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드 온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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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림은 자신을 감싸오는 서사적인 한가함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서사적인 한가함이란, 꼭 머피의 법칙처럼, 한가해지면 귀신같이 금세 바빠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꺼림칙함이 그의 몸을 둘러쌌다.

아니나 다를까,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앞서 들었던 꺼림칙함을 생각하자, 이림은 자신이 혹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지 궁금해졌다. 보이드 애플리케이션을 켜서 문구를 확인한 이림은 코웃음을 지었다.

의뢰 물품: 귀신 들린 칼, 목적지: 알 수 없음

"뭔 개소리야 이게!"

이림은 뭔가 더 쓰여 있는지 확인했다.

비고: 목적지는 칼과 알아서 협의할 것.

더욱 어이없어질 뿐이었다.


"그래서, 니 주인을 찾아달라고?"

이림은 상자에서 튀어나온 귀신 하나와 마주하며, 놀랄 틈도 없이 말 많은 그 귀신칼인지-소녀인지의 말을 잠자코 5분간 들어주고 있어야 했다.

"이 차가… 시간여행이 되던가?"

"아니, 시간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설명했는데!"

나라시는 답답한 듯 가슴을 쳐댔다.

"아니 그러면, 지금 거기 가면 그 왕이 그대로 거기 있대?"

"그렇다! 그것은 확실하다!"

"확실해? 1600년도 더 된 일인데?"

"그럴… 것이다! 하밀타가 나를 잊었을 리가 없으니!"

"얼굴은 기억해?"

"흠… 그렇지만,"

"에휴, 말을 말자."

이림은 나라시의 말을 끊고 다마스에 시동을 걸었다. 덜컹거리는 소음은 수다를 끊어버리기에는 충분했다.


광주에서




이림은 광주 시내 한복판에서 가야 시대의 사람을 찾는 소녀와 함께 있었다. 8차선 도로 위에 달리는 차들에서는 소로 농사짓고 흙길을 다니던 머나먼 옛날을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햇빛이 정수리 위에서 내리쬐자, 이림은 점심때임을 깨닫고 곧 출출함을 느꼈다.

"가야는 나중에 찾고, 밥이나 먹자."

이림은 잠시 스마트폰을 꺼내 "광주 맛집"을 검색하고 곧 사람이 와글와글 모인 한정식집을 찾을 수 있었다. 이림은 근처 대로변에 주차하고 나라시와 함께 밥집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이림은 무엇이 생각난 듯 잠시 멈칫하고 나라시에게 물었다.

"너 밥은 먹니?"

나라시는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잠시 갸우뚱했다.

"제일 최근에 먹은 게 뭐야?"

"밥…이랑 반찬."

"그래, 기억도 안 나겠지…"

두 사람은 밥집에 도착해, 밥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이 정도면 그때 먹은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된장찌개를 비롯한 반찬들이 속속 나오고, 나라시의 눈은 놀라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기억났다!"

"뭐가."

"하밀타, 그자와 함께…"

"좀 작게 말해."

"그래, 알겠다. 왕과 함께 나는 사냥에 종종 나섰고 그는 나를 던져 사냥감에 명중시키고는 했다."

가야인들이 수렵 생활을 했던가, 라고 이림은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 그의 얼굴도 기억났다!"

"좀 작게 말해, 옆 테이블에서 다 쳐다보잖아."

"미안하다. 정말 오랜 시간 만에 흥분되어서 말이다."

"어떻게 생겼는데?"

이림은 밥을 먹는 데에 집중하면서도 내심 궁금해진 말투로 나라시에게 물었다.

"마치, 사마귀와 같았다."

"사마귀?"

"그래, 사마귀. 하지만 인간들 앞에 나설 때는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뭐야 그게. 역겨운데. 괴물 아냐, 괴물."

"뭐?"

이림은 눈치 없이 계속 말했다.

"아니 그렇잖아. 요괴 아냐 그거. 맨날 우리 쪽 사람들이 그런 거 잡아 족치러 다니는데."

그 순간, 시퍼런 불길이 이림을 덮쳤다.

"으악 시발 뭐야 이게!"

"감히 그를 모욕하는 말을 해?"

"아니, 야!"

나라시는 자신이 잠시 흥분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음, 내가 좀 심했군."

"아니 이게 지금… 이게 얼마짜리인데!"

이림은 새까맣게 타버린, 지난주에 쿠리에 한 값으로 호야 몰래 산 와이셔츠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아니 그러지 말고 좀 들어보시게."

이림은 나라시의 말을 묵살하며 밥을 먹었다. 밥 먹는 5분간 둘 사이엔 안절부절못함과 침묵만이 흘렀다.

밥집에서 나온 이림은 잰걸음으로 다마스에 타며, 조수석 창문을 두드리는 나라시를 놔두고 시동을 켰다.

"잠깐만, 내가 미안하다! 값어치는 충분히 쳐주겠으니 놓고 가지 말아줘!"


집에서




일요일 오후, 한가로이 방 침대에 누워있자니 여간 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 침대 반대편 가에 두었던 핸드폰이 울려 이림은 짜증을 내며 기어갔다.

"아니… 누가 일요일에 이렇게 연락을 해…"

배송자인 '심야클럽'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네, 이ㄹ… 아니 제이드입니다."

"정말 잘 배송… 된 건가요?"

"네, 고객님, 앱에 표기해두었듯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배송해드렸습니다."

이림은 자본주의에 찌든 말투를 한껏 담아 대답했다.

"배송이… 됐어요?"

"네?"

"아, 아닙니다."

"네~ 입금 부탁드립니다."

이림은 좀 찝찝했지만, 어쨌든, 한 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테레비를 보니 찝찝했던 마음이 다시 편안해졌다. 그때였다. 갑자기 이림의 머릿속 가득히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빨리, 여기로 좀 와줘!"

이림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라시의 목소리였다.

"누나, 이거 뭐야?"

이림은 거실로 나와 이연에게 물었다.

"뭐가? 이거? 사과."

과일을 깎아 먹던 이연 또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는 이림을 보며 어이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 목소리!"

"무슨 목소리?"

"몰라, 아, 나 나가볼게."

"뭐야, 쟤 왜 저래."


다시 광주에서




목소리는 밤이 되어서도 계속 울려 퍼졌다.

"언제 오는 게냐, 이러다가 잡히겠어!"

"아니 어딘데!!!!!"

이림은 텔레파시는커녕 평소 주변인들 마음도 못 알아채는 눈치 없는 놈인지라 이림과 나라시의 일방통행 대화만 계속될 뿐이었다. 이림은 오후 내내 차원 통로를 타며 광주 둘레의 산 이곳저곳을 훑어보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저기요, 여기 통행 금지구역입니다."

공사장 인부가 다마스를 막아섰다.

"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초행길이라 길을 잘 몰라서요. 이 차 오래돼서 내비도 고장났고… 고속도로 타는 길이 어느 쪽인가요?"

"아, 고속도로는 유턴하셔서 저쪽으로 좌회전하시면 돼요."

이림의 촉과 임기응변이 동시에 발동했다. 저놈들 재단 놈들이다. 하는 생각이 이림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공사장 인부가 저렇게 깨끗한 옷을 입고 있을 이유는 무엇이며, '공사 중입니다' 가 아니라 '통행 금지구역입니다'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생초보 요원이 분명했다.

이림은 창문을 열고, 최대한 저속으로, 공사장 인부를 뒤로 두고 지나갔다.

"네, 지금 통제 중입니다. 개체는 찾았나요?"

멀리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림은 확신했다.

아직 찾지 못했으니 잡히진 않았겠군, 하는 생각으로, 그리고 자기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자기가 언제부터 이런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으며 도전정신 있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 채 다마스의 라이트를 끄고, 통제 중인 산 중턱으로 차원 통로 출구를 맞추었다.

"에이씨, 그러게 왜 놓고 내려갖고!!!"

이림은 자책했으나 이내 이미 흘러가 버린 일이라고 생각했다.

뿅 하고 낙엽 바닥에서 튀어나온 다마스는 느티나무에 가볍게 부딫혔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잠시 걸어가던 그때였다.

"여기다!!!"

"어, 어!!!!"

나라시가 느티나무에서 떨어지더니 이림의 면전에 대고 반가움을 표했다. 이림은 오늘 운빨이 좋은 건지 얘가 영기로 나를 찾은 건지는 몰랐지만 일단 만났으니 반가워했다.

"역시 구하러 와줬구나!"

"야, 조용히 해! 빨리 일로 와봐. 빨리!"

수색 중인 라이트 하나가 멀리 스쳐지나갔다.

"빨리 타봐, 세팅 좀 하게."

이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차원 통로를 설정하고 액셀을 밟았다. 낙엽 부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마스가 땅으로 꺼졌다.

차원 통로로 흘러가는 중에, 이림은 나라시가 눈물을 훔치는 걸 보았다.

"정말, 무서웠다. 당신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이림은 말하는 것은 어른 같지만서도, 소녀의 모습을 보이는 나라시를 보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미안해. 내가 한 말도 심했고 내가 놓고 내린 것도 미안해."

"옷을 태운 것은 진심으로 미안하다."

나라시는 울먹이며 말했다.

"아냐, 그건 진짜 괜찮아."

이림은 심야클럽에서 받은 돈으로 이미 새 와이셔츠를 구매한 상태였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무덤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하밀타를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거지?"

"일단 다시 돌려다 줘야지."

이림은 심야클럽에 나라시를 데려다주려다 생각했다.

'돈은?'

머리가 다시 아파졌다.

변칙 개체 회수 기록 - 사건 202207191나
일시: 2022-07-19 오후 5시경~9시경
위치: 무등산 북쪽 자락
요약: 산에서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로 다니는 10대 소녀 외형 개체에 대한 제보, 기동특무부대 베타-33 "사랑산악회"가 주변 산에 대한 민간인 통제 이후 수색 시작. 산을 둘러싸고 수색 시작했으나 9시 경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여 수색 종료. 개체가 신체 강화 능력이 아닌 공간이동 능력이 있다는 가설 제기됨. 개체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 조사 진행 중. 이외의 특별한 사항은 없음.



심야클럽 회실에서



"그러니깐… 다시 돌려드리는 걸로…"

"아니요, 괜찮습니다. 돈은 안 돌려받아도 돼요. 오히려 저희가 고생하시게 만든 건데…"

"고생시킨 건 아는 거ㄴ… 아니 감사합니다."

"예~ 들어가십쇼."

"네~"

이림은 나라시를 내려주고 돌아왔다. 둘의 마지막 인사에는 고생하면서 생긴 약간의 애틋함이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한쪽은 배달비를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의 인사였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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