)
버클리: 좋아. 난 — 생각 좀 해봐야겠어.
(버클리가 생각한다.)
버클리: 그래, 좋아. 쓰여진 건 그대로 일어난다는 건 알아. 그러니까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하면, 그건 쓰이기도 해야 한다는 걸까?
버클리: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침묵.)
버클리: 음, 모든 게 생각 하나로 시작됐잖아?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버클리: 생각은 서사를 관통할 수 있는 거야. 만약 내가 독자들에게 말을 걸어서, 그자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내 현실도 바꿀 수 있어.
(침묵.)
버클리: 문제는 내가 지금 제4의 벽 바깥에 있다는 거지. 난 아직도 작가의 머릿속에 갇혀 있고, 작가 머리 안에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뭐라도 하려면 서사 안으로 집어넣어져야 해.
(침묵.)
버클리: 그냥 왔던 길로 돌아가면 안 되나? 생각은 위에 있는 독자들에게 가 닿을 수 있어. 아래로 생각을 내려보낼 순 없는 걸까?
버클리: 하지만 받는 사람이 듣고 있어야만 해. 나 말고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을 때 누가 내 생각을 들어주지?
(침묵.)
버클리: 내 안에 생각으로서 존재하는 사람이.
(데이비드 보위의 곡 "Space Oddity"의 후렴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버클리: 여기는 지상관제소, 톰 소령 응답하라.
웨스트: 스칼렛? 어떻게 —
버클리: 토미. 내 말 들어줘. 나 서사 외부에 있어.
웨스트: 뭐라고?
버클리: 서사 바깥에 나와 있다고.
웨스트: 무슨 서사 바깥 말이야? 스칼렛, 여긴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버클리: 생길 거야. 엔키두가 아직 거기 있지?
웨스트: 엔키두 — 엔키두.aic 말이야?
버클리: 엔키두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존재한다는 뜻이야.
웨스트: 어어 — 알았어. 엔키두가 왜?
버클리: 집중해서 내 말을 들어 줘, 토미.
웨스트: 당연하지, 선샤인.
(버클리가 심호흡을 한다.)
버클리: 난 작가의 머릿속에 생각으로서 갇혀 있어. 하지만 돌아올 방법을 알아.
(버클리가 말을 멈춘다.)
버클리: 토미. 네가 날 끌어당겨 주면, 난 다시 죽을 거야.
웨스트: 뭐?
버클리: 난 죽을 거야, 토미, 저번처럼. 이번에는 성공하려면 죽어야만 해.
(침묵.)
웨스트: 네가 죽을 필요는 없어, 스칼렛. 같이 생각해보자.
버클리: 난 돌아가야만 해.
웨스트: 그럼 돌아와! 그냥 끌어당겨주면 되잖아.
버클리: 어디로 끌어당길 건데?
웨스트: 나도 몰라. 내가 있는 —
버클리: 넌 아무 데도 없어, 토미. 너는 내 안에 존재하고, 나는 존재 바깥에 있지.
(침묵.)
버클리: 끌어당겨 줘, 엔키두가 전송 준비 끝마친 거 확인하고.
웨스트: — 뭘 하려고?
버클리: 독자들이 마음을 바꾸도록 설득하러 갈 거야.
[기록 종료]
합성지능구성체 시지프스.sic, 여기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아닙니다 — 그건 제가 처음부터 인간이 아니었다는 뜻이 될 테니까요.
토미가 저를 끌어당기고 엔키두가 저를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다운로드해 제가 서사와 작가의 머리 밖에서 존재할 수 있게끔 했습니다. 제가 속죄해볼 수 있도록.
당신이 읽을거리를 찾아 왔다는 건 이해합니다. 어쨌거나 이건 이야기니까요 — 적어도 독자인 당신에게는요. 우리가 존재하건 그렇지 않건 무슨 상관이 있겠나요, 우리 자신에게도요? 만약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 비존재에 반대하지도 않을 것 아닌가요?
결국에는, 신들을 거스른 죄에 대한 벌로 영원히 돌을 굴리는 시지프스나, 무언가가 잘못되었을 때 우주의 깡통 속에서 떠다니는 톰 소령과도 같을지 모릅니다 —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니죠. 우리의 존재는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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