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테이트 박사는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그날도 그는 책상 앞에 모여 앉아있을 누군가들을 욕하고 있었다. 어차피 보낼 다른 사람도 없으면서 마치 엘리트 요원이 몇 다스 씩이나 있는 것처럼 그들이 마구 질러대던 말들이 떠올랐다. O5는 퇴물들이었고 재단도 마찬가지였다. 쟁쟁하던 박사들은 모두 죽었다. 이제 O5도 박사라고 불리는 것을 포기했다. 애초에 박사라는 건 모두 구라질에 불과했다.

삼자 회담에 앞서 연방수사국의 특사와 쓸데없는 밀회를 가지기 위해 마중을 준비하고 있는 재단 요원은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O5들의 우려대로 그는 그 밀약이 성사되건 되지 않건 상관없다는 입장이었다. O5는 테이트 박사가 UIU의 특사로 나타날 패닝이라는 자와 형제 관계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꼬집으며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는 패닝이 자신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흔들릴 만큼 헛보이지는 않았다며 출석 의사를 강력히 표시했고, O5는 결국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테이트 박사는 그들의 우려와는 달리 맡은 바 임무는 충실히 하는 사람이었다. 테이트 박사는 패닝에게 그들이 요구한 사항을 충실히 전달할 것이고, 만약 거절당하면, 그래, 네놈들 우려가 맞아떨어졌다, 고개만 끄덕이고 지나갈 것이다. 패닝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그의 생각은 어쨌든 O5가 예상한 방향과는 많이 달랐다.

전방에 지프차 두 대가 나타났다. 앞의 한 대는 무시하고 뒤차에 시선을 집중하자, 차량 위로 팔을 뻗어 흔들고 있는 패닝이 보였다. 테이트는 같잖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가방을 내려놓고 기다렸다. 지프차에는 각각 세 명씩 타고 있었다. 앞좌석에는 운전자만 있었고, 뒷좌석에 무장 인원 둘과 다시 패닝과 무장 인원 하나가 탄 차가 달려왔다. 여기서 회담장까지는 약 1km 거리였고 그들은 도보로 이동하며 간단한 QnA를 진행할 것이다. 그 뒤에는 몇 가지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천둥 같은 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테이트는 자신이 이 굉음에 익숙하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했고, 곧 그것이 저격소총의 발포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째 지프차가 길을 벗어나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패닝!"

테이트는 앞을 향해 달렸다.


긴급 회신 555

이번 저격 사건의 범인은 UIU에 모종의 불만을 가진 러시아 군부 세력 중 하나의 소행으로 밝혀졌습니다. 재단 요원들이 사건 발생 직후 그를 붙잡아 초기 심문을 행하였으나, 상기된 정보밖에 얻지 못한 상태에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은 이번 사건으로 희생당한 UIU 측의 요원에게 심심한 안타까움을 느끼고, 배후를 쫓는데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회담 재소집에 출석 의사를 밝힌 패닝 키넛 박사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테이트 키넛에게 전송된 개인 메시지

O5-██: 테이트 박사, 보고에 따르면 당신은 당시 이성을 잃고 패닝에게 달려갔다는군. 당신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생에게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는 당신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소. 우리는 이번 사건으로 당신의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거라고 보고 귀환 조치를 명령했소. 삼자 회담에 파견될 요원을 따로 선발했으니 당신은 돌아와 쉬고 계시오.

기밀 문서 ████████ UIU4811-1 p.03

UIU의 긴급 군사훈련은 역시 이번 특사저격미수사건을 염두에 두고 결행한 조치로 보이지만, 이토록 빠른 반응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그들이 이미 결집된 군부 세력에 대한 위험성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UIU는 군사력의 필요성을 직감하고 있었고 군부 세력의 행동을 곁눈질하며 그들에게 채찍을 사용할 시기를 재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으로 그들은 이제 오히려 폭탄을 끌어안은 셈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UIU와 군부 사이를 오가며 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됐다.

제██지휘부 보안 기록 H124, F-4, 0006

테이트 박사: 이거 치워!

O5-██: 그를 막으세요.

테이트 박사: 이 빌어먹을 개자식들아! 되잖은 수작 집어치워! 네놈 새끼들이 쏜 거잖아!

O5-██: 테이트 박사, 음모론에 대해 답변해줄 시간은 없습니다.

테이트 박사: 음모론? 3분 만에 잡힐 거리에서 소음기도 안 달고 저격하는 병신 새끼가 세상에 어디 있어, 씨발놈들아. 애초에 날 특사로 임명할 생각도 없었지? 처음부터 내 동생이 저격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보낸 거지, 이 씹새끼들아!

O5-██: 박사, 우리는 지금부터 삼자 회담을 중계 받아야 합니다. 이토록 중대한 사안을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망치려 들지 마세요. 당신은 혼자 상황을 오해하고 있고, 이 지휘부 내에서 혼자 날뛰고 있습니다. 방안으로 돌아가서 혼자 조용히 다시 생각하세요. 그를 끌어내세요.

테이트 박사: 빌어먹을, 니미럴 뒈질─ 이거 놔, 병신아. 이 개새끼들아, 씨발, 이거 놓으라고! (아우성)

테이트 키넛에게 전송된 개인 메시지

O5-██: 일주일 동안 여기서 떠나지 마시오. 그동안 어떠한 공적 활동도 맡겨지지 않을 것이오. 박사, 이것은 사실상 근신 조치요.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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