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지역 보고서: 태평양 변칙문명 사미오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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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단 태 평 양 사 령 부
변 칙 지 역 보 고 서

28 Mar 2024 16:01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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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수면 아래 생명의 첫 탄생부터 석기시대의 커다란 짐승들과 처음으로 직립보행을 시작한 인류의 시초까지, 인류의 문명은 먼 여정을 거쳐왔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시대에 이르기까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선구자와 개척자들의 유구한 노력 덕분에, 우리 인류는 지구 상의 거의 모든 장소를 마주하고, 탐험하고, 개척하여 그 위에 자부심이 담긴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직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밝혀지기를 거부하는 미지의 공간들이 가득하다. 재단은 가면극 규약, 장막 정책에 따라 그 중에서도 아직 인류의 손이 닿기에는 이르다고 판단된 곳들을 세간의 눈과 귀로부터 격리하고 있다. 재단이 숱한 노력과 위험을 무릅쓰고 이러한 장소들을 격리하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초법 단체로써 운용할 수 있는 토지를 확보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정치와 외교를 통한 이득을 얻고자 함이기도 하고, 굉장한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인류의 손이 닿기에는 아직 인류가 너무나 유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때로는 우연한 계기로 그곳에 떨어진 사람들이, 때로는 현생 인류가 아닌 지성체들이 그러한 은폐된 장소에서 하나의 사회 공동체를 이루거나, 더 나아가 발전된 문명을 이루기도 한다. 그들은 각자 인류 문명과 단절되어 다양하고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채 새로운 유형의 변칙 사회 공동체를 이루었고, 그들 중 일부는 현 시대까지 살아남는데 성공하였다.

현재 재단의 관할 하에 있는(최소한 상호소통은 이루고 있는) 변칙 사회 공동체의 수는, 그것이 문명 사회이며 인류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미루어볼 때 결코 적지 않다. 이러한 변칙 공동체는 주로 변칙적인 특성을 지닌 장소인 넥서스를 중심 삼아 자연히 형성되거나1, 그 자체로 강력한 현실조작성 변칙 능력을 보유한 인간들에 의해 건립되는 경우2가 주를 이루며, 때로는 그 두가지 모두에 해당되는 사례3가 나타나기도 한다.

재단에 의해 요주의 국가(Nation of Interest), NoI-3816로 분류되어 있던 태평양의 해저 변칙 문명 사미오말리에는 상술한 사례 중 어떤 상황에도 속하지 않는 특이한 경우로, 단연 지금까지 재단이 관리하던 그 어떤 변칙 공동체와도 공통되지 않는 신비한 특성을 보인다. 그들은 근세기에 이르기까지 외부 문명과의 주기적인 교류 없이도 최소한 2000년 이상 고유한 문화를 지니며 자생해온 변칙 국가 공동체임에 더불어, 재단이 격리 업무에 처참히 실패한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사미오말리에는 현재 처참한 격리 파기 사태 이후, 거의 전체에 해당하는 구성원들이 몰살당하였고 주요 유적지는 모두 파괴되었다. 그들이 수천년에 걸쳐 이룩해낸 문화와 기술은 남김없이 실전되어 간간히 출토되는 해저의 유물에서 그 흔적만 겨우 찾아낼 수 있을 뿐이고, 우리는 과거의 기록을 살펴 그 실태에 대해 상상을 덧붙여 추측해낼 수 있을 뿐이다.

본 보고서에는 작성일을 기준으로 재단이 수집한 증언과 사료 등을 분석, 연구한 내용을 토대로, 과거 남태평양에 존재했던 해저 변칙 문명 사미오말리에와 그것을 구성하던 인류의 변칙적인 아종의 실태에 대해 최대한 많은 내용을 담아냈다. 연구에 필요한 기본 자료의 부족에 의하여 그 내용이 사실과 다르거나 부정확할 수 있음에 유의하라.


제1장: 사미오말리에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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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오말리에의 국기.

사미오말리에(Sami o malie, "상어의 바다".) 공화국은 태평양 남서부, 지리적으로는 오세아니아 폴리네시아 해역 인근에 위치해있었던 해저 국가로, 약 기원전 1세기부터 근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2,000년에 걸쳐 존속하였던 소규모의 변칙 문명이다. 사미오말리에의 구성원은 백상아리의 특성을 지닌 인간 아종("SCP-491-SHK"으로 분류됨.) 뿐이었으며, 그들은 해저에서의 활동을 이어나가며 그들만의 고유한 정체성과 문화, 기술 등을 확립해나갔다.

SCP-491-SHK 또는 그 선조가 세운 공동체의 역사는 인류 문명도 태동하지 않은 약 10만 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사미오말리에의 전신 격이 되는 국가 공동체의 탄생은 약 2천여 년 전의 일이다. 사미오말리에의 성립 이후 그들은 태평양 중앙부에서 만 명 내외의 규모로 외부와 거의 접촉하지 않고 느린 속도로 성장과 쇠퇴를 거듭하였다.

해저라는 환경 특성 상 사미오말리에는 다른 문명과의 지리적인 단절, 생존에 필수적인 자원의 결여, 더딘 기술 발전 등 다양한 요인이 겹쳐 중세 이전의 도시 국가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고유의 문화와 기술을 발전시켜 그들만의 독특한 특성을 지닌 문명으로 오래토록 존속하고 있었다.

사미오말리에는 19██년, 재단에 의한 최초 발견 이후 태평양사령부의 관할 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SCP-491-SHK 관련 특별 격리 규약이 재정되어 민간으로부터 은폐, 보호되고 있었다. SCP-491-SHK는 사미오말리에 영토 인근, 내부로의 진입에 대해 적대적으로 대했기 때문에 원칙 상 그들과의 접촉은 정기적인 교역과 원거리 정보 수집으로 합의, 제한되어 있었다.

재단은 사미오말리에와의 정기 교역을 통해 식품, 의류, 건축 소재, 인류 문명에 대한 정보와 기술 등을 전달하였고, SCP-491-SHK의 생태와 그들이 세운 문명의 정보를 수집하였다. 격리 규약의 재정 이후 태평양에서 사미오말리에와 연관하여 발생하는 충돌 사고는 거의 없었고, 민간 은폐 역시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재단은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그들에게 인류에 위해를 가할 능력이나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고, 사미오말리에와의 평화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20년 이상 이어졌던 그들과의 평화 협력 상태는 하루아침에 깨졌다. 20██년, 요주의 무력 단체 상어 죽빵 센터(Shark Punch Center, SPC)가 현대적인 무장과 함께 사미오말리에를 급습하였고 재단 태평양사령부와 충돌하였다. 사미오말리에는 이 사태로 거의 전국민이 몰살당하였고, 재기 불능 수준으로 파괴되었다. 이후 재단은 사미오말리에의 국가 등급을 몰락(Downfall)으로 재분류하였다.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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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오말리에 문명의 위치와 영향권.

사미오말리에는 오세아니아 동부의 폴리네시아 지역권 내에 존재했다. 사미오말리에와 인접했던 인류 거주지로는 남쪽으로 사모아 제도, 서쪽으로는 투발루, 동쪽으로는 토켈라우 등의 폴리네시아의 크고작은 섬들이 있으나, 사미오말리에의 거주지와 이러한 지역간에는 직선 거리로 약 400km 이상에 달하는 해역이 존재하여 외부와의 교류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미오말리에의 영토는 가장 번화한 구역이자 수도인 로로토(Loloto, "깊은 곳". 실제 심해저대에 속할 만큼 깊은 수심에 위치해있지는 않으나, 인근에 해구가 형성되어 있다.)를 중심으로 SCP-491-SHK의 크고 작은 거주지의 형성 및 확장으로 그 경계가 정해진 것으로 보이며, 약 ███km2 범위를 영토로써 인식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사미오말리에의 영토 경계는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영토 확정보다는, 일종의 만다라(mandala)4와 유사한 방식으로 인근 SCP-491-SHK들의 서식지 이동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화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미오말리에의 주요 생활 지역은 대개 중심해수대 또는 상부 심해저대에 형성되어 있으며, 이는 외부 천적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함으로 보인다.

사미오말리에의 주거 지역은 주로 바다 산호와 암석 등 적절한 건축 재료가 풍부하면서도, 생활 반경 이내에서 다른 어류 종을 사냥하기 좋은 지역들이 주로 선정되었다. 특히 사미오말리에 구성원들의 아성체가 섭취하기 적절한 치어를 발견하기 쉬운 장소들이 선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미오말리에의 구성원들은 영토의 침해, 정확히는 그들의 생활권 침범에 대해서 단호히 대처하였으며, 침입자는 현장에서 제압하여 구류시키거나 강제로 해상으로 부상시켰다.

자연 경관

사미오말리에의 영향권 내에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에서 만들어진, 자연 그대로의 위대한 지리적 경관이 여럿 존재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재현할 수 없는 이 경관들은 사미오말리에의 주거, 문화, 신앙 등 많은 면에서 영향을 끼쳤다.

  • 산호초 거대 군락 (Great colony of coral reef)

사미오말리에의 영향권 내에 있는 무광층의 심해저대는 그 수온과 태양광이 닿지 않는다는 특징 때문에 대다수의 어류를 비롯한 여러 생물들이 살아가기 부적합한 환경이다.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산호 역시 상호공생할 수 있는 조류도, 영양분을 섭취할 먹이도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서 심해라는 환경은 생존하는데 큰 장애가 된다.

하지만, 사미오말리에의 해저 협곡 부근에 자생하는 산호는 변칙적인 체내 기작을 통해 심해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 이 산호 종은 몇백년간 SCP-491-SHK 외의 인류에게는 발견되지 않고 오랫동안 심해의 한 구석에서 자생하며 느린 속도로 그 세를 불려나갔다. 그 결과 사미오말리에에서는 수백미터 단위의, 높고 거대한 산호초 구조물이 여럿 형성되어 있다.

각각의 생장 정도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부분의 산호들이 커다란 구조물로 성장하고 뭉치고 부서지는 걸 반복하며 하나의 넓고 거대한 "산호 지대"를 형성한 상태다. 실제 사미오말리에의 생활 지역과는 거리가 있지만, 산호를 주요 건축 자재로써 필요로 하는 주민들에 의해 그 일부가 지속적으로 절단, 채취되어 활용되곤 했다.

  • 심해 소용돌이 (Loloto vasia ni̊ sw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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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파 탐지를 통해 구성한 이미지.

수도 로로토의 인근 해구, 그 해저의 가장 밑바닥에는 지름이 30km, 면적이 약 720km2에 다다르는 거대한 자연 경관이 존재한다. 특정한 중심부를 기준으로 높낮이가 다른 여러 동심원들이 둘러싸고 있는 지질 구조이다. 그 크기와 위치 때문에 제대로 된 실체 확인이 어려운 상태지만, 최근 들어 심층적인 탐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원형 소용돌이 형태가 생성된 경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으며, 인근 해저 화산의 활동 또는 지질의 융기와 침식을 통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각각의 동심원 지형들은 약 200-300m 가량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들이다. 여러 겹이 촘촘히 붙거나 엮여있는 부분도, 넓게 떨어져있는 부분도 있다.

또한, 높이가 다른 각각의 원형 지형에 백색의 거석 기둥들이 외곽을 따라 세워져 있다. 이는 급격한 지질 변동으로 인해 융기한 화산암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인위적으로 건설된 것으로도 추측되고 있다. 기둥들은 그 크기와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으며 약 1600-1800개로, 특히 중심부에 많이 위치해있다.

사미오말리에의 구성원들에게 있어서 이 지형은 일종의 성역 겸 금기시되어 있는 공간으로 여겨진 것으로 보인다. 수도에서는 주로 사체의 장례나 제례를 위해서만 이곳을 찾았으며, 그 외의 사적인 이유로 이 지형에 접근하는 것은 금기를 깨는 위험한 행동으로 여겨지곤 했다.

역사


사미오말리에는 남태평양에 자리잡은 매우 작은 규모의 도시국가지만, SCP-491-SHK 또는 그 조상이 남긴 유산은 태평양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매우 드물게 발견된다. 그 거주 흔적은 수 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불과 지난 이삼천 년 전에 가장 최근의 SCP-491-SHK가 지금의 태평양 지역에 이르러 사미오말리에의 토대를 만들어냈다.

찾아볼 수 있는 사례가 상당히 드물지만 SCP-491-SHK는 분명히 다수의 인류 문명과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접촉한 바가 있으며, 그들에 대한 내용은 인류의 주요 문명들이 태동하기 이전의 것부터 전근대의 것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SCP-491-SHK와 사미오말리에의 선사 흔적은 여전히 발견되고 있는 중이며, 이에 대한 논쟁, 가설 및 학술적 추론은 끊이지 않고 있다.

고대: 테넴니타

재단에 의해 발견된 것들 중 가장 오래된 사료는 SCP-491-SHK 또는 그들의 선조에 의해 형성된 어느 고대 국가에 대하여 묘사한다. 기록 속의 그들은 강하고 난폭하였으며, 영토 확장을 위한 정복 전쟁을 선도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의 위협에는 잔인하게 보복하였다.

그들은 선박 없이도 섬을 오갈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하여 도서부 동남아시아 또는 중국해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그 인근에 강한 지배력을 떨쳤다. 수준 높은 과학 기술과 문화를 지니고 있었고, 해양자원의 채굴, 수로를 통한 교역 또는 용병 활동을 통해 점차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들은 세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여러 개의 부족 국가, 원시 국가들을 문화적인 동화 또는 물리적인 군사 충돌을 통해 흡수하였으며, 아마도 각지에 지배자 대리인을 두고 중앙에서 강력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과두제였으리라고 여겨진다.

이들 고대 공동체는 테넴니타 (Tenem nita) 또는 선고 사미오말리에 탈라소크라시 (Pre-Proto-Samiomalie Thalassocracy)라고 불리고 있다. 테넴니타가 실존하였음을 나타내는 사료는 여럿 있지만, 그것들이 묘사하는 내용은 다소 일관성이 떨어진다. 이 국가가 이룩했다고 묘사되는 기술과 사회 구조는 당대의 다른 문명의 그것을 훨씬 상회하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기록은 매우 드물게 남아있고 다소 신화적인 내용에 가깝다.

테넴니타를 묘사하는 사료의 출토 시기 등으로 미루어볼 때, 만약 이 국가가 실존하였다면 선사시대에 처음 건국된 이래 최소한 5세기 이상 존속하였으며 기원전의 어느 시점에 멸망하였다. 멸망의 원인은 아마도 내전으로 추정되나 확실치 않다. 그들의 기술과 문화는 물리적으로 파괴되었으며, 그들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들 역시 대부분이 시간이 흐르며 열화되어 사라졌다.

오늘날 테넴니타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사료는 유럽 지중해 연안 지역과 동남아시아 등지, 그리고 극동부 아시아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다음은 테넴니타에 대해 묘사한 사료의 일부다.

??王命摩校勘領兵二千南伐?滅其國進兵襲取?縣屬玄免校勘郡
* ?은 원문의 탈락 또는 대응되는 문자 없음을 의미함.

대와의 왕이 장수에게 명하여 군사 이천을 남쪽에 보내어 나라를 멸하게 하고 [불명확]현을 습격해 차지하였다.

— 《구려후기(句麗侯記)》제2장

1pa 'a3ta10s si 0pusu0'.
2siki1ta'e1t 1ti 'ita 3ti ata11ti'i 0tu 0'u1paq puki qe3tu0'.

적은 죽었다

우리는 우리의 땅에서 그들의 [불명확]을 먹었다

— 구체적인 시기 불명. 포르모사 중심부에서 발견된 고석판.

전근대: 국가의 형성과 인류와의 접촉

서기 1세기 즈음, 여러 무리의 SCP-491-SHK가 남태평양의 어느 한 지점에 모여 하나의 문화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 공동체는 공통된 신앙과 문화를 공유하며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는 곧 하나의 초기 국가로 발전하여 훗날 사미오말리에의 토대를 닦았다.

이들은 아마도 여러 지역에서 모인 씨족, 또는 부족 공동체들이 생존을 위해 한데 모인 것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며 동화되었다. 각각의 부족에 대한 정체성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거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통합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국가의 형성 이후 사미오말리에는 과두제 또는 선거군주제를 통해 평화적인 통치를 이어나갔다. 수 세기에 걸쳐 여러 차례 내부적인 갈등은 있었던 모양이지만, 외부의 영향이 거의 없었던 때문인지 국가의 기반이 위협당할만큼의 커다란 내전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이는 사미오말리에에 공유되는 반천적주의, 상생주의 이념의 영향이 큰 탓일지도 모른다.

사미오말리에의 지도자로 선출된 사람이 전부 역사에 남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통치가 얼마나 훌륭하였는가는 당대 인구 수, 국가 규모와 큰 상관이 있었다. 사냥의 시기와 방법, 노동력의 주 소비 방향, 신앙 제례의 빈도 등 국가의 다양한 부분을 담당하였던 지도자의 유능한 정도에 따라서 인구의 밀도는 빠르게 늘어나거나 줄어들었고, 이는 그 지도자의 통치 정당성에 직결되는 문제였다.

사미오말리에에 속해있건 그러지 않았건, SCP-491-SHK 중에는 뭍 위로 올라와 우연히 인류 문명과 조우하는 개체도 있었던 것 같다. 그들에 대한 기록은 수 세기에 걸쳐 불규칙적으로 드물게 나타나고, 보통 단체보다는 개인이 혼자 발견되는 경우가 잦았다. SCP-491-SHK를 묘사한 기록들 중에서는 그 내용이 엄밀하게 신화와 분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음은 과거 SCP-491-SHK와 인류간의 조우를 묘사했다고 추정되는 기록들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帝、そのよしを問はせ給ひ、女、「我も背も父母もこれこれ」と。 大寝所くみどに大殿籠りて、女の鰭と鰓とを御覧じて、世にありがたき魚なる人とて秘匿し給ひけり。その御子、もとより人間じんかんの種ならぬ、やんごとなき御位におはしませど、鰭、鰓なし。さらずは今上かくおはしますまじ。

임금은 그 까닭을 물으셨고, 여자는 「나도 등도 부모도 운운」하였다. 대침소에서 주무시며, 여자의 지느러미와 아가미를 보시고, 세상에 보기 드문 물고기같은 사람이라고 몰래 감추셨다. 그 아드님은 처음부터 인간의 씨가 아닌 귀한 핏줄을 받았으나, 지느러미도 아가미도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금상의 모습이 지금과 같겠는가.

수집원 인계 기록 M-81-0020, 서기 13세기 추정

금일 배가 희고 비늘이 푸른 고기를 잡았다
그물에 잡힌 것이 밤을 다해 몸부림을 쳐 상처가 많았고 울음소리가 괴이했다
배를 치니 해수를 토하였고 사람의 말을 따라하였다
크기가 네 척이 조금 아니 되고 힘이 강하여 장수를 요하였다
팔다리를 휘적이는 것을 잡아묶고 구를 봉하여 화인에게 넘겨팔았다

— 우릉야담(于陵野譚), 서기 13세기 추정

…그리하여 동굴 한가운데에서 숨어사는 이들을 만났는데 이들의 모습이 사람과 같지 않았다. 얼굴 한가운데 코가 튀어나오고 온몸에 까칠한 비늘과 판이 났다. 피부가 푸르고 희었으며 이상한 몰골 너머로 빼어난 미모를 가졌다. 총 열둘이 동굴에 모여살았는데, 그 중에 여러 색으로 빛나는 머리칼이 허리까지 닿는 이가 있었다. 이들은 물의 고기와 조개를 잡아먹었으며, 말을 배우는 것과 움직이는 것이 짐승보다도 빨랐다. 누구는 굿을 하고 누구는 욕을 하였지만 그들은 땅사람들과 뭇 친해져 사람들은 그들에게 옷을 지어다 주었고, 그들은 보답으로 섬에 고기를 가득 잡아다 주곤 했다.

— 작성자 미상, 서기 17세기 추정

현대: 더딘 성장과 재단과의 조우

최초의 국가 성립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미오말리에는 매우 더딘 속도로, 그러나 명백하게 성장하였다. 그들은 약하게나마 주변 문명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언어와 신앙을 발전시켰고, 보다 효율적인 먹이 확보와 보존을 통해 보다 안정적인 방향으로 공동체를 유지하였다.

문명간의 교류가 거의 없는 남태평양이라는 환경을 생각해보면, 원시 도시국가 수준에 머무르는 사미오말리에가 약 2천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유산을 남기고 보존되어 왔다는 것은 인류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앞서 몇 차례 인류에게 발견되어 상호작용을 하기도 했지만, 이 해저의 국가가 수면 위의 문명들에게 알려져 주목을 끈 사례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치 않는다.

그리고 19██년, SCP재단은 사미오말리에의 구성원들과 조우함으로써 그들의 변칙 문명에 대해 최초로 알게 된다. 그 이전에 사미오말리에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근대 시기 이후의 인류 단체에게 사미오말리에가 발견된 것은 단연 최초의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사미오말리에는 강경하고 방어적인 태세를 유지했지만, 재단은 오랜 시간의 상호작용 끝에 그들과의 교역 협상을 체결했다. 주기적인 빈도로 사미오말리에에 여러 필수품들과 각종 정보를 제공하였고, 그 답례의 일환으로 SCP-491-SHK를 연구할 수 있었다. 재단은 정기 교역과 원거리 관찰, 그리고 일부 비공식적인 해부 등을 통해서 그들의 문명에 대해 탐구했다.

재단과의 교역을 계기로 사미오말리에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특이점으로는 그들이 지상의 문명과 문화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으로, 그들은 지상의 건축물을 모방하여 건축을 하거나 자신들의 신앙을 상징화한 국기를 만드는 등 여러 사회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또한 재단이 제공한 여러 교역품들을 통해 지상에서 구할 수 있는 자재들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이들이 가장 관심을 보였던 것들은 갖가지 철제 도구, 염색한 의상 등이었다. 재단과의 교역을 통해 사미오말리에는 과학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빠른 성취를 거두었고, 여러 현대적인 사회 요소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기술


SCP-491-SHK 대다수는 유목민에 가까운 생활을 하였고, 문명 발전에 필수적인 자원이라 여겨지는 나무와 불을 해저에서는 구하거나 활용할 수 없었으므로 사미오말리에의 과학 수준은 거의 원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불을 피우지 못하고, 목재나 가축을 통한 자원 수급이 어려우며, 주변과의 기술 교류가 없었다는 점은 특히 사미오말리에의 과학 발전이 더딘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건축이나 의료 등 사회적 기반의 생산 및 유지를 위한 기술은 분명 존재하였다. SCP-491-SHK는 때로는 초기 인류와 유사한 방식으로, 때로는 그들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기술을 발전시켜 그들만의 사회를 이루어갔다. 가령, 해저의 특성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독특한 양식의 아치, 지지대 기술이 사미오말리에 곳곳에 보급되어 있고, 궁술이나 승마술을 대체하는 특성으로 해저에서 신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체술과 그러한 움직임을 보조하는 도구들이 발명되고는 했다.

자재 가공

사미오말리에의 가공 기술은 주로 석재와 산호를 가공하기 위해 발전하였다. 적당한 암석을 찾아 원시적인 쐐기와 못, 망치 등을 이용해 돌을 깨뜨리고, 깨뜨린 자재를 운반하는 식으로 가공 작업이 이루어졌다. 깨뜨린 암석은 여러 장정들이 동시에 옮겨 바로 건축의 자재로써 사용하거나, 다시금 더 잘게 부수어 부조의 재료로써 가공되었다.

산호의 가공은 최대한 그 형태를 살리면서 다른 산호와 엮어 건축 자재로 사용하거나, 오랜 시간을 들여 갈아내서 치장을 위한 재료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자재의 가공 기술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상당한 노동이 요구되지만, 사미오말리에의 건축과 조각 예술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일로써 여겨져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었다.

조명

사미오말리에는 태양광이 닿지 않는 무광층에 위치해있어 매우 깜깜하다. 해저에서는 불 또한 지필 수 없으므로, 이곳에서 조명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생물 발광 뿐이다. 사미오말리에는 심해 반딧불이를 통해 조명 문제를 해결하였다.

심해 반딧불이(Vargula samiomalieca)는 갯반디과에 속하는 절지동물문 갑각류로, 심해 고유종이다. 얕은 연안의 모래에서 서식하는 일반 갯반디와는 달리, 이 종은 약 600-1200m의 깊은 수심에서 자생한다. 몸의 총 길이는 2-3mm로, 자신보다 작은 동물의 사체나 해저의 마린 스노우를 섭취하며 살아간다.

심해 반딧불이는 루시페레이스를 통해 산화 작용을 일으켜 푸른 색의 강한 빛을 발산한다. 사미오말리에의 구성원들은 이 생물종을 포획, 사육하여 조명의 수단으로써 활용하였다.

의학

사미오말리에의 구성원들은 사냥을 거듭하며 먹이를 구했다. 신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먹잇감을 추적하고 사냥하는 문화 덕분에 그들은 항상 크고작은 부상과 죽음의 위협에 놓여있었다.

사미오말리에의 의학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크게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주로 상처를 봉합하고 자극을 줄여서 자연 치유를 노리는 방식 위주로 여러 민간 대응 요법들이 통용되었다. 주로 바위에 긁히거나, 다른 생물에 의해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의 대처 방법, 독이 제거되지 않은 식재료를 먹었을 때의 대처 방법 등이 구전과 경험을 통해 공유되었다.

그 외에 병자들이나 전문적인 치료가 요구될만큼 심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위한 전문 병원과 유사한 기관도 존재했지만, 피부에 얕게 파고든 파편을 제거하거나 상처를 봉합하고 고통을 줄이는 것 이상으로 외과 시술이나 연명 치료 기술이 발전하지는 못했다.

초상 기술

사미오말리에 고유의 과학 기술에서 특이한 점은 그들 역시 일종의 초상 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SCP-491-SHK는 주로 토착 변칙 생물의 특성을 응용하였거나 아예 그 기원을 특정할 수 없는 기술을 활용하여 사미오말리에 사회의 과학법칙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특이점은 비록 그 결과물이 현대 인류의 기준에서는 미미할지라도, 변칙성을 그들 사회에서의 과학으로써 이해하고 정립시켜 발전해나갔다는 점에서 특히 그 의의가 빛난다.

사미오말리에 고유의 초상 기술은 "변칙"이 아닌 하나의 과학 법칙 응용 기술로 인식되어 사회 전반에 녹아들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평범한 암석을 활용해 일정 기간동안 발광하는 등불을 만들거나, 평소 이상으로 근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신상(神像) 등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기 위해 초상 기술을 활용하였다.

현재 재단에서는 여러 차례의 유적 탐사를 통해 사미오말리에가 보유하였던 기술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나, SCP-491-SHK의 몰살로 인해 대다수 기술은 실전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


현대를 기준으로 사미오말리에의 총 인구는 높게 잡아도 8천 명 이하였으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인구 밀집 지역인 수도를 제하고는 인구 밀도는 낮았던 것으로 보이며, 재단의 조사 하에 확인된 바로는 20세기 이후 사미오말리에의 인구 수와 출산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클랜

사미오말리에에서는 주로 핵가족, 또는 작은 클랜 단위로 구성된 SCP-491-SHK 무리가 한 거주지에 모여 생활하였다. 사미오말리에서는 성체간의 연애 관계와 결혼 관계의 차이는 모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짝을 이루는 것은 일처일부제가 기본 원칙이었고, 가까운 친족간의 사랑이나, 이미 짝이 있는 상태에서의 불륜 등은 도덕적으로 금기시되었다.

SCP-491-SHK에 의해 형성되는 "클랜(Clan)"은 일반적으로 규정되는 씨족의 의미가 아닌, 사미오말리에의 사회 구성을 설명하는데 특히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거의 모든 사미오말리에의 구성원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나 이상의 클랜에 소속되었으며, 이러한 클랜은 사미오말리에의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기반이 되었다.

사미오말리에의 클랜은 주로 부모와 자녀 등 2세대 이상의 가족, 가까운 혈연의 친척들, 친밀한 벗의 가족 등 사회적으로 친밀한 관계의 가족 공동체가 엮이면서 구성되는 경우가 잦은, 친밀한 형태의 가정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클랜의 지도자는 가장 사회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거나 우수한 신체능력, 사냥 실력을 지닌 사람이 맡았고, 이는 보통 가장 연장자인 여성이 맡았다.

클랜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모임으로써 어린 새끼를 양육하며 여러 생존 기술들을 전수해주는 역할부터, 짝을 이룬 개체가 출산하기 전까지 보호하는 역할, 사미오말리에의 주요 이념과 행정 참여 방법 교육 등 여러 주요하고도 필수적인 역할들을 맡았다. 이 때문에 클랜의 소속 여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고, 클랜에 속하지 않은 개체는 대개 도태되는 모습을 보였다. 구성원의 독립, 또는 사망으로 인해 구성원의 수 또는 그들의 영향력이 클랜을 유지할 수 없을만큼 줄어드는 경우 클랜은 해체되었고, 기존 구성원들은 다른 클랜의 구성원으로써 흡수되곤 했다.

꼭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짝을 이룬 SCP-491-SHK는 번식을 통해 아이를 낳았고, 무사히 출산에 성공한 이후에는 기존의 클랜에서 독립하여 새로운 클랜 공동체를 구성하거나 기존의 클랜의 입지를 강화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나온 자식이 성체가 될 때까지, 그들은 새끼의 안녕을 위해 기존보다 더욱 강한 유대를 지닌 공동체로써 결집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미오말리에는 수백개의 클랜 공동체로 구성되었고, 그러한 클랜은 필요에 따라 같은 목적을 공유하는 다른 클랜과 함께 연합을 맺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형성과 변동, 해산을 반복하며 클랜 이상의 굳건한 공동체로 성장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부족"이나 "귀족"과 같은 정체성을 지닌 공동체는 잘 만들어지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얼핏 보았을 때 클랜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는 그 특성 상 혈통주의 또는 능력주의로 쉽게 빠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미오말리에의 사회와 클랜 공동체는 항상 "상생주의"를 강조하며 구성원들의 "사미오말리에인"이라는 공통된 정체성을 더 좁은 단위로 축소시키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하였다.

이 덕분에 사미오말리에는 공동체간의 갈등이 심화되거나 내분이 발생하는 일이 흔하지 않았고, 강한 힘을 기반으로 상생과 평화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적으로 결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클랜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특성은 새로운 정체성 정의를 통해 성장한 다른 문명들에 비해 다소 원시적이었으며 유사 씨족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정치

사미오말리에는 고전 공화제와 군주제가 혼합된 선거군주제에 가까운 정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흔히 그들의 정치 지도자는 "대통령 (peresitene)"이라고 불리곤 하였지만, 입법부와 행정부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대통령제의 실질적인 특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혈연에 따라 지도자 자리가 세습되는 군주제와는 달리, 사미오말리에의 정치 지도자는 약 3-4년에 가까운 임기가 있었고 정기적으로 투표를 통해 교체되었다.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던 국민은 어엿하게 활동할 수 있는 성체로 제한되었다.

사미오말리에의 대통령은 신앙, 행정, 사법 등의 분야에 있어서 지도 권력을 위임받았다. 재선이나 연임은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며, 주로 사냥의 능력이나 갈등 문제 해결에 있어서 탁월함을 인정받는 여성이 맡는 경우가 잦았다. 투표를 통해 당선된 지도자는 여러 분야에 있어서 직접 사미오말리에의 구성원들을 통솔하였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대상이었다.

이 정치 지도자는 주로 클랜간의 갈등 문제에 대해 판결하고, 임기 기간동안 있는 여러가지의 종교 제례를 총괄하였으며, 드물게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반포하였다. 본래 사미오말리에는 인쇄 매체 수단의 부족 문제 때문에 공통 정립된 법률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정부 청사의 벽에 조각되어 기록된 기존의 판례조항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사미오말리에의 대통령은 과거에 판결되어 결론이 내려졌던 사례들을 기반으로 현재의 갈등을 해결하고,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갈등 상황에 대해서는 현재의 가치 판단에 기반하여 판결을 내리고 이를 기록하였다.

확실히 사미오말리에의 대통령은 많은 역할을 받았고 사회적인 존경을 받았지만, 그 권위적인 지위는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보다 덜하였다. 판결을 통해 갈등을 종식시키고 행정을 지시하는 역할을 맡은 대통령일지라도, 그 지시나 판결이 다른 구성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하지 않은, 부당하거나 부패한 판단이라고 여겨지면 그 지도자에 대한 의심이 불거지기 쉬웠다.

사미오말리에의 정치에서 대통령 외에 주요한 역할을 맡은 것은 의회(Council)의 초기 형태와 비슷한 "팔렘(Palemene)"이었다. 사미오말리에의 국민들은 대통령의 판결이나 지시가 매우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경우 이에 대해 항의할 수 있었다. 주로 클랜의 지도자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집권 시기별로 모여 만들어진 것이 팔렘이었으며, 대통령의 행정에 대해 조언하거나 그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였다.

그러나 사미오말리에의 정치와 행정은 초기의 도시국가에서 크게 발전하지 않았다. 해저에서 외부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상생주의와 협력이 계속해서 요구되었고, 부족한 자원 때문에 사회의 규모가 확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미오말리에가 아닌 새로운 국가 협력체가 만들어지기도 어려웠다.

장기적으로 정치적인 위협이 되고, 사회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접국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중앙권력에 대한 과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 이상의 권력이 필요할 일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선거 군주제와 초기 의회 이상의 정치 발전은 이루지 못했고, 그럴 필요 또한 재단을 통한 인류와의 접촉 이전까지 느끼지 못했다.

경제

사미오말리에의 경제는 당장의 필요에 의한 물물교환 체제에 머물렀다. 사미오말리에는 공통 화폐가 만들어지지 않아 대부분의 교역은 먹이를 통한 물물교환으로 이루어졌다. 주로 신선하고 커다란 먹이가 더 좋은 취급을 받았으며, 노동의 대가는 주로 그러한 질 좋은 먹이를 통해 지불되었다. 간혹 잘 닦인 유리나, 특정한 모양의 조개껍데기들이 초기 화폐 대용으로 사용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하였으나 오래 쓰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언어와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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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오말리에의 문자 체계 고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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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오말리에의 문자 체계 고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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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오말리에의 문자 체계 고찰 3.

사미오말리에에서 통용되었던 언어는 크게 두 가지로, 공용어 역할을 하는 사미오말리에 고유의 언어(Tinamisani̊ Gagna), 공통어5의 역할을 하는 현대 사모아어가 바로 그것이다. 두 언어 간에는 유의미한 상호 유사점이 존재하지만, 사용 어휘나 어순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어 각 언어의 화자끼리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웠다. 공용 문자는 사미오말리에 고유의 문자 체계를 사용하였으나 그 보급률이 높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미오말리에 고유의 언어 및 문자 체계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드물며 주요 연구의 대상이다. 사미오말리에어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폴리네시아어군에 속했을 것이며, 조어6로써 고대 테넴니타어가 있어 많은 어휘적 변형이 가해졌을 것이다.

사미오말리에어는 현생 인류는 발음할 수 없는, 아가미 기관을 통한 흡수음(吸水音) 또는 출수음(出水音)이 별도의 주요 문법으로써 사용되었고, 수중에서의 원활한 전달을 위해 높은 음역대의 소리가 주로 활용되었다.

사미오말리에의 기록은 해저에서의 기록 매체 부족의 문제로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미오말리에인들의 기록은 주로 해저 바닥 또는 기록에 용이한 강도를 지닌 암석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개중 가장 확고히 남아있는 자료는 로로토 중심부 비석에 남아있던 사미오말리에의 전통적 법률에 관한 내용이다. 해저의 특성 상 인쇄 기술은 발달하지 않았으므로 모든 공유는 구전 또는 필사를 통한 보급으로 이루어졌다.

사미오말리에의 문자 체계는 일정하지 않았고 기록별로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기존 문자에 약간의 변형이 가해진 경우가 있는가 하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문자가 동시대에 혼용된 경우도 있었다.

개중에는 단단한 암석에 강한 힘을 주어 새길 수 있는 단순화된 상형문자가 있는가 하면, 중심부에서부터 바깥으로 꺾여나가는 형태의 선과 점으로 구성된 문자도 있었다. 이러한 문자 체계의 일부는 아마도 사미오말리에 이전의 고대 테넴니타의 문자 체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추정되고 있다.

문화


신앙과 전통

사미오말리에는 이른바 "메갈로돈 신앙"이라고 지칭되는 신앙이 공유되었다. 이 신앙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제대로 수집된 바가 없으나, 문자 그대로 과거 플라이오세 말기에 멸종한 고대 상어 메갈로돈(Otodus megalodon)의 존재를 숭앙하는 종교라고 추측되고 있다. 수집된 증언으로는 사미오말리에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메갈로돈과 같이 커다랗고 강한 삶을 사는 것"을 목표로 생활하였다고 하지만, 아직 그 정확한 교리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여기서 "메갈로돈"은 언어적인 의미에서 잘못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과거 실존하였던 거대 상어의 한 종류, 또는 SCP-491-SHK와 혈연적으로 맞닿아있는 거대 해양 생명체의 한 종류를 지칭하는 용어로써 "메갈로돈"이라는 용어가 활용되었을 수 있다는 가설이 제시되었다.

현재로써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미오말리에의 많은 구성원들이 이 신앙을 기반으로 결속을 이루었고, 이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가지 종교 행사와 건축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는 없지만 그들의 종교문화에는 일종의 변칙적인 현상이 관여되어 있으리라는 가설이 제시된 바 있다.

의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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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오말리에에서 발견된 장신구.

SCP-491-SHK는 평상시 해저에서는 별다른 의류를 착용하지 않고 나체의 상태로 생활하였다. 그들에게 옷이란 보호구로써의 의미가 강했으며, 주로 군인이나 채굴자 등 위험한 역할을 수행하는 직업군만이 제한적으로 보호구 또는 천을 피부에 덧대는 식으로 옷을 입고는 했다. 사미오말리에의 의문화는 보호보다는 치장 겸 종교적인 목적으로 발전하였다.

주로 조개나 작은 조약돌 등으로 구성된 목걸이나 팔찌, 발찌나 긴 머리띠 등의 장신구가 치장의 목적으로써 자주 활용되었다. 또한 소속된 클랜이나 생활 지역, 사냥 방식에 따라 길다란 창, 단도 등의 무기를 들고 다님으로써 자기 보호의 목적을 이루었다. 특히 무기는 자신이 어떤 클랜에 속해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요소로 통했다.

수집된 증언에 따르면 번식기가 다가온 아성체 개체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장신구나 무기를 직접 세공하여 선물하는 문화도 있었는데, 주로 해상에서는 찾기 어려운 지상의 재료나 직접 깎아만든 작은 토템 등을 엮어서 만든, 희소성이 있는 선물을 줌으로써 구애하는 문화였다고 한다.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사미오말리에의 전통 의상으로는 "오푸 (Ofů, 발음 불명확)"가 있었는데, 투명하게 비칠만큼 얇고 하얀, 기다란 천 여러 장을 덧댄 것에 패류의 껍데기를 꿰어 길게 늘어뜨린 형태였다고 한다. 이는 주로 커다란 규모의 종교 제례나 합동 장례를 위해서만 활용되었다고 하며, 어린 아이들 혹은 지도자가 입고서 신앙적인 의미의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고 한다.

식생활

대다수의 SCP-491-SHK는 한 주거지를 중심 삼아 그 인근의 물고기를 포획, 사냥하여 식량을 획득하였다. 주로 작은 어패류, 해조류 등을 먹잇감으로 삼았으며, 간혹 도구를 활용하거나 협동 사냥을 통해 해양 포유류, 파충류를 사냥하기도 하였다. 사냥한 먹잇감은 각자의 거주지에 보관되었으며, 주로 친인척이나 가까운 관계의 구성원과 함께 식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사냥된 먹잇감은 상술한 것과 같이 일종의 물물교환 화폐의 역할로도 활용되었다.

사미오말리에의 구성원들은 사냥에 성공한 먹이는 손질한 채로 보관하거나 즉석에서 섭취했다. 손질은 간단히 뼈나 비늘, 일부 유독 내장을 제거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조리 문화는 사미오말리에에서 그리 발달하지 못했는데, 이는 불을 피울 수 없고 부패가 빠르게 일어난다는 해저의 특성이 깊게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사냥에 성공한 먹이는 보통 개인이 즉석에서 먹기보다는 사냥에 임한 개인이 속한 클랜 공동체에 가져가 공유되었다. 사냥 대상은 주로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어린 치어 무리나 어패류 무리들이었으며, 달에 따라 달라지는 어류의 움직임에 따라 이들의 사냥 방식 또한 다양하게 바뀌었다. 간혹 주거지 인근 해역에 범고래 따위의 천적 생물이 나타난다면 합동 사냥을 통해 사냥했고, 그 사체를 해체하여 오랫동안 함께 나누어 먹었다.

장례

사미오말리에의 장례 문화는 그 사인과 연령에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고인의 유가족, 지인 등이 모여 심해저대, 또는 해저 협곡 밑으로 그 시체를 가라앉히는 방식이다. 주로 수도 거주지 인근의 해저 협곡에서 자주 이루어진 방식이었으며, "바다의 깊은 품으로 돌려보낸다"는 신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확인되고 있다.

성체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사망한, 특히 외부 천적의 공격으로 인해 사망한 경우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장례가 이루어졌다. 생전 유품과 함께 해저 지대의 표면에 매장하는 것이다. 이때는 매장지의 주변에 산호나 생전 고인이 좋아하던 물품 등을 놓아두기도 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장례 문화는 성체가 되지 못한 어린 개체에 대한 존중과 보호의 의식을 보여준다.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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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오말리에 외곽에 만들어진 소규모 초소.

주로 사미오말리에의 건축은 해저 평원에 거석 또는 산호를 통해 외면을 구성하고, 지하의 모래나 진흙 바닥을 파서 공간을 확보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사미오말리에의 영토에는 병영, 시장, 병원, 학교, 중심 행정 등 각각의 기능을 수행하는 구조물들이 고유의 건축양식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실제로 유용히 기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미오말리에에서 이루어진 복잡하고 고도화된 건축들은 주로 수도에만 존재하였고, 수도에서 멀어질수록 그 재료나 형태 등이 단순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사미오말리에의 건축은 기능, 구조, 미의 세가지 측면에서 기능에 치중되어 있었다. 재료의 한계와 해저라는 특성은 사미오말리에의 건축 형태를 여러모로 제한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미오말리에는 여러 고유하고도 특색 있는 건축물들을 탄생시켰다.

사미오말리에에서 주로 구할 수 있었고 선호되었던 건축 재료는 커다란 산호 집단과 거석(巨石)이다. 노동력이 부족한 외곽 지역에서는 주로 이미 존재하는 해저사면에 구멍을 뚫거나, 비스듬히 겹쳐 놓여진 거석들의 사이에 추가로 재료를 쌓아 건물을 구성한 경우가 잦았다. 이러한 건축 양식 때문에 외곽으로 갈수록 건축물들이 협소한 형태를 갖추고 있고, 한번에 같이 주거하는 구성원의 수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건축 자재로써의 산호는 여러모로 유용했다. 채취된 산호는 적당한 크기로 절단되고 가공되어 기존의 건축물의 벽면이나 천장을 채우는 용도, 또는 치장의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산호의 가공은 다양하게 이루어졌는데, 다른 생물에서 채취한 일종의 천연 접착제를 사용하거나 산호들 사이에 여러 개의 틈을 만들어 서로 끼우는 방식으로 하나로 응집시켜 하나의 커다란 벽면을 만드는 방식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가공된 산호는 그 강도나 구조 때문에 건물의 지탱이나 보호의 목적으로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석에 비해 가공이 편리하고 가볍다는 특성 덕분에 주요한 건축 자재로써 선호되었다. 이 때문에 사미오말리에의 구성원들 중에서는 산호를 전문적으로 가공하여 단단하고 화려한 건축 자재를 제공하는 직업군이 존재하였다.

사미오말리에에서는 아치보다는 기둥을 위주로 하는 건축이 더 발달하였고, 이러한 모습은 주로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던 병영, 초소, 중앙 청사 등의 건물에서 특히 더 잘 드러난다. 사미오말리에의 건축에서는 천장이 높고, 공간이 넓고, 기둥이 많을수록 수용할 수 있는 인원들이 많음을 의미했고, 이는 곧 사회적으로 많은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공간임을 의미했다.

주거지

사미오말리에에 있어서 거주 공간은 구성원들의 보호와 연대의 의미가 강했다. 보통 하나의 클랜이 한 공간에서 함께 거주하였고, 클랜에서 구성원이 독립하거나 해체되면 기존의 주거지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거취를 옮기는 경향이 있었다.

외곽으로 갈수록 집은 산호보다 암석 위주로 지어지는 경향이 강해지며, 거석끼리 괴어져있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해저 사면의 동굴 등이 주거지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다른 클랜과의 접점이 많아지는 수도에 가까워질수록 집의 크기가 넓어지고, 커다란 암석들을 기둥 삼아 산호를 엮어 만든 지붕을 올린 발전된 형태의 주거지들이 형성되었다. 일반적으로 주거지의 크기는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생산력을 기용할 수 있는 클랜에 소속되어 있다는 일종의 자부심과 과시로도 이어졌다.

문(門)과 방의 개념은 따로 없었으나 외부와 연결된 출입구는 출입에 문제가 없는 선에서 가능한 한 작게 만들어졌고, 산호나 가구, 도구 등을 배치함으로써 나름대로의 공간 구분을 했다. 천적이나 약탈 등의 외부로부터의 위협에서 보호하기 위해 식량을 보관하는 곳과 어린 개체가 생활하는 곳이 가장 중심부에 형성되곤 했다.

일종의 방명록 또는 부재중 우편과 유사한 개념으로 출입구 앞에 조개, 가공한 산호석 등을 두고가는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 청사

사미오말리에의 정치는 행정, 입법, 사법의 범위가 명확히 나뉘어지지 않은 형태로 이루어졌고, 전통 신앙과 국민 생활상의 분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미오말리에의 정부 청사는 행정부, 국회, 의회, 법원과 신전의 역할을 모두 겸하였다. 사미오말리에의 정부 청사는 사미오말리에의 건축물들 중에서도 거의 유일한 다층건물이며, 가장 커다란 건물이기도 하다.

이 건축물은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육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여러 개의 석재 지지대를 통해 지상으로 두 층, 지하로 한 층을 만들었고, 잘라 만든 석재 벽돌들을 여러 겹으로 쌓아서 굳혀 벽과 천장을 쌓았다. 가장 높은 부분에는 반각식 아치로 작은 육각뿔 구조물을 올렸는데, 이 구조물은 별다른 외부 광원 없이도 스스로 빛을 발하였다고 전해진다7.

청사의 내벽에는 사미오말리에의 고유 문자로 약 70여 가지에 달하는 판례조항들이 사미오말리에 고유의 문자로 조각되어있다. 각각의 조항은 과거의 판례를 기록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판결이나 조치를 내려야 하는지에 대해 적혀있으며, 이는 오랜 세월에 걸쳐 새로이 수정되거나 추가되었을 것이다. 청사의 외벽에는 단체로 천적을 사냥하는 모습이나 커다란 고대 상어의 형상 등이 조각되어있어 전통 신앙, 또는 그로부터 파생된 신화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계단이나 사다리 따위는 없었지만, 가운데에 넓게 뚫린 원형의 구멍을 통해 각 층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출입구의 갯수를 줄이고, 그 크기를 작게 만드는 통상적인 사미오말리에의 건축 양식과 다르게, 이 정부 청사 건물은 여섯 개의 커다란 외벽의 각각마다 아치형의 출입구가 뚫려 개방되어 있다.

청사 건물의 각 층은 아마도 각각 다른 기능을 위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로써는 그 내부가 상당히 훼손된 상태이기에 섣불리 추측하기 어렵다. 다만 확실한 점은 구성원들 또는 클랜간의 잘잘못을 가리는 재판,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적용하는 행정,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 의식 모두 이 건축물을 활용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듯 사미오말리에의 정부 청사는 기능적으로나, 그 규모로 보나 매우 강력한 권위를 지니고 있는 건축물이었으며, 유일한 행정 자치기구임과 동시에 국가적 상징물이었다. 이 때문에 수도 로로토의 여러 활동은 이 청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주요한 건축 역시 수도에 집중되는 등 청사 건물은 주변에 사미오말리에의 강력한 지배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일조하였다.

청사 건물에 새겨진 여러 부조와 지지대의 구조, 사용된 암석 자재의 가공 흔적은 이러한 청사 건물이 사미오말리에에서 역대 가장 많은 노동력이 수십년에 걸쳐 투입된 결과물임을 시사하고 있다.

불가사의

사미오말리에의 건축은 한층구조였으며, 건축보다는 자연적인 지형에 많은 의존을 하는 등 비교적 원시적인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권 중에는 그들의 건축 기술을 훨씬 상회하는 건축물이나, 아주 오랜시간 노동을 통해 형성되었을 불가사의한 건축물들이 있다.

  • 테넴니타의 거석 조각상 (Giant statue of Tenem nita)

사미오말리에의 주요 생활 지역 및 영향권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석상으로, 커다란 바위를 SCP-491-SHK의 신체 형태로 깎아 만들어진 조각상들이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상어 죽빵 센터의 습격 당시의 여파로 인해 그 대다수가 훼손, 파괴되었지만,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까지 총 7개의 석상이 발견, 보존되고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대부분의 조각상이 해저에 파묻혀있거나 그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형태였으며 주로 그 얼굴 부분만이 바닥 위로 노출되어 있다. 이 조각상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을 구성하는 자재인데, 대부분이 일정한 방향으로 줄무늬가 있는 변성암과 출처 불명의 탄소 화합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화합 물질은 탁하지만 투명하고 내부 굴곡이 있어 주변의 빛을 반사하며, 이는 이 조각상이 사미오말리에의 신앙이나 전통에 있어 일종의 상징으로 굳어진 요인 중 하나였으리라고 추측된다.

각각의 석상은 각기 다른 자세와 상황의 SCP-491-SHK를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치아를 드러내고 상대를 위협하는 세세한 얼굴이 주로 묘사되어 있다. 발견 초기에는 이 석상들이 얼굴 부위만을 조각한 것으로 보였으나, 이후 상하체를 모두 묘사한 유사한 형식의 석상8이 발견되며 아마도 과거에 만들어진 조각상이 침전 또는 지각 변동의 영향을 받아 지저로 가라앉은 것이라는 가설이 제시되었다.

이 조각상의 외면은, 비록 해류에 의한 미미한 변형이 있을지언정 상당히 매끄럽고 정돈되어 있으며 구조적으로 안정되어있다. 이는 현재까지 확인된 사미오말리에의 건축 기술으로는 실현하기 매우 어려운 사례다. 석상을 구성하는 석재가 잘리고 가공되는데 사용된 기술은 최소한 근대 이후의 것으로 추정되나, 이러한 석상들은 분명히 재단이 사미오말리에를 발견하기 이전에도 그 자리에 존재했다.

현재까지의 분석 결과는 이 조각상들이 몇십 세기 이전에 지어졌음을 암시하지만, 아직까지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후속 연구가 진행 중이다.

  • 티나미사의 기억 (Tinamisa ni̊ manatua)

사미오말리에의 생활 지역에는 없지만, 명백히 사미오말리에의 구성원들에 의해 지어진 남태평양의 해저 유적이 존재한다. 홀로 외딴 곳에 있는 이 유적은 사미오말리에에 있어서 종교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종의 성역 겸 도서관의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유적이 생활 지역이 아닌 곳에 위치해있는 이유는 호주판과 태평양판 사이의 지진대에서 자주 발생하는 지진이나 해저 화산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유적은 해저 평원의 한가운데에 사각뿔의 피라미드 형태로 지어져있다. 높이 약 40m, 너비는 약 60m로, 밝혀진 출입구는 바닥과 붙어있는 한 곳 뿐이다. 사미오말리에의 생활권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상어 죽빵 센터의 습격에도 파괴되거나 훼손되지 않은 유일한 유적이다.

이 유적은 일종의 화랑(갤러리, Gallery)과 비슷한 형태였으며, 그 안에는 오로지 안으로 들어갈수록 중심부에 가까워지는 길고 좁은 회랑 겸 복도만 있다. 각 복도의 벽에는 사미오말리에 고유의 문자가 새겨진 석판이나 조각이 붙어있거나, 내벽 자체에 문자가 새겨져있다.

각각의 내용은 그 당대 시기에 있었던 여러 사건들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각각의 내용에는 기록자의 치아가 일종의 서명과 비슷한 개념으로 붙어있기도 한다. 석판은 강한 경도를 지닌 알칼리성 현무암 등 해저에서 찾을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암석들이 활용되었다. 진흙을 사용해 기록을 시도한 적도 있어보이나 이는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다.

사미오말리에의 구성원들은 아마도 간헐적으로, 또는 중대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여 이곳으로 순례를 와서 기록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적은 아마도 한번에 완성되기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증축되며 현재의 모습을 띄게 되었을 것으며, 아마도 서기 6세기 즈음에 처음 나타났으리라고 추측되고 있다.

내부에 보관된 기록들은 만든 시기가 현대에 가까울수록 많으며, 사회 구조나 문화의 발전에 따라 점차 기록의 빈도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확인된 기록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약 8세기의 것이지만, 열화되지 않고 제대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략 서기 13세기 이후의 기록물들이다. 일부 기록에서는 과거에 기록된 특정 내용을 다시 새겨 그 기록이 열화되어 소실되는 것을 막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기록들은 주로 사미오말리에의 내부 사회 변화, 커다란 규모의 사냥 등의 사건, 새로이 이루어진 종교 제례 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개중 일부는 사미오말리에 이전에 존재했던, SCP-491-SHK에 의해 세워진 고대 국가에 대해 묘사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재단은 많은 해석을 이루지 못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주요한 내용들은 다음이 있다. 잘못된 해석일 수 있음에 유의할 것.

한 사람이 [질투? 불륜?]을 이유로 다른 사람의 머리를 내려쳐 죽였다. 죽은 사람은 커다란 가족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딸과 아들을 가지고 있었다. 죽인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다가 몰려든 사람들에 의해 중심으로 끌려갔다.

끌려간 그는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였고 많은 동정과 공감을 받았다. 지도자는 그에게 평생을 다하여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무거운 돌을 캐는 일을 하도록 하였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 서기 17세기, 동편 복도에 놓여진 석판에 새겨진 내용.

옷을 입는 사람들은 날카롭고 단단한 돌을 다듬어 도구를 만들고 돌을 부순다. 그들은 진흙 가운데 커다랗고 단단하고 가벼운 돌을 찾는다. 부순 돌의 밑바닥을 파내거나 부순 돌을 기둥과 벽으로 만들어 집을 만든다. 이들은 전사만큼이나 강하고 싸울 줄 알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이것은 그들을 존경하는 이들이 만든 조각이다.

— 20세기 중 북편 복도 내벽에 새겨진 내용, 작은 조각상과 함께 발견.

뭍에 커다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얕은 물에서만 있다. 그들 중 셋이 검은 것에 감싸여 내려온 것으로 그들이 우리를 보았고 우리가 그들을 보았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같이 말을 할 줄 알고 싸울 줄 안다.

그들은 큰 고래와 같은 것을 내려보냈다. 우리는 필요하지 않다면 뭍으로 올라가지 않음과 싸우지 않음을 보였다. 그들은 많은 고기를 보내며 답했다. 전사들을 보내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듣게 하였다.

우리는 그들이 티나미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고기와 몇 가지 먹을 것, 지을 수 있는 것을 보냈다. 우리들 중 많은 이가 그것을 마음에 들어하고 조각으로 답례했다. 그들은 몇몇의 사람들을 뭍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고, 그리하여 주기적으로 뭍과 물을 오가기로 하였다.

— 19██년, 북서편 복도의 석판에 새겨진 내용 일부.

때로 바다 위로 괴로운 노래를 하는 이가 있으면 천천히 헤엄을 쳐 그들에게로 갔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을 그들은 보지 못할 때가 많았으며 우리는 흐름으로 그들은 하늘로 길을 보았다

강한 전사들 중 몇몇이 그들을 뭍으로 인도해주노라면 그들은 우리에게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름을 부름받은 이들은 몇 번이고 바다를 거슬러올라가 그들의 영혼이 되어주곤 했다

— 구체적인 시기 불명. 중심부 인근에 위치한 석판의 내용.


제2장: SCP-491-SHK

개요


SCP-491-SHK는 현재로써는 여러 면에서 백상아리(Carcharodon carcharias)의 생태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 현생 인류(Homo sapiens sapiens)의 아종 또는 근연종으로 취급되는 지적 종족이다. 19██년 재단에 의해 사미오말리에와 함께 최초 발견되었으며, 여러 내부 논의와 연구가 거듭된 끝에 독자적인 변칙 생물 개체 넘버링을 부여받았다.

SCP-491-SHK는 겉으로 드러나있는 신체 조직의 대부분이 백상아리의 것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수 차례의 해부 및 연구 결과 포유류의 형질 역시 띄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SCP-491-SHK는 많은 영역에서 현생 인류와 동일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 적절한 환경만 갖추어진다면 문제 없이 사람과 동등한 생활을 할 수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SCP-491-SHK는 모두 해저의 사미오말리에에서 생활해왔으며, 사미오말리에가 아닌, SCP-491-SHK로 구성된 다른 국가 공동체가 발견된 적은 없다.

SCP-491-SHK는 인류와 동등한 수준의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어, 상술한 대로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과학 기술을 개발하며 사미오말리에와 같은 문명을 형성할 수 있었다. 사미오말리에 문명의 발달 수준이 현생 인류의 그것에 비하여 뒤떨어진다 할지라도, 이는 해저라는 특수한 지리 환경적 폐쇄성에 의한 것이지 SCP-491-SHK 종의 지적 능력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

최소한 이 보고서가 작성되고 있는 시점에서의 재단 인류학부와 변칙생물학부는 SCP-491-SHK를 인류의 한 부류로 판단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연구 절차를 수립하고 있다. 현재 재단은 습격 사건 이후 생존한 미성체 SCP-491-SHK 한 명9을 확보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이 개체를 통해 SCP-491-SHK 종의 생태적 특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SCP-491-SHK의 신체 기작에 대해서는 아직 호흡, 삼투압 조절, 수압 저항과 일부 요소에 대한 항상성 유지 등 여러 면에서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사체 해부를 겸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현재 생존이 확인된 SCP-491-SHK 개체는 최대 30명 이하로, SCP-491-SHK는 절멸위기종으로 분류되어있다.


외형 및 특징


SCP-491-SHK는 온 몸이 백상아리의 그것과 유사한 비늘로 덮혀있으며, 태생적으로 수중 생활에 능하다. 수중 생활에 적합한 신체 구조를 지니고 있으나 지속적인 수분만 공급받을 수 있다면 육상 생활에도 큰 문제가 없다. 다만 연골 어류의 특징 때문인지 골격의 강도가 현생 인류에 비해 약한 편에 속하므로, 동일한 충격을 받아도 더 심각한 피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수중이 아닌 육상 생활을 더 선호하던 경우는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SCP-491-SHK의 안면부에는 인류와 마찬가지로 외부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조직들이 발달해있으며, 특히 코 부위에는 백상아리의 그것과 유사한 로렌치니 감각 기관이 있다. 밖으로 드러나있는 외이(外耳)는 없으며, 대신 측두부 지느러미와 턱뼈가 소리의 감지 역할을 맡고 있다. SCP-491-SHK의 손과 발에는 손톱이나 발톱이 존재하지 않고, 대신 그 끝이 경화되어 단단하다.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는 작은 물갈퀴가 있어 수중에서의 방향 전환에 활용된다.

SCP-491-SHK에게는 척추를 따라서 백상아리의 그것과 유사한 꼬리 겸 지느러미가 있으며, 해상 생활을 위해 이 부위의 뼈와 근육이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특히 발달한다. 개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SCP-491-SHK는 9개의 지느러미(꼬리를 지느러미로 포함하면 10개)를 가지고 있다. 몸을 지지하고 전진 운동을 돕는 역할의 지느러미가 각각 두정부와 등, 꼬리에, 외부 감각을 파악하고 좌우 균형을 잡는 역할의 지느러미가 각각 측두부, 허벅지, 꼬리의 하단부에 양옆으로 존재한다.

SCP-491-SHK의 체모는 피부 표면의 비늘 구조 때문에, 현생 인류에 비해 거의 나지 않는다. 그러나 두피, 눈썹 부위에는 예외적으로 체모가 느린 속도로 나며, 특이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탈색이 이루어져 충분히 성장한 SCP-491-SHK의 머리카락에서 색채의 바림(그러데이션, Gradation)이 이루어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SCP-491-SHK는 내온성 항온동물로, 주로 몸 근육에서 발생하는 신체열을 아가미를 비롯한 각 기관으로 배출하는 방식으로 체내 온도를 조절한다. SCP-491-SHK의 체온은 약 26-28도 가량에서 일정하게 유지되며, 현생 인류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신진대사율과 기초대사량을 보인다. SCP-491-SHK의 복부에는 태생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태반의 흔적인 배꼽이 있고, 흉부에는 젖샘, 유방과 유두가 존재한다. 그러나 수중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남녀를 막론하고 유방이 현생 인류만큼 발달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SCP-491-SHK는 백상아리의 그것과 유사한 치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치아는 육식에 특화되어 있는 예리한 톱날 이빨의 형태를 띄고 있다. 모든 치아가 날카로운 송곳니이며 전후 두 줄로 배열되어 있고, 턱뼈의 안쪽에서부터 치아가 평생에 걸쳐 계속해서 자라난다. 덕분에 몇 주에 걸쳐 계속해서 치아가 교체되며, 외부 요인에 의해 치아가 발치되거나 손상되어도 턱뼈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계속해서 치아가 자라난다.

수중에서 부력을 얻기 위한 부레 등의 내부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호흡과 발성


SCP-491-SHK는 각기 다른 기관을 통해 태생적으로 수중 호흡, 육상 호흡이 모두 가능하다. 몸통의 늑골 사이로 여러 가닥으로 갈라진 높은 효율의 아가미가 있어 수중에서는 아가미 호흡을, 육상에서는 폐 호흡을 한다. SCP-491-SHK의 아가미는 육지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굳게 닫히며, SCP-491-SHK 고유의 신체 기작을 통해 육지에서 오래토록 생활해도 아가미의 기능 저하가 일반 어류에 비해 매우 느리게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폐 또한 수중에서는 기도가 단방향으로 닫혀 호흡을 위한 역할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물이 유입되어도 빠르게 배출할 수 있다. SCP-491-SHK는 아가미를 통해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능동적으로 체내 삼투압을 조절하기도 한다.

SCP-491-SHK는 목의 성대에 더불어 폐와 아가미 역시 발성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한다. 주로 경고, 환희, 분노 등 높고 날카로운 울음소리 따위의 간단한 감정 표현에서 비롯된 여러 언어 표현들이 아가미의 개폐를 겸하여 이루어진다. 말을 할 때 아가미를 열거나 닫음으로써 반언어적인 표현을 하거나, 흡수음 또는 출수음을 통해 직접 발화할 수 있다.

근골 구조


SCP-491-SHK는 신체 골격의 많은 부위가 연골로 구성되어 있고, 그 골격의 강도가 다른 육상 동물에 비해 약한 편에 속한다. SCP-491-SHK는 생활 환경에 따라 후천적인 근골의 성장을 이루었고, 이 때문에 수중 생활을 주로 하였던 개체와 육상 활동을 주로 하였던 개체 간의 근골 구조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으리라고 보인다.

SCP-491-SHK는 보통 여성이 남성보다 더 큰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그 특성 상 여성이 더 강한 근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사미오말리에의 방위 임무를 맡은 수호 군인 역에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은 비율을 차지했던 것도 이 때문으로 추측된다. 남성은 주로 지역 순찰, 식량 조달의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생 인류에 비하여 SCP-491-SHK는 수중 생활을 위해 어깨와 꼬리 부위의 근골이 발달해있다. 이 때문에 어깨의 너비가 상대적으로 넓고, 투척이나 수영 등 어깨와 팔의 힘이 요구되는 운동에 특화되어 있다. 그러나 그에 반해 SCP-491-SHK들의 다리 부위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육지에서의 활동 시간이 적은 개체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SCP-491-SHK는 치아가 턱뼈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구조로, 보통의 상어와 달리 구강 구조가 정교합을 이루고 있어 현생 인류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입을 벌릴 수 있지만, 시신 해부 결과 일부 개체는 골격적 부정교합을 가지고 있어 그 이상으로 입을 벌려 강한 치악력으로 먹이를 섭취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서식 환경


SCP-491-SHK는 일반 육상 동물과 동일하게 육지에서 생활할 수 있지만, 상술한 현생 인류에 비해 약한 골격을 지니고 있다는 특성에 더불어 주기적으로 물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10 때문에 육상 생활보다는 수중 생활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기본적인 주의만 기울인다면 현생 인류와 동일한 조건에서 생활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SCP-491-SHK는 여타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육상에서든, 수중에서든 주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특히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취약하다. SCP-491-SHK는 조류, 온도, 신체 압력 등 주위 환경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적응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적응 기간을 거치지 않거나 주변 환경의 변화가 지나치게 급히 이루어지면 여러 신체적 부적응 반응을 일으킬 수 있고, 이는 주기적인 실신이나 사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모든 SCP-491-SHK는 해수에서 서식하고 있었으므로 자연 상태에서의 담수에서의 서식 생태는 보고된 바가 없다. 해부를 겸한 실험 결과 SCP-491-SHK는 고유한 삼투 조절 기작을 통해 신체 삼투압을 조절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충분한 적응을 거치면 담수에서도 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습성


SCP-491-SHK는 기존의 생물학 분류에 따라 배회성-정주성, 주행성-야행성을 나누어 논하기 어렵다. 이들은 확실히 암석과 산호로 이루어진 서식 주거지를 구성하였고 그 인근으로 집단 생활 영역을 형성하여 생활하였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주거지에서 벗어나 매우 먼 해역으로까지도 이동할 수 있었다.

사미오말리에의 핵심 주거지역은 보통 태양광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해저대에 형성되었으므로, 활동시간에 대한 개념이 모호했다. SCP-491-SHK는 적절히 조성된 환경과 꾸준한 수면, 먹이 활동만 잘 이루어진다면 주야를 가리지 않고 생명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 따라서 아마도 사미오말리에에서도 주야를 가리지 않고 먹이 활동이 이루어졌을 것이며, 일부 단체 활동을 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주야의 개념이 거의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SCP-491-SHK는 기본적으로 육식성에 해당하나, 소화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의 채소류, 해조류 섭취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SCP-491-SHK의 수면 시간은 주변 환경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동한다. 주변에서 가족, 클랜 등 친호 공동체에 의하여 보호를 받고 있을 때의 수면은 하루에 한 번 잠들어 6시간 이상 이루어지지만, 주변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는 짧은 간격으로 수면과 기상을 반복하며 돌발상황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인다.

번식


SCP-491-SHK는 약 20-30년에 걸쳐 아성체에서 성체로 성장하며, 주로 아성체에서 성체가 되는 과도기 시점에 구애를 통해 가정을 꾸리고 번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이라는 명시적인 계약 행위를 통해 배우자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다른 클랜에 속해있던 구성원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같은 클랜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종의 결혼과 같은 의미로 통했을 것이다.

한 사람이 한 명의 배우자만을 가지는 것이 사회적인 통념이었으나, 배우자의 죽음이나 실종 따위의 이유로 새로운 배우자를 구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구애의 방식으로는 아마도 도구, 장신구, 먹이 등의 선물과 악상어과 특유의 밀접한 신체적 접촉을 통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SCP-491-SHK는 생식기와 배설구가 분리되어 있고, 해당 기관들은 현생 인류와 같이 꼬리가 아니라 하복부에 존재한다. 임신한 SCP-491-SHK 여성은 약 10개월 또는 그 이상에 달하는 임신 기간을 거친 후, 난태생에 가까운 고유한 방식으로 체내에서 알을 부화시켜 한번에 1~2명의 자녀를 낳는다. 출산 직후의 어린 SCP-491-SHK는 수유, 또는 가족 구성원이 구해다준 치어를 통해 영양분을 섭취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까지 관련하여 수집된 자료는 없으나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 결과는 SCP-491-SHK와 현생 인류간의 교잡 및 번식이 가능함을 시사하고 있다. 아직까지 SCP-491-SHK의 생물 분류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SCP-491-SHK와 현생 인류간에 여러 유전학적 유사점이 발견되었다는 점은 자명하다.

유력한 가설 중 하나는 진화 이전 인류의 공통 조상의 한 집단이 지리적으로 단절된 상태에서 변칙적인 영향을 받아 현재의 SCP-491-SHK와 같은 형태로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단정지어진 결론은 없으며, 후속 연구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제3장: 현재의 상황

개요


오래토록 인류와 커다란 충돌 없이 계속해서 해저에서 발전해왔던 변칙 문명인 사미오말리에는 10년 이상 재단과 정기적인 교역을 통해 여러 정보와 물자를 교환하고 있었고, 특별한 긴장 상태 없이 평화는 지속되었다. 그러나 재단의 안이하고도 미숙한 판단과 대처 때문에, 사미오말리에는 하루아침에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그 구성원들은 전부 몰살당하며 멸망하였다.

다음은 사미오말리에가 어떤 과정을 통해 몰락하였는지, 그리고 그 이후 요주의 단체들이 이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어떠한 피해가 발생하였는지 등 그 여파에 대한 내용이다.

습격과 멸망


20██일, 로로토 인근 10km 해역에서 상어 죽빵 센터의 무장 선박이 출현하여 사미오말리에를 향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그들은 현대적으로 개조된 잠수정, 순양함, 구축함 등 대형을 갖춘 1개 전대 규모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항해 경로와 주둔 방식으로 미루어보건대 이미 재단 사령부 거점의 내부 정보와 사미오말리에의 지리 정보 등을 미리 습득한 상태였으리라고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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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당시 촬영된 SPC 선박의 사진.

재단 태평양사령부는 이 급작스러운 사태에 인근 제도에 주둔해있던 무장 기동특무부대 さ-21 ("물어뜯어 죽이기")를 발진시켜 대응을 시도하였지만 당시 남태평양에서 발생한 SCP-████-PA의 격리 파기 사태 제압을 위해 주둔 병력 대다수를 타 지역으로 파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이상의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현장에 배치된 기동특무부대 さ-21는 경고 사격에 더불어 어뢰, 함포 등의 포격을 통해 그들의 진격을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되려 그들 함선에 설치되어 있던 확인되지 않은 초상 무기에 의해 공격당하며 무력화되었다11.

상어 죽빵 센터는 수도 로로토를 시작으로 그 주변의 툴로푸(Tulopu), 사마파이이(Samafai'i) 등 모든 SCP-491-SHK의 거주 지역을 따라 순항하며 각 지역을 파괴, 체계적인 학살을 자행했다. 당시 사미오말리에는 그들 나름대로 방어, 대피를 시도하였으나 모두 무력으로 저지되어 일방적으로 살육당했으며, 약 34시간만에 사미오말리에의 거의 모든 거주지가 초토화되었다.

상어 죽빵 센터는 학살 당시 어뢰, 함포 등의 선박 무기 역시 활용하였으나, 미지의 수중 보호구를 착용한 구성원들이 직접 해저에 내려가 SCP-491-SHK들을 살육하는 것이 가장 주된 공격 방식이었다고 보고되었다.

방호 실패 소식이 전달된 이후 1급 비상 상황이 선언되고 태평양사령부 직할 부대가 현장으로 급파되었으나, 이후 상어 죽빵 센터의 모든 함선들은 재단과의 교전을 피하고, 추적에서 벗어나 기적술로 추정되는 변칙적 방식을 활용하여 현장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사미오말리에에서 별다른 전리품을 수집하는 모습도 관측되지 않았기에,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사미오말리에의 궤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재단은 후속처리반을 통해 현장의 통제와 역정보 공작을 실행하였지만, 이 역시도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지리적으로 인접해있던 사모아 공화국을 비롯한 각국 수뇌부의 비공식적인 우려 표명이 이루어졌고, 민간 위장 단체들을 내세운 요주의 단체들의 현장 개입을 온전히 차단하지 못했다.

본 사건은 요주의 단체에 의해 재단의 격리가 완전히 파기되고 미숙한 대응에 더불어 막대한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재단은 본 사건을 일으킨 요주의 단체 "상어 죽빵 센터"의 위협 등급을 격상시켰고,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며 예의주시 중이다. 또한 태평양사령부 내부의 방첩 활동을 강화하여 내부 정보 유출에 주의를 기울이는 중이다.

이 사건 때문에 사미오말리에의 구성원은 거의 전체가 사망하였고, 그들이 이룩한 유적들은 소수를 남겨두고 전부 파괴되었다. 재단은 이 사건 이후의 사미오말리에는 더 이상 국가로써 존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국가 등급을 몰락(Downfall)으로 재분류하였다.

연관 요주의 단체


다음은 이 사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또는 관련하여 어떠한 정치적 움직임을 보인 요주의 단체들이다. 재단은 사미오말리에와 관련한 정보들을 통제하여 이들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무력 충돌을 계기로 드러난 사미오말리에의 실태에 대해서 많은 단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상어 죽빵 센터

상어 죽빵 센터(Shark Punch Center, GoI-18153.)는 과거 어느 시점에 발견된 의문의 요주의 단체다. 이들의 기원이나 규모, 소속된 인원이나 관련된 단체 등에 대해서는 재단이 파악한 것은 거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들은 "상어를 때린다"는 공통된 조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곳곳에서 여러 변칙적인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어류를 비롯한 여러 해양 생물체와 관련된 변칙 현상에 연루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민간에 피해를 입히기보다는 단순히 조직 이념과 관련해 몇 가지 소규모 사건을 일으키고 마는 것에 그쳐 그 이전까지 요주의 단체로써 강경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그들은 명백하게 재단의 함선을 포격하며 적대적인 행위를 보였고, 이전까지 보고된 바 없는 고도의 초상 기술이 접목된 무기를 가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그들의 행위로 미루어볼 때 재단의 사미오말리에와 연관된 주요 정보가 어떠한 경로를 통해 유출되었음이 확실하다. 사령부는 재단 내부에 그들의 정보원이 숨어들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재단은 사미오말리에의 습격 이후 상어 죽빵 센터의 위협 등급을 적색()으로 상향하고, 특무부대를 배정하여 방첩 활동에 더불어 상어 죽빵 센터의 동향을 살피고 있는 중이다.

유한회사 MC&D

유한회사 MC&D(MC&D Ltd.)는 이 사태를 누구보다 빠르게 확인하고 상업적으로 활용한 요주의 단체다. 이들은 여러 민간 위장 기업과 정부 인사들을 활용하여 해저에 위치한 사미오말리에의 유적을 탐사하고, 그들의 유물과 SCP-491-SHK의 시체 등을 다수 인양해 탈취하였다. 재단의 초기 정보 차단의 실패로, 아마도 사미오말리에와 관련한 정보가 이들에 의해 유출, 판매되고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이들은 사미오말리에의 유물을 활용하여 상당한 상업적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12, 이 사태가 발생하는데 직접적인 기여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들을 통한 심각한 정보 유출로 인하여 또 다른 요주의 단체 또는 개인에 의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녀 구제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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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6193의 로고.

마녀 구제 기구(The Witches' Relief Organization, GoI-6193)는 19██년대부터 그 활동을 보이기 시작한, 재단에 매우 적대적인 변칙 테러리즘 집단이다. 이들은 구성원 중 대다수가 현실 조정자, 기적술사, 영적 독립체 등 변칙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고 있으며, 인류에 대한 강한 적개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마녀 구제 기구는 본 사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여겨지고 있지만, SCP-491-SHK 개체 하나가 이들 단체에 소속되어 여러 테러 행각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확인되었다. 증언에 따르면 해당 개체는 사미오말리에에 속해있었으며 습격의 여파에서 생존한 경우로 보인다.

따라서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미오말리에의 생존자가 이들 단체에 의해 구류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며, 현재 이들의 행동 추적을 위한 작전이 구상되고 있다.

청해진

해저를 누비고 다니는 SCP-983-KO와 이를 본거지로 삼는 요주의 단체 청해진(Chŏnghæjin, GoI-0531)이 사미오말리에와 밀접한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이 사태 이전에도 사미오말리에와 청해진간의 접촉 또는 교류가 있었는지 상세하게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이들은 사미오말리에가 습격당하는 도중 인근 해역에 나타나 일부 SCP-491-SHK를 구출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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