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번호: SCP-462-KO
등급: 아르콘(Archon)
특수 격리 절차: 2020/05/14에 SCP 재단 한국사령부와 GoI-1376-KO1 사이에 체결된 협약 내용에 의거하여 SCP-462-KO 및 관련 변칙 개체들의 격리 등급을 아르콘으로 재지정한다. SCP 재단 한국사령부는 블레이즌 상공회의소에 가입되어 있는 회원들을 상공회의소 사무국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감금하거나 회원에게 상해를 가할 수 없다. 그 댓가로 블레이즌 상공회의소와 그 회원들은 장막 정책의 유지를 위해 SCP 재단과 협조하며, 재단을 공개적으로 적대하고 있거나 재단에 의해 수배 중인 개인 및 단체에게 서비스 또는 재화를 제공할 수 없다.
현재 블레이즌 상공회의소와의 연락과 전반적인 상황 관리는 제05K기지에서 전담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05K기지 SCiPNET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설명: SCP-462-KO는 가로 16 cm, 세로 7 cm의 직사각형 형태로 자른 뒤 비변칙적 방식으로 코팅된 흰색 종이조각이다. SCP-462-KO의 앞면에는 한국어로 '착한 아이 칭찬 카드'라는 내용이 크고 진한 글씨체로 인쇄되어 있으며, 그 밑에는 작은 글씨로 '이 카드를 좋은 일에 대한 보상으로 양도받은 회원은 아빠의 사랑을 받는 착한 아이임을 블레이즌 상공회의소가 보증함'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SCP-462-KO 뒷면 중앙에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파란색 마크가 그려져 있고, 그 양옆에 일종의 사업체명으로 추정되는 고유명사들과 그에 대응하는 8자리 코드가 총 20개 적혀 있다.
SCP-462-KO2 뒷면의 파란색 마크를 5초간 누르고 있을 경우, 카드 위에 알파벳, 숫자 자판과 엔터 키로 구성된 홀로그램 키보드가 나타난다. 해당 키보드를 통해 칭찬 카드 뒷면에 적힌 코드들 중 하나를 입력한 뒤 엔터를 누르면 홀로그램 키보드는 사라지고 최소 5초~30초 사이에 코드를 입력하는 데 사용된 카드 근처에서 코드에 대응하는 SCP-462-KO-1 개체가 나타난다. SCP-462-KO의 변칙성은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중인 영토 및 영해 내에서만 발현되며, 이를 벗어날 경우 어떤 방식으로도 홀로그램 키보드가 카드 위에 나타나게 할 수 없다.
SCP-462-KO-1은 코드 입력 시 나타나는, 겉보기에 15세~20세 사이의 아시아계 여성으로 추정되는 인간형 변칙 개체들을 통칭한다. SCP-462-KO-1 개체들은 각 개체가 대응하는 사업체명과 어울리는 복장과 이름이 적힌 명찰을 착용하고 나타나는데, 일부 개체들에게서는 뿔이나 꼬리 등 비변칙적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 신체부위가 확인된다. SCP-462-KO-1 개체는 자신을 호출한 사람3이 누구인지 확인한 뒤 고객에게 명함과 계약서를 내민다. 명함에는 해당 SCP-462-KO-1에 대응되는 사업체명과 함께 해당 사업체의 전문 분야 등등의 정보가 적혀 있으며, 계약서에는 공통적으로 SCP-462-KO-1가 자신의 전문분야 안에서 고객이 요청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대가로 칭찬카드 한 장을 받아간다는 내용과 함께 고객이 이름을 적을 수 있도록 하단에 빈 공간이 인쇄되어 있다.
고객이 계약서에 서명하고 나면 SCP-462-KO-1 개체는 계약서를 다시 받고 같이 가져온 가방에 넣은 다음 요청받은 작업에 착수하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SCP-462-KO-1 개체 포착 사례들 중 호출된 개체가 자신이 담당하는 분야 내에서 고객이 요청한 일을 완료하는 데 실패한 경우는 없었다. SCP-462-KO-1 개체는 작업을 마친 뒤 사라지면서 칭찬 카드 한 개를 받아간다. SCP-462-KO-1 개체들은 고객에게서 직접 카드를 건네받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나, 고객이 주저하거나 노골적으로 카드를 내어주기 싫어하는 경우 그냥 사라진다. 이 경우 고객이 보유한 카드 하나가 SCP-462-KO-1 개체가 사라질 때 같이 없어진다.
SCP-462-KO의 발견 내력
재단은 2015년부터 SCP-462-KO-1 개체들의 존재와 몇몇 요주의 인물들이 이들과 자주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당 개체들이 초상 사회에서 필수적인 서비스들을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곧 변칙 존재가 부득이하게 민간 사회와 접촉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을 줄이므로 궁극적으로 SCP-462-KO-1 개체들의 활동이 장막 정책의 유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재단은 이들의 활동에 간섭하지 않았다.
2020년 2월을 전후하여 SCP-462-KO-1 개체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뜸해졌다. 그 여파로 요주의 인물들의 장막 정책 위반 사례가 큰 폭으로 증가하자 재단은 급격한 변화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해 대한민국 내의 자산을 동원하여 심층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재단은 SCP-462-KO-1 개체들이 어떻게 호출되고 서비스의 대가로 무엇을 받아가는지 알지 못했다.
재단이 칭찬 카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020년 4월 제05K기지 소속 현장 요원들이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삼대천 소유의 창고를 급습했을 때였다. 창고에서 압수한 물품들을 분류하던 도중 한 가방에서 수십 장의 카드가 발견되어 05K기지로 전달되었고, 카드 뒷면에 적힌 사업체명에서 유추할 수 있는 서비스들이 지금까지 관측된 SCP-462-KO-1 개체들의 활동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시점에서 재단은 칭찬 카드와 카드를 통해 호출할 수 있는 인간형 개체들을 정식으로 SCP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했다.
SCP-462-KO 실험 기록 - 2020/04/12
2019/10/11 22시 경 무등산 근방 민가에 잠입해 있던 혼돈의 반란 소속 공작원이 현장 요원들에게 발각되어 교전 중 사살되었다. 지휘부의 요청에 따라 현장에 제05K기지 소속 정관모 연구원이 칭찬 카드 한 장을 지참한 채로 동행했다.
실험자: 정관모 연구원
실험 대상: '포에버 박스 시체처리회사', 호출 코드 00104C23
실험 표본: 시신 1구와 사망자의 거주지에 남은 혈흔 및 교전 흔적
실험 내용: 상황 종료 직후 정관모 연구원이 카드에 내장된 홀로그램 키보드로 호출 코드 00104C23을 입력했다. 정관모 연구원이 엔터키를 누르고 약 7초 뒤 현장에 검은 드레스에 흰 앞치마를 두르고 흰 가면을 쓴 SCP-462-KO-1 개체가 나타났다. '네티Netty'라고 적힌 명찰을 착용한 대상은 신체적인 특이사항은 없었으나 머리에 검은색 리본이 달린 흰색 헤어밴드를 착용했으며, 대걸레와 비닐 등이 담긴 업소용 청소카트 한 대와 같이 나타났다. 해당 개체4가 정관모 연구원에게 전달한 명함에는 "포에버 박스 시체처리회사FOREVER BOX CORPSE CLEANING CO., 암살, 테러, 과실치사 등의 범죄증거 인멸 전문"이라는 내용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정 연구원이 계약서에 서명하자 네티는 사망한 공작원의 시신을 비닐에 담아 끈으로 고정한 다음 대걸레로 바닥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대상은 가구와 창틀에 남은 혈흔까지 손걸레로 제거한 뒤, 피와 탄흔이 남은 벽을 잠시 쳐다보다가 조금이라도 흔적이 남은 벽지를 모두 뜯어내었다. 네티는 벽을 뚫고 들어간 탄환들을 모두 끄집어내고 청소 카트에서 윤활유 주입기와 비슷하게 생긴 도구를 꺼내어 탄환이 남긴 구멍들을 메운 다음 뜯어낸 벽지와 동일한 질감과 무늬의 벽지들을 가져와 다시 벽에 붙였다.
이 모든 작업에 총 3분 24초가 소모되었으며, 네티는 정관모 연구원에게서 칭찬 카드 한 장을 건네받고 시신과 함께 사라졌다. 사라지기 직전 대상은 가면을 벗었으며, 정 연구원 및 동석했던 현장 요원들에 의해 상기된 표정으로 손에 들린 칭찬 카드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SCP-462-KO 실험 기록 - 2020/04/14
12일에 실시한 실험 결과가 제05K기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직후 기지 내 여러 부서에서 부서 자산을 대상으로 실험해볼 것을 제안하는 내용의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지휘부는 접수된 제안들 중 세 개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반려했다. 통과된 실험 제안 중 하나의 발신지인 종합연구시설에서 정관모 연구원이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자: 정관모 연구원
실험 대상: '팅커 벨 수리점', 호출 코드 000FD561
실험 표본: 종합연구시설에서 사용 중이던 칸트 계수기. 이틀 전 사고로 미소특이점 슬롯이 손상된 이후 기지 내 기술자에게서 복구 불능 판정을 받음.
실험 내용: 정관모 연구원은 변칙성 검출기를 앞에 두고 호출 코드 000FD561을 입력했다. 정 연구원이 엔터키를 누르고 약 11초 뒤에 '벨Belle'이라는 이름이 박음질된 연녹색 점프수트를 입은 SCP-462-KO-1 개체가 정 연구원이 있는 실험실 안에 나타났다. 해당 개체5는 한 손으로 운반할 수 있는 크기의 공구 상자를 오른손에 들고 나타났으며, 고양잇과 동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갈색 귀와 꼬리가 달려 있었다. 정 연구원이 벨에게서 받은 명함에는 "팅커 벨 수리점TINKER BELLE REPAIR SHOP, 기술 수준 불문 모든 종류의 기계장치 수리, 개조, 복원 가능."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계약서 서명이 완료된 직후 벨은 옆에 놓인 탁자 위에 공구 상자 안에 들어있던 천을 덮은 후 그 위에 칸트 계수기를 올려놓았다. 계수기에 끼워져 있던, 내부의 초소형 특이점이 소멸된 용기를 분리한 벨은 공구 상자에서 치과 드릴과 비슷한 형태의 기기와 손전등을 꺼냈다. 잠시 후 대상은 손전등으로 계수기 내부를 비춘 채 드릴을 밝혀진 부분에 집어넣고 작동시켰다. 대략 2분 정도가 지난 뒤 대상은 손전등과 드릴을 다시 공구 상자에 집어넣고 3M 로고가 새겨진 미소특이점 용기를 꺼내 슬롯에 연결시켰다.
전원을 켜자, 칸트 계수기는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며 수리에 걸린 시간은 총 6분 35초였다. 벨은 정 연구원에게 작업에 대한 대가로 칭찬 카드 한 장을 건네받았으며 꼬리를 비롯한 신체의 움직임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전 개체와 마찬가지로 카드를 받게 되어 매우 들뜬 것 같아 보였다. 대상은 잠시 가만히 서 있더니 카드와 공구 상자를 들고 사라졌다.
SCP-462-KO 실험 기록 - 2020/04/15
실험자: 정관모 연구원
실험 대상: '아르테미스 번역회사', 호출 코드 0100A7EC
실험 표본: 제05K기지에서 보관 중인 두루마리 형태의 변칙 개체. 두루마리를 열람 후 30초가 지나면 두루마리 안에서 붉은 눈의 늑대 한 마리가 튀어나와 주변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내용은 정체불명의 문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이를 해독하려는 시도는 전부 실패했다.
실험 내용: 코드 입력 15초 뒤 실험실 안에 '신시아Cynthia'라고 적힌 명찰이 부착된 초록색 카디건과 베이지색 스커트를 입은 SCP-462-KO-1 개체가 나타났다. SCP-462-KO-1 개체6는 필기도구와 공책 외에 다른 물건을 지참하지 않았으며, 정 연구원이 받은 명함에는 "아르테미스 번역회사ARTEMIS TRANSLATION COMPANY, 번역, 암호 해독 등 언어 관련 업무 전담"이라고 적혀 있었다. 추가적으로 신시아가 제시한 계약서 내에는 "본인의 신체적 문제로 인해 천장을 손상시킬 시 수리비를 전액 부담한다"는 내용의 다소 불가해한 조항이 덧붙여져 있었다.
정 연구원이 계약서에 서명하자 신시아는 변칙 개체를 펴서 실험실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30초 뒤 변칙 개체로부터 늑대가 튀어나왔으나 늑대는 신시아를 인지하고 대상의 발치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대상은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가져온 공책에 무언가를 적으며 번역을 진행했다. 15분 뒤 신시아는 공책에서 한 페이지를 뜯어내 정 연구원에게 전달했다. 해당 페이지에 적힌 것은 두루마리에 적힌 글의 라틴어 번역본으로, 제정 로마 시대의 기적사가 친구에게 자신의 수호수를 잘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정 연구원은 해당 역본을 받아들고 그 대가로 신시아에게 칭찬 카드 한 장을 주었다. 그 순간 대상의 머리 위에 한 쌍의 사슴뿔이 솟아나 실험실 전등을 파손시켰다. 정 연구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신시아를 바라보자 대상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사라졌다. 대상이 사라진 다음 날, 신원을 특정할 수 없는 주체로부터 제05K기지 행정부 계좌로 20만원이 이체되었다.
SCP-462-KO 실험 기록 - 2020/04/16
실험자: 정관모 연구원
실험 대상: '블루라이트 시스터즈 병원', 호출 코드 00104CDC
실험 표본: D-37605(아시아계 남성, 25세), 변칙 개체를 이용한 실험 진행 중 사고로 인해 손도끼가 흉곽과 융합된 상태로 혼수 상태에 빠짐.
실험 내용: 코드 입력 후 13초 뒤 D계급 인원이 누운 탁자 옆에 '클레피Klepi'라는 이름이 박음질된 파란색 수술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SCP-462-KO-1 개체가 나타난다. 해당 개체7는 등에 청십자를 새긴 흰색 더플백을 메고 있었으며, 정 연구원이 받은 명함에는 '블루라이트 시스터즈 병원BLUELIGHT SISTERS HOSPITAL, 중증외상환자 소생 전문, 단순 상처 및 염증도 치료, 24시간 3교대 운영 중'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정 연구원이 서명한 계약서를 더플백에 집어넣은 클레피는 더플백 안에서 정체불명의 회색 스프레이를 꺼내 환부 주변에 뿌린 다음 검은색 상자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1분 뒤 손도끼와 D계급 인원의 변칙적 융합이 해제되면서 환부로부터 다량의 출혈이 발생했다. 클레피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손도끼를 두 손으로 잡아 빼냈다. 적출 과정에서 클레피의 옷과 얼굴에 피가 튀었으나 대상은 개의치 않고 손도끼를 옆에 내려놓았다.
손도끼를 적출하자 D계급 인원의 출혈이 악화되었다. 이를 포착한 클레피는 급히 더플백 쪽으로 다가가 이번에는 하늘색으로 칠한 전등이 달린 스탠드를 꺼내 D계급 인원의 머리맡에 설치하고 전원을 켰다. 전등으로부터 나오는 짙은 청색 빛이 D계급 인원을 비추자 환부에서 흘러나오던 피의 양이 점점 줄어들더니 마침내 완전히 멎었다. 그 동안 클레피는 더플백에서 팔뚝만한 크기의 주사기를 꺼내 D계급 인원의 심장이 있는 위치에 꽂고 주사기 안에 들어있는 붉은색 용액을 전부 주입했다.
주사기를 빼낸 뒤 클레피는 여전히 전등으로 환부를 비춘 채로 검은색 상자에서 안마기처럼 생긴 도구를 꺼내 환부의 머리쪽 끝부분에 대고 작동시켰다. 클레피는 봉합기를 반대편까지 천천히 움직이면서 D계급 인원의 가슴에 난 상처를 완전히 봉합한 뒤 전등을 끄고 혈압 수치를 확인했다. D계급 인원의 출혈은 완전히 멎었으며, 과다출혈의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다.
클레피는 자신의 도구를 정리한 뒤 정 연구원에게 손을 내미려다가 자신의 손과 옷, 얼굴에 피가 잔뜩 묻은 것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정 연구원은 옆에 놓여 있던 수건을 물에 적셔 클레피에게 건넸다. 클레피는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한 뒤 얼굴과 손에 묻은 피를 닦기 시작했다. 이때 정 연구원이 무심코 손을 뻗어 클레피의 머리에 손을 대려 하자 대상은 빠르게 정 연구원의 팔을 붙잡아 시도를 저지했다. 클레피는 불쾌한 듯한 얼굴로 정 연구원의 팔을 홱 뿌리친다. 정 연구원이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대상은 등을 돌려 사라졌다.
피 묻은 수건을 회수한 정 연구원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칭찬 카드 한 장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이후 정관모 연구원은 전문가답지 못한 행동으로 돌발상황을 야기한 건에 대하여 견책 처분을 받았다.
SCP-462-KO 실험 기록 - 2020/04/19
실험 및 실제 사례에서 포착된 SCP-462-KO-1 개체들과 칭찬 카드의 기원을 파악하기 위해서 추가적인 실험이 기획되었다. 실험의 목적, 그리고 SCP-462-KO-1 개체들의 생태가 비변칙적 인간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여 05K기지 연구팀은 새벽 시간대에 SCP-462-KO-1 개체를 호출하기로 결정했다.
실험자: 정관모 연구원, 실험의 목표를 위해 2등급 현장 요원 금홍서가 동행함.
실험 대상: '블루라이트 시스터즈 병원', 호출 코드 00104CDC
실험 표본: 제05K기지 내에서 사육 중인 고양이 한 마리, 최근 사고로 인해 꼬리 부근에 얕은 상처를 입음.
실험 내용: 정관모 연구원은 호출 코드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렀으나, 1분 30초가 지나도록 SCP-462-KO-1 개체가 나타나지 않았다. 코드 입력 후 3분만에 나타난 SCP-462-KO-1 개체는 클레피가 아니라 10대 중반의 어린 여성의 모습이었으며,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사이즈가 맞지 않는 구급대 활동복 등을 보았을 때 잠들어 있다가 호출로 인해 깨서 급하게 준비한 것이 명백했다. 대상의 활동복에는 '피오Pio'라는 이름이 박음질되어 있었다.
새로운 SCP-462-KO-1 개체8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등에 메고 온 더플백에서 계약서를 꺼내 정관모 연구원에게 주었다. 정 연구원이 계약서에 서명하자 피오는 옆에 앉아 있던 금홍서 요원의 손목을 잡고 맥박을 쟀다. 금 요원은 정중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피오는 혼란스러워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제서야 반대편의 고양이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금 요원이 고양이의 꼬리에 난 상처를 보여주자 피오는 고개를 끄덕이고 더플백 안에서 AA 배터리 크기의 작은 원기둥형 장치를 꺼내 상처에 대었다. 장치로부터 발생한 청색 빛이 상처 부위에 닿자 상처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5분 뒤 고양이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음에도 불구하고 피오가 장치를 치우지 않은 것을 의아하게 여기고 정 연구원이 대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대상이 장치를 꼬리에 댄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을 발견한 정 연구원이 조용히 금 요원에게 신호를 보낸다. 금 요원은 소리가 나지 않게 주의하며 피오에게 다가가 가져온 위치 발신기를 대상의 바지 주머니 안에 집어넣고 대상을 약하게 흔들어 깨운다.
잠에서 깬 피오는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다 잠을 깨려는 듯 고개를 한 차례 젓고는 정 연구원에게 칭찬 카드를 받고 사라졌다.
실험 직후 제05K기지는 금홍서 요원의 위치 발신기 신호를 추적했다. 위치 신호는 광주광역시 서구의 한 상가 건물에서 15분 정도 송출되다가 끊겼다. 포착된 신호를 통해 발견된 장소로 금홍서 요원이 파견되었다. 아래는 금 요원이 건물 출입구 앞에서 작동시킨 저시인성 바디캠에 녹화된 내용이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금 요원은 글록 19 권총과 칭찬 카드 한 장을 지참했다.
금홍서 요원의 영상 기록 - 2020/04/21
[녹화 시작]
금 요원은 상무지구의 작은 상가 건물 앞에 서 있다. 주변 건물과 비교했을 때 딱히 특기할 만한 차이점은 없으나, 1층에 입주한 사업체들 중 하나가 '분실물 보관소'라는 이름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금 요원은 상가 약도에 표시된 분실물 보관소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리로 이동한다. 분실물 센터의 문 앞에 다다른 금 요원은 회색칠이 된 평범한 문을 천천히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분실물 보관소의 내부는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으며, 양쪽 벽에는 길이 50 cm의 정육면체 형태 보관함 세 개를 세로로 이어 붙인 모양의 캐비닛들이 늘어서 있다.
보관소의 반대편에는 안내 데스크가 있고 그 뒤에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서 있다. 단정하지만 과하게 격식 차리지는 않은 복장을 한 여성의 뒤에는 벽에 늘어선 것보다 작은 크기의 보관함들이 설치되어 있다. 귀중품을 보관하는 용도인 듯 하다. 금 요원은 안내 데스크 쪽으로 다가간다.
여성은 금 요원을 보고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선다. 금 요원이 데스크 앞에 서자 상체를 숙여 금 요원이 입은 양복 재킷, 정확히는 재킷에 내장된 저시인성 바디캠에 눈을 가져다 댄다. 금 요원은 그 상태로 고개만 위로 올려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여성에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여성은 바디캠에서 떨어져 금 요원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그러고는 그녀 뒤의 보관함 중 하나를 열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위치 발신기를 꺼내 금 요원의 손에 쥐어주고 오른손을 내민다. 금 요원이 여전히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여성은 한숨을 쉬고 손으로 금 요원의 눈 앞에 가상의 직사각형 형태를 그려 보인다.
금 요원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칭찬 카드를 꺼내 여성에게 건넨다. 여성은 칭찬 카드를 받아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눈썹을 치켜올린다. 여성은 이윽고 금 요원에게 카드를 돌려준 뒤 데스크 옆에 놓인 작은 버튼을 누른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금 요원이 몸을 돌리자 아까 금 요원이 들어왔던 문이 문 한가운데를 축으로 한 바퀴 도는 모습이 바디캠에 보인다.
한 바퀴 회전한 문은 아까와 달리 진홍색으로 반짝이고 있다. 금 요원은 가까이 다가가 문을 자세히 살펴본다. 진홍색 칠이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진홍색을 띠는 금속으로 제작된 듯 하다. 바뀐 문의 윗부분에는 아래 방향을 향하는 흰색 화살표와 함께 고풍스러운 글씨체로 '블레이즌 은행 겸 상공회의소'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금 요원은 안내 데스크 쪽을 돌아본다. 데스크 너머의 여성이 문 안으로 들어가라는 의미의 손짓을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밝은 색의 리놀륨 바닥이 깔린 넓은 공간이 보인다. 공간 한 편에는 양편에 스피커가 설치된 단상이 있고 그 뒤편에는 큼지막하게 '블레이즌 상공회의소'라는 문구를 수놓은 진홍색 휘장이 드리워져 있다. 단상 반대편에는 반원형으로 테이블과 의자가 여러 개 배치되어 있다. 대부분의 테이블은 비어 있으나 단상에서 멀리 떨어진 테이블 주변에 재단이 실험 당시 호출했었던 SCP-462-KO-1 개체들이 둘러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금 요원은 테이블 사이로 지나가며 바디캠으로 개체들의 모습을 촬영한다. 테이블 한 쪽에는 신시아가 다소곳하게 앉아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고 있다. 벨이 그녀의 뒤에 서서 조그만 대패 비슷한 도구로 신시아의 머리에 난 뿔을 손질하고 있으며, 반대편에 앉은 클레피는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나머지 한 의자에는 네티가 앉아 있다.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시선이 신시아의 발치에 쌓여가는 뿔 조각들에 고정되어 있다.
바디캠의 방향이 조정되어 다시 앞을 향한다. 금 요원은 테이블과 단상 사이를 지나 반대편 끝에 설치된 구조물에 다다른다. 그의 눈 앞에는 은행 창구처럼 아래는 베이지색 벽으로, 위는 유리로 분리되어 있는 2.5 m 높이의 가벽이 있으며, 유리창과 벽이 이어지는 부분에서부터 반원형으로 뚫린 공간이 있다. 금 요원은 가벽을 사이에 두고 양편에 의자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본인 쪽 의자에 앉는다.
이윽고 가벽 너머 문에서 안내 데스크를 지키던 사람과 비슷한 인상착의의 여성이 머리를 내민다. 여성은 벽 건너편의 금 요원을 보고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문에서 나와 금 요원을 마주보고 앉는다. 금 요원은 아직 손에 들고 있던 칭찬 카드를 건넨다. 유리창의 뚫린 공간을 통해 카드를 받아든 여성은 금 요원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금 요원은 어깨를 으쓱한다. 여성은 얼굴을 찡그리더니 칭찬 카드를 가지고 일어난다. 그녀는 금 요원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의미의 손짓을 하더니 나왔던 문으로 다시 들어간다.
잠시 후 금 요원의 오른쪽에서 금속성의 마찰음이 들린다. 가벽 끄트머리에 달린 작은 창살문이 열리더니 그곳에서 여성용 정장을 입은 20대 중반의 여성이 나와서 금 요원에게 다가온다. 여성의 키는 170 cm 중반이며, 머리카락 색은 검은색이다. 별개의 머리 장식이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 같은 것은 없지만, 여우속 동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색 귀와 꼬리가 눈에 띈다.
여성: 죄송합니다, 저희가 조금 늦었네요. 최근에는 은행을 찾는 발길이 많이 뜸해졌거든요. 고객분께서 이곳에 직접 오신 것은 거의 몇 달만에 처음이에요.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금홍서 요원: 말을 할 수 있으시네요?
세이블: 다른 아이들도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다들 수줍음이 많아서…… 아,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저는 세이블Sable이라고 해요. 블레이즌 상공회의소 사무국장 겸 은행장입니다.
금 요원: 상공회의소라고요?
세이블: 설명하자면 긴 이야기에요. 아마 궁금하신 게 많으실 텐데, 잠시 차라도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하지 않으시겠어요?
금 요원은 동의하는 몸짓을 한다.
세이블: 저를 따라오세요.
세이블은 몸을 돌려 방금 나왔던 창살문 쪽으로 돌아간다. 금 요원이 뒤를 따라간다. 두 사람은 창살문을 지나 가벽 뒤에 나 있는 계단으로 향한다. 계단을 올라가자, 입구와 마찬가지로 진홍빛 금속 재질의 문이 보인다. 세이블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고 금 요원이 그 뒤를 따른다. 금 요원이 문 안으로 들어오자 세이블은 문을 잠근다.
은행의 2층은 안락한 소파와 유리 탁자, 냉장고 등이 놓인 일종의 휴게 공간이다. 벽에 난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지만 바깥 풍경은 흐릿해 잘 보이지 않는다. 금 요원은 소파에 앉는다.
세이블: 커피나 녹차 괜찮으세요? 아니면 아이스티도 있어요.
금 요원: 저는 커피로 하겠습니다.
잠시 후 세이블은 포트에서 커피 두 잔을 따라 가져온다. 금 요원이 커피잔을 받아들자 세이블은 금 요원을 마주보고 앉는다.
금 요원: 다른 아이들이 수줍어한다고 하셨죠? 당신은 예외인 것 같네요.
세이블: 누군가는 바깥 사람들에게 이게 놀이라고 알려줘야 하니까요.
금 요원: 놀이인 겁니까?
세이블: 놀이치고는 너무 거창한가요? [웃음] 하지만 실상이 그렇답니다.
금 요원: 그러면 '다른 아이들'이라는 건……
세이블: 네. 사무국을 포함해서 블레이즌 상공회의소의 회원들은 모두 제 자매들이에요. 하지만 태어난 게 아니라 창조된 거니까 '혈연 관계'라고는 하기 어려울지도요. 우리는 아버지가 창조한 생명체들이고, 확신은 없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는 걸로 봐서는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 같아요.
금 요원: '아버지'라고요?
세이블: 일단은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제 생각에도 다른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지만, 그 분이 그렇게 부르라고 하셨거든요. 저희를 창조물이 아니라 딸로 생각하고 싶다면서, 그러려면 우리가 그 분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저희에게 이름을 말해 주신 적이 없으세요. 바깥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마다 그것 때문에 어렵더라고요. 저희랑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도 그 분을 '아버지' 말고 다른 단어로 지칭할 수가 없으니까 말이죠.
금 요원: 그 아버지라는 분은 당신들을 왜 만드신 겁니까?
세이블: 음, 아버지가 제일 먼저 만드신 딸은 저였어요. 제가 눈을 뜨자마자 아버지는 제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시더니, "태어난 걸 환영한다, 세이블, 앞으로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여주렴"이라고 말씀하셨죠. 제가 기억하는 한 저희 자매들의 삶의 목적과 관련해서 아버지가 하신 말씀은 딱 그것 뿐이었어요. 재미있게 놀라는 거요. 알아요, 이상하죠. 그래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를 포함해서 제 자매들은 아버지 말씀에 딱히 불만이 있지는 않아요.
금 요원: 그런데 이 '놀이'는 언제부터 시작했던 건가요? 2015년?
세이블: 음, 우리 중에 막내가 05년에 태어났으니까…… 네, 그 정도 되겠네요. 그때 아주르가, 아, 죄송해요, 저희 둘째가 바깥 사람의 자녀들이 하는 소꿉놀이에 꽂혔거든요. 몇 주 동안 저하고 다른 자매들한테 같이 소꿉놀이를 하자고 못 살게 굴더니만, 어떻게 한 건지 아버지까지 구워삶아버렸죠. 어느 날 아버지가 저하고 다른 아이들을 모두 모아놓고서는 '궁극의 놀이'를 시작하자고 말씀하시더니 우리한테 칭찬 카드들을 나눠주셨어요. 처음에는 이게 대체 뭔가 했는데 아버지께서 바깥 사람들한테 놀이에 참가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한테 할 일을 알려 주셨죠. 나머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금 요원: 카드 뒤에 적힌 그 사업체들이 다 놀이의 일환이라니, 솔직히 믿기 힘들군요. 더군다나 사업체들 중에는 이상한 것도 끼어 있던데요.
세이블: 아, 네티 말씀이시군요. 실은 그 아이가 05년에 태어난 막내랍니다. 이상하게 여기실 건 없어요. 저희는 바깥 사람들과 다른 식으로 태어났고, 다른 식으로 살고, 다른 식으로 죽을 거에요. 바깥 사람들의 아이라면 그런 일은 능력 밖일 뿐 아니라 일단 부모가 기겁을 하겠지만, 그 아이는 우리 자매들 중에서 제일 시체에 익숙하답니다. 막내가 기겁할 정도로 싫어하는 건 쓰레기랑 얼룩이에요. 어울리죠?
금 요원: 그러면 여기는 뭐 하는 곳인가요?
세이블: 아시겠지만 이곳은 은행이자 상공회의소에요.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아닙니다. 엄밀히 따지면 모임 장소로 쓸 수 있을 만큼 넓을 뿐인 환전소라고 해야겠지만, 은행 겸 상공회의소처럼 재미있는 이름은 아니잖아요. 어디까지나 아이들 재미있으라고 하는 놀이인데. 어쨌든 제 일은 이곳에서 카드의 유통 상황을 관리하는 거에요. 고객이 카드를 가져오면 그걸 현금으로 환전해드리고, 그 반대의 일도 하죠. 그렇게 해서 바깥 사람들이 계속해서 우리 자매들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에요.
금 요원: 바깥 사람이 당신의 규칙을 순순히 따랐습니까? 분명 누군가는 편법을 부리려 들었을 텐데요.
세이블: 아무렴요. 단순하게 카드를 안 주려고 드는 사람부터, 위조 카드에, 심지어는 아이들한테 강제로 다른 일을 시키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전부 실패했습니다. 아이들은 계약서에 쓰인 일만 할 수 있고, 바깥 사람들은 계약서에 명시된 대가를 주고 계약서 상으로 허용된 일만 시킬 수 있어요. 이건 저와 모든 자매들이 사전에 합의한 사항이에요. 놀이에 규칙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금 요원: 위법 행위를 시도하는 사람에 대한 제재 수단은 있습니까?
세이블: 네, 사무국이 바로 그런 제재 수단이에요. 이것도 정확하게는 자경단이라고 불러야 맞겠지만, 이왕 이 놀이에 참여 중인 자매들의 모임을 상공회의소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는 거죠. 사무국은 국장인 저하고 제 바로 손아래 자매들 두 명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저는 여기서 맡은 역할이 있어서 자주 바깥에 나가지는 못해요. 웬만한 일은 두 여동생들이 담당하죠. 그렇지만 그 둘만으로도 충분하답니다.
금 요원: 아, 그렇군요.
세이블: 혹시 더 질문하실 게 있으신가요?
금 요원: [침묵]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만, 최근 들어서 아이들의 '놀이' 참여가 뜸해진 이유에 대해 말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세이블: 잠깐만요. 흐음, 잔이 비었군요. 다시 따라드릴게요.
세이블은 그렇게 말하며 금 요원의 빈 커피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금 요원은 순간 당황하지만 침착한 태도를 유지한다. 세이블은 찬장 쪽으로 가서 잔에 다시 커피를 따른 뒤, 찬장 위에 올려져 있던 더플백 하나를 같이 들고 돌아온다. 그녀는 탁자 위에 더플백을 내려놓고 금 요원에게 커피를 건넨 뒤 잠시 침묵한다.
세이블: 질문에 대답해드리기 전에, 실례지만 한 가지 먼저 고객님께 여쭤볼게요.
금 요원: 말씀하세요.
세이블: 제 자매의 옷에 위치 발신기는 왜 넣으셨죠? 그리고 저희가 이 놀이를 2015년에 처음 시작했다는 건 어떻게 알고 계셨나요?
금 요원: [침묵]
세이블: 설마 안 들켰을 거라 생각하셨던 건 아닐 테죠. 원하시는 게 뭐에요?
금 요원: 저희는 여러분에게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닙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세이블: '저희'라, 좋아요, 그러면 당신 혼자서 벌인 일이 아니군요. 당신이 속한 어떤 집단이 우리에게서 뭔가를 얻으려고 하고 있는 거에요. 정체가 뭐죠?
금 요원: 죄송합니다만, 그 이상은 밝힐 수 없습니다.
세이블: [정장 상의에서 수첩을 꺼낸다] 제가 도와드리죠.
세이블은 펜을 꺼내 수첩에 무언가를 그린다. 잠시 후 수첩에서 메모지 한 장을 뜯어낸 세이블은 그것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금 요원 쪽으로 민다. 메모지에는 재단의 상징이 그려져 있다.
금 요원: 아니, 어떻게……
세이블: 당신들이 제 여동생에게 손 댄 일을 제가 기억 못 할까봐요? 작년부터 계속 아이들한테 못살게 굴었잖아요. 그래놓고서는 당신네가 VIP라도 되는 것처럼 뻔뻔하게 이리로 걸어들어오다니…… 그러니 대답하세요. 원하는 게 뭐에요?
금 요원: 잠깐, 뭐라고요?
세이블: [눈을 굴린다] 멍청한 척 하지 마시고 빨리 대답하세요.
금 요원: 아니, 잠깐, 잠깐만요! 작년이라니? 재단이 조사를 시작한 건 빨라야 저번 주란 말입니다! 그 전까지 저희는 여러분의 활동에 간섭한 적이 없었습니다!
[세이블은 눈을 가늘게 뜬다.]
금 요원: 정말입니다, 세이블 양. 당신 자매분들이 15년부터 초상 세계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벌이고 있다는 건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저희 일입니다. 아는 거요. 당신 자매들에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복잡하지만, 여러분의 활동은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와 충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여러분을 방해하겠습니까?
세이블: [두 손을 힘 없이 들었다가 내리며] 알겠어요.
금 요원: 믿어주시는 겁니까?
세이블: 솔직히 같은 조직에서 하는 일을 모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렇지만 저를 속일 생각이었다면 좀 더 앞뒤가 맞는 얘기를 꺼내셨겠죠. 지금은 적어도 당신과 당신을 보낸 사람들은 우리를 적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어요. 맞나요?
금 요원: 그렇습니다.
세이블: 좋아요. 당신이 솔직하게 답변했다고 치고, 저도 마찬가지로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지금 블레이즌 상공회의소와 그 회원들은 사실상 모든 영업을 멈춘 상태입니다.
금 요원: 영업을 멈췄다니요? 어째서요?
세이블: [한숨] 칭찬 카드 때문이에요. 가끔씩 우연한 사고로 카드가 망가지거나, 아이들이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그냥 사라지는 일이 종종 있거든요. 평소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요. 제가 손망실된 카드 수를 조사해서 아버지에게 알려드리면 아버지가 손실된 만큼의 카드를 다시 만들어서 은행에 전달하셨거든요.
금 요원: 설마……
세이블: 두 달 전에 아버지께서 사라지셨어요. 더 이상 은행에 새로운 카드가 들어오지 않는 거죠. 카드의 수는 계속 적어지니까 카드 한 장의 가치가 계속 높아지고요. 그럴수록 바깥 사람들이 저희와 거래할 때 더 많이 손해를 보게 되고, 결국에는 은행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더군요.
금 요원: 어, 지금 바깥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세이블: 아, 최근에 한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몇몇 애들을 호출해서 거래했다고 하더라고요. 밖에서 보신 아이들이 바로 걔네들이에요. 은행이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기들이 받은 칭찬 카드를 은행 보유고에 보태려고 찾아온 거죠. 참 착한 아이들이죠?
금 요원: ……그런 것 같습니다. 저희와는 구면이기도 하고.
세이블: 그게 당신들이었군요? 요즘은 칭찬 카드 다섯 장은 커녕 한 장도 밖에서 보기 힘들어서, 사무국에서 독자적으로 조사에 착수하려던 참이었어요. 수고를 덜었군요.
금 요원: 아버지께서 혹시 자주 모습을 감추십니까?
세이블: 가끔씩 어디 가 보셔야 할 곳이 있다면서 일주일 정도 해외로 떠나시곤 했지만, 이번처럼 아무 말씀도 없이 두 달씩이나 없어지신 건 처음이에요. 그것도 놀이가 한창 진행되는 도중에 이러시다니.
금 요원: 세이블 양의 다른 자매들은 지금 괜찮습니까?
세이블: 전혀요. 아이들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물론 몇몇 예민한 친구들은 혼란스럽기도 하고 아버지가 없으니까 겁을 먹기도 했지만요. 지금 대부분의 문제는 바깥 사람들이 일으키고 있어요. 이걸 보세요.
세이블은 탁자에 놓인 더플백을 열어 내용물을 보여준다. 피가 묻은 곰 덫, 마취 탄환, 용도 불명의 손수건과 빈 약병 등이 보인다.
세이블: 다행히도 우리는 바깥 사람들보다 고통이나 물리적 타격에 더 잘 견디는 편이에요. 자연스러운 수면욕을 제외하고는 우리를 잠에 들게 할 수 있는 방법도 많지 않고요.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튼튼하게 만드셨거든요. 그렇지만 우리 동생 중 한 명이 덫에 오른쪽 다리가 물린 채로 피를 흘리면서 걸어들어오는 광경을 봤을 때는 정말이지…… 최근에 카드 가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오른 건 죄송하게 생각하지만, 이건 너무하잖아요.
금 요원: 유감입니다.
세이블: 어쨌든, 저희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에요. 사무국의 제 동생들은 바깥 사람들에게 보복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일단은 아버지를 찾는 데 집중해달라고 하고 있어요. 언제까지 아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세이블은 얼굴을 두 손에 파묻고 크게 한 차례 심호흡한다.
금 요원: [자리에서 일어난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저는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연락처를 남겨드릴 테니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하세요. 일단 제 상관에게 보고해야 하겠지만, 아마 저희와 그쪽 목표가 서로 일치할 겁니다.
금 요원은 문 쪽으로 걸어간다.
세이블: 고객님.
금 요원: 네?
세이블: 아직 가시면 안 돼요.
금 요원: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순간 바깥에서 누군가 문을 세차게 두들긴다. 금 요원은 황급히 뒤로 물러난다. 문 두들기는 소리가 갈수록 커져 마치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는 것 같은 소음이 들려온다.
세이블: 고객님께 말씀드리지 않고 시간을 끈 것은 죄송하게 생각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고객님도 여기에 들어오셨을 때부터 이 생각 하셨던 거 아니신가요?
금 요원은 총을 뽑아서 세이블을 겨눈다. 세이블은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난다.
금 요원: 움직이지 마!
세이블: [두 손을 든다] 고, 고객님?
금 요원: 지금 바깥에 누가 있는 거지? 누구와 내통한 거야?
세이블: [당황한다] 네? 내통이라고요?
금 요원: 장난치지 마. 내가 재단 소속이라는 걸 눈치 챈 직후에 날 처리하려고 저 자를 부른 거겠지. 저렇게 문을 부서져라 두들기는 걸 보니 전문가 같지는 않고, 당신도 이런 짓 많이 해 보지 않은 티가 나. 방금 시간을 끌었다고 했나? 알려줘서 고마워. 하지만 당신이 저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밝히지 않았다면 훨씬 수월했을 거야.
세이블: 뭐, 뭐라고요? 지금 무슨-
금 요원: 이번에는 내가 말할 차례군. 멍청한 척 하지 말고 협조해 주면 고맙겠어. 문은 잠겨 있고, 만약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더 커진다면 난 당신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 댈 수밖에 없으니 잘 생각해. 저 사람은 누구야?
세이블: 머리에…… 총구를……? 아니, 아, 설마? 어! [손을 내저으며] 고객님! 오해에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어요!
금 요원: 아니면 대체 무슨 상황인데?
세이블: 환전이요!
금 요원: 환전?
세이블: 당신이, 당신이 와서 칭찬 카드를 현금으로 환전해달라고 했잖아요! 그걸 제 자매한테, 아니, 그 뭐냐, 은행원한테 건넨 거 당신 맞잖아요! 당신 맞죠? 지금은 은행에 그 정도의 돈이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동생이 저한테, 현금을 구해올테니까 시간을 끌어달라고 부탁했고요! 시간을 끌었다는 건 그 얘기라고요!
금 요원: 그 얘기는 못 믿겠는데? 칭찬 카드 한 장 만큼의 현금이 은행에 없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세이블: 으으으! 아까 제 말 제대로 안 들었죠! 카드 한 장의 가격이 계속 올랐다니까요! 정 못 믿겠으면 저 문을 열고 밖에 현금 가져온 제 동생 좀 들여보내요! 그 다음에 제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 주시던지 쓰담쓰담을 해 주시던지 마음대로 하시라고요!
금 요원은 주저하며 문 쪽으로 다가간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는 점점 약해지다가 완전히 멎는다. 금 요원이 잠금 장치를 풀고 문을 열자 문 밖에는 앞서 칭찬 카드를 받아갔던 여성이 왼손에는 검은색 서류가방을 쥐고 손바닥 새빨개진 오른손을 마구 흔들며 서 있다. 잠시 후 여성은 고통 때문에 살짝 눈물이 차오른 눈으로 금 요원을 노려보더니 뾰로통한 얼굴로 방 안에 들어온다. 금 요원이 총을 내리자 세이블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세이블: 그러게 내가 문이 잠겨 있을 때는 헛기침이나 노크로 인기척 내라고 했잖아. 너 때문에 언니 총 맞을 뻔 했다. 제발 조심 좀 해 줘……
여성은 탁자에 올려놓은 서류가방을 열어 금 요원에게 가방의 내용물을 보여준다. 잘 정리된 5만원권 지폐 묶음이 차곡차곡 쌓여 가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금 요원: ……지금 가격이 얼마나 나가길래?
세이블은 수첩을 꺼내 숫자 하나를 적어서 금 요원에게 뜯어준다. 금 요원은 종이에 적힌 수치를 읽지만 바디캠에는 잡히지 않는다.
금 요원: 미친 건가?
세이블: 사람 머리에 총구를 갖다 대니 어쩌니 하셨던 주제에 잘도 그런 소리를 하시네요.
[녹화 종료]
2020/04/23에 제05K기지는 SCP-462-KO-α9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한 수색에 착수했다. 수색의 규모와 중요성을 고려하여 05K기지 금가인 이사관 본인이 수색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블레이즌 상공회의소 사무국은 05K기지의 결정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정보의 교환과 인력 지원을 약속했다.
한편 금 이사관은 제01K기지를 통해 재단 정보부에서 한국사령부를 거치지 않고 SCP-462-KO-1 개체들에 대한 적대 행위를 저지른 일이 있었는지 문의하였으나, 상부로부터는 어떤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다.
수색 착수 이틀 뒤 사무국에서 파견한 인원 한 명이 05K기지 소속 금홍서 요원, 피도남 요원과 접선했다.
금홍서 요원의 녹화 기록 - 2020/04/25
[녹화 시작]
금홍서 요원과 피도남 요원은 광주 시내 모처의 위장 거점에서 대기하고 있다. 초인종이 울리자 금 요원이 문으로 다가가 잠금 장치를 해제한다. 문을 열자 바깥에 서 있던 여성이 들어온다. 세이블과 비슷한 외모이지만 키가 조금 더 크고,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롱코트와 디어스토커 모자를 쓰고 있다. 금 요원은 여성에게 인사하지만, 여성은 답례하는 대신 금 요원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금홍서 요원: 그 표정은 무슨 뜻입니까?
여성은 대답하는 대신 금 요원을 지나쳐 거점 안으로 들어온다. 피 요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자 여성은 건성으로 답하고 어깨에 메고 있던 커다란 가방을 바닥에 대충 던져놓는다. 금 요원이 문을 닫고 다가오자 여성은 다시 금 요원을 쳐다보다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짓고는 이윽고 생글생글 웃는다.
여성: 네가 우리 왕언니 머리에 총을 갖다댔다는 그 요원이구나?
금 요원: [당황] 뭐라고요?
피도남 요원: 진짜야? 머리에 총을 갖다댔다고?
금 요원: 말만 그렇게 했어요, 말만!
여성이 깔깔 웃는다.
여성: 아, 재미있네. 농담이야, 농담. 언니한테서 얘기 다 들었어. 우리가 아빠 찾는 거 도와주겠다고 했다면서? 뭐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일단 고마워.
피 요원: 그런데 그쪽은 누구십니까?
여성: 아까 문 열었을 때 소개했잖아. 사람 말을 주의깊게 듣는 편이 아니구나?
피 요원: 아뇨, 애초에 말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만.
여성: [침묵] 나 자기소개 안 했어?
금 요원: 네, 안 하셨습니다.
아주르: 에이, 또 까먹었나 보네. 나는 아주르Azure라고 하고, 우리 언니 바로 밑 순서야. 여기에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으니까 나중에 읽어봐.
아주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명함을 건네고 모자와 코트를 벗어서 옆에 마련된 옷걸이에 걸어놓는다. 모자와 코트에 가려져 있던 아주르의 짙은 파랑색 머리카락과 꼬리가 금 요원의 바디캠에 드러난다. 아주르의 머리에는 세이블과 마찬가지로 여우속 동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귀 한 쌍이 달려 있다.
금 요원은 아주르가 건넨 명함을 확인한다. 본인의 주장과는 달리, 명함에는 '여우흥신FOX DETECTIVE OFFICE, 2012년 이후 새 경영진이 운영 중'이라는 문구 외에 아무 정보도 적혀 있지 않다.
아주르: 그런데 나 뭐 하나만 물어볼게. 진짜로 너네가 우리 건드린 게 이번이 처음이야?
피 요원: 맞습니다. 저희도 작년에 있었던 적대 행위에 대해서 자체적으로 조사 중입니다만 아직까지는 나온 게 없습니다.
아주르: 으음, 그렇구나.
금 요원: 뭔가 쉽게 수긍하시는 것 같네요.
아주르: 어떻든 간에 앞으로 같이 일 할 사이잖아. 세이블 언니야 직접 발로 뛸 일 없으니까 마음대로 의심해도 되지. 나는 얘기가 다르다고. 그럼 너희는 일단 우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거지? 그렇게 봐도 되나?
피 요원: 그런 것 같습니다.
아주르: 좋아, 이것저것 챙겨오길 잘했네. 여기.
아주르는 옆에 놓아둔 가방에서 서류봉투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피 요원: 이건 뭡니까?
아주르: 너희 우리 아빠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 혹시나 해서 사무국에서 챙겨왔어.
요원들은 봉투의 내용물을 확인한다. 봉투 안에는 4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아시아계 남성을 찍은 사진 여러 장이 들어 있다. 대부분은 단독 사진이지만 세이블이나 아주르가 같이 찍힌 사진들도 있다. 남성은 모든 사진에서 활짝 웃고 있다.
피 요원: 그러니까 이 분이 아버님이시군요.
아주르: 맞아, 지금 너희가 보고 있는 사람은 블레이즌 상공회의소의 창립 멤버 겸 의장 겸 조폐국장 겸 5년 연속 매출 1위를 달성한 최우수 회원인 우리 아빠야. 대단한 사람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피 요원: 매출 1위라고요?
아주르: 응? 아, 내 정신 좀 봐, 이것도 얘기하는 걸 까먹었네. 우리 아빠도 놀이의 일부였어. 아마도 우리끼리 너무 재미있게 놀고 있으니까 카드 셔틀만 하는 게 조금 외로우셨나 봐. 그래서 세이블 언니가 아빠도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게 해 줬어. 카드 뒷면에는 안 적혀 있을 거야. 아빠의 사업 고객은 바깥 사람들이 아니라 아빠의 딸들이었으니까.
피 요원: 아버님은 딸들을 상대로 어떤 걸 파셨습니까?
아주르: 아, 뭐, 꽤 직관적인 거야. 카드의 본질과도 관련 있고. 아이들이 바깥 사람들과 거래를 해서 받은 카드를 들고 아빠를 찾아가면, 아빠는 칭찬 카드 한 장을 대가로……
피 요원: 한 장을 대가로?
아주르: 어……
피 요원: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주르: 미안, 이거는 부끄러워서 못 말해주겠다. 오해하지는 마. 이상한 건 아니야. 아니 이상한가? 모르겠어! 그렇지만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른단 말이야, 으……
아주르는 그렇게 말하며 꼬리를 위아래로 살랑인다.
아주르: 지금 내 얼굴 붉어졌지, 그렇지?
피 요원: 무척 뜨거우시겠습니다.
아주르: 문자 그대로 낯뜨겁네. 어쩜 좋아.
금 요원: [헛기침] 저, 혹시 여기 이 분은 누구십니까?
금 요원은 그렇게 말하며 아주르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미술관 비슷한 곳에서 SCP-462-KO-α와 딸들이 찍힌 사진이다. SCP-462-KO-α의 옆에는 세이블과 아주르 외에 또다른 한 사람이 붙어 있다. 다른 두 자매와 마찬가지로 여우속 동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보라색 귀와 꼬리가 달려 있다.
아주르: 어? 아, 우리 동생이야. 아빠한테는 셋째 딸이지.
금 요원: 이름은?
아주르: 퍼퓨어Purpure. 퍼퓨어랑 나랑 언니랑 이렇게 셋이서 사무국을 운영하고 있지.
금 요원: 그분도 지금 아버님을 수색하고 계신 겁니까?
아주르: 아니면 뭘 하겠어? 알겠지만 지금 일어난 일은 대참사라고, 대참사. 아빠를 빨리 찾지 못하면 놀이가 결국 완전히 끝나버릴 거야.
피 요원: 만약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면, 그때는 어떻게 됩니까?
아주르: 음, 어릴 적에 형제자매나 친구들이랑 놀았던 거 기억 나? 그러다가 완전 재미있는 놀이를 찾아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집중했었던 적 있잖아. 그러다가 어떻게 됐어? 그냥 끝나버렸지? 너네는 헤어지면서 "뭐 어때, 내일 아침에 다시 모여서 재미있는 놀이 다시 시작하면 되지" 이랬겠지? 그런데 정작 다음날 아침에 다시 만나면 그 놀이가 정확히 왜 재미있었는지 아무도 기억 못 해서 어중간하게 흉내나 내다가 싫증내고 다른 거 하러 가잖아. 그런 적 없어? 있지?
바깥 사람들의 아이한테도 끔찍한 일이지만, 우리는 아빠가 재미있게 놀라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만드신 아이들이야. 놀이가 끝난다는 건 우리 삶의 단 하나뿐인 목적을 추구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고. 목적이 없어진 아이들이 어떻게 되느냐고는 묻지 마. 나도 모르니까. 하지만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게다가 이 놀이는 우리끼리만 하는 것도 아니었잖아.
금 요원: 그러고 보니, 세이블 양이 이상행동을 보이는 몇몇 아이들을 언급했었습니다.
아주르: 그래. 지금이야 멍하니 벽을 쳐다보거나 방 문을 걸어잠그고 혼자 있고 싶다고 소리치는 정도지만, 나중에 가면 술담배를 찾거나 가출을 할 지도 몰라. 안 그래도 애들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가출이라니 생각하기도 싫네.
피 요원: 노리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까?
아주르: 너네 얘기는 아니니까 안심해. 혹시 삼대천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 바깥 사람들 중에서도 좀 뒤가 구린 녀석들 같던데, 그래도 우리 아빠한테는 함부로 개기지 못해서 악명치고는 우리 놀이에 꽤 협조적인 사람들이었지.
피 요원: 저희도 전부터 주시하고 있던 단체입니다. 잘 안다고는 못 하겠습니다만. 실은 저희가 사용했던 카드들도 삼대천 쪽 사람들에게서 찾은 물건입니다.
아주르: 그 녀석들이 저번달에 퍼퓨어한테 접근했었어. 동생 말로는 우리 상공회의소를 통째로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대. 아빠가 없어져서 이 모든 일이 생긴 거니까, 자기네들이 '보호자'를 자청하겠다나 뭐라나.
금 요원: 아버님께서 사라진 직후에 삼대천 쪽에서 상공회의소에 접촉했다면, 그 작자들이 아버님의 실종에 일조한 걸 수도 있겠는데요.
피 요원: 그러게, 예감이 좋지 않아. 그래서 동생분께서는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아주르: 아직 사무국이 멀쩡히 기능할 뿐더러, 설령 아빠가 영영 사라진 게 맞다고 해도 생판 처음보는 시커먼 아저씨들을 새아빠로 삼는 게 말이 되냐고 하고 내쫓았지. 그런 다음에 세이블 언니한테 연락했어. 그걸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아서 다들 걱정 중이야. 아빠의 딸로서 말하자면, 그런 시도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소름끼치기도 하고.
피 요원: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삼대천 입장에서는 지금 자매분들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굉장히 탐날 겁니다.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데다가 솜씨도 좋으니까요.
금 요원: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바깥 사람이 공식적으로 여러분의 보호자가 되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그러니까, 이 놀이의 규칙 상 말입니다.
아주르: 그건 불가능해. 아까 말했었지? 아빠도 이 놀이에 참가자 자격으로 낀 거라고? 아빠도 세이블 언니도 모두 놀이의 규칙을 따라야 해. 만약에 삼대천 녀석들이 어디서 온 건지 모를 놈을 하나 데려와서 우리 새아빠로 삼는다면 거부감은 둘째치고 그 '새아빠'도 아빠가 했던 그대로 상공회의소 회원이자 조폐국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되는 거야. 그 놈이 카드를 만들어낼 재주가 있을 리는 없을 테니 문제 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될 테고.
피 요원: 그 놀이 규칙이라는 게 그 자체로 강제성이 강하군요. 혹시 그 규칙이 악용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아주르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린다.
피 요원: 잘 생각해 보세요. 삼대천을 상대로 허를 찔리고 나면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정말 높습니다.
아주르는 손으로 턱을 감싼다. 아주르가 생각에 잠긴 동안 그녀의 꼬리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아주르: 맞다! 블레이즌 은행! 그 은행의 가장 안쪽에 우리 놀이 규칙이 적힌 최종 계약서가 보관되어 있어. 아빠랑 세이블 언니, 나, 퍼퓨어, 그리고 이 놀이에 참여하는 모든 아이들의 서명이 적힌 물건이야. 만에 하나 최종 계약서가 소실되거나 삼대천 손에 들어가면…… 세상에.
금 요원: 놈들 손에 들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아주르: 놈들이 은행에서 최종 계약서를 강탈하고 사무국을 제압하고 나면, 혼란에 빠진 아이들한테 자기들이 새로 쓴 계약서에 서명하게 만들 수 있을 거야. 아이들에게 새 놀이 규칙을 강제하는 거지. 문자 그대로 무슨 규칙이든 가능해. 삼대천 사원들만 아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하게 할 수도 있고, 아이들이 받은 칭찬 카드를 전부 삼대천에 상납하게 만들 수도 있고. 솔직히 이 정도로 끝나면 양반이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피 요원: 끔찍하군요.
금 요원: 우리가 막아야 합니다. 막을 수 있어요.
아주르: 그래, 우리가 막을 수 있을 거야!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아빠를 다시 찾는 거지. 아빠가 다시 돌아오면 삼대천이 우리를 어떻게 해 볼 수도 없을 테고, 만에 하나 녀석들이 은행을 노린다고 해도 다른 모든 게 정상이라면 사무국이 돌아가면서 불침번이라도 서지 뭐. 내가 장담하는데 서로 할 일이 그것뿐이라면 우리보다 바깥 사람들이 먼저 나가떨어질 걸?
피 요원: 얘기는 다시 아버님을 찾는 것으로 돌아왔군요. 일단 저희 측에서는 아버님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저희와 접선하기 전에 뭔가 찾은 것이 있으십니까?
아주르: 어, 그러고보니 뭔가 전할 말이 있었는데…… 젠장, 또 까먹었어…… 아! 금홍서!
금 요원: ……네, 그건 제 이름입니다만.
아주르: [코웃음] 그 멍청하게 들리는 대답은 뭐야? 아냐, 미안, 기억났어. 진짜로 기억난 게 그거야. 그러니까, 퍼퓨어가 너를 데려오라고 했었어.
금 요원: 저를 말입니까?
아주르: 응. 그 아이가 자기 연구실을 거점으로 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를 모두 관리하고 있는데, 네가 세이블 언니랑 만났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자기 연구실에도 한 번 들러달라고 했었어. 너희 쪽에 전달할 정보가 있다면서.
금 요원: 연구실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주르: 위치는 비밀. 모르는 데를 어떻게 가냐고? 못 가지. 그래서 내가 같이 가는 거야. 우리가 같이 일하는 사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알려줘 버려도 좀 이상하잖아, 그렇지?
금 요원: [피 요원을 바라본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피 요원: 갔다와. 난 이사관님이랑 같이 이쪽에서 수색을 진행하도록 하지.
금 요원: 알겠습니다. [아주르를 바라보며] 초대를 받아들이죠.
아주르: 정말? 잘 됐다. 난 사실 네가 거절할 줄 알았어. 음, 퍼퓨어가 이번 사건 관련해서 연구실에 새로 설치해야 되는 장비가 있다고 했는데, 너를 설득하는 데 좀 걸릴 것 같아서 그거 작업하고 있으면 내가 설득해서 데려오겠다고 했거든. 그래서 지금 바로는 어려울 것 같고…… 사흘 뒤에 여기로 다시 올게. 괜찮아?
금 요원: 네, 괜찮습니다.
아주르: 고마워. 실은 워낙에 충격적인 사건인지라 우리 편에서 협력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어. 다른 건 몰라도 사기에는 확실히 도움이 될 테니까. 이제 정말 이이코노미를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아!
금 요원: 이- 뭐요?
아주르: 내가 지어낸 말이야. '이이코노미いい子コノミ'. 착한 아이いい子들의 경제Economy 활동이잖아. 어때? 그럴듯하지?
금 요원: 글쎄요.
피 요원: 좀 별로인데.
아주르: 쳇.
[녹화 종료]
대화 이후 아주르는 요원들에게 SCP-462-KO-α와 칭찬 카드의 설계에 관련한 정보를 전달한 뒤 떠나갔다.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칭찬 카드의 유통 경로를 조사한 결과, SCP-462-KO-α의 실종을 전후하여 은행에서 교환한 카드 중 대부분이 SCP-462-KO-1 개체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사용되지 않고 대신 여러 경로를 통해 사라졌음이 밝혀졌다.
은행에서 카드를 교환해 간 고객들을 시작점으로 카드의 실종 경위를 밝혀내려는 시도는 고객들 대부분이 재단의 감시망 바깥에 있는 탓에 난항을 겪었으나, 세이블이 제출한 고객 명단에 삼대천 소속 요주의 인물들이 대거 올라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약속대로 사흘 뒤에 아주르가 거점에 다시 찾아왔다. 피도남 요원은 05K기지에 남아 칭찬 카드 추적을 지휘하기로 하고 금홍서 요원만 거점에서 아주르와 접선했다. 금 요원과 아주르는 접선 직후 정체불명의 기술을 통해 광산구에 위치한 한 폐건물로 순간이동했으며, 순간이동 이후 금 요원은 바디캠의 전원을 켜고 상황을 녹화하기 시작했다.
금홍서 요원의 녹화 기록 - 2020/04/28
[녹화 시작]
금홍서 요원은 주변을 둘러본다. 바디캠에 지하실로 추정되는 공간의 어둡고 황량한 풍경이 포착된다. 지상으로 통하는 문은 쇠사슬과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다. 공간의 측면 벽에는 2미터 정도 높이에 위치한 작은 창들이 나 있어 그곳으로 햇빛이 비치고 있다.
아주르: 짜잔!
금홍서 요원: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가…… 연구실입니까?
아주르: 당연히 아니지, 어리숙한 친구 같으니. 여기는 입구일 뿐이야. 연구실은 저기, 네 뒤에 난 문으로 들어가면 있어.
금 요원은 뒤를 돌아본다. 잡동사니들로 가려진 낡은 나무 문이 보인다. 아주르가 문으로 다가가 고철과 부서진 의자 등을 옆으로 치워 놓고 문을 연다. 문 안쪽에는 새하얀 바닥과 벽으로 구성된 밝은 공간이 있다.
아주르: 들어가자. 동생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두 사람은 문을 지나 연구실로 들어간다. 웅웅거리는 소음과 함께 돌아가고 있는 여러 대의 실험 장비들, 그리고 벽면에 걸려 있는 다양한 도표와 설계도들이 보인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복도 끝에 유리로 만들어진 불투명한 문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앞에 블라우스와 스커트, 흰색 실험 가운을 입은 작은 키의 여성이 서 있다.
아주르가 갑자기 뛰쳐나가더니 실험 가운을 입은 여성에게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든다.
아주르: 사랑하는 동생! 보고 싶었어! 너도 언니 많이 보고 싶었지?
여성은 아주르를 포옹하는 대신 아주르의 팔을 붙잡고 잡아당긴다. 여성이 몸의 회전을 이용해 아주르를 뒤로 내던지자 그녀는 날아가며 쾅 소리와 함께 유리문에 전속력으로 부딪힌다. 여성은 아주르가 연구실 바닥에 얼굴부터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손을 턴다.
퍼퓨어: 응.
아주르는 무언가 대답하려는 듯 입을 벌리지만 고통이 심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퍼퓨어는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아주르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금 요원을 돌아본다.
퍼퓨어: 좋지 않은 첫인상을 남겼군요.
금 요원: 괜찮은 겁니까?
퍼퓨어: 유리문이요? 네. 이번에 튼튼한 걸로 다시 설치했거든요.
금 요원: 그- 아니, 됐습니다. [손을 내민다] SCP 재단의 금홍서 요원입니다.
퍼퓨어: [악수하며] 언니들한테서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힘든 순간에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제 이름은 퍼퓨어에요. 사무국의 막내이자 기술 고문이죠. 그럼 서로 소개도 끝났으니까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금 요원: 그러죠.
퍼퓨어: 이쪽으로 오세요.
퍼퓨어는 그렇게 말하며 유리문 옆에 붙어 있는 지문 인식 키패드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유리문은 거의 아무 소음 없이 열린다. 한편 퍼퓨어가 유리문 쪽으로 몸을 돌리자 금 요원의 바디캠에 그녀의 보라색 꼬리가 실험 가운 아래로 빠져나와 있는 것이 포착된다. 그녀의 자매들에 비해 꼬리가 훨씬 풍성하고 길다.
아주르: 동생, 저 남자가 네 꼬리 쳐다보고 있어. 하긴 워낙에 푹신하고 탐스러워 보이니 어쩔 수 없- 케엑!
퍼퓨어는 아주르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를 밟고 지나간다. 퍼퓨어가 유리문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본 금 요원은 그녀를 따라가며 아주르를 일으켜 세운다.
유리문 안쪽에는 데이터실로 추정되는 공간이 있다. 커다란 서버 메인프레임 한 대가 공간 안쪽에 설치되어 있다. 메인프레임 왼편에는 데스크탑 PC 한 대가 놓여 있고 반대편 벽에는 여러 개의 모니터가 부착되어 다양한 지역의 지도 이미지를 띄우고 있다.
아주르: 우와! 컴퓨터다! 나 이거 써도 돼?
퍼퓨어: 여기 와서 처음 하는 말이 그거야? 정 컴퓨터 켤 거면 그걸로 내가 데이터 처리하는 거나 좀 도와주던가.
아주르: 이게 다 뭐야?
퍼퓨어: 아버지가 관련되어 있는 걸로 추정되는 사건들. SNS나 다른 미디어에서 긁어모은 거야. 아직 자세히 확인하지는 못 했는데 그것 좀 대신 해 주면 고맙겠어.
아주르는 컴퓨터 앞에 앉아 꼬리를 흔든다. 퍼퓨어는 그런 아주르를 한 번 흘겨본 뒤 금 요원에게 다가간다.
퍼퓨어: [귓속말로] 사실 다 쓸모없는 정보에요. 우리 둘째 언니가 다른 건 다 좋은데 지능에 하자가 있어서 이렇게라도 에너지를 낭비시켜야 멍청한 질문 같은 걸로 우릴 방해하지 못해요.
금 요원: 어……
퍼퓨어: 요원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한 가지 도와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어요. 당신네 조직이 작년에 우리 자매들에게 접촉했을 때랑 관련이 있어요.
금 요원: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아주르에게 그렇게 말했었는데요.
퍼퓨어: 알아요. 그런데 저희가 그 사람들이 SCP 재단 소속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요?
금 요원: 그러고 보니 궁금하군요. 저희는 쉽게 정체를 밝히지 않습니다.
퍼퓨어: 사실 처음에는 재단이라는 단체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하지만 그때는 아버지가 사라지기 전이었으니까요.
금 요원: 아.
퍼퓨어: 당신네 요원이 우리 자매들의 환심을 사려고 고객인 척 하며 접근했을 때 아이들은 가장 먼저 사무국에 신고했어요. 우리는 그 사실을 아버지한테 알렸고요. 그런데 평소랑 다르게 아버지께서 직접 처리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상했죠. 바깥 사람들이랑 관련된 문제가 생기면 보통은 저희 사무국이 해결하거든요.
금 요원: 아버님께서는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퍼퓨어: 저희도 자세히는 몰라요. 그 자리에는 아버지랑 재단 측 요원 말고 아무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그 다음 주에 아버지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저희 앞에 나타나셨어요.
금 요원: 충격이 크셨겠군요.
퍼퓨어: 저는 약간 놀랐어요. 아주르 언니는, 뭐 별 반응이 없었고요. 아마 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세이블 언니는 거의 기절할 뻔했죠. 아버지는 우리 표정을 보시더니 웃으시면서 자기 피가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금 요원: 설마 그 사람을 어떻게 한 겁니까?
퍼퓨어: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아버지는 그쪽 사람이랑 얘기가 잘 끝났다면서 선물도 받았다고 하셨어요. 저희에게 그걸 보여주시기까지 하셨죠.
금 요원: 무슨 선물이었습니까?
퍼퓨어: 여기요.
퍼퓨어는 그렇게 말하며 가운 주머니에서 플래시 드라이브 하나를 꺼내 금 요원에게 건넨다. 금 요원은 플래시 드라이브를 받아들고 살펴본다. 크롬빛 광택이 나는 평범한 크기의 기억 장치이다. 상부에 SCP 재단의 마크가 그려져 있다.
퍼퓨어: 그때는 보기만 하고 거의 잊어버렸는데, 아버지가 실종되고 나니까 갑자기 이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었던 건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저랑 아주르 언니가 이걸 찾기 위해 아버지 집을 샅샅이 뒤졌어요.
금 요원: 이걸 왜 제게 주시는 겁니까?
퍼퓨어: 찾아내자마자 연구실로 가져와서 읽으려 해 봤는데, 아버지 외에 다른 사람은 절대 내용을 열람할 수 없도록 되어 있더라고요. 보안을 강제로 뚫을 수도 있겠지만 계산해 보니 시간과 자원이 너무 많이 들어갈 것 같더라고요. 제 능력으로는 무리에요.
금 요원: 하지만?
퍼퓨어: 하지만 나중에 재단 소속 인원이 장치를 회수할 상황을 대비한 건지, 적절한 보안 인가를 갖춘 인원에 따라 보안 절차를 해제하고 내용을 열람하는 게 가능한 것 같아요. 그쪽 조직 내에서만 쓰이는 용어를 잘 몰라서 정확히 어느 직급 이상의 인원이 필요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금 요원: 그러니까 저희더러 이 플래시 드라이브 내용을 읽어 달라는 말씀이시군요.
퍼퓨어: 가능할까요?
금 요원: 일단 상관에게 한 번 연락을 드려 봐도 되겠습니까?
퍼퓨어: 물론이죠. 아, 여기서는 전화 신호가 안 잡힐 거에요. 바깥 복도에서 전화하세요. 문은 있다가 제가 열어드릴게요.
금 요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휴대전화를 손에 든 채 유리문 밖으로 나간다. 유리문 밖으로 발을 내딛던 금 요원은 잠시 멈칫하더니 퍼퓨어를 돌아본다.
금 요원: 동생분들 중에 정보기술 전문가는 없습니까?
퍼퓨어: 있긴 하지만 그 아이한테 부탁하려면 카드가 있어야 되잖아요.
금 요원: 그러네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금 요원은 유리문 밖으로 나와 복도에서 피도남 요원에게 전화한다. 아래의 전화 내용은 금 요원의 휴대전화에 녹음된 것을 바탕으로 녹화 기록에 이어붙인 것이다.
금 요원: 선배님, 금홍서입니다.
피도남 요원: 금 요원, 지금 어디야?
금 요원: 어? 네. 무슨 일 있습니까?
피 요원: 지금 이쪽에서 칭찬 카드가 발신하는 신호를 추적 중이거든? 근데 삼대천 놈들이 빼돌린 카드들이 다 한 곳에 모여 있어. 자네 위치 근처야. 신호 강도가 장난 아니게 센 것 봐서는 한 수백 수천 장이 거기 보관되어 있는 모양인데.
금 요원: 뭐라고요?
피 요원: 기술 쪽에 여러 번 확인해 봤는데 프로그램 오류는 절대 아니라는데.
금 요원: [유리문 쪽을 돌아본다] 씨발.
피 요원: 도움 필요해?
금 요원: 네, 지원팀 하나 보내주세요. 최대한 빨리.
피 요원: 지금 간다. 조심하고.
금 요원은 전화를 끊고 품에서 총을 꺼낸다. 금 요원이 유리문에 손을 대려는 순간 안쪽에서 비명이 들려온다.
금 요원: 아주르!
아주르: 이, 이게 무슨……? 퍼…..퓨어! 멈춰! 제발 멈춰 줘……! [비명]
문 안쪽에서 누군가가 쓰러지는 듯한 쿵 소리가 들린다. 유리문이 열리자 금 요원은 급하게 선글라스로 위장된 인지 필터를 착용한다. 금 요원은 총을 겨누고 유리문 안으로 들어간다. 컴퓨터와 벽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밈적 살해 인자가 띄워져 있고 바닥에는 아주르가 쓰러진 채 경련하고 있다.10
금 요원은 빠르게 퍼퓨어를 찾아 그녀에게 총을 겨눈다. 퍼퓨어는 가만히 선 채 그를 쳐다본다.
금 요원: 이게 무슨 짓입니까?
퍼퓨어: 시간 끌기.
뒤에서 미약한 소음과 함께 유리문이 열린다. 금 요원은 급히 몸을 돌려 걸어들어오는 정체불명의 남성을 총으로 조준하지만 그 순간 등 뒤에서 수 차례의 총성이 들린다. 바디캠의 화면이 격하게 흔들린다.
[녹화 중단]
이 시점에서 금홍서 요원의 바디캠은 금 요원의 몸을 관통한 총알에 파괴되었다. 피도남 요원이 이끄는 긴급대응팀이 금 요원의 위치로 파견되었으나 15분이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러나 긴급대응팀이 연구실에 돌입했을 때 금 요원은 응급처치를 받고 안정화된 상태였다. 신원이 불분명한 남성 한 명과 격심한 두통을 호소하는 아주르가 금 요원과 같이 있었다.
사건 종료 후 퍼퓨어의 연구실 안에서 실험에 쓰이는 것으로 추정되는 음성 기록 장치가 발견되었다. 해당 장치는 일정 데시벨 이상의 큰 소음이 발생할 시 자동으로 녹음을 시작하도록 조정되어 있었다. 다음은 총성이 발생한 직후부터 음성 기록 장치가 녹음한 내용이다.
회수된 녹음 기록 - 2020/04/28
[탄피 떨어지는 소리]
퍼퓨어: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네. 그 잘나신 재단에서 보낸 요원이라길래 긴장했는데.
신원 불명의 남성: 지랄. 너 때문에 총 맞을 뻔했잖아. 물건은 어디 있어?퍼퓨어: 저기. 메인프레임 옆에.
신원 불명의 남성: 어이쿠, 무겁기도 해라. 이 안에 다 카드만 들어 있는 거야?
퍼퓨어: 그래. 그게 내가 아는 한 전부야.
신원 불명의 남성: [휘파람] 지금 가격으로 이게 다 얼마야? 살판 났네.
퍼퓨어: 한 가지는 확실히 하자. 너네 애들이 약속대로 최종 계약서를 가지고 오면 새 규칙은 내가 정할 거야. 어떤 장난이든 쳤다가 걸리면 거기 들어있는 카드들 다 종잇조각으로 만들어 버릴 거다, 알겠어?
신원 불명의 남성: 아, 예, 예, 알겠습니다요.
아주르: [고통에 찬 신음]
신원 불명의 남성: 어라, 살아있네?
퍼퓨어: 그깟 이미지 파일 쪼가리에 죽을 리가 없지. 애초에 죽일 생각도 없었고.
신원 불명의 남성: 그럼 여기 총 맞은 친구는?
퍼퓨어: 몰라. 알 게 뭐야. 아마 죽겠지. 솔직히 너희 바깥 사람들은 너무 약해 빠졌어. 언니랑 얘기 좀 할 테니까 밖에 나가서 기다려.
신원 불명의 남성: 야, 근데 너 말투가 좀 싸가지 없다? '기다려주세요' 해봐. 이왕 예쁘장한 꼬리랑 귀 달고 있으니 말도 좀 귀엽게-
퍼퓨어: 꼬리에서 손 떼. 팔 잘라버린다.
신원 불명의 남성: 씨발, 여우년, 성질머리 하고는…… 난 먼저 간다. 만나기로 한 장소 알지?
[유리문 작동하는 소리]
아주르: 퍼퓨어…… 이게…… 뭐야……? 몸이…… 안 움직여……
퍼퓨어: 가위 눌렸다고 생각하고 5분만 그대로 있어.
아주르: 무슨…… 짓을……
퍼퓨어: 삼대천이랑 거래를 했어. 나는 그쪽에 계약서가 어디 있는지 말해주고, 삼대천에서는 내가 새 놀이 규칙을 쓸 수 있도록 해 줄 거야.
아주르: 왜…… 새 규칙이…… 필요해?
퍼퓨어: 언니. 아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내가 찾아봤어. 정말, 정말 열심히 찾았다고. 모든 골목, 모든 비밀 장소, 모든 위험 지역, 전부 다. 하지만 아빠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고. 아빠는 우릴 남겨두고 영영 떠났거나 죽은 거야.
아주르: 그럴 리…… 없어…… 아빠는……. [신음]
퍼퓨어: 언니는 언제나 낙관적인 편이었지. 있잖아, 나도 이 놀이 하면서 정말 재미있었어. 그렇지만 그런 위험한 놀이 규칙을 만들어 놓고 지킬 수 있는 힘은 아빠한테만 있어. 우리는 아빠만큼 강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아. 사무국은 그 자체의 힘만으로 상공회의소를 지탱할 수 없어.
하, 상공회의소에 사무국에, 하여튼 세이블 언니 이름 지어내는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세이블 언니나 아주르 언니나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 돌보느라 참 쓸데없이 고생하는 것 같아. 솔직히 말하면 난 지쳤어. 돌아오지 않는 아빠 기다리는 것도 지쳤고, 더 이상 재미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놀이에 계속 매달려 있는 것도 지쳤다고.
아주르: 세이블 언니가…… 이걸 알면……
퍼퓨어: 마음이 찢어지겠다, 그렇지? 흥, 지금쯤 삼대천 쪽 사람들이 은행에 쳐들어가는 중일 거야. 최종 계약서를 챙길 때 거기 있는 애들까지 한 번에 데려오기로 했어. 물론 세이블 언니도. 나중에 서로 얼굴 보고 얘기하겠지만 아마 그 때면 세이블 언니는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닐 거야.
아주르: 퍼퓨어, 넌…… 그러지 마, 네 자매들한테는……
퍼퓨어: [한숨] 너무 걱정하지 마. 난 놀이를 끝내버리겠다는 게 아니야. 그저 규칙을 새로 쓰고 싶은 거지. 우리는 계속 바깥 사람들하고 거래할 거고, 칭찬 카드도 계속 쓰일 거야. 하지만 조폐국장이 사라졌으니까 예전처럼 마구 카드를 남발해서는 안 되겠지. 카드는 내가 전부 가지고 있을 거야. 그리고 새 보호자가 원할 때 몇몇 사람에게만, 그리고 한 장씩만 좋은 일에 대한 보답으로 나눠줄 거고.
아주르: 다시 말해서, 그 놈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기침]
퍼퓨어: 더 이상 얘기하지 마. 난 갈게. 일이 정리되면 다시 만나자…… 안녕.
아주르: 퍼퓨어, 안 돼……!
[유리문 작동하는 소리]
아주르: 금홍서, 금홍서……! 살아 있어? 아직 숨 쉬고 있지……?
금홍서 요원: [미약한 신음]
아주르: 죽는 거야? 아니지? 제발 아니라고 해 줘……! 아니, 뭐라고 대답이라도……
[바깥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아주르: 어……?
[유리문 작동하는 소리]
아주르: 으으으으으으……!
[몸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
[금속 물체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
신원 불명의 남성:11 허, 총을 들 힘이 없는 모양이지?
아주르: 당신 누구야? 여긴 뭐하러 왔어?
신원 불명의 남성: 그쪽을 도우러 온 사람이니까 총에서 손 떼. [무전기 비프음] 컨트롤, 패스파인더입니다. 네. VIP들 발견했습니다. 한 명은 상태가 안 좋고 한 명은 죽기 직전입니다. 변칙 개체 사용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처치 후 05K와 접선하겠습니다. [무전기 비프음]
[부스럭거리는 소리]
[홀로그램 키보드로 무언가 입력하는 소리]
신원 불명의 남성: 클레피라고 했지? 내가 곧 바빠질 것 같으니까 카드는 지금 줄게. 저기 누워있는 저 남자 보여? 총상. 9mm 파라벨럼 탄. 흉부에 한 발, 복부에 세 발. 중요한 사람이니까 잘 좀 부탁할게.
아주르: 칭찬 카드? 하지만 그건 퍼퓨어가 전부 가져갔을 텐데……?신원 불명의 남성: 흠. 네 동생이 유능하긴 하지만 프로 수준에는 못 미치거든. 그건 그렇고 그쪽도 도움이 필요한가?
아주르: 나? 글쎄, 머리는 깨질듯이 아프고, 꼬리털은 너덜너덜하고, 귀는 접혔는데 펼 힘이 없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롱코트는 엉망으로-
신원 불명의 남성: 안 도와줘도 될 것 같군.
[여러 명의 다급한 발소리]
신원 불명의 남성: 15분인가. 그래도 거리 생각하면 꽤 빨리 왔네.
피도남 요원: 손 머리에 올려! 두 손 다!
신원 불명의 남성: 정보부 식별 부호 1403-MCP.
피 요원: 뭐? 젠장, 식별 부호 확인. 당신 누구야?
패스파인더: 콜사인 패스파인더, 2등급 현장 요원, 재단 정보부 공작팀. 콜사인 미션 컨트롤.
피 요원: 당신이 우리 친구들이 얘기한 작년의 불청객이군. 이사관님 요청도 씹더니 이제 와서 나타난 이유는 뭐야?
패스파인더: 여기서는 밝힐 수 없습니다. 그쪽과 동행할 테니 이사관님과 얘기하게 해 주십시오.
[이하 내용 생략]
금홍서 요원과 아주르는 05K기지 의료부로 이송되어 치료받았다. 아주르는 간단한 타박상 및 열상 치료만 받고 복귀했다. 금 요원의 경우 이송 직후 의식을 회복하였으나, 총상에서 완전히 회복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패스파인더는 심문을 위해 05K기지에 임시로 구금되었다. 공작팀이 05K기지 관할 구역에서 독자 행동을 벌인 이유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이사관과의 면담 요청은 거부되었다.
사건 462KO-다: 금홍서 요원과 아주르가 퍼퓨어의 연구실에 있는 동안, 블레이즌 은행은 얼굴을 가린 괴한 수십 명의 습격을 받았다. 습격의 결과 세이블을 포함해 그 장소에 있었던 SCP-462-KO-1 개체 여섯 명이 납치되었으며, 은행이 보관 중이던 마지막 칭찬 카드 15장과 최종 계약서가 도난당했다. 다음날 오후 소식을 전해들은 금가인 이사관은 제05K기지에 3종 국지적 위협 사태 경보를 발령하고 현재 가용한 현장 인력을 최대한 소집하는 한편, 상황 파악을 위해 패스파인더의 면담 요청을 받아들였다.
2020/04/29, 제05K기지 내부 비밀 기록:
패스파인더: 만나뵐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이사관님. 지금 담당하고 계시는 프로젝트에 대해-
금가인 이사관: 잠깐 스톱.
패스파인더: [침묵]
금 이사관: 난 아직 자네 이름을 모르네. 아아, 피 요원에게 이미 얘기했다는 말은 꺼내지 말고. 내가 알고 싶은 건 자네 이름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지?
클라인 요원: ……파스칼 클라인입니다. 편하게 파스칼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금 이사관: 그게 두 번째 문제네, 클라인 요원. 나는 지금 편하지가 않아. 내 몸뚱아리가 늙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지금은 자네가 속한 공작조가 내 관할 구역에서 소란을 피운 적이 있다는 게 날 제일 불편하게 하네. 하지만 상황 돌아가는 꼴을 보니 아무래도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할 것 같고, 또 자네가 내 아들을 살려서 돌아왔으니 도의상 얼굴 보고 고맙다고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요청을 받아들인 거야. 알겠나?
클라인 요원: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그 요원이 아드님이셨군요?
금 이사관: [작은 웃음] 놀랄 만한 소식을 들었으면서도 대답부터 먼저 하는구만? 마음에 들어. 그래, 아까 무슨 얘길 하려고 했었지?
클라인 요원: 지금 이사관님께서 진행하고 계신 프로젝트를 도와드리려 왔습니다.
금 이사관: 이제 와서?
클라인 요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금 이사관: 원래는 무슨 상황이었는데?
클라인 요원: 저희 공작팀은 2018년부터 삼대천 스포츠 쪽에서 운영 중인 초상 사업체들의 상세를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삼대천은 오래 전부터 한국사령부 소속 시설들의 동향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으니 저희가 섣불리 05K 같은 거대 시설에 접촉했다가는 공작 전체가 발각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금 이사관: 그래, 그건 이해할 수 있어. 계속하게.
클라인 요원: 이재아李宰亞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삼대천 스포츠 내에서 서열 5위 안에 들어가는 요주의 인물입니다. 삼대천 스포츠의 자원 대부분은 지하격투장 운영과 유지에 투입되고 있습니다만, 이재아의 경우 자기 영향력 하에 있는 조직원들을 이끌고 적극적인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금 이사관: 범죄 증거 인멸, 차량 등 불법 개조, 불법 의료시술, 뭐 그런 건가?
클라인 요원: 짐작하고 계셨군요. 맞습니다. 이재아는 궁극적으로 삼대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대기업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블레이즌 상공회의소고요. 아마 그자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지는 일일 겁니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서비스는 전부 상공회의소에 소속된 여자아이들이 훨씬 싼 가격에 더 양질의 것으로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그가 상공회의소를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었습니다.
금 이사관: 그래서 아이들과 접촉했군.
클라인 요원: 저희 목표는 처음부터 SCP-462-KO-α였습니다. SCP-462-KO-1 개체에게 접촉한 건 순전히 그를 불러내기 위함이었죠. 저희 공작팀 전력으로 이재아와의 정면대결은 불가능했습니다. 설령 사무국이 의심을 거두고 저희와 협력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겠죠. 하지만 SCP-462-KO-α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금 이사관: SCP-462-KO-α가 혹시 유명한 사람인가?
클라인 요원: 정말 죄송합니다만, SCP-462-KO-α에 대한 내용은 전부 3등급 이상의 정보부 기밀이라 저도 알지 못합니다. 그가 타입 그린이고 오래 전부터 연합의 위협 존재 데이터베이스에 올라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아무튼 저희는 SCP-462-KO-α의 손을 빌려 이재아의 팔다리를 자를 생각이었습니다. 피도남 요원이 퍼퓨어의 연구실에서 회수한 그 플래시 디바이스 기억나십니까?
금 이사관: 기억 나네.
클라인 요원: 그 안에는 이재아의 영향력 아래 있는 점조직들 구성원과 위치가 기록되어 있는 파일이 담겨 있었습니다. SCP-462-KO-α는 그 플래시 드라이브를 받아갔고, 몇 주 뒤에 이재아의 파벌 내부에서 항쟁이 일어나서 수십명이 죽었습니다. 내부 항쟁이라는 건 그쪽 표현이고, 실상은 아마 많이 달랐을 겁니다.
금 이사관: 차도살인지계의 성공적인 사례로군. 축하하네.
클라인 요원: 저희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재아는 자기 손과 발을 잃었고 삼대천 스포츠 내에서의 영향력도 축소되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에는 아예 잠적해 버렸고요. 그런데…… 두 달 전에 SCP-462-KO-α가 갑자기 사라져버렸습니다. 상공회의소가 혼란에 빠지자 자연히 이재아에게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돌아왔습니다. 두 달 만에 그자의 발언권은 사건 이전 수준으로 복구되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이사관님 부하들이 SCP-462-KO를 처음 발견한 거고요.
금 이사관: 우리가 잔치에 조금 늦었구만. 그래서 그거 알려주려고 나를 보자고 한 건가?
클라인 요원: 사흘 전 상부로부터 새로운 지령이 내려왔습니다. 현지 보안 시설과 협력해서 사무국을 포함한 SCP-462-KO-1 개체들을 전원 확보 및 격리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금 이사관: [침묵]
클라인 요원: 대한민국에 위치한 보안 시설 중에 수십 명의 인간형 변칙 존재를 안전하게 격리할 수 있는 곳은 21K밖에 없었습니다. 공작관님도 그렇게 생각하셨고요. 그러고는 저를 여기로 보내서 이사관님께 도움을 요청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금 이사관: 잠깐, 뭐?
클라인 요원: 저도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공작관님께서는 분명히 21K가 아니라 05K기지 이사관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씀하셨고 한 마디도 정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금 이사관: 왜지?
클라인 요원: 저도 모르겠습니다.
금 이사관: 짐작 가는 거 있나?
클라인 요원: 저는 현장 요원일 뿐입니다. 주제넘게 상관의 의도를 넘겨짚고 싶지는 않습니다.
금 이사관: 내 경험상 재단 같은 조직에서 근무하는 인원들에게 있어 주제넘기는 정신에 아주 유익한 활동이네. 연습하는 셈 치고 여기서 한 번 해봐.
클라인 요원: [한숨] 블레이즌 상공회의소가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매우 다양합니다. 은둔자와 요주의 인물, 심지어는 범죄자들까지 SCP-462-KO만 있으면 자신에게 매우 절실한 도움을 거의 즉시 받을 수 있죠. SCP-462-KO의 고객 중 변칙성에 무지한 일반인은 전무하고요. 결과적으로, 블레이즌 상공회의소의 사업은-
금 이사관: 장막 정책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클라인 요원: 상공회의소 회원들이 전원 격리되면 이재아의 유일한 경쟁자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됩니다. 이재아가 부리는 하수인들이 상공회의소처럼 세련된 방식으로 사업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금 이사관: 아마 어렵겠지.
클라인 요원: 그리고 저희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제05K기지는 대한민국에 위치한 보안 시설 중 가장 변칙 존재들에게 관용적인 곳입니다. 격리 중인 변칙 개체가 05K기지 산하 기동특무부대의 최중요 요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사실상 변칙성의 존재를 긍정하는 산하 부서도 두 곳이나 됩니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전임 이사관 때부터 이어져온 것으로-
금 이사관: 거기까지.
클라인 요원: 실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문제가 되는 단체와 물리적인 거리가 제일 가깝기도 하고요.
금 이사관: 자네 상사 의도는 잘 알겠네. 2년 전부터 철천지원수였던 놈한테 고춧가루 뿌려주고 싶은데 상부 명령이 그러니까 자기 손으로는 못 하겠고, 다른 사람 손 빌리려고 보니 우리 손 만한 게 없다는 말이지? 하, 나중에 일 틀어지면 우리 독단이라고 덮어씌우기도 쉽겠고 말이지.
클라인 요원: 공작관님께서는 이사관님과 마찬가지로 재단의 이익을 수호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모색하시는 것 뿐입니다.
금 이사관: 전혀 못 믿겠는데.
클라인 요원: 그래도 하실 생각이시죠, 안 그렇습니까?
금 이사관: 방금 뭐라고 했나?
클라인 요원: 한 번 주제넘어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금 이사관: [코웃음] 마음에 드는 친구구만. 하지만 암만 그래도 이런 일을 주제넘기 한 번으로 결정지을 수는 없는 법이네, 알지? 자네 공작관에게 돌아가서 추후에 연락하겠다고 전하게.
클라인 요원: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금 이사관: 아, 한 가지만 더.
클라인 요원: 네?
금 이사관: 자네 공작관이 그걸 알고 자네를 보낸 건가?
클라인 요원: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금 이사관: 훌륭한 대답이군. 잘 가게나.
3시간 뒤, 제05K기지 모처:
금가인 이사관: 몸은 좀 어떤가?
아주르: 몇 군데 뻐근하긴 하지만 괜찮아요.
금 이사관: 그런가? 다행이군.
아주르: 저, 아드님 일은 죄송합니다. 제가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금 이사관: 자네 동생이잖나. 그런 사람을 의심하는 건 쉽지 않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네 다른 동생이 내 아들 목숨을 구했으니 오히려 내가 자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판이네.
아주르: 그런가요……
[침묵]
금 이사관: 회수된 기록에서 본 거랑은 다르게 굉장히, 뭐랄까, 축 늘어져 있군.
아주르: [약한 웃음] 제가 좀 신을 내긴 했죠.
금 이사관: 역시 동생 때문인가?
아주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금 이사관: 흠. 이봐, 혹시 늙은이가 하는 옛날 이야기 좋아하나?
아주르: 어…… 예전에 아빠가 이런저런 모험담 말해주는 건 재미있게 듣기는 했어요. 아빠가 늙은이는 아니었지만.
금 이사관: 내가 아이가 둘이야. 아들 하나 딸 하나. 아들놈 얼굴은 자네가 잘 알지? 젊은 시절에는 애 둘이 무슨 대수냐 했지. 그때는 또 직급이 낮아서 현장에서 막 구르고 다녔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체력이 남다르다고 자부하기도 했고. 그런데 그게 아닌 거야. 애들이 학교 다녀와서는 자기들끼리 막 온갖 놀이를 다 하면서 집을 휘젓더라고. 술래잡기에 숨바꼭질에, 나중에는 뛰어다니지 좀 말라고 퍼즐을 사 줬더니 퍼즐조각 잃어버린 거 찾겠다고 소파를 들어버리더라니까.
그런데 나는 일하고 돌아오니까 놀아줄 힘이 없는 거야. 물론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집에 들어왔을 때 애들 달려나오는 거 보면 기분 좋지. 그렇긴 한데 애들이 내 팔을 잡아끌고 자기들 노는 방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하니까 나중에는 겁부터 나더라고. 그래서 대책을 세웠어, 이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아주르: 어떻게 하셨나요?
금 이사관: 숨었어. 알아, 자네 동생의 음울한 추측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일단 들어봐. 대충 짐작하겠지만 우리 요원들은 숨는 데 일가견이 있거든. 그러면 아이들은 찾기 귀찮으니까 전처럼 자기들끼리 놀러 돌아가고. 그러면 나는 그 아이들이랑 가까운 데 몸을 숨겨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다렸어.
아주르: 기다리다니, 뭐를요?
금 이사관: 놀이가 끝나는 거. 놀이가 끝날 때도 여러 유형이 있더라고. 보통은 워낙 험하게 놀던 애들이라 다같이 방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으로 끝이 나지만, 가끔은 그냥 앉아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기도 하고, 드물지만 "나 힘들어"라고 아예 선언을 할 때도 있었지. 그러면 그 때 들어가는 거야. 간식 같은 거 챙겨서.
처음에는 짐작도 못 했는데, 애들이 이미 힘이 빠질 대로 빠지니까 자연스럽게 점잖아지는 거야. 그렇게 됐으니 우리 셋이 이렇게 둘러앉아서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 학교에서 뭐 배웠고 친구랑 어떻게 지내는 지 물어보고 할 수가 있는 거지. 마법 같은 일이었어.
아주르: ……그러니까 놀이가 끝날 때까지 저더러 손 놓고 있으라는 말씀이신가요?
금 이사관: 퍼퓨어는 춘부장께서 돌아가셨거나 영영 떠나셨다고 보고 있지만, 사실 아버지가 놀이에서 사라지는 이유로 그럴듯한 것을 따지자면 합리적인 설명이 수만가지가 있다네. 그리고 이 상공회의소라는 게 놀이치고는 굉장히 살벌한 편이거든. 나도 춘부장님께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네만, 그렇다고 놀이를 그냥 끝내버리면 그건 그리 재미있는 일이 아닐 것 같네.
아주르: [침묵]
금 이사관: 아까 자네가 만났던 젊은 청년이랑 얘기를 좀 해 봤는데, 아무래도 자네 당돌한 동생이 못 믿을 놈이랑 손을 잡은 것 같네. 다른 자매들을 구하려면 작전을 세워야 하는데, 그 작전이라는 게 나한테는 도박이고 내 윗사람들에게는 월권 행위일 가능성이 아주 높아. 그러니 정 작전을 강행해야 한다면 그 작전에 끼게 될 사람들의 결심이 어떤지를 알 필요가 있다고 느꼈네.
아주르: 그게 저군요. 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뭘 어떻게 해야 되죠?
금 이사관: 본질적으로는 꽤 간단한 선택이야. 자네가 더 이상 어려운 상황에서 억지로 놀이를 이어가지 못하겠다고 하면, 그때부터는 우리가 다 해결하도록 하지. 세이블 양과 아이들도 구해내고 삼대천 쪽에는 잘 말해서 더 이상 자매들에게 손 대지 말라고 하겠네. 그렇게 되면 자네는 우리 말을 들어야 해. 막 나가는 자네 여동생도 우리 방식대로 처리될 거고. 아니면……
아주르: 아니면?
금 이사관: 아니면 이왕 이렇게 된 거 모두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아예 놀이의 끝장을 한 번 볼 심산으로 달려보는 거지. 솔직히 그 경우에 일이 어떻게 진행될 지 나도 감은 안 잡혀. 하지만 이건 약속하지. 아주 재미있을 거야. 그리고 모든 게 잘 풀려서 춘부장과 상공회의소를 지켜낼 수 있으면 겹으로 재미가 있지 않겠나?
아주르: 제가 그런 결정을 내려도 돼요?
금 이사관: 애초에 자네가 춘부장을 졸라서 시작한 놀이잖아. 정 끝장을 봐야 한다면 시작한 사람이 끝내는 게 이치에 맞지. 선택권은 자네에게 있네. 어느쪽이든 우리는 자네 선택을 존중하고 자네 결정에 최대한 협력하기로 하지.
아주르: 이사관님은 이미 답을 정해놓으신 것 같은데요.
금 이사관: 자네는 아니고?
아주르: [당황] 저요? 아니…… 에이씨, 내가 언제는 앞뒤 재고 고민하는 사람이었나. 당연히 저도 한참 전에 결정했어요!
금 이사관: 아까는 잘 모르겠다며?
아주르: 이이익! 사람이 힘든 일을 겪으면 좀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고 그런 거지! 오해하지 마세요!
금 이사관: [웃음] 이제 좀 회수 기록에서 본 그 아이 같아 보이네.
SCP-462-KO 구출 작전 - 2020/04/30 ~ 05/03
다음날 제05K기지는 미션 컨트롤과 협력해 대규모 구출 작전을 개시했다. 블레이즌 은행의 습격 소식을 들은 SCP-462-KO-1 개체 수십 명이 난장판이 된 은행으로 모여들었다. 파스칼 클라인 요원이 이끄는 미션 컨트롤 소속 요원들이 상공회의소 위치로 파견되어 혼란에 빠져 있던 SCP-462-KO-1 개체들을 수습, 05K기지로 긴급 이송했다. 금가인 이사관의 명령에 따라 해당 개체들은 절차상 최소한의 변칙성 검사를 받은 후 직원 숙소에 임시로 수용되었다.
일부 개체들의 경우 칭찬 카드를 이용한 호출에도 응하지 않은 채 잠적하였으나, 아주르가 미션 컨트롤이 수집한 정보의 도움을 받아 은둔한 개체들을 찾아내 05K기지의 보호를 받도록 설득했다. 이틀 뒤에 구출 작전의 첫 단계가 완료되었으며, 아주르와 퍼퓨어, 그리고 은행 습격 당시 납치된 세이블과 은행 직원들을 제외한 총 43명의 SCP-462-KO-1 개체가 임시 수용되었다.
한편 같은 날 변칙성이 의심될 만큼 총상으로부터 빠르게 회복한 금홍서 요원이 현장에 복귀했다. 금 요원과 아주르는 소개된 상공회의소를 감시 중이던 클라인 요원에게 해당 장소에 신원 불명의 남성이 출몰했다는 첩보를 받고 출동했다.
2020/05/02, 금홍서 요원의 녹화 기록
[녹화 시작]금홍서 요원과 아주르는 상공회의소가 있었던 장소에 도착한다. 테이블과 의자는 모두 어질러져 있고 몇 개는 아예 박살이 나 있는 상태다. 테이블과 의자의 잔해 사이에 한 남성이 불안한 듯 서성이고 있다. 남성의 손에 들린 서류가방이 눈에 띈다. 금 요원이 접근하자 그를 알아챈 남성이 눈에 띄게 당황한다. 아주르가 남성의 눈에 띄지 않게 넘어진 테이블 뒤로 숨어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된다.
금홍서 요원: 거기 누구십니까? 여기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돼요.
신원 불명의 남성: 어, 어, 음. 여기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아이들은 어디로 간 거죠?
금 요원: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신원 불명의 남성: 그러니까, 여기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로 들어오시는 법을 아시는 걸 봐서는 상공회의소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금 요원: 왜 여기서 아이들을 찾으시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신원 불명의 남성: 제 딸들입니다. 제 딸아이들을 찾으러 왔습니다.
금 요원: 허. 그러니까 당신이 아주르의 아버지라는 말씀이시죠?
신원 불명의 남성: 네, 네! 맞습니다! 아주르를 아시는군요?
금 요원: 어디 보자.
금 요원은 주머니에서 SCP-462-KO-α의 사진을 꺼내 들여다본다.
금 요원: 하나도 안 닮았잖아.
신원 불명의 남성: 씨발.
신원 불명의 남성은 곧바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 하나, 어디선가 나타난 아주르가 남성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는다. 남성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금 요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주르: 앗, 나 이 사람 기억나! 그때 퍼퓨어의 연구실에서 카드 챙겨서 나간 게 이 사람이야!
금 요원: 일단 이 친구 정신 차리기 전에 미리 준비를 좀 해 놓죠.
두 사람은 아직 멀쩡한 의자에 쓰러진 남성을 앉혀 놓고 팔다리를 케이블 타이로 묶는다.
금 요원: 그런데 말입니다. 뭐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주르: 뭔데?
금 요원: 제가 그 때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던 걸로 아는데, 아무리 당신 자매분 솜씨가 좋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총을 여섯 발 맞은 사람이 며칠 만에 손상을 입은 내장을 완전히 회복시킬 수가 있습니까?
아주르: 으응, 그건 나도 잘 모르는데, 클레피 걔가 아주 가끔씩 입을 열 때가 있거든? 그때 몇 마디 주워들은 게 있어. 내 기억상 걔네가 환자들 몸에 박아넣는 빨간 액체, 그게 아주 중요하다고 그랬던 것 같아. 혈구 생성이랑 조직 손상 복구를 촉진한다고 했나?
금 요원: 그러면 정신적 트라우마는?
아주르: 어, 그 빨간 액체가 PTSD랑 기타 정신질환도 완화해주기는 하는데, 그거는 오래 못 간대. 한 일주일 쯤?
금 요원: 아……
아주르: 내 생각에는 근처 정신과에 예약 잡아놓는 게 좋겠어. 아, 깨어났다.
신원 불명의 남성: [신음] 여, 여긴 어디?
금 요원: 어디긴 어디야, 너네 이재아 따까리들이 박살낸 사업장이지. 여기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돌아왔어?
아주르: 가방 안을 한 번 볼까?
이재아 조직원: 잠깐, 그건-!
아주르가 가방을 열고 거꾸로 들자 안에서 잡동사니들과 함께 종이 한 장이 떨어진다. 아주르는 종이를 집어들고 읽는다.
아주르: "블레이즌 은행 겸 상공회의소는 새로운 장소로 이전했습니다. 회원 여러분께서는 대리인의 안내를 따라 준비된 교통수단에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주르는 종이를 금 요원에게 건넨다.
금 요원: 여기는…… 저희 요원들이 처음에 급습했던 삼대천 비밀창고군요. 그러니까 여기에 모여 있을 아이들을 속여서 창고로 데려갈 속셈이었던 모양입니다. [휴대전화를 꺼낸다] 패스파인더, 금홍서입니다. 혹시 이 근방에 수상한 차량이라던가 주차되어 있는 거 보셨습니까? 네? 아, 창문 없는 밴이요? 몇 대라고요? 네, 그 세 대 전부 삼대천 겁니다. 네, 잘 부탁합니다. [조직원을 쳐다보며] 안됐네.
이재아 조직원: 망할 새끼들……
금 요원: 야, 도의상 그렇게 굴면 안 되지. 너네가 먼저 나 죽이려고 했잖아. 그러면 세이블 양이랑 너네가 납치해간 다른 아이들도 그 창고에 갇혀 있는 거야?
이재아 조직원: 내가 병신이냐? 그걸 그냥 말해주게?
금 요원: 그 말은 병신이 되면 말해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지? 아주르 양, 부탁할게요.
아주르는 품에서 리볼버 권총을 꺼내 조직원의 어깨를 쏜다.
이재아 조직원: [비명] 이 씨발 여우년이! 꼬리를 뽑아버리겠어!
아주르는 조직원의 다리를 쏜다.
이재아 조직원: [비명과 지속적인 욕설]
아주르는 조직원의 다른 쪽 어깨를 쏜다.
이재아 조직원: [약한 신음]
아주르: 계속 소리 지를래?
이재아 조직원: [고개를 젓는다]
금 요원: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나시군요.
아주르: 근데 진짜 내가 총 같은 거 써도 괜찮은 거야? 일단 너네가 주니까 받기는 했는데.
금 요원: 괜찮습니다. 일단은요. 이번 작전이 끝난 다음에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아주르 양은 저희 쪽 요원입니다.
아주르: 그래? 흐음.
아주르는 발로 조직원을 밀어 의자째로 넘어뜨린 다음 그 위에 올라앉는다. 조직원은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토하지만 저항하지는 않는다.
아주르: 평소라면 네 몸에 총알을 아홉 발은 더 박았을 거야. 어쨌든 숨만 붙어 있으면 내 동생들이 칭찬 카드 한 장에 총알도 빼 주고, 상처도 꿰매주고, 심장에 주사기를 박아서 빨간 액체도 집어넣어 주고 할 테니까. 그런데 너네들이 수고해준 덕분에 칭찬 카드가 한 장도 안 남았거든? 그러니 지금 네 유일한 희망은 재단 소속 의사들이야.
규칙은 간단해. 내가 알고 싶은 걸 네가 전부 말해주면 돼. 참고로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나랑 저기 서 있는 요원 씨 일정이 아주 바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너한테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지가 않아. 알아들었어?
이재아 조직원: [헐떡임] 뭘 알고 싶은 건데?
[이하 내용 생략]
[녹화 종료]
그날 저녁, 제05K기지 내부 기록
금가인 이사관: 그래서, 놈한테서 뭘 알아냈지?
금홍서 요원: 저번에 저희 측에서 급습했던 삼대천 소유의 창고를 이재아의 조직원들이 다시 거점으로 쓰고 있답니다. 다 거기 있습니다. 카드, 세이블 양이랑 놈들이 잡아간 아이들까지요. 저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지키는 놈들이 늘었답니다. 바깥에 예닐곱 명, 안에는 그 두 배가 머물면서 3교대로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클라인 요원: 퍼퓨어는 연구실에서의 사건 이후 저희 감시망에 다시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십중팔구 그 창고에 있을 겁니다.
금 이사관: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그때는 일을 좀 대충 하긴 했어.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목표는 삼대천 창고의 완전 장악이다. 그 자리에 있는 조직원들은 모조리 체포하고, 탈취당한 칭찬 카드와 계약서를 회수한 다음 아주르의 언니와 거기 붙잡혀 있는 자매들을 전원 구출한다.
클라인 요원: 저희가 동원 가능한 요원 수는 저 포함해서 열 명입니다. 일단 공격받는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스무 명 남짓 되는 초상범죄자들이 격렬하게 저항할 건데, 최소한의 손실로 그들을 전부 제압하려면 이 시설에서 추가로 서른 명은 차출해야 합니다.
금 이사관: 피도남 요원.
피도남 요원: [헛기침] 금홍서 요원과 저를 포함해서 여덟 명입니다.
클라인 요원: 제가 잘못 들은 겁니까?
피 요원: 그리고 이사관님께서 요청하신 청각 군중제어 장비를 37K로부터 인계받아서 정상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클라인 요원: 아.
금 이사관: 대략 감이 잡히지?
클라인 요원: 안에 있는 조직원들은 그걸로 무력화시킨다고 쳐도, 바깥에 있는 조직원들은 어떻게 합니까?
금 이사관: 그 녀석들은 장비의 영향권 밖일 테니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압해야겠지. 어떤가, 파스칼? 자네들 열 명이서 예닐곱 명 되는 조직원을 처리해줄 수 있겠나?
클라인 요원: 흠, 사각지대가 없도록 창고 주변에 배치되어 있을 테니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희가 제일 먼저 들어가서 기습할 수 있다면…… 네, 문제 없습니다.
금 이사관: 좋아. 미션 컨트롤의 친구들이 바깥 놈들을 처리한 다음에 우리 애들이 창고 안에 군중제어 장비를 투입할 걸세. 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우리가 돌입할 때 쯤 창고 안의 조직원들은 전부 흐느적거리고 있을 거야.
피 요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저희가 받은 사양의 군중제어 장비는 한번 작동을 시작하면 내부 타이머가 멎기 전에 수동으로 정지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 요원들이 창고에 들어가려면 장비가 멈춘 다음에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러면 수십분이 낭비되는 걸 감수해야 합니다.
금 이사관: 아주르?
아주르: 네? 아, 흠흠, 네, 이사관님.
금 이사관: 저번에 퍼퓨어의 연구실에서 밈적 살해 인자를 맨눈으로 봤다고 했는데, 맞나?
아주르: 네. 으으으! 생각도 하기 싫어요. 온 몸이 갑자기 불타는 돌로 변하는 것처럼 아프긴 엄청 아픈데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봐?
클라인 요원: 밈적 살해 인자를 맨눈으로 봤다고? 너 어떻게 살아있냐?
아주르: 어, 원래 죽어야 되는 거야?
금 이사관: 보다시피 아주르는 밈을 기반으로 발현되는 재해 효과에 강한 저항력을 갖고 있지. 내 추측이지만 아마 그녀의 자매들도 비슷할 거라고 봐. 군중제어 장비도 비슷한 메커니즘이네. 밈이지. 단지 시각이 아니라 청각을 매개로 밈을 활성화시키는 게 다를 뿐이야. 우리는 군중제어 장비를 작동시킨 직후에 창고 내부로 돌입할 걸세. 우리 요원들은 아무도 들어가지 않을 거고, 단 한 명, 아주르만 그 안으로 들어갈거야.
아주르: 저기, 혹시 그거 많이 아픈가요? 제가 사실은 요 위에만 귀가 달린 게 아니고 머리카락 아래에도 귀가 한 쌍 더 있거든요.
금 요원: 그러면 귀가 네 개인 겁니까?
아주르: 응응.
피 요원: 잡담 그만. 내 생각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 군중제어 장비는 살상을 목적으로 개발된 게 아니라서 가장 예민한 사람도 혼수상태가 몇 시간 더 지속되는 정도야. 물론 귀가 네 개 전부 조금 따갑긴 하겠지만, 그 안에서 웬만큼 오래 노출되어 있는 게 아니라면 큰 문제는 없어.
금 요원: 하지만 퍼퓨어는 어떻게 합니까? 클라인 요원의 예상대로 그녀가 창고 안에 있다면 아주르가 납치된 자매들을 구출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주르: 퍼퓨어는 나한테 맡겨.
금 이사관: 오, 뭔가 계획이 있나?
아주르: 아버지가 사라지기 전에 우리 사무국 자매들은 한 번도 삼대천 쪽 사람들을 믿지 않았어요. 퍼퓨어도 마찬가지였고, 아버지가 사라지고 삼대천과 손을 잡은 지금도 그놈들을 진심으로 신뢰해서 이러는 게 아닐 거에요. 그 말은 지금 이 협력 관계에서 퍼퓨어 자신이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건데,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죠?
금 요원: 카드, 그리고 계약서.
아주르: [고개를 끄덕인다] 퍼퓨어는 카드와 계약서를 탈취하기 위해 삼대천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그 녀석들더러 계속 그걸 맡아달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분명 일이 틀어지면 빼돌릴 수 있도록 자기만 아는 안전한 곳에 보관해뒀겠죠.
클라인 요원: 도망칠 곳이 있는 사람은 도망칠 생각을 하게 되지.
아주르: 그거야. 내가 퍼퓨어를 일대일로 제압할 수는 없어도 그 아이가 일이 다 틀렸다고 생각하게 만들 수는 있어. 사실 웬만큼 침착하지 않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도 힘들 걸? 삼대천 조직원들은 다 정신이 나간 채 누워 있을 거고, 바깥에서는 요원들이 창고를 포위할 테고, 내가 세이블 언니를 풀어주면 언니는 어떻게 할까? 퍼퓨어더러 잘 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줄까?
금 이사관: 파스칼?
클라인 요원: 네, 이사관님.
금 이사관: 자네 공작조는 사건 은폐와 축소가 본업인 걸로 알고 있네. 이번에 창고에서 우리가 한바탕 소란을 피울 건데, 어느 선까지 도와줄 수 있나?
클라인 요원: 민간인 피해만 없으면 창고를 통째로 날려버리셔도 수습 가능합니다.
금 이사관: 바깥 애들 제압하고 바로 자네 할 일을 하게. 그 다음부터는 전부 우리가 맡겠네. 복귀하면 공작관님께 금가인 이사관이 언제 만나서 술 한잔 하자고 했다고도 좀 전해주겠나?
클라인 요원: [웃음] 알겠습니다.
아주르: 저, 소란이요?
금 이사관: 개인적으로, 자네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어서 기쁘네. 물론 혼자 힘으로도 충분히 퍼퓨어를 겁줘서 도망치게 만들 수 있을 테지만 우리가 좀 더…… 효과적인 수단을 준비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춘부장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퍽 재미있는 물건을 만들 줄 알거든. 뭐가 좋겠나?
아주르: 펑펑 터뜨릴 수 있는 거요.
금 이사관: 터뜨릴 수 있는 거?
아주르: 자동이면 더 좋고.
금 이사관: 허!
2020/05/03, 아주르의 녹화 기록
[녹화 시작]
아주르의 옷에 내장된 바디캠이 삼대천 창고 근방에서 대기 중인 05K기지 요원들을 비춘다.
금홍서 요원: 됐습니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네요.
아주르: 신기하네. 어디 걸리지도 않고 무게도 안 느껴져.
그 순간 무전기 노이즈와 함께 클라인 요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클라인 요원: 05K 응답 바람.
금 요원: 05K입니다.
클라인 요원: 여기는 미션 컨트롤, 작전 개시.
피도남 요원: 우리도 출발하지.
아주르와 05K기지 요원들은 차량 두 대에 나눠 타고 창고 쪽으로 향한다. 창고에 도착한 요원들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다시 무전이 들려온다.
클라인 요원: 05K, 미션 컨트롤이다. 외부 PoI들 전원 제압 완료, 손실 없음. 다음 단계를 진행할 것.
금 요원: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피 요원: 정보부 직속은 다르다, 뭐 이런 느낌인가?
클라인 요원: 그럼 저희는 경계망 설정하고 출입 통제하겠습니다. 아쉽지만 앞으로 얼굴 볼 일은 없겠군요.
금 요원: 같이 일하는 동안 즐거웠습니다.
아주르: 잘 가요!
클라인 요원: 잘 있으십시오. 나중에 좋은 목적으로 만나자, 아주르. 이상!
피 요원: 움직여! 저쪽에서 제 몫을 했으니 우리가 망칠 수야 없지.
요원들은 차량에서 공기 압축식 발사기를 꺼내 창고 앞에 고정시킨다. 금 요원이 구형의 군중제어 장비를 가져와 조작한다. 장비의 윗부분에 붉은 빛이 들어오자 피 요원이 그 아래의 지문 인식 장치에 검지를 댄다. 붉은 빛이 초록색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한 금 요원이 장비를 들어 발사기에 집어넣는다. 피 요원이 창고 벽 윗부분에 난 창문을 향해 발사기를 조준한다.
금 요원: 장전 완료!
피 요원: 조준 완료, 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발사기로부터 군중제어 장비가 사출되어 창문을 깨고 창고 안으로 떨어진다. 창고 안으로 장비가 들어간 것을 확인한 피 요원이 주머니에서 원격 작동 장치를 꺼내 붉은 버튼을 누른다. 깨진 창문으로부터 높은 음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한 차례 강한 진동이 창고를 뒤흔든다. 군중제어 장비의 소음에 창고 안의 조직원들이 지르는 비명소리가 섞여나오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피 요원: 어때, 버틸 만 한가?
아주르: 네, 괜찮아요! 다녀올게요!
아주르는 차에서 가져온 더플백 하나를 어깨에 매고 창고 정문으로 향한다. 아주르가 정문을 밀어서 열자 안으로부터 나오는 소음이 더욱 심해진다. 창고 안은 혼절한 삼대천 조직원들로 가득하다. 아주르는 조직원들을 무시하고 더 깊숙히 들어가며 세이블을 찾아 주변을 둘러본다. 창고의 한쪽 구석에 방수포가 커튼처럼 드리워져 안이 가려진 공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주르: 언니! 세이블 언니!
방수포로 가려진 공간으로부터 군중제어 장비 소음과 뚜렷히 구분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주르는 달려가 방수포를 걷어낸다. 안쪽에는 창문이 없는 밴 한 대가 주차되어 있고 그 옆에 세이블과 납치된 SCP-462-KO-1 개체들이 재갈이 물려진 채로 각각 의자에 묶여 있다.
세이블: [해석 불가능한 소리]
아주르: 잠깐만, 지금 풀어줄테니까 있다가 얘기해. 자.
세이블: [해석 불가능한 소리]
아주르: 아, 미안, 재갈을 먼저 벗길 걸 그랬네.
세이블: [해석 불가능한 소리, 매우 흥분한 것으로 보인다]
아주르: 언니답지 않게 왜 어리광이야? 자. [재갈을 벗긴다]
세이블: 푸하, 퍼퓨어를 조심하라고!
아주르: 어?
그 순간 퍼퓨어가 차량 뒤편에서 달려와 아주르를 들이받는다. 아주르는 퍼퓨어에게 들린 채 수 미터를 밀려나다가 바닥에 쓰러진다. 퍼퓨어는 아주르 위에 올라타 양 무릎으로 그녀의 팔을 누르려고 하지만 아주르가 몸을 빼내면서 퍼퓨어를 걷어찬다.
아주르는 뒤로 굴러 일어나고 퍼퓨어는 비틀거리다가 총을 꺼내 아주르를 겨눈다.
퍼퓨어: 거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
아주르: 동생, 우리 자매끼리 이러지 말자.
퍼퓨어: 나도 언니를 쏘고 싶진 않아. [주위를 둘러본다] 그 재단이라는 놈들 솜씨는 인정해줘야겠네. 그렇지만 다 소용없어. 이런다고 아버지가 돌아오진 않는다고.
아주르: 아, 그거 얘기 나와서 말인데. 어떤 할아버지가 그러더라고. 우리가 이 놀이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아빠가 돌아올 거래.
퍼퓨어: [침묵]
아주르: 오, 언니의 말에 감동했나?
퍼퓨어: 씨발 별 미친 지랄을 다 듣겠네, 그건 대체 무슨 개소리야?! 이 대가리 깨진 언니 년아! 내가 언니 때문에 못 살아!
아주르: 야, 말이 너무 심하잖아……
퍼퓨어의 뒤에서 세이블이 조용히 나온다. 세이블은 아주르를 보고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퍼퓨어: [심호흡] 집어치우고, 날 보내줘. 아직 카드랑 계약서는 나한테 있어. 계약서는 내놓을 생각 없지만 카드는 줄 수 있어. 나랑 5 대 5로 나누자.
아주르: 나눠? 으으으음…… 혹시-
퍼퓨어: 아니, 안 돼!
아주르: 누가 5인지 물어봐도 돼?
퍼퓨어: 으아아아아아!
아주르: 진정해, 동생. 그리고 카드랑 계약서가 전부 저 밴에 실려 있는 모양인데, 어차피 그 카드들을 가져간다고 우리 쪽에 카드 한 장도 안 남는 게 아니잖아?
퍼퓨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안 남는 게 아니라니?
아주르: 이런, 그렇게 순진한 척 하기야? 우리 자매들 중에 아빠가 돌아올 때를 위해서 마지막 카드 하나를 숨겨두고 있지 않은 애가 있을 것 같아? 그 말인즉슨 아직 칭찬 카드가 50장은 남아 있다는 뜻이지.
퍼퓨어: 머, 멍청한 언니나 그러겠지! 난 그런 헛된 희망따위, 버린 지 오래야!
아주르: 아아, 사랑하는 동생아, 언니는 네 거짓말에는 절대 속아넘어가지 않는단다. 지금 너 뒤져보면 카드 한 장 분명히 나올 걸? 어디에 있으려나? 실험 가운 주머니? 아냐, 너무 뻔해. 블라우스에 비밀 주머니를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나? 음, 가능성 있어. 어머나, 그것도 아니면 허벅지 안쪽 파우치에?
퍼퓨어: 그, 그 이상한 소리 당장 그만둬! 그만두라고!
아주르: 알았다! 너의 그 탐스럽고 풍성한 보라색 꼬리! 그 부드러운 털 속에 끼워두고 있었구나? 맞지? 맞지!?
퍼퓨어: 으이이이이이익! 더는 못 참아! 진짜로 쏠 거야! 아주 죽여버리겠어!
세이블: [날카로운 휘파람]
퍼퓨어: 뭐야?!
퍼퓨어는 세이블의 휘파람 소리에 평정을 잃고 세이블이 있는 방향을 잠깐 쳐다본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퍼퓨어는 급히 총구를 돌리지만 그 순간 아주르가 더플백에서 금가인 이사관에게 받은 밀코 다연장 유탄발사기를 꺼내 방아쇠를 당긴다. 퉁 하는 소리와 함께 40 mm 유탄이 퍼퓨어의 귀를 스치고 날아가 등 뒤에서 폭발한다. 퍼퓨어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폭발 현장을 쳐다본다.
아주르: 야, 이거 끝내준다!
아주르는 퍼퓨어를 아슬아슬하게 빗맞히도록 조준해서 다시 유탄 한 발을 쏜다. 두 번째 폭발과 함께 퍼퓨어는 몸을 돌려 숨겨진 공간 쪽으로 부리나케 도망친다. 잠시 후 안에서 엔진 소리와 함께 퍼퓨어가 탄 차량이 뛰쳐나온다. 차량은 뛰쳐나온 방향 그대로 직진해 창고의 얇은 벽을 뚫고 사라진다.
아주르: [무전기 소음] 재단 요원들! 지금 나가는 차량 붙잡아 줘!
피 요원: [무전기 소음] 이미 다 공사 쳐놨으니까 걱정 말고 나와.
아주르는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 창고 밖으로 나온다. 퍼퓨어가 탄 차는 재단 요원들이 설치한 스파이크에 타이어가 터져버린다. 퍼퓨어의 차는 시끄러운 마찰음과 함께 비틀거리다 멈춘다.
아주르: 엄폐해! 쟤 총 갖고 있어!
요원들은 주변의 엄폐물을 찾아 숨어든다. 그 직후 퍼퓨어가 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총을 마구 난사한다.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는다.
아주르는 유탄발사기를 든 채로 침착하게 걸어간다. 퍼퓨어는 차에서 내려 아주르를 겨누지만, 앞서 총을 마구 쏜 탓에 방아쇠를 당겨도 총알이 나오지 않는다. 아주르는 퍼퓨어가 유탄발사기 사거리에 들어오자 퍼퓨어를 조준한다. 퍼퓨어는 눈에 띄게 당황하다가 아예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감싸쥔다.
아주르는 유탄을 발사하지 않는다. 금 요원이 엄폐물에서 나와 퍼퓨어를 들쳐메고 차량으로부터 떨어진다. 퍼퓨어가 아직 머리를 움켜쥔 채 눈을 꼭 감고 있는 것이 바디캠에 포착된다.
퍼퓨어: 어라? 지금 무슨 상황인- 언니! 안 돼애!
아주르: 놀이는 끝이다!
퍼퓨어가 차량에서 멀어진 것을 확인한 아주르는 유탄을 쏴 카드와 최종 계약서가 든 차를 폭파시킨다. 불타는 종이 조각과 재가 허공에 떠올랐다가 불타는 차 주변에 천천히 떨어진다. 아주르는 만족스러운 듯 한숨을 내쉬고 유탄발사기를 금 요원에게 건넨다. 퍼퓨어는 차가 불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주저앉아 울먹이기 시작한다.
퍼퓨어: 왜, 왜 그런 거야? 놀이 계속하는 거 아니었어? 카드도 없고 계약서도 없으면 삼대천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해야 해?
훌쩍이는 퍼퓨어 옆에 세이블과 아주르가 다가간다.
세이블: 아무 말도 하지 마. 안 해도 돼.
아주르: 그래, 어차피 못 믿을 작자들이야. 아무튼 다 잘 끝나서 다행이다. 언니랑 아이들도 다 무사하지?
세이블: 우리는 뭐 좀 지치고 쑤시긴 하지만 크게 다친 데는 없어.
아주르: 잘 됐다. 나 재단 사람들이랑 같이 왔어. 그 사람들이 잘 돌봐줄거야.
세이블: 아주르?
아주르: 응, 왜?
세이블이 아주르의 볼을 잡아당긴다.
세이블: 야!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카드랑 최종 계약서까지 모조리 날아갔잖아!
아주르: 아아아아, 내, 내가 말했잖아! 그 할아버지가- 으악, 언니! 아파, 아프다고!
세이블: 그럼 그게 시간 끌려고 지어낸 헛소리가 아니라고? 너 그걸 진짜 믿은 거야?! 그래, 지금 보니까 퍼퓨어가 말 잘했다, 넌 그냥 죽어라.
세이블은 이제 아주르의 목을 두 손으로 붙잡고 들어올린다.
아주르: 켁켁! 그렇지만 그 말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그럴듯했단 말이야! 살려줘!
세이블: 어?
세이블이 놀란 눈을 하더니 아주르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아주르가 몸을 일으켜 세이블이 달려나간 방향을 보자 저 멀리 세이블이 중년의 남성에게 안겨있는 것이 보인다.
아주르: 어, 어? 어!
아주르는 급하게 몸을 일으키다가 발이 꼬여 넘어진다. 그녀는 개의치 않고 남성을 향해 계속 질주한다. 코앞에 닿을 때까지 속도를 멈추지 않아 결국 아주르가 남성을 들이받아 쓰러뜨리고 만다. SCP-462-KO-α는 아주르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다.
SCP-462-KO-α: 끄어어어……
아주르: 아빠! 어디 갔다가 이제 왔어요? 저희가 아빠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요? 얼굴 좀 봐요! 팍 늙었네! 아닌가? 하긴 원래 노안이셨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몸이 축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데 어디서 뭐 하고 계셨어요?
세이블: 야, 그만해!
세이블이 SCP-462-KO-α에게 부비적거리는 아주르의 뒷덜미를 잡고 그녀를 그대로 들어올린다. 아주르는 세이블의 팔 아래서 대롱거리면서도 꼬리를 마구 흔든다.
세이블: 아버지 힘드시겠다.
아주르: 미안. 감정을 주체 못하겠어.
퍼퓨어: ……아빠?
SCP-462-KO-α: 퍼퓨어?
퍼퓨어: 정말 아빠에요? 돌아오신 거에요?
SCP-462-KO-α: 뭐야, 이거 분위기 왜 이래?
아주르: 왜 이러냐니요. 그래서 세 달 동안 뭐하고 노셨어요?
SCP-462-KO-α: 세 달? 잠깐만, 혹시 지금이 무슨 달이냐? 2월 아냐?
세이블: ……5월 3일인데요.
SCP-462-KO-α는 눈을 크게 뜬다.
SCP-462-KO-α: 이런, 얘들아, 정말 미안하다.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시간축이 뒤틀려버렸구나. 그 요정 새끼 다시 만나면 한 대 갈겨야겠다. 그러면 너네 세 달동안 나 없이 있었던 거야? 놀이는 어떻게 됐어?
그 순간 갑자기 주저앉아 있던 퍼퓨어가 울음을 터뜨린다. SCP-462-KO-α는 매우 당황하며 퍼퓨어에게 다가간다.
퍼퓨어: 그러면 나만 바보짓 한 거잖아! 이런 법이 어디 있어?
SCP-462-KO-α: 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아빠가 미안해.
퍼퓨어: 아빠 말고 칭찬 카드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단 말이에요! 안 그래도 바깥 사람들이 놀이 규칙을 안 지켜서 힘들었는데 아빠가 사라지니까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다고요! 저는 뭐 좋아서 삼대천에 무서운 아저씨들이랑 거래를 한 줄 알아요?! 그 방법 밖에 생각이 안 났다고요!
퍼퓨어는 SCP-462-KO-α의 품에 얼굴을 파묻는다.
퍼퓨어: 무서웠단 말이에요. 왜 이제야 왔어요?
SCP-462-KO-α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주르: 동생, 마지막 칭찬 카드 안 쓸 거야? 마침 아빠도 네 눈 앞에 있는데.
퍼퓨어: [훌쩍임] 그래야겠다.
퍼퓨어는 자신의 꼬리를 움직여 몸 앞에 오게 만든다. 그녀는 꼬리에 손을 집어넣더니 잠시 후 꼬리 안에 숨겨져 있던 카드 한 장을 꺼내 SCP-462-KO-α에게 건넨다.
퍼퓨어: [울먹거림] 저 엄청 노력했어요. 칭찬해 주세요.
SCP-462-KO-α: [웃음] 나 없는 동안 무서웠을 텐데 용감하게 잘했다. 고생했어.
SCP-462-KO-α는 퍼퓨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퍼퓨어는 울면서도 꼬리를 흔든다. 아주르와 세이블은 그 모습으로 보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각각 모자와 정장 상의 속에 숨겨두고 있던 칭찬 카드를 꺼낸다.
[중략]
현장에 차량 한 대가 들어오더니 그 안에서 금가인 이사관이 내린다. 금 이사관은 불타는 차량 옆에서 SCP-462-KO-α가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세이블과 아주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사관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두 사람의 꼬리를 피하며 SCP-462-KO-α에게 다가간다.
금가인 이사관: 그러니까 당신이 이 아이들 아버지인 거요?
SCP-462-KO-α: 재단 쪽 사람이십니까?
금 이사관: 그렇소이다. 아주 훌륭한 따님들을 두셨더군.
SCP-462-KO-α: 아, 뭐, 제가 없는 동안 아이들이 잘 견딘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런데 제가 없는 동안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금 이사관: 그걸 알고 싶으시면 차에 타시오. 당신이 가야 할 곳이 있소.
SCP-462-KO-α: 왜요?
금 이사관: 이 사람아, 아직 할 일이 남았잖아. 지금 당신이 쓰다듬어줘야 할 아이들이 47명이나 더 있어.
[녹화 종료]
사건 종료 후, SCP-462-KO-α는 재단에 의해 구출된 SCP-462-KO-1 개체들과 05K기지에 임시 수용되어 있던 개체들을 전부 수습해 사라졌다. 작전 중에 발생한 재단 측 피해는 거의 없었으며, 체포한 이재아의 조직원들은 전원 적절한 수준의 기억소거 조치를 받은 후 풀려났다.
이틀 뒤인 5월 5일에 제05K기지 행정부로 편지와 함께 상자 하나가 배달되었다. 상자에는 사건 이후 새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칭찬 카드 100장이 들어 있었다.
동봉된 편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오늘 하루의 적법한 소유자인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하여, 블레이즌 은행 겸 상공회의소의 운영이 재개되었습니다. 이 좋은 소식을 상공회의소의 재건에 누구보다 크게 기여해주신 여러분께 알려드리게 되어 기쁠 따름입니다.
그건 그렇고 사무국에서는 귀 시설에 소속된 모든 분께 VIP 지위를 부여해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생각 나실 때 한 번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 상공회의소 의장 겸 조폐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