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O5 교신 내역(수신 확인되지 않음)

수신자: O5(기밀)

현재 시각 ██:██, SCP-231이 급사했다. 심장 발작으로 보인다. 일전의 결정 사항에 따라 그것의 자궁에서 태아를 적출하여 인큐베이터 속에 구속하는 작업을 실시하겠다.

채널 SCP

오 세상에, 여러분. 이것이 채널 SCP의 마지막 방송이 될 것 같습니다. 초자연적인 물체들과 생물들이 거리에서 미쳐날뛰고 있습니다. 방송국에 전달되고 있는 영상들이 점점 끊기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종말의 시대입니다. 그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나도 희망을 버려서도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폭발)(비명) 여러분, 희망을 놓지 마십시오! (노이즈) 무슨 일이 있어도 (카메라 쓰러짐) 살아남으십시오! (고함소리)(노이즈) (교신 상태 불량) 끝까지 살아남으십시오! (수신 불가)


공고

X 시나리오를 실시합니다.

직원들에게 알립니다. 재단은 SCP들의 통제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남아있는 기지, 지휘부, 기타 모든 보안 시설에 거취하고 있는 직원들은 지금부터 보유 중인 SCP들을 폐기하는 작업을 실시합니다.

다시 알립니다. X 시나리오는 SCP 폐기 명령입니다. 물체형, 인간형, 장소형, 그 외 보유 중인 모든 SCP는 폐기합니다.

O5-██


관리부, X 시나리오 시행령

일부 기지가 X 시나리오의 시행에 반발하며 연락을 끊었다. 예상된 반역 행위다. 대부분 소규모 기지로 제압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나 그중 제17기지가 포함되어 있다. 인간형 SCP를 주로 격리하는 제17기지의 특성상, 직원들과 SCP 사이에 유대 관계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재단의 요주의 단체로 분류되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고 본다.


"제이미."

창가 곁에서 펠릭스가 벽에 기댄 채 말을 걸어왔다. 그녀를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치려던 제이미 애로우는 우뚝 멈추며 돌아섰다.

"오, 안녕, 펠릭스. 여기서 뭐하는 거야?"

"그냥. 노을 구경."

"그래, 예쁘네."

그가 창밖을 들여다보기 위해 다가왔다. 펠릭스는 제이미가 옆에 섰을 때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왜 가담한 거야?"

"뭐라고?" 그가 펠릭스를 돌아봤다.

"반역이잖아, 이건."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제이미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다가 창틀에 두 손을 짚고 말했다.

"반역이라."

복도에 그 말이 허전하게 울렸다. 펠릭스는 계속 그를 신경 썼지만 제이미는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땅거미가 그들 주변을 길게 에워쌌다. 한참 뒤 그녀가 천천히 벽에서 떨어져 한숨을 내쉬자, 제이미는 그제야 고개를 휙 돌리며 눈썹을 들어 올려 보였다.

"난 모든 게 더 좋아질 수 있을 거라 믿어."

펠릭스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나른하게 한탄했다.

"제이미, 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뭘."

"이 상황에 대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워."

"부러운 거겠지, 펠릭스."

"그래. 사실이야."

그녀는 맥이 풀린 눈동자로 포기한 듯 웃었다. 제이미는 그녀의 코웃음에 함께 이를 내보였다.

"좋아, 제이미. 지금 말해야겠다. 네가 점점 나랑은 멀리 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지고 있으니까."

"결코 그렇지 않아."

"제이미."

"그렇지 않대도. 우리가 항상 하는 말 있잖아."

"난 그 말을 믿지 못하겠어."

제이미는 침묵했다. 펠릭스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를 마주하더니 고개를 나지막이 한 번 까딱했다.

"네 부모님은 나 때문에 죽은 거야."

대답이 퍼뜩 나오지 않았다. 펠릭스는 다시 벽에 등을 기댔다.

"……그게 네 비밀이야?"

"그래."

그녀가 제이미를 곁눈으로 지켜봤다. 창틀을 붙잡은 두 손은 미동도 없었다. 그녀는 무딘 목소리로 어렸을 적 자신의 참담한 과오를 들려줬다.

제이미는 반응하지 않았다.

"넌 네 아버지를 용서했어?"

돌연, 그녀의 눈동자가 작게 요동했다.

"뭐라고?"

"네 아버지를 원망했어?"

펠릭스는 의외의 물음에 눈을 자꾸만 깜빡였다.

"원망했지. 아버지는 돈 때문에 아이작을 팔았던 거야."

그녀가 눈을 다시 감았다가 떴다.

"결국은 나도 마찬가지인 셈이고. 모든 것이 그 계약을 받아들인 때부터였지."

덤덤한 목소리였지만 점점 뭔가에 잠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원망했어."

그녀는 울지 않았다. 내숭 떠는 계집애가 아니니까. 그녀는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자기를 최고로 친한 친구라고 믿고 있는 남자에게 그의 부모님을 죽게 만들었다고 말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여자였다. 그럼에도 다음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그녀는 눈을 재차 두 번씩이나 깜빡거려야 했다.

"하지만 아빠 잘못이 아니었어. 아빠는 우리 모두 행복하길 바랐을 뿐이야."

기분이 우는 것과 비슷했다.

"네가 그렇게 된 건 전부 내 탓이야."

그녀가 흐느꼈다.

"젠장."

숨넘어가는 소리가 복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펠릭스는 그것이 창피스러워 주먹 쥔 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 턱을 가슴께에 바싹 붙였다.

제이미가 창틀에서 손을 떼고 펠릭스에게 돌아섰다.

"너도 마찬가지야, 펠릭스."

"뭐라고?"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심지어 혼돈의 반란의 책임도 아니야."

"하지만……."

"이제 내 비밀을 들려줄 차례야, 펠릭스. 난 그때 한 번 복제된 적이 있어."

"뭐?"

"너도 그 녀석을 만났어."

"무슨, 소리를,"

"그 녀석은 총에 맞아 죽었어."

"뭐…… 뭐…… 그게……."

"맞아."

펠릭스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제이미를 바라봤다. 제이미는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창가에 털썩 기댔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내가 과거의 어느 순간에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어."

그가 펠릭스를 마주 봤다. "너도 그랬을 거야."

그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제이미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거야. 어쩌면 전부 다 달라졌을 거야. 지금 이 순간이 없어지게 될 만큼. 그렇다면, 거기엔 지금의 나도 없겠지."

"하지만 그랬다면 더 행복한 네가 될 수도 있었을 거야."

"그래. 하지만 틀려. 그건 다른 나일뿐만 아니라 틀린 내가 되는 거야. 왜냐하면 그건 거짓말이니까. 알겠어? 난 항상 내 복제품의 죽음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생각하곤 했어. 하지만 의미 있는 죽음이라는 게 어디 있겠어, 펠릭스? 그는 그저 퇴장했을 뿐이야. 그가 틀렸기 때문에 무대에서 배제된 거지. 어쩌면…… 역할이 끝났기 때문에."

그는 펠릭스의 몽롱한 표정을 건드리며 덧붙였다.

"아이작처럼 말이야."

"그럴 리가."

"우리가 맡은 배역이 뭐겠어?"

"우리는……"

"'언젠간 웃을 날이 오겠지.'"

제이미의 확신은 펠릭스에게 위로에 가까웠다.

"정말…… 그걸로 될까?" 그녀가 희망을 믿고 싶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펠릭스. 마법의 주문이라니까." 그가 펠릭스의 팔을 잡았다. "자, 방으로 가자. 토마토 샌드위치 만들어 줄게."

"……제이미, 고백할 게 하나 더 있어."

"그래, 말해 봐, 펠릭스."

그녀가 제이미에게 얼굴을 기대며 잠긴 목으로 소리 냈다.

"나 토마토 안 좋아해."

제이미가 킬킬거렸다. 펠릭스의 입에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두 사람의 낮은 웃음소리가 이어서 복도를 채웠다.


███████████████

알베르토 박사: 그는 몇 년 전에 사고로 이미 죽은 자였소.

리지웨이 박사: 사고로군요. (실없이 웃음) 애초에 그에게 있어서 SCP 같은 건 문제가 아니었던 겁니다.

알베르토 박사: 할 말이 없군, 리지웨이. 난 실패했어.

리지웨이 박사: 어차피 그는 구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알베르토 박사: 그렇군…….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겠나?

리지웨이 박사: 단지 방향이 틀렸던 겁니다. 어쩌면 당신만은 그 방법이 옳았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모두가 스스로의 역할을 온전히 이해하지 않는 한.

O5 교신 내역(수신 확인되지 않음)

수신자: O5(기밀)

태아가 없다. SCP-231의 자궁은 완전히 비어 있다.

███████████████

알베르토 박사: 자네 역할은 뭐란 말인가?

리지웨이 박사: 제 이름은 통상적인 리지웨이와는 달리 L로 시작합니다. 램지, 루핀, 그리고 당신이 찾고 있던 그 남자와 같이…….

알베르토 박사: 그럼 내 역할은?

리지웨이 박사: (웃음) 알베르토, 당신의 역할은 나비였습니다. 번데기 속의 나비.

알베르토 박사: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리지웨이 박사: 아, 이 이야기를 보시죠. 지금 자신들이 마지막 남은 부대인 줄 모르는 세계 오컬트 연합의 대원들이 보이는군요…….

████

GOC 특수부대원들이 격리실의 문앞에 서 있다. 문 양쪽과 앞을 틀어막고 엄중한 경계 상태에 있다. 곧이어 한 대원이 맞은편 복도 끝에서 달려오고, 그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한다.

한 대원이 격리실 문 옆에 있는 키패드를 두드린다.

같은 대원이 어떤 기계 장치를 키패드 앞에 댄다. 키패드에서 레이저 스캔 장치가 가동된다. 뒤편에 서 있는 대원들 중 한 명이 옆에 선 대원과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서로 자리를 바꾼다.

키패드 앞에 선 대원이 기계 장치를 조작하고 다시 키패드 앞에 댄다. 키패드가 또 한 번 레이저 스캔 장치를 가동한다.

XXX XXXXXX: XXXXXXXXX, 툴 가져와!

대원이 키패드를 몇 차례 두드린 뒤 다른 기계 장치를 건네받아 키패드 정면에 부착시키고 물러난다.

부대장으로 보이는 대원 한 명이 앞으로 나와 대원들에게 말한다.

XXXXXXX XXXXXXXX: 격리 해제 즉시 총알을 쏟아붓는다. XXXXXX가 폭발물을 사용한다. 지시가 들리면 모두 문밖에서 엄폐한다. 세계 오컬트 연합의 의의를 기억해. 모든 변칙 개체는 파괴되어야 한다. 지금부터 다음 지시가 있을 때까지 모든 대화는 수신호로 한다.

각각 세 번과 네 번의 수신호가 격리실 문을 사이에 두고 있는 대원들 간에 교차된다. 부대장이 격리실 문 정면에 선다.

격리실 문의 잠금장치가 풀리며 기다란 쇠 빗장이 벽 속으로 들어간다.

첫 번째 문이 열린 뒤 두 번째 문이 돌아간다. 문 옆에 선 대원 한 명이 수류탄의 안전장치에 손을 가져간다.

두 번째 문이 뒤로 열리면서 적색 경광등이 번쩍인다. 부대장이 한 손을 위로 들어 올린다.

세 번째 문으로 보이는 원형 조리개가 잠시 중앙으로 조였다가 일순간 열린다.

부대장이 손을 급히 내린다. 격리실 내부로 총성이 빗발친다.

탄창이 다 소모되자 대기 중이던 대원 한 명이 수류탄 세 개를 연달아 격리실 안으로 던져 넣는다.

수류탄 하나가 추가로 던져졌다.

XXXXXXX XXXXXXXX: 엄폐!

특수부대원들이 문 앞을 비우고 양쪽으로 붙는다. 격리실 내부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불꽃이 복도 바닥에까지 뿌려진다. 대원들은 무시하고 다시 문 앞에 모인다.

XXXXXXX XXXXXXXX: 대상이 제압되었나?

격리실 내부는 검은 연기로 자욱하다. 바닥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의 그림자가 보인다.

XXXXXXX XXXXXXXX: 아직 제압되지 않았다, 발사!

특수부대원들이 그림자를 향해 일제사격한다.

탄창이 다 소모되자 부대장이 연달아 명령한다.

XXXXXXX XXXXXXXX: 계속 발포하라! 가진 총탄을 모두 사용해!

대원들이 장전한다. 일부는 아직 사격 중이다.

연기가 천천히 걷힌다. 격리실 내부의 바닥은 붉은 액체로 가득하다. 특수부대원들이 다시 일제사격을 가한다.

탄창이 다 소모된다. 검은 그림자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다. 대원들이 장전한다.

그림자가 천천히 일어선다. 비틀거리면서 격리실 밖으로 나온다.

XXXXXXX XXXXXXXX: 발사!

일제사격으로 인한 노란 빛이 시야를 가린다. 총신 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탄창이 다 되어 사격이 멈춘다. 거대한 괴수가 바닥에 쓰러져있다. 주변 바닥에 붉은 웅덩이가 원을 그리며 흥건하다.

부대장이 대원들에게 수신호를 한다. 대원 한 명이 거리를 두고 괴수에게 조금 다가간다.

갑자기 괴수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몸 이곳저곳에 뚫려있는 구멍이 다시 채워진다.

대원 한 명이 비명을 지른다.

괴수가 팔을 일순간 뻗어 굵은 발톱으로 비명을 지른 대원을 찍어누른다. 특수부대원들은 그 자리에 굳어 있다.

괴수가 긴 혀를 늘어뜨린다.

특수부대원들이 도망치기 시작한다. 고함소리가 남발한다. 일부는 총을 장전하여 계속 사격한다.

괴수의 몸에 뚫린 구멍은 이내 다시 채워진다. 그 과정에서 새어 나온 붉은 액체가 바닥에 떨어져 웅덩이를 요동치게 만든다. 그것이 일어선다.

SCP-682: 나는…… 죽지 않아…… (웃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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