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931
어제저녁에 제니가 처음으로 새끼를 낳았다. 그중 한 마리는 죽어버렸지만, 다른 세 마리는 건강해 보인다.
그런데 가장 작은 녀석이 마음에 걸린다. 어제 자러 갔을 때, 난 내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꿈이 아녔다. 몇 년 동안 호랑이들과 지내왔지만, 이런 것은 들어도 보지도 못했다. 이상한 일이고, 어떤 면에선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난 이걸 엄청난 축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녀석은 세상에서 유일하고 나를 서커스 계에서 유명인사로 만들어줄 티켓이라는 확신이 든다. 2 년 전에 놀라운 대륙횡단을 보여준 여성 파일럿을 기려 아멜리아 이어하트(Amelia Earhart)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은 적절한 것 같다, 말하자면 둘 다 비행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니까. 젖을 떼면, 바로 훈련을 시작할 것이다.
19-04-1933
아멜리아는 보면 볼수록 똑똑하고 사랑스럽다. 그 마법 같은 능력 밖에도, 그녀의 공연은 누이들을 포함해서 내가 훈련해본 모든 호랑이의 공연보다 훨씬 훌륭하다. 마르코 형제단(Marco Bros.)의 관객이 엄청나게 늘었다. 아멜리아가 내 공연에 들어온 이후, 우리의 수입이 짭짤하게 늘었다. 신선한 연어를 사려고 돈을 좀 더 투자하기로 했다. 아멜리아가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고 모피에 좋다는 말을 들었다.
24-02-1935
행운이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 허먼 풀러라는 이름의 신사가 오늘 아침 우리 집을 방문해서 미국으로 가는 횡단 서커스에 들어오는 걸 권유했다. 이미 마르코 형제단 서커스에 고용되어있다고 알려주자, 그는 내 현재 수입의 네 배를 제안했고 여행 경비까지 대준다고 했다. 이런 권유를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난 이미 사표를 작성했고 내일 아침쯤 제출할 생각이다. 유일한 걱정은 아멜리아와 다른 호랑이들이 장거리 여행을 버텨낼지 이다.
03-05-1935
허먼 풀러 서커스에 입단한 지도 삼일이 되었다. 아멜리아와 가족들은 이미 여기의 다른 동물들과 친해진 것 같다. 나는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이 서커스는 마르코 형제단에 비하면 엄청나게 큰 규모이고, 사실 겁이 나는 경험이었다. 다른 많은 공연인들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 자체로는 별로 신경 쓸 것이 아니지만, 최악인 것은 내 텐트와 기형괴물 소굴(Den of Freaks) 사이에 겨우 두 텐트만 있다는 것이다. 이 상황은 정말 불편하지만, 그 녀석들이 나와 내 동물들에게서 멀리 있는 한 괜찮을 것이다.
그래도, 전체적인 경험은 아주 긍정적이다. 공연인들은 대체로 밝고 내 동물들, 특히 아멜리아에 많이 인상을 받은 듯하다. 그리고 우리 공연으로 버는 돈 이외에도, 무대 감독이 추가적인 수입을 만들 기막힌 아이디어로 '동물 모양 풍선'을 귀띔해주었다. 비행의 키스를 받은 지푸라기로 만든 강아지와 고양이에 줄을 묶은 것이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손님들은 마음에 들어 하는 모양이다. 행운이 날로 늘어간다.
22-09-1935
무대 감독이 우리 공연의 새롭고 재밌는 피날레를 고안해냈다. 광대 몇 명이 아멜리아에게 살짝 물리고 대형천막의 벽에서 통통 튀는 피날레이다. 광대들은 놀랍게도 별로 개의치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그 사람들 핏줄 안에는 영국의 피가 약간은 흐른다고 믿고 싶다.
13-10-1937
오늘 어린아이 하나가 오더니 하늘로 날아간 풍선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터져서 땅으로 다시 떨어진다는 말은 동심을 해칠까 봐 모른다고 대답했다.
24-02-1938
유리(Yuri)가 다른 호랑이들을 돌보는 동안, 나와 아멜리아는 영국으로 휴가를 받았다. 물론 에섹스(Essex)는 아멜리아의 종의 고향은 아니지만, 아멜리아가 태어난 곳을 다시 방문하는 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로 생각한다.
(날짜 불명)
내 악몽보다 더 끔찍한 서커스의 일면을 본 것 같다. 내가 야생 동물들에 둘러싸여 자는 게 아니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겠다.
06-08-1949
무대감독이 또 나와 아멜리아에게 불청객들을 처리하라고 부탁했다. 오늘은 유독 바람이 심했는데, 그 녀석들이 반쯤 벌써 스웨덴까지 날아간 게 아니면 놀라울 것이다. 이게 손님을 내쫓는 말도 안 되는 방법인 것은 인정하지만, 치울 것이 없다는 게 장점이다.
10-11-1953
우리 공연은 망했다! 내 사랑이 불구가 돼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망할 기형아 새끼들! 그 또라이 새끼가 아멜리아 오른쪽 다리의 반을 떼어 갔는데도 모두는 아멜리아가 먼저 공격했다는 기형아 새끼를 믿고 있다. 괴물새끼들이 우리 근처를 대놓고 걸어 다니는데도 모두 얼굴 뒤집힌 남자가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 난 무대감독에게 몇 년 동안 기형 쇼는 그만두고 기술과 연륜이 필요한 진짜배기 서커스를 하자고 주장해왔다. 몇 번이나 말해왔지만, 이제 그 망할 손바닥 읽으미 새끼는 아멜리아의 발을 트로피마냥 자랑하고 다닌다! 물론 우리 모두 뭔가 이상하지만, 이 괴물 같은 생명체는 심지어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광대 녀석들도 짜증 나 죽겠는데, 이제는 괴물새끼들이 정면으로 와서 우리의 머리랑 팔다리를 떼어가는 걸 걱정해야 한다니. 내가 여기 들어온 것이 수치스럽다.
24-02-1955
이 빌어먹을 곳은 이제 끝이다! 겉으로 보이는 어떤 품위건 예절이건, 이 서커스가 가지고 있던 규칙은 완전히 사라진 지 오래다. 괴물소년,, 그 냄새 나고 싸가지없는 뻐드렁니 그렘린이 뻔뻔스럽게도 아멜리아에 손을 얹었는데 내가 제자리로 돌려보내자 무대감독은 나를 후려치는 게 아닌가! 그 얼굴 뒤집힌 남자의 영향력이 늘어나는 것은 알았지만, 무대감독마저 그의 하수인인 건 미처 몰랐다. 이 직업 정신없는 인간들은 더는 참을 수 없다. 돈이 모이는 즉시, 동물들을 내리고 떠날 것이다.
09-02-1955
계획이 바뀌었다. 아멜리아가 아프다. 그 역겨운 괴물한테서 끔찍한 병을 옮아서 그녀는 죽어가고 있다.
아멜리아가 죽으면 맹세하건대 이건 내 자살 노트가 될 것이다.
13-03-1955
아멜리아를 잃은 지 3 일이 지났다. 인제야 글을 쓸 정신이 생겼다. 나는 그녀에게 좋은 기독교식 장례식을 치러주고 싶었지만, 무대감독은 시체가 자신의 재산이라고 우겼다. 아멜리아의 머리를 떼가서는 지긋지긋한 동물 모양 풍선을 만들어 나눠주고 있다. 머리 없는 시체만을 묻을 수 있었다.
이젠 분노도 슬픔도 없고, 오직 의무감이 느껴진다. 내 목숨을 끊어 나머지 동물들을 이 망할 곳에 남겨둘 수 없다. 무엇보다, 아멜리아와 내가 했던 일은 그녀의 이름으로 계속될 것이다.
27-07-1964
시간이 좀 걸렸지만, 정의가 실현되었다. 괴물소년에게는 정의롭게 살인자의 낙인이 찍혔다. 물론 그 녀석이 검거된 사건의 진범은 그가 아니라는 사실은 전혀 상관없다. 가장 끝내주는 점은 그 녀석의 명성은 나락으로 굴러떨어진 데 반해, 내 명성은 깨끗하다는 점이다. 그 녀석을 불쌍하게 여기던 서커스 인원도 그의 똘추같은 동생 제이콥(Jacob)을 탓한다. 모두 나를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난 이걸 기회로 삼아 아멜리아의 머리를 텐트에서 가져와 나머지 부분과 묻어주었다. 마침내 그녀가 쉴 수 있기를. 일은 완성됐고 마침내 모욕은 끝났다.
이 비밀은 얼굴 뒤집힌 남자에게 더는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너의 나머지 앞발을 빌려 간 건 사과할게, 하지만 네 손으로 일을 끝내야 맞는 것 같아. 내 삶은 곳 끝나겠지만, 최소한 너와 다른 친구들을 낙원에서 만날 수 있겠지. 여기가 우리 모두의 무덤이 되길. 사랑하는 아멜리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