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174-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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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174-KO-다 이전 SCP-174-KO.

일련번호: SCP-174-KO

등급: 안전(Safe) 유클리드(Euclid)

특수 격리 절차: SCP-174-KO는 현재 위치해 있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 광장에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주변 건물에 입주한 재단 위장 기업 요원들이 수시로 SCP-174-KO를 감시하고, 대상의 역사적 특성상 불거질 수 있는 타 요주의 단체의 탈취 시도 여부를 조사한다.

SCP-174-KO는 제21K기지 01연구동의 표준형 인간형 격리실에 격리한다. SCP-174-KO를 사용한 실험 전, 3등급 이상의 무속학부 인원을 대동하여 면담을 진행해야 한다. 격리 총괄자인 뇌수종 교수의 허가 하에 관련 실험을 진행한다.

설명: SCP-174-KO는 신장 7m, 무게 약 20t가량의 거대 인간형 개체와 그 부속품의 총칭이다. SCP-174-KO는 2019년 사건 174-KO-다 발발 직후 제21K기지로 이송되기 전까지는 서울시 광화문 광장에 위치해 있었으며, 민간 사회에는 ‘세종대왕 동상’으로 알려져 있었다.

SCP-174-KO는 크게 외피와 외피의 두부(頭部)에 위치한 장치, 그리고 외피 내의 유기체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을 SCP-174-KO-1, SCP-174-KO-2, SCP-174-KO-3으로 지칭한다.

SCP-174-KO-1는 SCP-174-KO의 외피로, 조선의 제4대 군주인 세종 이도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SCP-174-KO-1의 재질은 구리, 주석, 흙, [데이터 말소]며, 기적학적 제조 과정으로 인하여 스테인리스강의 ██배에 달하는 강도를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SCP-174-KO-1의 변칙성은 대상의 유동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SCP-174-KO의 행동이 정지 상태에 있다면 대상의 굳기는 일반적인 금속의 굳기와 동일하다. 그러나 SCP-174-KO가 운동 상태에 돌입하면 SCP-174-KO-1의 조성이 일종의 유체적 상태에 들어간다. 해당 성질로 인하여 SCP-174-KO의 운동이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다. SCP-174-KO-1의 내부에는 방령 코팅 처리가 되어있으나 오래되어 부식 정도가 강해 그 정도가 약화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문건에 따르면 SCP-174-KO-1는 GoI-004K("수신도守身道")1에 의해 제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SCP-174-KO-2는 SCP-174-KO-1의 두부와 연결된 계산 장치로, 외관상 익선관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SCP-174-KO-2의 재질은 SCP-174-KO-1과 유사하게 구리와 주석, 흙 등이며, 특기할 사항은 세라믹 재질의 톱니바퀴가 부품 중 상당한 숫자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SCP-174-KO-2의 변칙성은 초기적 빙의형 BCI 영귀-컴퓨터 인터페이스 시스템을 가지고 있음에서 출발한다. 이로 인하여 불특정 영귀가 SCP-174-KO-2에 빙의하면, 저절로 SCP-174-KO 전체를 조종 가능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2 제작연도가 20세기 초엽으로 추측됨에도 어떻게 이러한 기술이 나올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불명이다. SCP-174-KO-2는 외부 동력원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네트워크 연결 없이도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다.

SCP-174-KO-3는 약 6.7m의 거대 인간형 개체이다. 엑스선 촬영으로 검사해본 결과, SCP-174-KO의 내부에는 인간과 유사하나 변칙적으로 변형된 형태의 유기체가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SCP-174-KO-3는 SCP-174-KO-1과 영구적으로 결합한 상태며, 이는 SCP-174-KO-1의 표피에서 돌출한 미세한 갈고리가 이 대상의 표면에 깊게 삽입됨으로써 기능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SCP-174-KO-3는 일종의 영혼 덫으로 기능하는 것으로 보이며, SK-BIO 생물체와의 유사점이 발견되어 연구 중에 있다.

부록 174-KO-가: SCP-174-KO는 2017년 서울특별시 심령독립체 대량 유출 사건 직후에 시행된 조사 중 발견되었다. 사건 종결 이후 무속학부에서 시내 잔류 독립체를 회수하는 임무를 수행했는데, 이때 광화문 광장에서 다량의 신호가 검출되었다. 이에 세밀한 추적과 조사를 통해 세종대왕 동상에서 하나 이상의 심령독립체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 낼 수 있었다.

기존 세종대왕 동상은 2009년 한글날을 기념하여 광화문 광장에 설치되었고, 홍익대학교 김██ 교수가 설계와 건립을 맡았다. 유출 사건 직후 외교부 주관으로 해당 교수와 작업진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시행되었으며 몇 가지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김██ 교수의 지인 중 수신도 교인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교수 본인은 80년대 초부터 친분을 맺었던 인물이라고 하며, 이름은 박지태(朴指颱)4라고 알고 있으나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고 진술했다.

조사 기록 174-KO-나: 과거 문헌에 드러난 SCP-174-KO의 내력

SCP-174-KO의 역사적 거취의 조사는 지난 PoI-891-KO 확보 건 이후부터 시행되었다. PoI-891-KO의 개인 기록과 서한 등을 취합해볼 때 SCP-174-KO의 존재가 단순한 조각상으로 치부하기에는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에 광범위한 문헌 조사 후 대상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저자 불명의 지천탁유고(持天鐸遺稿)17로, SCP-174-KO-3의 기원을 다루고 있다. 해당 기록에 따르면 SCP-174-KO-3는 본래 세종 이도 본인으로, 1450년 사망했으나 1456년 단종 복위 운동 당시 금성대군 이유의 사주를 받아 세을진인(世乙眞人) 영랑(煐浪)이라고 지칭되는 묘령의 승려에 의하여 부활했다고 서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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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탁유고(持天鐸遺稿)의 일부.

한 가지 특기할 사항은 기록의 서술자가 SCP-174-KO-3을 부활시키는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현재 해당 기록의 저자를 조사 중에 있으며, GoI-013-KO("세을가世乙加")18에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을 추적하고 있다. 기록 자체는 상당 부분 실전되어 자세한 사항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그리하여 대군께서 나와 진인(眞人)을 이끄시어 영릉 앞에 서시니, 목이 메이고 분이 터지며 그 슬픔을 비할 바 없더라. 풀이 무성한 무덤가의 적막은 그야말로 해불양파(海不楊波)를 탄(歎)케 하니, 함께 한 이들 모두가 촉처감창뿐이었다. 대군께서 굳은 목소리로 말씀하시기를,

"간악한 수양의 죄가 천지를 꿰뚫은 바, 그의 죄를 다스릴 자는 오직 상왕 전하실게요. 영랑 그대는 필히 전하를, 아바마마를 되살려내어 법도와 인륜을 세워주길 바라오. 그대 비록 일전에는 실패하였다한들19 내 그 솜씨를 직접 보았을진대 믿지 못할 바 무엇이요.

하시니 진인께서 공손히 명을 받들었다. 해서, 이날 밤중에 몰래 능을 도굴하였다. 대군께서는 [정보 유실]

옥체를 뫼시고 순흥 땅 거처로 돌아갔다. 진인께서는 곧바로 혼을 불러오는 의식을 거행하셨으며, 나는 그분을 도와 [정보 유실] 피로 하여금 [정보 유실] 그러자 옥체의 육기(肉氣)가 [정보 유실]

이제 옥체를 다시 뵈니 정신이 아득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울음뿐이 나오더라. 강산과 정세는 변하였으되 기억은 변치 아니하였으니 감회를 어찌 주체할꼬. 전하의 옥체는 이미 많이 부패하여 [정보 유실] 진인께서는 남아 있는 옥체로도 그릇을 잘 만들 수 있으리라 약조하시었고 [정보 유실]

옥체를 뫼신지 사흘 만에 상왕 전하의 영령(英靈)이 드디어 육신으로 돌아오시더라. 이는 모두 진인께서 그릇을 제때 맹글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 상(狀)이 범(凡)치 않았음이라. 옥체는 본디 오 척(尺)가량이 되어야 할진대, [정보 유실]이 일어난 일인지 스물세 척(尺) 정도로나 비대해져 있었다. 전하의 천안(天顔)은 생전의 외양과 너무나 달라져 인간인지조차 알아보기 힘들었으니, 이 어찌 괴변이 아니리오. 또한 그 정신마저 온전치 못하시니 생전의 기억을 옳게 돌아보시지 못하시었다. 보기에 전하의 옥체에 오직 남은 것은 광인(狂人)의 의식뿐이었다. 황겁하여 진인께 여쭈었으나 그는 [정보 유실]하니 대군께서 [정보 유실]

옥체를 뫼신지 아흐렛날에 전하께서 고방(庫房)을 탈거(脫去)하시어 순흥 땅의 무고한 백성들을 살육하시었다. 피[血]와 살[肉]이 흘러 내를 이루었다. 정신이 아득하여 뛰쳐나오니 전하께서는 살업(殺業)을 멈추시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시더라. 진인께서는 상왕 전하의 넋[魂]이 희미하다 하시었고 [정보 유실] 무가내하(無可柰何)나 역적의 군사가 목전(目前)에 와 있는 작금에 참으로 흉완(凶頑)한 일이로다.

[정보 유실]

대군의 거사가 종내(終乃) 망종(亡終)이 났으니 바삐 몸을 피하였다. 진인과 나는 우선 상왕 전하를 소을촌(瘙乙村)20 으로 옮기기로 하였다. 만일 수양군의 사람이 현재의 전하를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전하께서는 다시금 지부(地府)로 돌아가시고 그 육신은 진흙탕에 찢기어 흙먼지를 뒤집어 쓸 것이 분명하리라.

[정보 유실] 하여 고을 정중앙 떡갈나무에 상왕 전하의 옥체를 봉(封)하였다. 나는 이 고을의 외곽에서 거류하며 그분을 지키기로 하였다. 이는 속죄다. 감히 생사를 거슬러 전하의 생을 뒤엉키게 만들었으니 이 죄를 어찌하리오. 더구나 전하께서는 죽어도 죽음으로 그 흉물스러운 육체서 벗어날 길이 없으니, 그야말로 죄당만사라. 내 생이 끝나는 날까지 그분을 지키리라.

— "지천탁유고" 중 발췌

직후의 SCP-174-KO-3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며, 다시 공식 기록에 등장한 사례는 대일본제국 이상사례조사국; IJAMEA의 백택 계획 III 추보 수기다. IJAMEA가 SCP-174-KO와 소을촌을 발견하게 된 시기는 1912년으로, SCP-581-KO등과 같은 백택 계획의 다른 피해 사례가 대부분 1910년 전후로 발생한 것과 달리 상당히 늦은 시기에 발견되었다.

수기에서는 이를 '니카호 소좌'21라는 IJAMEA 인원의 사전 지식 덕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IJAMEA는 수기의 작성자와 해당 인원을 필두로 하여 소을촌으로 5개 분대를 파견했다. IJAMEA의 소을촌 침범은 단지 그 마을 자체와 주민들의 기적학적 요소를 얻기 위해서였지, SCP-174-KO-3을 염두에 두고 시행된 것은 아닌 것으로 추측된다.

 …니카호 소좌가 마침내 소을촌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아낸 것은 다름 아닌 바로 6일 정오의 일이었다.

 그는 산 정상 부근에 비스듬히 세워진 두 나무장승 께로 우릴 이끌고 갔다. 다 쓰러져서 존재 이유도 알 수 없는 구조물이었다. 조선의 고을 어귀에 가면 흔히 보이는 우스꽝스러운 웃음만을 띄고 있는 채. 니카호는 그 장승들을 '이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는 자만이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기물(奇物)'이라고 설명했다. 마을에 와 보지 못한 자들이 몇 년을 찾으려고 헤매어도 못 찾는 이유가 그것에 있다고 했다. 후일 전술적 요충지로 삼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좌는 이내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시범 보였다. 그는 옷매무새를 정갈히 하곤 장승의 사이를 걸어 지나갔다. 그러다 불현듯, 그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단순하지만 효과 좋은 방범 장치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분대원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 "다이쇼 원년 4월 히라누마 소좌의 수기" 중 발췌

소을촌에 침입한 이들은 처음에는 마을의 유지들22과 교섭을 시도하나, 결렬되었다. 이에 IJAMEA 분대는 무단으로 마을의 변칙 존재를 압수하거나 여의치 않을 시엔 파괴하는 등 침략적 군사 행동을 실시했다. 소을촌의 주민들과 촌장은 IJAMEA의 이러한 군사적 행위에 적대적으로 반발했다. 그러나 IJAMEA의 발달된 군사력에 의해 주민들 중 상당수가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고 만다.

SCP-174-KO-3의 각성(覺醒)은 이 사건을 원인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상황이 급박하여 자세히 보지는 못하였으나 제1분대에서 사격한 총탄 중 일부가 마을의 떡갈나무에 맞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미개한 요보(ヨボ)들에게 본을 보이느라 몰랐지만, 아마 기현상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놈들의 반항이 진압된 것은 대략 2시간 가량이 지나서였다. 우리는 저항한 요보들을 묶어 마을에 일렬로 늘어세웠다. 조선인들의 나이는 천차만별이었고 그중에는 이 마을의 촌장과 승려도 끼어있었다. 구경 나온 마을 주민들은 퍽 두려워하는 기색이었는데, 이는 촌장 때문이라기보단 그 세을진인이라는 중놈 탓인 것 같았다.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승려를 앞으로 나서게 해 꿇렸다. 감히 황군에 덤빈 죄를 단단히 각인시킬 요량이었다. 나는 권총을 빼들고 중의 정수리에 겨누었다.

 헌데 니카호 소좌가 막았다. 옛 정이 있느냐고 캐물었으나 그는 부정했다. 소좌의 말에 따르면, 이 세을진인을 죽이는 것은 이 마을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막대한 기적학적 초상 개체들의 유실을 불러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으므로 총을 거두었다. 이후 소좌는 조선어로 묶인 자들에게 우리의 판결을 전했다. 너희 불령한 요보들을 이 자리에서 즉결처분해도 상관없으나 황국의 무궁한 부강을 위하여 총칼을 거두니, 천황 폐하의 하해와도 같은 은덕에 감사하며 협조하라.

소위 세을진인이라던 그 중놈은 그 말을 듣고 노한듯 조선어로 소좌에게 뭐라뭐라 지껄였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가더니 이내 놈은 예의 그 무지막지하게 변질된 육체로 포박을 풀고 달려들려고 하였다. 시기에 맞추어 나와 사토 이병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니카호가 급히 막으려 들었으나 이미 늦었다. 내 사격으로 중의 머리가 터졌고 사토가 쏜 총알이 심장을 꿰뚫었다. 소좌는 심히 낙심한 듯 보였다.

갑자기 사카모토 대위가 우리에게 떡갈나무가 이상하다고 소리쳐 왔다. 대위는 아까부터 줄곧 나무를 관찰하고 있었다고 했다. 주위가 일렁이다가 갑자기 나무의 형체마저 희미해지기도 하고, 그곳만 온도가 급격히 요동치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나는 떡갈나무로 다가가 이를 관찰하였다. 떡갈나무 자체에는 별다른 특징이 보이질 않았으나 그 공간에 뭔가가 숨겨져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이전 수집원에서 일할 적에 그러한 것들을 다뤄본 적이 있어, 조잡하였으나 내가 직접 나무를, 이 마을의 비밀을 꺼내보기로 마음 먹었다.

 단단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내가 공간을 살짝만 접었는데도 그것은 튀어나왔다.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살덩어리 오니였다. 병사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나는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놈의 행동을 가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니는 제 잠을 깨워서든 마을의 요보들이 죽어서든 어떠한 이유로 화가 나 있었고, 나는 재빨리 사격 명령을 내렸다.

 허나 그 수많은 총알 중 아무것도 놈의 피부를 뚫을 수가 없었다. 경탄스러운 광경이었다. 나는 일종의 황홀경에 빠져 오니를 바라보았다. 비로소 이곳에서 황국을 위한 최대의 진상품을 발견한 것이었다. 무조건 사로잡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놈은 이내 마을 외곽으로 달아났고 곧 사라지고 말았다.

— "다이쇼 원년 4월 히라누마 소좌의 수기" 중 발췌

소을촌에서 달아난 SCP-174-KO-3은 이후 경상도 지역에서 당시의 GoI-004K 소속 인원들을 만났다. 이들은 SCP-174-KO-3의 정체와 그간의 궤적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곧장 소재지 불명의 GoI-004K 거점으로 이송하여 SCP-174-KO-1과 SCP-174-KO-2를 제작해 주었다.

PoI-891-KO의 문서 기록 중 수신인 미상의 한 서한이 이에 대한 정보를 내포하고 있다.

문서 기록 2016-09-12-0891F


언제나 존경하옵는 ██23 선생께.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어느덧 가을 바람이 술술 불어 오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선생을 찾아 뵐 생각을 하니 마음이 저절로 겸손해지는 요즈음 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일전에 문의하신 사항에 대한 답변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리 불쑥 편지를 보냅니다. 지난번 만남 때 선생께서는 성인의 옥체가 어째서 본당과 연이 닿게 되었는지, 그럴 짬이나 있었는지 궁금해 하셨죠. 마침 그 수준 높은 질문이 제가 따로 연구하던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기쁜 마음으로 답을 해드리고자 합니다.

성인께서 세을가 무리의 마을에서 도망쳐 나오신지 어느덧 두 해가 다 지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당시 성인의 의식은 흐리지 않았고 도리어 이전, 아니 생전이라고 할까요, 생전보다 더 또렷한 수준에 속했다고 합니다. 이태 동안이나 이자메아의 추적을 피하셨던 걸 생각해보면 알 수 있겠지요. 참 고난의 시기였을 거에요. 도처에 이자메아의 세력이 가득하니 숨으려면 오로지 산속 깊은 곳 같은 누추한 장소만이 괜찮았겠지요. 한때 이 나라의 왕이었던 이에게는 너무나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러한 곤경에서 성인을 구제한 것이 바로 그때의 수신도 교인들이다, 이 말씀입니다. 정확히 어떤 산, 어떤 지역인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만 당시의 교인이었던 활색(活塞) 강치수(姜治愁)의 서신을 보면 "상왕이 굴(窟)로 와 새 옷을 얻어 갔다."라는 말을 찾을 수 있고, 또 다른 서신에서는 "그의 영(靈)이 너무도 미약하여 육신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음이라. 해서 열제(裂製) 태구련(太貴連) 영감께 부탁하여 장치를 새로이 만들어 주었다."란 대목을 찾을 수 있느니만큼 당대의 수신도 사람들이 성인이 새로이 단장할 수 있게끔 도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성인께서 그들에게 자신의 기나긴 숙면을 부탁했다는 사실입니다. 강활색의 일기에서는 이런 글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상왕은 무척 늙고 피곤해 보였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으로도 고통을 느끼는 듯 힘들어 했다. 그에게 껍질을 만들어 줄 때 내게 슬쩍 말했다. 자길 좀 잠재워 달라고… 해서 장치 안에서 잠들어 있게끔 하였다. 앞으로 몇십, 일이 없다면 몇백 년 간은 그리 수면하고 있으리라." 영적으로 봉(封)해버린 거죠. 이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불필요한 데이터 말소]

이후 SCP-174-KO는 모종의 과정을 통하여 PoI-891-KO의 소유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부록 174-KO-다: 사건 기록 174-KO-다

SCP-174-KO 확보 약 2년 후인 2019년 4월 9일, 무속학부 주관으로 SCP-174-KO-3 내부의 심령독립체와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실험이 진행되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세종 이도의 영혼(이하 SCP-174-KO-3-a로 지칭)과의 소통으로, 뇌수종 교수의 감독 하에 무속학부 인원들이 적절한 기기를 갖추어 실험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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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P-174-KO-2의 작동 중 찍힌 SCP-174-KO.

실험이 한 시간가량 지속되었을 시점에, 갑작스럽게 SCP-174-KO-2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추후 조사에 따르면, SCP-174-KO-2는 작동 즉시 SCP-174-KO-3-a의 영적 봉쇄 상태를 해제하고, 곧바로 대상을 제외한 SCP-174-KO 내부의 타 심령독립체들을 방출한 것으로 보인다.

영상 기록 174-KO-다-a


개요: 사건 174-KO-다 직전 수행한 실험을 촬영하고 있던 재단 소유의 카메라에 포착된 영상. 해당 카메라는 광화문 인근 건물 옥상 위에 있었다.

(04/09/10:10) 서울시 관계자들으로 위장한 무속학부 요원들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카메라로 촬영 중인 인원 옆에서, 무속학부장 뇌수종과 다른 인원들이 토의 중에 있다. SCP-174-KO-2의 작동이 이미 시작되었음에도 아무도 인지한 인원이 없다.

(04/09/10:11) 태량급 심령 반응 측정기TaeRyang-Class Ecto-Reaction Measuring Device에서 위험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린다. 뇌수종 교수가 확인하고는 놀란 어투로 타 인원들을 불러 모은다. 세종대왕 동상의 눈가가 발광하기 시작한다. 민간인들 사이에서 동상의 이상성을 눈치 챈 반응이 일어난다.

(04/09/10:13) 동상에서 둔탁한 소음이 여러 차례 발생한다. 즉시 잠정적 장막 규약 파기 사태로 규정된다. 중요 인원만 남은 채 동상 부근에서 실험을 수행하던 인원들을 비롯한 다수의 인원들이 장소를 빠져나간다.

(04/09/10:16) 지속적으로 발생하던 소음이 잦아들고, 이내 익선관 부근에서 강한 바람이 발생한다. 차후 조사로 영상에 포착된 바람의 방향과 20 개체의 심령독립체들이 방출된 방향이 동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당 영상에 심령 시야 필터Ecto-Visual Filter를 씌운 결과, 심령독립체들이 빠른 속도로 이순신 장군상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방출 이후 20분 간 SCP-174-KO는 아무런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이 사이 기동특무부대 무호-17("도시 한가운데") 인원들이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고, 즉시 민간인 통제와 SCP-174-KO의 향후 행동을 대비했다.

방출 20분 후 SCP-174-KO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등 여러 활동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태 직후 기동특무부대 무호-17은 SCP-174-KO에 접근하여 격리했고, 정오 무렵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인근 거리에 공수 기억소거제 살포가 시행되었다. 이하는 뇌수종 교수와 SCP-174-KO가 나눈 면담 기록이다.

이순신 장군상에 빙의되었던 20개체의 심령독립체는 사건 직후 구속되었다. 추후 검사 당시 이순신 장군상 투구 후면에 SCP-174-KO-2와 유사한 기능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기계 장치를 확인했다. 해당 장치는 뿐만 아니라 부착된 금속의 재질을 유체화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건 174-KO-다의 여파로 해당 장치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여 별도의 SCP 문서화가 이루어지는 대신에 변칙개체 목록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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