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1998-KO

일련번호: SCP-1998-KO

등급: 타우미엘(Thaumiel)

특수 격리 절차: SCP-1998-KO를 이용하기 전, SCP-1998-KO 이용 매뉴얼과 T-환승터미널 이용 매뉴얼을 숙지한다. SCP-1998-KO를 이용할 때에는 일반적인 재단 시설과 같이 다음에 이용할 사람을 배려하며 청결하게 이용한다. SCP-1998-KO를 훼손하려는 시도는 모두 엄격한 징계에 처한다. T-환승터미널 내부에서의 이상 행동은 모두 기록되며 사안에 따라 엄격한 징계에 처한다. SCP-1998-KO의 유지보수와 관련한 세부 사항은 담당 인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된다. T-환승터미널의 위치와 규모는 공개되지 않는다. T-환승터미널에는 오로지 환승을 위한 목적으로만 제한적으로 머무른다.

설명: SCP-1998-KO는 재단 직원들에 대한 다목적의 고속 수송을 목표로 개발된 순간이동 장치이다. SCP-1290의 역설계 연구로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양자역학부, 수학변칙부, 공간변칙부, 관념학부를 포함한 다수 부서가 합동 연구를 진행하여 20██년 개발에 성공하였다.

순간이동 기술은 과거에도 수차례 개발된 바 있으나,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거나 안정성이 떨어지는 등의 명확한 한계점이 있었다. 반면 SCP-1998-KO는 에너지 효율과 안정성을 모두 극도로 끌어올렸다는 특징이 있다. SCP-1998-KO는 현재까지 누적 수백만 회의 이용에도 단 한 번의 피해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전력 부담 또한 한 대당 에어컨 10대 수준이다.

SCP-1998-KO의 순간이동 원리는 마찰이 없는 공간에서의 진자운동과 유사하다. 마찰이 없을 경우 진자는 좌우로 흔들리는 움직임을 무한히 반복하는데, 이때 위치 변경은 분명 존재하나 실제로 소모되는 에너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중력 퍼텐셜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전환되고, 운동 에너지가 다시 중력 퍼텐셜 에너지로 변환될 뿐이다. 결국, 진자가 왼쪽 끝에 있을 때나 오른쪽 끝에 있을 때에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동일하지만, 위치라는 결과는 분명히 바뀐다. 따라서 중간의 과정과 그 시간을 무시할 수 있다면 에너지 소모 없는 순간이동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SCP-1290는 퍼텐셜 에너지의 치환에 따른 위치 이동에 관여하는 공식에서 시간에 의존하는 변수를 변칙을 이용해 변질시키고, 전기 에너지 일부를 타임 퍼텐셜 에너지로 치환하여 즉시 해를 도출해 내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문제는 지구의 자전에 따른 운동 에너지가 남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SCP-1998-KO는 질량등가치환을 사용한다. 원리는 기본적으로 SCP-1290와 동일하나, 양쪽에서 같은 질량의 물체를 동시에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운동 에너지를 교환할 대상을 둔 것이다. 이를 위해 SCP-1998-KO에는 '큐브'라는 구성요소가 포함되어, 한 쪽에서 이동할 때에 반대쪽의 큐브를 가져오는 방식으로 순간이동을 구현한다.

SCP-1998-KO의 주요 한계점은 오로지 나체 상태로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 변칙을 이용해 공식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공식이 수정될 대상을 지정하는 것은 관념의 영향이 필요하다. 볼링공 하나를 이송할 때에는 볼링공이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관념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문제없이 이송이 가능하지만, 사람이 옷이나 기타 물품을 걸치고 있으면 사람이라는 하나의 관념이 아니라 복합적인 관념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적용이 불가능하다. 또한 운동 에너지를 교환할 때에도 같은 관념의 대상끼리 교환해야 하는데, 큐브에 인체와 비슷한 성분을 채워 넣음으로써 인간이라는 관념을 씌우는 것까지는 가능하나, 그 이상으로 복잡한 작업은 아직 성공하지 못하였다.

T-환승터미널: SCP-1998-KO는 1대1 연결 방식이다. 한 대가 다른 한 대까지만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SCP-1998-KO는 T-환승터미널로 연결되어, T-환승터미널을 거쳐 원하는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T-환승터미널은 다른 T-환승터미널과도 연결되어 이동의 자율성을 높이고, 규모 분리를 통해 관리 효율성을 최적화한다.

하지만 소지품을 가지고 이용할 수 없는 SCP-1998-KO의 특성상, T-환승터미널로 이동한 모든 인원은 무방비한 나체 상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T-환승터미널에서는 신원을 가리고 다양한 종류의 피해에서 보호해 주는 보호구를 착용하도록 하며, 보다 엄격한 규칙을 적용한다. 또한 T-환승터미널은 위치를 극비로 하고 내부 시설을 자동화함으로써 외부에서의 테러 위협을 방지하고 있다.

성과

확보 강화: 인간형 요주의 인물이나 변칙개체의 경우 SCP-1998-KO를 문제없이 이용 가능하며, 따라서 확보 위치에서 격리 위치로 이송하는 데에 존재하던 탈주 위협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격리 강화: 관리 인원이 정기적으로 격리실에 입장하여 특수 격리 절차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에 존재하는 격리 파기의 위험을 극도로 낮출 수 있었다. 입구를 완전히 봉쇄하고 대신 SCP-1998-KO를 이용해서만 입장할 수 있게 함으로써, 변칙 개체의 탈출은 불가능하게 하면서 정기적인 절차는 간편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보안 강화: 보안 인가가 부족하거나 보안 위협이 존재하는 인원의 SCP-1998-KO 이용을 보안 등급 감지 시스템이 방지함으로써 인증되지 않은 인원의 보안 시설 출입을 완전히 방지할 수 있게 되었다.

협업 강화: 먼 거리에 존재하는 전문 인력들이 같은 공간에 모이기 매우 쉬워지면서 협업 능력이 향상되었고, 이는 재단의 모든 시설과 부서의 성과를 크게 높여주었다.

직원 만족도 향상: 상기한 효과들과 출퇴근 시간 단축으로 인해 직원 만족도가 크게 향상되었고, 이것이 업무 성과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갑습니다, O5-13. 해당 문서와 관련한 O5-13 전용 오프라인 자료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 _

    보안을 위해 인터넷 연결을 차단합니다.

    로컬에 저장된 SCP-1998-KO 연구 기록 로딩 중.

    인터넷 연결 끊김

    오프라인 모드로 전환됩니다.

    로딩 완료.

    일지 항목 1998KO-1

    정신을 차려보니 난장판이 된 책상이 보였다. 손이 얼얼하고 조금 피가 나는 게, 내가 그랬겠지. 익숙한 상황, 뭔가 기억소거를 해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기억소거에는 항상 목적이 있고, 그것이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닌 이상, 원인을 더 찾아나서는 것은 같은 상황의 반복을 만들어낼 뿐이다. 상식이다. 그래서 무시하고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텅 비어 있어. 내가 이렇게 한가했나? 내가 원래 하던 연구는 뭐지? 시설은 또 왜 이렇게 넓어? 기억만 잃었다고 보기에는… 이건 중요한 무언가가 현실에서 통째로 사라져버린 거다. 항밈.

    항밈은 최후의 수단이다. 나와 내 위대한 계획이 위협받는 정말 최후의 순간에만 사용하는. 그리고 항밈탄이 방금 사용되었다는 기록을 확인했을 때, 마음속에는 분노와 안도가 함께 밀려왔다. 항밈탄이 사용되었다는 건 그 무언가 중요한 계획이 원점에 가깝게 되돌아갔다는 것이고, 그래도 다행히, 지켜낼 수는 있었다는 것이지.

    다음 과정은 정해져 있다. 기억제를 써서 기억을 되돌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 물론 일반적인 기억제로는 부족해. 그리고, 일반적이지 않은 기억제는 치명적이다.

    다행히 내겐 신뢰할 만한 인력이 있지.

    면담 기록

    XZ-13 기억제1를 처방한 DB 인원들2과 면담을 수행하였다. 내가 절차대로 항밈 프로세스를 수행했다면, 우선적으로 이들에게 기억해야 하는 정보를 제공했을 터이다.

    <기록 시작>

    O5-13: 좋아, DB-001. 나에게 말해줘야 하는 게 뭔가 있을 거야, 맞지?

    DB-001이 조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O5-13: 안심해, 너가 진실만 말한다면 문제가 없을 거야. 교차검증을 위한 인원이 잔뜩 있으니 구라칠 생각은 접어두고, 너가 말해야 하는 걸 말해봐.

    DB-001: 어떤… 설계도입니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고, 직접 그려야 합니다.

    O5-13: 잠깐, 그것뿐이야?

    DB-001: 네, 모니터에 자동으로 띄워진 이미지밖에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다른 건 없어요.

    O5-13: 원래 내 방식과는 좀 다른데.

    O5-13: 뭐, 일단 너를 믿으니까. 재료를 줄 테니 한번 그려봐.

    <기록 종료>

    모든 백업들이 설계도만 기억할 뿐, 다른 정보는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아무리 급했다 하더라도 기초적인 설명은 남겼을 법도 한데, 내가 그러지 않은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또는 뭔가 정보재해에 오염되어서?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나였다. 5~6명이 같은 페이지를 기억하게 함으로써 교차검증이 가능토록 했고, 그렇게 200명의 백업으로부터 정확한 설계도를 얻어낼 수 있었다. 설계도를 봐서는 대충 뭔지 알겠는데, 그래도 실제 결과물은 다른 경우가 꽤 있으니(그것이 변칙이니까), 일단 만들어보자.

    일지 항목 1998KO-2

    제작은 끝냈다. 내가 만들었으니 정확성은 보장되고, 오늘 최초 가동 실험을 해볼 거다. 일단 이것의 이름은… 대충 M이라고 하자.

    M은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어떤 기계 장치다. 한 대 만으로는 동작하지 않고, 두 대 이상이 필요하다. 매끈한 금속 외관에, 안에 의자가 있고, 문은 두꺼운 유리로 되어있어서 내부가 훤히 보인다. 그리고 연료라고 해야 할지, 재료라고 해야 할지, 특수 화합물3을 최대 1톤가량 넣을 수 있는 탱크도 달려 있다. 표준 220V 전력으로 동력을 공급할 수 있고, 네트워크에 연결이 가능하다.

    실험 내용

    어김없이 등장하는 D계급! 나와 인류의 발전을 위한 귀중한 연료― 아무튼, 실험은 간단하다. 한 쪽(A)에는 D계급을 나체 상태로 앉히고, 다른 쪽(B)에는 재료 탱크에 특수 화합물을 채운다. 전력을 공급하고, 네트워크를 ― 당연하지만 보안을 위해 LAN으로 ― 연결한 뒤, 패널을 조작하여 장치를 작동시키면 끝. 어떤 장치인지 예상은 된다. 완성도가 얼마나 높을지가 관건일 것 같은데, 한번 볼까?

    실험 결과

    예상보다 훨씬 굉장해! 이 정도 수준의 정확성이 구현된 적이 있나? 없어, 절대 없어.

    일단, A를 작동시키니 A에 있는 D13-2054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온 몸의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더니 혈관이 두드러지고, 피가 터지고, 온 몸에 검푸른 반점이 생겨났다. 그리고 D13-2054에게 가해지는 피해가 멈추었다고 생각될 때, 피해를 입기 전의 D13-2054와 동일하게 생긴 생명체 B에 생성되기 시작했다. 몇 초도 안 돼서 완료되는 놀라운 속도. 생성된 결과물은 D13-2054-β로 지칭한다.

    β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렷하고, 아주 정확한 의식을 ― 검증은 나중에 되었지만, 직감할 수 있었다 ― . β는 D13-2054를 보고 놀란 반응을 보였고, 동시에, 죽을 줄 알았던 D13-2054역시 β를 보고 놀란 반응을 보였다. 물론 D13-2054는 얼마 안 가서 죽었다.

    β는 자신이 복제본인지 아니면 건너편의 시체가 복제본인지 혼란해하다가, 이내 건너편의 것이 '불완전하게 생성된 복제본'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멍청한 녀석! 하지만 당연하지! 당연한 방어기제다. 그런 상황을 멀쩡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래도, 자기가 어느 쪽 장치에 들어갔었는지 기억하려고도 하지 않는 건 좀 웃기긴 하다.

    다음은 그 기록.

    <기록 시작, 전략>

    O5-13: 뭐, 아마 아프지 않을 거야. 이제 시작한다.

    버튼을 눌러 A 장치를 동작시킴

    D13-2054: 아아아아악!!!! (존나아파함 ㅋㅋㅋㅋ)

    수 초간 비명이 들리고, 이후 B에 빠르게 복제본이 생성됨

    D13-2054-β: 잠깐, 무슨 소리죠? 저희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 씨발 뭐야!

    D13-2054는 신음소리를 내며 의자에 힘겹게 걸터앉아 있고, D13-2054-β는 장치의 문을 열고 뛰쳐나온다.

    D13-2054-β: 이… 이게 무슨… 저건… 나랑 똑같은…!

    D13-2054: (고통에 찬 목소리로) 이게 씨발 무슨… 내가… 내가… (이러고 죽음)

    O5-13: 놀라워! 정말 놀라워! 굉장한 결과야!

    D13-2054-β가 어리둥절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D13-2054-β: 이게, 그… 복제가… 잘못 된 건가요? 실패 아니에요?

    O5-13: 응?

    D13-2054-β: 복제 장치인 것 같은데… 멀쩡하게 복제돼야, 성공, 아니에요?

    O5-13: 병신 ㅋㅋㅋㅋ 너가 들어갔던 방향도 기억 못해? 왜 너가 반대쪽에서 나왔을까?

    D13-2054-β: 에? 네? 근데, 분명 아무 느낌도…

    <후략, 기록 종료>

    CT와 MRI를 포함한 여러 신체 스캔 데이터 일치. 심층 심리 검사 일치. 유전자 정보도 당연히 일치. 모든 증거는 β와 D13-2054이 완전히 동일 인물이라고 확인해줬다. 부작용도 전혀 없고. 기념용으로 아직까지 살려두고 있는데, 특이사항이 전혀 없다.

    완전한 스캔과 완전한 재조합… 정말 정교한 기술이다. 감탄이 나온다.

    근데 이거, 과정만 무시하면 순간이동 아니냐?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일지 항목 1998KO-3

    심층 연구 결과를 정리한다. M에 사용된 핵심 변칙 기술은 다음과 같다.

    • 매우 정밀한 스캔 기술
    • 거대한 스캔 데이터를 손실 없이 매우 작게 압축하는 기술
    • 불안정한 압축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전송하는 기술
    • 스캔 데이터에 따라 구성 원소를 정확히 배치하고 적절한 운동량을 부여하는 기술

    우선 재미있는 건 양자역학 좆까는 스캔 기술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절대 법칙에 의해, 미시적인 입자들의 위치와 속도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정확히는,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할수록 속도가 무한히 불확실해지고, 속도를 정확히 측정할수록 위치가 무한히 불확실해지는 것이다. 즉 입자의 정확한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는 없으니, 인체의 정확한 스캔은 불가능하다… 라는 게 기존의 입장이었지.

    근데 이건… "속도? 좆까, 위치만 압도적으로 정확히 잰다." 인체는 전체적으로 보면 복잡하지만, 요소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매우 단순한 시스템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이것들의 동작 방식은 정해져 있다. 대부분 화학적 반응이니까. 게다가, 이 정도 수준에서의 약간의 오류는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위치만 정확히 측정한 다음에, 그 위치에 따라 입자를 정확히 배치하고, 그 입자들의 움직임은 그 위치에서 예상되는 가장 적절한 움직임으로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혈액의 흐름이나, 신경세포의 활동전위 흐름은 쉽게 예상 가능하니까.

    입자를 재구성하는 방법도 기가 막힌데, 정보를 현실 공간에 직접 실체화하는 변칙 기술을 사용한다. 정보가 뼈대가 되고, 입자들을 그 뼈대와 얽힘 상태로 만들어서, 정해진 위치에 저절로 들러붙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계산 가능하고 약간의 오류도 허용되는 '속도'를 부여하는 것이지.

    그러면 스캔 정보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신체의 모든 원소 위치를 정밀하게 스캔한 데이터이니 당연히 용량이 매우 클 것이고, 그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용되는 것이 양자중첩을 이용한 변칙적인 무손실 압축 기술이다. 그 많은 데이터를 수 메가바이트 수준으로 정말 빠르게 압축할 수 있다. 빠른 압축이 데이터의 변질을 막아 정확성도 챙기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솔직히 원리는 거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중요한 건 결과물이 양자중첩 상태라서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매질에 양자중첩 상태를 안정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전송 기술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압축한 데이터가 불안정해서, 데이터를 저장해둘 수는 없다. 이건 좀 아쉬운 한계점이지만, 이게 복제 장치가 아니라 '순간이동 장치'라고 생각하면 이미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제 생각해야 하는 건… 전송 후 남는 찌꺼기(시체)의 처리 방법, 그리고 이 장치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포장해서 보급할 수 있을지.

    재미있다. 오랜만에 재미있어.

    일지 항목 1998KO-4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순간이동 장치에 특별한 소모품(특수 화합물, 재료)이 필요하다는 건 너무 의심스럽다. 몰래 채우는 건 한계가 명확하고. 게다가 찌꺼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문제도 있어.

    그런데 이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해결할 방법이 있다.

    순간이동의 원리가, 같은 질량의 두 물체의 위치를 변경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하는 거다. 일종의 질량등가치환이라고. 그리고 그걸 위해 특수 제작된 '큐브'와 사람의 위치를 변경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하는 거야.

    cube2.png

    그 '큐브'는 물론 특수 화합물로 채워져 있고, 그 재료로는 '찌꺼기'를 사용하는 거다. 전송을 완료하고 남은 찌꺼기를 갈아서 큐브로 포장하고, 그걸 '저쪽에서 이동해온 큐브'라고 속이는 거지.

    이러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만 이동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재료의 불균형 문제도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 한 쪽에는 재료가 쌓이고 다른 쪽은 재료가 다 달아서 순간이동이 막히는 문제. 이걸 단순히 저쪽의 큐브가 다 소모되고 여기에만 쌓여서 전송하지 못하는 거라고 설명하는 거야. 좋아, 좋아.

    오직 사람만 전송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관념'을 들먹이면 될 것 같군. 전송 대상을 정확히 한정할 때 관념을 사용하고, 따라서 안정성을 위해 방해되는 요소를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는 식으로. 큐브가 인체와 동일한 구성요소로 채워져 있는 것도, 마치 제갈공명이 만두를 사람의 머리로 속인 것처럼, 관념을 속이기 위한 것이라고 얼머부리는 거지.

    이제 이런 설정들을 SCP-1290과 엮으면… 충분히 괜찮겠는걸.

    SCP-1290 연구 계획서를 제출하고, 동시에 양산 연구도 시작해보자.

    일지 항목 1998KO-5

    시범 운영 승인!

    철저히 조작한 실험 기록과 연구 기록들로 윤리위원회와 평의회 녀석들을 말끔하게 속였다. SCP-1290의 기술을 이용한 걸로 착각하고 있겠지. 임시로 부여된 일련번호는 TSCP-042다.

    큐브화와 관련해서도 철저하게 개발해두었으니 전송 후에 남겨지는 시체를 들킬 염려도 없어.

    설치 위치는 제51기지로, D계급 인원을 D계급 인원 숙소에서 특정 시설로 이송하는 데에 사용될 예정이다.

    시범 운영이 성공적이라면 재단 시설 전체에 적용되는 것도 시간문제겠지.

    물론, 누군가 내부 구조를 뜯어보면 바로 발각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래서 곳곳에 보험을 들어놨지. 항밈 필터에 인식재해까지 떡칠을 해놓았고, 마지막으로는 더미 부품으로 실제 부품을 숨겨두기까지 했으니. 뭐, 실패한 적은 없는 방식이다. 나는 이쪽 분야에 전문가니까.

    시범 운영 데이터가 기대되는군.

    일지 항목 1998KO-6

    제51기지에서의 시범 운영은 성공적이었지만, 뭔가 방해꾼이 나왔다.

    몰래 TSCP-042을 조사하고 있고, 내 뒤도 캐고 있다.

    저녀석한테는 강도 높은 심문이 필요하겠는걸.

    일지 항목 1998KO-7

    이름 ████(내가 일부러 지웠다. 좆같은 새끼.), 제██기지 수석연구원. 심지어 제51기지 사람도 아닌데, 어쩌다가 그런 일을 시작한 건지 모르겠네. 나한텐 아주 큰 방해물이니 입막음할 필요가 있겠어.

    <기록 시작>

    ████: … O5-13?

    O5-13: 옷에 써 있지. 맞아. O5-13이다.

    ████: 절 무슨 이유로 불러내신 겁니까?

    O5-13: 아마 너가 더 잘 알 거야. 최근에 내 뒤를 캐고 있었던 것 같은데.

    ████: 하… 안 들킬 수 있었는데.

    O5-13: 아니, 안 들킬 수는 없어. 날 뭘로 보고.

    ████: 그래서, 요구하시는 게 뭡니까?

    O5-13: 어디까지 알아냈어?

    ████: 적어도 그 장치가 이상하다는 건 알죠.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어도 이정도 수준의 순간이동은 일러요. SCP-1290도 아주 특수한 사례였고, 차원이동은 위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한계점이 있으니까. 물리학을 쌩까는 데에는 아무리 변칙을 쓴다 해도 에너지가 많이 들든, 안정성이 크게 떨어지든, 둘 중 하나에요. Trade off 관계라고요.

    O5-13: 하! 헛똑똑이구만. 근거는 전부 형편없는데 얻어걸렸을 뿐이네.

    O5-13: 다른 O5들도, 윤리위원회도 의심하지 않았어, 이 바보야. 충분히 합리적인 소설이었다고.

    ████: 소설이라는 건…?

    O5-13: 물론, 지어낸 말이라는 거지. 너가 맞아. 순간이동이 아니야. 훨씬 진보된 기술이지.

    O5-13: 기본적으로, 지금 임시로 부여된 일련번호는 TSCP-042였지, 042는 인체 데이터를 완벽하게 스캔하고, 다른 위치로 전송해서, 완벽하게 재조합할 수 있는 장치다.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동일한 인간을 새로 만들어내지. 문제는 스캔 과정에서 강한 방사선을 사용하기에 사용자가 반드시 죽어버린다는 것이지만, 반대쪽에서는 동일한 사람이 멀쩡한 상태로 나타나니 상관 없어.

    ████: 그건… 순간이동이 아니야. 미친 살인 스캐너잖아!

    O5-13: 아냐 아냐, 죽이지 않아. 의식은 생물학적으로 온전한 쪽으로 이동하니까.

    ████: 그딴 공상과학 헛소리를 믿을 줄 알고.

    O5-13: 안 믿네. 아깝구만.

    O5-13: 뭐,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윤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O5-13: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오해를 풀어볼게. 사실 난 네 생각처럼 그렇게 탐욕스럽고 변태같은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인류의 편안과 행복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이지.

    ████: 또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시려고?

    O5-13: O5라는 자리는… 개인적인 욕심만으로는 올라올 수 없는 자리야. 재단은 그런 사람에게 최고 권력을 줄 만큼 허술하지 않아. 재단은 재단과 인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기꺼이 희생하고자 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이 권력을 주지.

    O5-13: 내가 하는 일들이 단순히 내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일처럼 보일 수 있어. 어쩌면 맞는 말인가? 난 진심으로 인류를 위한 일을 하고 싶고, 그게 나의 유일한 존재 이유야.

    ████: 내 귀가 불쌍하군. 헛소리는 끝났나?

    O5-13: 식상한 말이지만, 때로는 진실을 감추는 것이 사회에 이로울 때가 있어. 사실 아주 많지. 과일을 먹을 때 굳이 그 과일이 똥으로 만든 비료로 길러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아.

    ████: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야. 사람이 죽는다고.

    O5-13: 하지만 죽지 않았지. 멀쩡히 살아있잖아?

    ████: 또 말장난을 하는군.

    O5-13: 좀더 본질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사람들이 보는 건 어떤 사람이 한 장치로 들어가고, 다른 쪽 장치에서 나온다는 것 뿐이야. 사람들은 여기에 어떤 불편도 느끼지 않고, 그건 장치에서 나온 그 사람 또한 마찬가지야. 오히려 사람들은 모두 만족감을 얻었고, 사회는 더 행복해져.

    ████: 더 행복한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는 아니야. 그럼 다 약빨고 행복하게 뒤지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게? 우리에겐 행복 말고도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어. 고작 빠른 이동을 위해 개인을 죽여버리는 사회는 결코 정의롭지 않아.

    O5-13: 중요한 점은, 그 정의를 판단하려면 먼저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지. 아무도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실제로 물리적으로 어떤 변화도 없는데, 여기서 정의롭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걸 판단할 수 있을까? 사회는 결국 자신들의 사회를 여전히 정의로운 사회로 인식할 것이고, 동시에 더 만족스러운 사회로 인식할 것이야.

    O5-13: 윤리적이지 않은 건 오히려 지금의 사회지. 고작 몇 분, 몇 시간 빠르게 이동하겠다고 한 해에 백만명가량을 죽이는 교통수단들을 꾸준히 이용하고 있지 않아? 만약 그걸 전부 이 '순간이동 장치'로 대체할 수 있다면, 사회는 연간 백만명의 죽을 수 있었던 사람을 살릴 수 있어.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실제로 완전한 죽음으로, 감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 전체에 피해를 주는 죽음을 말하지.

    ████: 기술이 더 발전하면 사망자가 나오지 않게 할 수 있어.

    O5-13: 그 말은 그 때까지 수천만명은 희생해라 이거지.

    ████: 씨발, 이게 그렇게 좋은 거면 너도 써보지 그래?

    O5-13: 아니? 나는 안 쓸 건데?

    ████: 뭐?

    O5-13: 난 죽는 건 싫거든. 절대 죽고 싶지 않아. 이미 그걸 위해 영혼까지 팔아먹은 몸인데.

    ████: 그러면 대체 왜? 왜 타인의 죽음은 무시하는 거지?

    O5-13: 결국 없는 사람이 되잖아! 나 너무 아파요, 나 죽어요, 나 죽었어요, 이것들도 결국 전달이 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어? 하지만 존재하게 되는 건 오로지 만족스럽게 순간이동을 성공하고 나오는 사람 뿐이야.

    ████: 이 무슨…

    O5-13: 그깟 윤리!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안다면, 내가 그것을 옳게 여긴다면, 사회 전체적인 윤리합은 결국 늘어나게 되어 있어. 잘못된 윤리관을 가지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나만 알고있으면 돼! 아무도 모르게 하면, 티를 내지 않으면 되는 거야!

    일지 항목 1998KO-8

    ████를 데리고 재미있는 걸 할거다.

    O5-13: 자! 즐거운 트롤리 딜레마 시간~

    ████: 뭐?

    O5-13: 이런! 열차가 D계급 인원 5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네요! 이대로 가다간 무고한 희생자가 네 명 나오겠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당신의 눈앞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열차가 방향을 바꿔, 다른 D계급 인원 한 명만 있는 곳으로 달려갈 것이니까요!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남은 시간은 단 5초!

    ████: 고민할 것도 없어. 난 니새끼의 장난질에 놀아나지 않을 거다. 어차피 내가 살려도 너한테 죽겠지.

    O5-13: 버튼을 누르지 않는 ████. 결국, 열차가 D계급 5명을 쳐죽입니다! 잠깐, 보니까 한 명이 아직 죽지 않았어요! 아직 의식이 있네요! 이 사람과 인터뷰를 해볼까요?

    D-15655: 어째서… 어째서 방향을 틀지 않은 거야…

    O5-13: 죽기 직전의 마지막 질문… ████, 대답해줄 수 있나요?

    ████: 당신을 죽인 건 내가 아니라 O5-13입니다. 이 미친 싸이코의 희생양이 되신 걸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O5-13: 이런,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대답이군요!

    O5-13: 그렇다면 ████가 살려준 D계급 인원에게 마이크를 넘겨보겠습니다. 어째서인지 슬피 울고 있는데요… 사연을 들어볼까요?

    D-37412: 내 가족들이었어. 죽어야 하는 건 나였다고! 난 어차피 시한부 인생인데! 매일 술만 퍼마시면서 평생 힘들게 했는데… 말기암으로 빚까지 만들고… 가족에게 용서를 구할 마지막 기회였어. 니가 그걸 날린거야…!

    O5-13: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입니다. 아아…

    ████: (침묵)

    O5-13: 침묵으로 일관하는 ████!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저 관심이 없는 걸까요?

    O5-13: 워밍업은 끝났으니, 이제 본 게임으로 넘어갑니다!

    [잠시 준비]

    O5-13: 자, 이제는 버튼이 두 개가 있습니다! 빨간 버튼과 파란 버튼. 혹시 그 이유가 짐작이 가시나요?

    O5-13: 맞아요! 이제는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둘 다 죽일 겁니다!

    O5-13: 죽이는 건 저에게 책임이 있을지 몰라도, 살리지 못한 건 ████, 당신에게 있어요. 반박할 수 없겠죠?

    ████: (침묵)

    O5-13: 복면을 쓰고 등장하는 참가자들. 빨간 레일에는 빨간 복면을 쓴 참가자 한 명이, 파란 레일에는 파란 복면을 쓴 참가자 다섯 명이 올라갑니다. 빨간 버튼을 누르면 한 명을, 파란 버튼을 누르면 다섯 명을 살릴 수 있어요. 자, 어떻게 할 건가요?

    O5-13: 열차 출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갑니다! 5! 4! 3!

    ████: 이 씨발!

    ████가 파란 버튼을 누른다!

    O5-13: 파란 열차, 멈춥니다! 안도의 한 숨을 내쉬는 참가자들. 그리고 아쉽지만 선택받지 못한 빨간 복면, 그대로 즉사한 것 같습니다.

    ████: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O5-13: (무시) 자, 이제 복면을 벗기고 정체를 확인해볼까요?

    O5-13: 죽어버린 빨간 복면의 정체는?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보호시설에서 나와 적절한 알바를 찾다가 여기에 와버린 겁니다. 안타깝네요.

    O5-13: 다음으로 파란 복면들의 정체를 확인해봅시다. 첫 번째! 60대 사형수! 두 번째! 70대 성범죄자! 세 번째! 80대 말기암 환자! 네 번째! 90대 폐렴 환자! 다섯 번째! 구하기 좀 힘들었던 100대 아무개씨!

    ████: 좆같은 새끼.

    O5-13: 과연 이들을 살리고 청년을 죽이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시나요?

    ████: 후회고 자시고, 애초에 정확한 정보를 주질 않았잖아.

    O5-13: 맞습니다, 맞아요.

    O5-13: 그렇다면, 만약 앞선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했겠습니까?

    ████: (침묵)

    O5-13: 맞아요, 쉽지 않은 문제죠. 그래서 오늘은 그 정답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

    O5-13: 잠시 쉬었다가 돌아오죠.

    O5-13: 자, 조금 쉬었나요? 다시 시작하기에 앞서 조금 설명을 드리도록 하죠.

    O5-13: 최근에 아주 중요한 발견을 해냈습니다. 제 O5 인생을 통틀어서도 아주 중요한.

    O5-13: 아시다시피, 이 장치는 한 번의 스캔으로 단 한 번의 복제만 가능하죠. 데이터가 불안정해서 저장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어요. 그래서 항상 순간이동에 중점을 두고 있었고요.

    O5-13: 그런데 최근, 그 데이터를 저장할 수는 없어도, 증폭은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양자중첩 상태로 이루어지는 스캔 데이터가 파동의 형태이기에 가능한 것이었어요.

    O5-13: 그리고, 그 데이터를 증폭한 뒤에 여러 갈래로 나눠서 여러 대의 복제기에 전송함으로써, 동일인을 여럿으로 복제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O5-13: 이제 한 사람을 무한 복제하는, 완벽한 복제기가 탄생한 겁니다!!

    ████: 실화냐…

    O5-13: 이 기술은, 물론 매우 다양한 곳에 쓰일 수 있지만, 윤리적인 답을 찾아나서는 데에 있어 변인을 통제하는 용도로도 쓰일 수 있어요.

    O5-13: 그래서 이 트롤리 딜레마 게임을 시작한 겁니다.

    O5-13: 자,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완전한 동일인들을 가지고 게임을 해봅시다!

    [무대 세팅]

    O5-13: 참가자, 복면을 벗어주세요!

    D-62132-α와 D-62132-β가 동시에 복면을 벗고 서로를 바라본다.

    (두 명이 동시에): 엇! 어? 뭐야! 잠만 말 똑같이, 와!

    O5-13: 서로 완전히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두 참가자! 거울인 듯 아닌 듯, 확실한 건 둘은 완전히 동일한 인물이라는 겁니다!

    O5-13: 짧은 만남이었지만, 헤어질 시간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즐거운 트롤리 게임이니까요.

    O5-13: 빨간 레일에 D-62132가, 그리고 파란 레일에도 역시 D-62132가 올라갑니다. 누가 α고 누가 β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O5-13: 하지만, 이렇게 하면 구분이 좀 쉽겠죠!

    O5-13이 빨간 레일의 D-62132에게 다가가 칼로 목을 긋는다. 경동맥이 끊어진 D-62132는 출혈을 멈추려고 안간힘을 쓴다.

    O5-13: 이런 이런, 출혈이 심한 것 같은데요. 얼마 안 가서 죽을 것 같습니다.

    O5-13: 그런데 이 때 출발하는 열차들! ████, 선택하셔야 합니다! 어느 쪽을 살릴 건가요?

    ████: 저 쓰레기같은 새끼!

    O5-13: 오! 사! 삼!

    ████가 파란 버튼을 누른다.

    O5-13: 파란 버튼을 선택하는 인자하신 ████!

    O5-13: 그리고, 빨간 열차가 빨간 참가자의 고통을 잠재울 수 있도록 한 번에 보내줍니다!

    D-62132: 흑흑…

    O5-13: (박수) 정답이에요, 정답. ████, 정답을 선택한 거예요. 혹시 빨간 참가자가 살 가능성이 있었다고 해도, 멀쩡한 참가자를 살리는 것이 당연히 정답이죠. 당신은 방금 귀중한 생명을 하나 살린 겁니다.

    O5-13: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요? D-98400, 나와주세요!

    3명의 D-98400이 무대로 나온다.

    O5-13: 이번에는 동일인이 세 명! 앞서 소개한 대로, 복제 장치로 만들어낸 완전히 동일한 인물들입니다!

    O5-13: 빨간 레일에는 두 명이, 파란 레일에는 한 명이 올라서네요.

    O5-13: 그리고, 이렇게!

    O5-13이 빨간 레일에 선 두 명의 경동맥을 끊어낸다.

    O5-13: 이번에도 빨간 레일의 참가자들은 빨개집니다!

    O5-13: 곧 죽을 것 같은 두 명을 구할 것이냐, 멀쩡한 한 명을 구할 것이냐? 출발하는 열차, ████의 선택은?

    ████: 아아아악!!

    ████가 파란 버튼을 누른다.

    O5-13: 붉은 레일이 더 붉어집니다! 두 명이 긴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게 해준 ████!

    O5-13: 하… (버럭)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겁니까! 두 명의 목숨이 한 명의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건 상식 아닌가요? 어째서 한 명만 구한 겁니까!

    ████: 갑자기 지랄이야 병신이! 씨발… 어쩔 수 없잖아!

    O5-13: 맞아요, 맞아요. 사실, 정답이었습니다. 인원수가 늘어났다 해도, 그들이 곧 죽어 없어진다는 건 동일했으니까요.

    O5-13: 그렇다면 생명의 가치는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가로 결정되는 것일까요? 그것만으로 결정되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O5-13: 다른 요소도 찾아보겠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두 명이 등장합니다.

    O5-13: 각각 빨간 레일과 파란 레일에 올라가는 D-65993들. 당연히, 완전히 동일인입니다.

    O5-13: 하지만 이러면… 동일인이 아니게 될 수도 있겠네요.

    빨간 레일의 D-65993에게 밈적 신체기능파괴인자를 보여준다.

    O5-13: 갑자기 몸을 떨더니, 바닥에 쓰러지는 D-65993. 제가 빨간 레일의 D-65993에게 보여준 건 밈적 신체기능파괴인자로, 생명 자체에는 지장을 주지 않으나, 전신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버립니다. 숨쉬기와 눈을 굴리고 깜빡이는 정도가 한계죠.

    O5-13: 분명 동일인이지만 동일인이 아닌 두 사람. 그리고 제가 공언하건데, 이 두 참가자 중에 누가 생존하든 24시간 후에 반드시 죽여버리겠습니다.

    O5-13: 그렇다면, ████이 살리고자 하는 쪽은 어디일까요?

    O5-13: 열차가 출발합니다! 결정하세요, ████!

    ████가 파란 버튼을 누른다.

    O5-13: 이번에도 빨간 레일에서 비극이 일어나네요.

    O5-13: (잠시 침묵) 어째서 그런 결정을 내렸죠?

    ████: 대답할 이유가 없다.

    O5-13: 아니, 있어요. 대답하지 않으면 당신이 방금 살린 참가자를 고통스럽게 죽여버릴 테니까.

    ████: … 빨간 쪽은… 고통스러울 테니까.

    O5-13: 동일 인물에 동일 수명이라는 가정이라면, 여생이 더 행복한 쪽을 살려야 한다는 말이군요!

    O5-13: 이 역시 생명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게 놀았다.>

    일지 항목 1998KO-9

    완벽한 복제 장치를 완벽하게 활용할 기가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TSCP-042는 기본적으로 1대1 연결이다. 물론 난 1대다 연결에 성공했지만, 이건 연결된 곳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연결된 곳에 전부 정보를 보내는 거지. 아무튼 표면적으로는 1대1이라 소개하고 있어. 그래서 나는 환승 터미널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있지.

    A에서 B로 바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터미널을 경유해서 이동하도록 하는 것이야. 이렇게 하면 1대1 연결의 이동 다양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위치도 규모도 기밀로 부치는 비밀스러운 지하 시설? 이거 이거, 복제 노예를 생성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 아니야?

    터미널에 있는 모든 TSCP-042들을 숨겨진 지하 시설에 있는 TSCP-042에 연결해두어서, 장치를 이용하는 모든 인원들을 복제해버리는 거야! 바깥 세상과 지하 세상에 동시에 존재하도록 하는 거지! 이러면 고급 두뇌를 가진 녀석들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어…! 일부는 적절한 기억소거와 자아소거로 터미널을 관리하게 하고, 일부는 평생 기술 개발을 위해 일하도록 하는 거야! 일부는 역시 기억소거와 자아 수정으로 D계급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지.

    무한한 인력! 무한한 노예! 무한한 희생양!

    기술이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일지 항목 1998KO-10

    [자동 기록된 문서입니다.]

    <전략>

    O5-13: 잠깐, 얜 어디 갔어? 야 밥쳐먹어!

    ████: 니가 좆같이 친근하게 구는 것도 여기까지다.

    O5-13: 엇, 너가 왜 거기서…

    [총격음]

    O5-13: 아악! 씨발 이거 뭐야!

    ████: 뭐긴 뭐야 총알이지.

    ████: 하지만 이번에 박아넣는 건 다르다.

    [금속 긁히는 소리, 태엽 소리]

    O5-13: 아아아아악!!

    ████: 부서진 신의 교단에서 보내온 물건이야. 몸 안쪽으로 들어가서 니가 죽을 때까지 내장을 헤집어 놓을 거다.

    O5-13: 이 좆같은 새끼가! 이 쓰레기 새끼! 아아악!!!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 왜 이런 짓을 하냐고? 내가 너한테 많이 물어본 질문이네.

    ████: 그냥 죽여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래서는 복수가 안 돼.

    ████: 살고 싶다면 방법은 단 하나다. 앞에, 니가 자랑하는 그 '순간이동 장치'를 써.

    ████: 저건 인체만 복제하니까, 몸 속에 들어간 그걸 떼어놓을 유일한 방법이지.

    ████: 사실 떼어놓는 건 아니지만. 가망없는 몸은 버려두고 이동하는 거지, 그치?

    O5-13: 이 씨발… 개 씨발새끼…

    ████: 선택해. 영원히 죽을 건지, 아니면 죽는 대신 후대를 남길 건지.

    O5-13: 씨발…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그냥 멈춰줘! 부탁이야!

    ████: 절대.

    ████: 너 때문에 고통받아온 수많은 영혼들과 똑같이 당해 봐라.

    [고함 소리]

    [문이 여닫히는 소리, 기계가 웅웅대는 소리, 비명]

    [정적]

    [문이 열리는 소리, 기침 소리]

    O5-13: 별거 아니네 씨발…

    ████: 별거 아니긴, 니 원본은 아직도 존나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O5-13: 원본? 이젠 내가 원본이야 병신아.

    ████: 반성이 없어요 씨발, 걍 뒤져라.

    [총격음]

    [금속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

    ████: 대체 어디서…

    O5-13: 여기 내 집이야 병신아.

    ████: 하… 존나 아프네…

    [정적]

    ████: 뭐… 죽이고 싶으면 죽여도 되는데, 내가 한 가지 보험을 들어놨거든?

    O5-13: 병신, 또 뭔 좆같은걸 하셨대?

    ████: 지금까지 모아둔 자료 싹 다 윤리위원회랑 평의회에 보냈다.

    O5-13: 하… 이 씨발!

    [금속 물체가 바닥에 세게 부딪히는 소리]

    O5-13: 뭐, 어떤 자료? 복제 장치? D계급 노예들?

    ████: 그런 것들이지 뭐.

    O5-13: 고마워, 참 고마워.

    ████: 고맙긴.

    O5-13: 아니, 진짜로 고마워. 말해주지 않았으면 좆됐을 텐데.

    ████: 이미 좆됐어 너.

    O5-13: 아냐, 되돌릴 수 있어.

    ████: 뭐 이젠 시간까지 되돌리시나?

    O5-13: 그건 안 되지만, 다행히 비슷한 수준의 최후의 수단이 있지.

    ████: 그게 무슨…

    [어딘가로 이동하는 소리]

    O5-13: 뭐… 모쪼록. 잘 가라. 많이 외로울 거다.

    [문이 열리는 소리, 사람 넘어지는 소리]

    ████: 여긴… 뭐 하는 곳인데?

    O5-13: 전부 없었던 일이 되는 곳.

    [문이 닫히는 소리]

    <기록 종료>

    일지 항목 1998KO-11

    아… 그래서 이렇게 됐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빠르게 수술한 뒤 상황을 파악하던 중, 항밈탄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을 확인했다.

    그리고 백업들을 통해 앞선 보고서들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전과는 달리, 모든 기록들을 철저히 남겨둔 것 같다.

    내가 저 경험들을 했다면… 정말, 정말 많이 즐거웠을 것 같다. 많이 아쉽다.

    이전에 항밈을 썼을 때 설계도만 남긴 건, 저런 즐거운 경험을 다시 경험하고픈 마음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이렇게 즐거움을 희생해야 하는 때도 있는 거다.

    인류 사회의 발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이제는 후퇴하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어쩌면, 나에게 공감해 줄…

    실험을 해보자. 지금은 항밈을 쓴 직후이므로, 실패하면 다시 되돌리면 그만이다.

    일지 항목 1998KO-12

    평의회가 내 계획에 찬성했다.

    아군이 생긴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개인 일지는 여기까지다.

[[footnoteblock]]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