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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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바다 인간 세계
봉인 레비아탄 카인과 아벨의 만남 붉은 웅덩이 펜리르 기계의 완성
징조 세이렌의 노래 배반 죽지 않는 도마뱀 황혼의 그림자 태엽장치 바이러스                

확정 판단

예상 '봉인' 변칙 개체


살육의 때가 왔다.

검은 인간들은 그저 존재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것들이다. 그들은 빛과 톱니, 그리고 핏빛 먼지를 모두 품고 있다. 그들이 붉은 웅덩이에서 독물을 뒤집어쓴 채 천천히 솟아올랐을 때 나는 희망과 고통이 뒤섞인 악몽을 마주했다. 서로가 서로를 낳으며 증식하는 아메바처럼 그들은 꼭 같은 복제품이다. 저편의 금지된 땅과 여기의 바다가 거꾸로 뒤집어지고 있다. 검은 것들은 이제 그림자에서 벗어나, 우리들의 종말을 선언하기 위해 죽음을 보여줄 것이다. 다음 세계는 그들의 것이다.

XX XXXXX의 수기


검은 인간들이 벙커 속으로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들의 팔끝은 비탄에 잠긴 용사의 검처럼 뾰족했고, 그들의 발밑은 어떤 구멍보다도 더 어두운 소용돌이로 요동쳤다. 그들이 팔을 뻗어 수직으로 떨어뜨릴 때마다 기동부대원들이 찢겨 나갔다. 그들이 발을 끌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바닥이 갈라지면서 솟아올랐다. 하얀 콘크리트 덩어리가 저항하듯 그들의 다리를 잠시 붙잡았지만 검은 인간들은 너무도 무심하게 그것을 뽑아내며 바닥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막아야 해!"

레이번이 소리쳤다. 그러나 베이커는 그를 붙든 팔을 놓지 않았다.

"당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저들을 이길 수 없어요."

레이번이 베이커에게 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또 실패할 수는 없어."

"우린 조연에 불과한 사람들이에요. 상황을 바꿀 능력은 없습니다." 베이커가 다그쳤다.

"우리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레이번은 그의 말을 듣고 아연해져서, 무력감을 느끼는 두 눈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얘기 들었어? 윤리위원회 의장이 끌려나갔다잖아. 빌어먹을. O5 놈들도 드디어 맛이 간 거야. 이 상황에 누군들 아니겠어? 이제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멋대로 하시겠군그래. 패닝 박사를 욕하던 연방수사국 친구 기억나? 우리도 이제 똑같은 신세야. 윤리위원회를 내친 이유가 뭐겠어? 그 자식들이 제17기지를 공격하려고 한다는 이야기 들었지? 비단 제17기지뿐만이 아닐 거야. 결국 우리는 소모품으로 취급하겠다는 뜻이겠지. 우리도 언젠가 버려질 거야. 봐, 우리 직장에 대한 네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내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되겠지, 친구? 이제 보안 직책 같은 건 없어. 그래, 카드도…….

SCP 종합대응사령부 공식 기록 ███번 1호

O5-██: 그가 제발로 걸어나갔다는 사실이 의외인 모양이군요, O5-██.

O5-██: ……난 아직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소.

O5-██: 그는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겁니다, O5-██. 비록 우리들이 이제까지 요구해왔던 의무와는 충돌했지만.

O5-██: 그렇습니다. 그는 이제 해방되길 바라고 있는 겁니다.

O5-██: 그를 제거해야 합니다.

O5-██: ……하지만 어떻게? 윤리위원회가 가지는 의의는…….

O5-██: 직원들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O5-██: 그러나 구실을 차리는 예의 정도는 보여야겠지.

O5-██: ……램지 프레데릭 박사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고 기록되어 있소. 그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리지웨이 박사요.

O5-██: 결국 모든 일은 데이터베이스 속에서 돌아가는군요.

O5-██: 그래요. 우리들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했건. 모든 건 쓰인 대로만 기억됩니다. 이 호러 스토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 펜을 잡읍시다. 아직 남은 사람들만큼은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O5 위원회 비밀 회의

O5-██: 제17기지에 핵을 날립시다.

O5-██: 그래요. 기동부대도 거절할 테고, 이건 도리가 없소.

O5-██: 그들의 행위는 쿠데타로 보아도 되겠지요.

O5-██: 직원들의 반발은?

O5-██: 제17기지만 잡으면 통제할 수 있습니다.

O5-██: 알겠소.

리지웨이 박사: 결정된 겁니까?

O5-██: 그렇습니다. 우리 의견은 모아졌어요.

O5-██: 다들 안정을 되찾은 것 같군요. 신속한 결단에 감사드리오.

O5-██: X 시나리오를 진행하기로 되었다면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리지웨이 박사: 그렇습니까. (고개를 끄덕거리며) 윤리위원회는 이번 사안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O5-██: ……뭐라고?

리지웨이 박사: 윤리위원회는 제17기지에 핵 공격을 가하는 방침을 승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O5-██: 박사, 당신은 이전부터 줄곧 O5 위원회의 결정을 무르고 있습니다.

리지웨이 박사: 알고 있습니다.

O5-██: 리지웨이 박사, 당신을 설득할 필요성이 있겠군. 우리는 X 시나리오를 실행하기로 결의하면서 사실상 변칙 개체들의 소유와 관리를 포기한 셈이오. 그 결정에 박사도 동의했소. 그러나 제17기지와 같이 규모가 큰 세력이 재단에서 떨어져 나가 우리에게 항거한다면, 우리는 X 시나리오를 발동시키면서까지 지키려고 시도하는 의인 수호의 목적을 위협받게 됩니다.

O5-██: 당신은 변칙 개체를 모두 없애는 것과 의인을 수호하는 것에 대한 상관 관계를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군요.

리지웨이 박사: 아니요, 잘 알고 있습니다. 세계를 위해서라면 변칙 개체들은 언젠가 사라져야 한다는 걸.

O5-██: 그렇다면 어째서……

리지웨이 박사: 그리고 결국 우리 재단도 함께 사라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O5-██: ……결국엔 그렇게 되겠지. 그러나 그전에 변칙 개체들이 먼저 사라져야 하오.

리지웨이 박사: 맞습니다. 방금 그 질문은 그저 당신들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같은 의견을 가지고 계셔서 기쁩니다.

O5-██: 그렇다면 제17기지를 공격하는 것에 동의하겠다는 것이오?

리지웨이 박사: ……아뇨, 미안하지만. (웃음) 안됩니다.

O5-██: ……아직?

리지웨이 박사: 제 결정은 변하지 않습니다.

O5-██: 박사.

O5-██: ……좋소, 리지웨이. 정중히 퇴실을 구합니다. O5 위원회 비밀 회의를 요청하겠소.

리지웨이 박사: 요청을 승인합니다, O5-██. 수고하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난다)

임시 간부 회의


리지웨이는 쪽지를 집어 들었다. 옛날 방식 그대로군, 제이미. 그는 잠시 추억에 젖었다. 그들이 어릴 때는 쪽지를 숨겨두고 서로에게 비밀 지령을 내리곤 했다. 제이미는 특히 이 놀이가 제법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리지웨이를 바깥 뜰로 불러내는 명령을 가장 좋아했다. 나가보면 제이미는 낙엽 더미나 어디선가 주워온 축구공 같은 것을 보이며 선물이라고 내놓고 있었다. 그리곤 남의 선물을 가지고 멋대로 같이 놀았다.

이번 쪽지는 꽤 길다. 제이미는 펠릭스와 함께 제17기지에 있으며, 곧 재단을 떠나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한다. 마지막에 함께 하자고 적어놓았다. 훌륭한 아이들이다. 마치 자식들을 독립시키는 아버지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리지웨이는 흥이 나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웃었다. 그러고 보면…… 한 명이 더 있었지.

그는 서랍을 열어 엽서 하나를 꺼냈다. 억새밭 풍경이 인쇄된 것 두 개를 사서 하나는 아이작에게 주었다. 그가 아직도 이걸 가지고 있을까? 언젠가 여기에 꼭 함께 가보기로 했었는데.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셈이 되었군. 화면 속의 '실종'이라는 단어를 뚫어지게 지켜보던 리지웨이는 미소를 놓지 않은 채 엽서를 품 안에 넣었다. 그는 제 길을 찾았다. 제이미와 펠릭스도.

하지만 미안하다, 얘들아. 난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았어. 잠시 뒤 리지웨이 박사를 호출하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는 스피커를 올려보고, "그냥 리지웨이라고 불러."라고 한 마디 던진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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