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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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그럼 누굽니까?”

화이트는 고개를 들어 스트링을 바라보았다.

“누구에요. 과장님이 봤을 때, 내부 변절자는 누구냐고요.”

“아직 변절자가 정확히 누군진 몰라. 하지만 실마리는 잡았어.”

화이트와 스트링은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정보를 흘리자마자 우리에게 접촉한 인물이 있어.”

스트링은 복도 한 쪽 끝에 있는 또 다른 문을 열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의 한 쪽 벽면은 커다란 스크린이 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 선 채로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스크린엔 단조로운 취조실의 모습이 떠 있었다. 취조실에 앉아 있는 사람은 스트링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비서관……”

“대체 어떤 경로로 정보를 입수했는진 모르지만, 자네가 내려오기 전날 밤에 이미 내려와 있었네. 업무 끝났다고 해도 돌아가지도 않고. 협조하겠다고 떼쓰면서 정보를 요구하더군.”

“그러고 보니 어제 밤에도 마을에서 가넷에 대한 정보를 캐고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그 자리에 있었나? 알 수가 없군, 이 사람도.”

스크린의 비서관이 맞은편에 앉은 요원에게 말했다.

“지금, 얼마나 많은 법을 어겼는지 아십니까?”

“지금 귀하께서 계신 이 곳은 대한민국의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 치외법권입니다. 규약에 따른 절차로 현재 구금된 것이며, 성실히 답변하지 않으실 경우 귀하의 신변을 보장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비서관은 딱딱한 말투로 종이를 읽어 내려가는 요원을 노려보았다. 바로 옆에서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딕슨이 톰슨에게 스크린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말을 걸었다.

“조사관은 인증을 통과했지? 너무 순하게 나가는 거 같은데.”

“글쎄, 딕슨 너는 북미에서 와서 잘 모르겠지만, 이 나라에선 공권력이 약한 편이라. 좋은 경찰 나쁜 경찰 놀이할 수 있는 것도 분위기를 봐가면서 해야 하거든.”

“글쎄, 정치인이라 막 나가는 거 아냐. 워, 나를 좀 보시오, 내가 바로 비서관이요?”

갑자기 스크린 속 비서관이 이쪽을 향해 휙 고개를 돌렸다. 딕슨은 외마디 소리를 냈으며, 스트링도 움찔했다. 비서관은 매섭게 노려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 카메라 숨겨 놓지 않냐, 보통?”

“대단한 사람인가보지.”

스크린 속 요원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은 재단 활동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뭘 얻었다는지 모르겠군, 나는 이 지역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다국적 기업이 이곳에서 인가받지 않은 수사 행위를 감행하고 있다는 걸 들었을 뿐입니다.”

“이런 사건 사고에도 직접 개입하는 것이 당신의 업무에 포함됩니까?”

“내가 속한 부처에서 담당하는 일이고, 거기 책임자인 내가 직접 업무를 보기로 한 것뿐입니다. 당신은 책임자라고 해서 현장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고 업무를 처리합니까?”

지휘관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대답했다. 요원은 다음 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다음 질문 하겠습니다. 사고가 발생했다는 진술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십시오.”

“민간인 수 명이 실종된 사고가 경찰을 통해 보고가 되었고, 그 중 하나는 유령회사의 소속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마지막 실종자에 대한 수사 행위가 파악되었고, 회사의 출처를 찾던 중에 당신들이 파악된 것뿐입니다.”

스트링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과장님, 저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근거가 뭔가?”

화이트는 태블릿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스트링은 비서관의 입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제도 그랬고, 계속 말하는 게 개체보단 사람을 신경 쓰는 것 같아요. 개체를 들고 갔다는 사람치고는 거기에 관련된 질문은커녕 언급조차 안하고 있어요.”

“정치인인데 오죽 연기를 잘하겠나. 좀 두고 보지. 그것보다……”

화이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생각보다 작전 장소에서의 피해가 적은데……”

스트링은 화이트의 태블릿을 들여다보았다. 피해 규모에 대한 표가 떠 있었다.

“사망자 없고, 부상자도 경상이 다수…… 이건 적극적으로 교전하지 않았다는 거 아닌가요?”

“내가 군사 전문가도 아니니, 이놈들이 뭘 원하고 거길 갔는지 모르겠군. 개체를 회수하러 온 거 아니었나?”

화이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스크린 속 비서관이 말했다.

“당신들, 제대로 된 집단 맞습니까?”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오면서도 봤어. 당신들 사람들을 트럭에 싣고 이송하고 다니더군. 내가 호송 차량에 타고 있었다고 그 상황도 몰랐을 거 같습니까? 이런 비인간적인 처사를 두고도 인류를 수호하는 목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필요 외의 발언을 삼가십시오. 조사 기간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비서관은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그럴까?”

갑자기 스크린의 화면이 나갔다.

“뭐야?”

“화면 왜 이래?”

“불 나갔어?”

바깥에서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가려는 스트링을 화이트가 붙잡았다.

“자리에 앉아 있어.”

“교수님?”

“자리에 앉아 있어!”

말을 마치자마자 발밑이 심하게 흔들렸다. 스트링은 비틀거리며 접이식 의자를 붙들었다. 천장을 타고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전인가? 교수님, 기지가 전력이 나간다는 게……”

“말이 안 되지! 파악이 될 때까지 앉아있어!”

다시 한 번 건물이 전체적으로 흔들렸다. 스트링은 화이트의 손을 뿌리치며 외쳤다.

“연락 주십쇼, 과장님!”

“스트링!”

스트링은 파우치에서 자신의 태블릿을 꺼냈다. 깜깜한 복도에서 화면이 켜지자 눈이 부셨다. 기기가 구동되고, 네트워크 로그인 화면이 나타났다. 스트링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지난 일주일 동안 한 번도 들어간 적이 없었다. 로그인 이후에 뜰, 그의 팀장 인계 확인 화면이 두려웠다. 그가 부정하던 사실이 진짜가 될까 두려웠다.

멀리서 복도 끝 문이 보였다. 어느새 비가 내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건물은 계속해서 흔들렸지만, 스트링의 눈은 화면에서 깜빡이는 커서에 고정되었다. 그의 심장 박동 수에 따라 깜빡임이 빨라졌다. 지금까지 그의 친구에게 미뤘던 책임이 그에게 넘어오는 순간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면 해보게나.’

‘그렇다고…… 이렇게 앉아만 있을 순 없잖아요?’

스트링은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로그인 버튼을 눌렀다. 몇 초 뒤, 그의 아이디 뒤에 별이 하나 붙은 채로 네트워크가 켜졌다.

스트링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네트워크에 따르면 비서관이 억류된 곳은 스트링이 있던 곳의 맞은편 건물이었다. 문을 열고 나서자, 이미 하늘에서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구호소에선 천막 밖의 사람들을 건물 안이나 천막 아래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스트링은 천막 사이를 가로질러 뛰었다.

“거기 들것 좀 잡아주세요!”

“전력 복구는 아직이야?”

“D동에서 화재 발생했어! 그 쪽으로 가지마!”

커다란 폭발음이 기지 뒤쪽에서 터졌다. 몇몇 사람들은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긴 경보음이 기지 곳곳의 스피커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알림, 기지 내 직원들은 신속히 자기 자리를 이탈하여 지정된 위치로 이동할 것, 외부 인력은 현장 직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기 바람. 알림……”

사람들을 헤치며 기지 끝에 다다른 스트링은 카드를 대고 문을 열었다. 조용히 문이 열리고 스트링은 뛰듯이 복도를 가로질렀다. 기기의 지도를 따라 취조실로 향한 스트링은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늦었다……’

책상엔 심문을 하던 요원이 엎드려 있었다. 그의 주위로 새빨간 웅덩이가 번져 있었다. 서둘러 요원의 맥을 짚어본 스트링은 입을 틀어막으며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간 거야……”

지도를 열고서 축소하자 바로 옆에 붙어있는 건물 내부가 드러났다. 지하층을 손가락으로 훑던 스트링의 손가락이 멈췄다.

‘서버실’

서버실로 뛰어가려던 스트링이 다시 제자리에 섰다. 그는 죽어 있는 요원을 돌아봤다. 생각이 바뀌었다.


“스트링 박사님?”

“찰스, 기지 상공에서 기지 전경 찍어 보내줄 수 있어요?”

대피소로 이동하던 찰스는 기기에 띄어진 스트링의 통신화면을 보며 깜짝 놀랐다.

“그런 짓 하면 이 자리에서 총 맞는 거 몰라요?”

“안 보이게 살짝 올라가던가, 드론이라도 띄워줘요. 빨리!”

할 말만 말하고 통신을 끊어버린 스트링은 화면에서 사라졌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창문 밖을 바라보던 찰스가 투덜거렸다.

“젠장, 이 사람도 자기 친구 닮아간다니까.”

줄을 따라 걷던 찰스는 바로 옆의 창문을 열고 훌쩍 뛰어 내렸다.


“네, 노래마인 님. 연락 받았습니다. 아직 확인 중입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대피 중입니다. 네, 저희 보유 SCP는 보존 상태에 들어갔고요.”

기지 관리자 옥샌은 갑작스런 폭발에 정신이 없었다. 기지 외부에서 전투 상황이 벌어진 것을 확인했을 뿐이지, 기지 안에서 이런 소동이 일어날 낌새는 하나도 없었다.

“네네, 잠시만요? 누구세요?”

화면에 띄워진 통화 대기열 중 하나는 모르는 번호였다. 누군가의 얼굴이 사진 한 장과 함께 떠올랐다.

“연구원 스트링입니다. 관리자 님, 지금 요주의 단체 침입에 대한 대처를 알려드리려 전화했습니다.”

“뭐, 뭐요? 잠깐만, 당신 어디서 왔어요? 정보창에……”

“아 지금 바쁘니까 뒷조사는 나중에 하고! 불러드리는 거 좀 보내달라고요!”

스트링의 말을 들은 옥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에?”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스트링은 지도를 확인했다. 거대한 서버실 공동 한 가운데에 빨간 점 두 개가 깜빡이고 있었다. 그가 뛰고 있는 건물 주변으로 수십 개의 빨간 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시간이…… 애매하네?”

스트링은 잠시 고민하다 최근 조회를 눌렀다. 가넷이 아이디를 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부산시 광역 지도…… 표준 기억 소거 절차…… SCP-884-6-4172 사건……’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던 그는 생각하길 그만뒀다. 이런 건 그의 방식이 아니다.


“얼마나 됐습니까?”

“잠시만……요. 거 시스템이 참 훌륭하게 좆같네요. 보안이 엉망진창이야. 만든 놈 낮짝을 보고 싶네요.”

비서관은 국장의 뒤에서 초조한 듯 서 있었다. 웅웅거리며 단조로운 불빛으로 깜빡이는 주변 시설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만지는 모든 물건에서 전기가 흘러와 손이 따끔따끔했다. 비서관은 숨도 쉬지 않는 얼굴로 가만히 국장이 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런데 이런 정보들이 정말로 유용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국장이 등을 돌리지 않은 채 비서관에게 물었다. 비서관이 답했다.

“이 곳에 와 있으면서 이 조직이 위법적인 일을 셀 수 없이 많이 자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일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여러 가지지만, 좋은 일이라고 볼 순 없겠죠. 동시에 굉장히 값어치가 나가는 일일 테고요. 이 사람들이 기를 쓰고 지키려는 것으로 봐선, 네. 그렇다고 봅니다.”

“비서관 님이 말씀하신 정보 말고 다른 자잘한 건 벌서 뚫었는데요, 장비나 인력 면에선 우리나라보다 더 대단해보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다 이리로 몰려온 모양인데.”

자리에 주저앉아 노트북을 두들기던 국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노트북을 덮으며 국장이 기지개를 켰다.

“끝. 다 뚫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타앙 하는 단발 음이 서버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메아리치며 울리는 총소리에 덩달아 서버실 곳곳에서 정전기가 튀어 올랐다. 국장은 나무토막처럼 서버 기계에 처박혔다. 핏물을 뒤집어 쓴 기계가 연기를 뿜어내며 터졌다. 비서관은 총을 옆으로 던져 버렸다.

“역시 당신이었습니까? 비서관.”

노트북을 줍던 비서관은 몸을 돌렸다. 스트링이 그늘에서 천천히 벗어나 다가갔다. 비서관은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스트링이던가요? 당신네 코드 네임.”

“설명해봐요.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비서관은 크게 웃었다. 오랫동안 웃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소리가 어색했다.

“설명은 당신들이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 거대한 시설에, 방대한 규모의 조직 구성에, 잘 짜인 정보 체계에. 내가 볼 땐 당신도 전부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거 같은데요?”

“내려오면서 당신에 대한 파일을 봤습니다. 홍정철 씨.”

비서관은 입을 다물었다.

“학교 입학 년도부터 시작해서 정부 채용과 승진 모두 최연소란 말이 붙지 않은 곳이 없던데요. 그 옛날이라고 보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기술에 대한 안목도 탁월했고.”

“다른 말 더 없습니까? 그 파일에?”

스트링은 잠시 주저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년 전에 사고로 딸을 잃었다고……”

“맞습니다. 이년 전에, 당신네들이 빌어먹을 사람 하나 찾자고 온 도시에 정전을 불러 왔을 때였지.”

비서관의 말에 스트링이 움찔했다.

“내 딸은 그 때 응급실에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의사였지. 당신들이 온 도시를 뒤집어 놓은 덕분에 병원이 아주 바빴고. 죽은 사람의 심장을 되돌리려고 기계를 쓰던 내 딸은, 당신들이 터뜨린 폭탄 때문에 그 전기를 뒤집어썼습니다.”

“……”

“그 때부터 당신들이 보였습니다. 그 전까진 몰랐지만, 이미 이 나라에 단단히 뿌리박아 버린 당신들 재단이란 곳을 말입니다. 당신같은 단체가 한 둘이 아니라는 것도. 그래서 알고 싶었습니다. 대체 뭐하는 곳이길래, 온 나라에서 행패를 부려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이 사람들에 대해서.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까? 고작 그거 하나 알자고 이 짓을 벌였어요?”

스트링의 목소리가 서버실 곳곳에 메아리쳤다. 비서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끝냅시다. 어차피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으니.”

“이 아수라장에서 멀쩡히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비서관은 무표정하게 쳐다봤다.

“그럼요. 물론이죠.”

순간 소름이 돋은 스트링은 몸을 돌렸다. 반쯤 돌렸을 때 무언가 그의 어깨를 뚫고 깊숙이 들어왔다. 숨이 목에 걸린 스트링은 땅바닥에 처박히려는 몸을 굴려 기계 사이로 기어 들어갔다. 아까같은 총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렸다. 이번엔 그의 다리를 뚫고 지나갔다. 스트링은 비명을 지르며 기계 사이로 쓰러졌다.

“정보는 이 안에 들어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까지 직접 뛰지 않으셔도 되셨는데.”

스트링은 간신히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목소리의 주인은 그도 아는 사람이었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하니까. 저는 이 USB만 가져가면 됩니다, 딕슨 씨.”

“네. 비서관께서는 신속하게 이탈해주십시오. 저는 마무리를 하고 가겠습니다.”

두 개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하나는 이 쪽을 향하고 있었다. 스트링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그의 가슴팍에 빨간 점이 생겨났다.

“스트링 박사,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아, 없다고는 못하겠구나.”

지근거리까지 온 딕슨이 총을 겨눴다. 스트링은 눈을 감았다. 총소리가 났고,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헉……!”

스트링은 눈을 떴다. 딕슨이 눈을 부릅뜬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스트링의 머리 한 뼘 거리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박사님, 괜찮으세요? 안 늦었습니까?”

스트링은 목소리가 나온 왼쪽 어깨 파우치의 무전기에 대고 답했다.

“아뇨, 딱 좋아요, 케일렙.”

“주변에 몇 명 더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스트링은 기계를 짚고 일어났다. 따다닥 소리와 함께 무언가 굴러다니더니 주변에서 폭발했다. 뜨거운 바람이 훅 불어와 그의 몸을 강타했다.

“안 돼! 케일렙! 폭탄 쓰면 안 돼요!”

“너무 많아요! 몇 명 수준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요!”

스트링은 그의 주머니에서 병을 꺼냈다. 하루에 두 번 맞는 건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는 병 속의 주사기를 꺼내 허벅지에 찔러 넣었다. 비틀거리던 그는 곧 뛰기 시작했다.

“비서관!”

눈 앞에 검은 양복이 보이자마자 스트링은 소리를 지르며 뛰었다. 동시에 그의 옆에서 새까만 그림자가 둘 뛰쳐나왔다. 스트링을 향해 뛰어오른 그림자들은 순식간에 바닥에 처박혔다. 폭죽 터지는 요란한 총소리가 터졌다. 스트링은 팔로 연기를 막으며 무너진 기계를 뛰어넘었다.

“저기! 저쪽!”

비서관이 뛰어가던 방향의 통로를 스트링이 가리키자, 어디선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날아갔다. 통로에 처박힌 그것은 돌가루를 퍼뜨리며 통로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미친! 폭탄은 안 된다고!”

“로켓이에요!”

“돌았네!”

스트링은 무너진 복도 앞에 멈춰 섰다. 비서관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만하죠, 이제. 나갈 구멍도 없어요.”

“그건 당신도 마찬가집니다. 뭐, 더 말하자면 나는 언제든 나갈 수 있고, 당신은 무기 하나 없는 상태죠.”

비서관은 USB가 꽂힌 자신의 휴대 전화를 들어보였다.

“케일렙! 저 사람을 쏴요!”

“…….!”

“케일렙?”

“제가 닿은 조직에서 생각보다 사람을 많이 보낸 모양입니다. 연락이 안 되는 걸 보니.”

스트링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당신을 여기에 봉쇄시킨 다음에 철수하라고 말했습니다.”

“뭐?”

“에구, 이 화면에 떠 있는 게 뭔지 알아요?”

스트링은 바닥에 털썩 앉으며 기기를 꺼내 보였다. 화면엔 새까만 글자들과 함께 확인 버튼이 떠 있었다.

“이 기지의 기억 소거 절차는 이제 재단에 몇 없는 희귀한 방식이에요. E등급 기억 소거라고, 머리를 전기로 지져서 기억을 날리는 거지. 과격하지만, 활용 방법이 다양하거든.”

“무슨……”

“여기에 시설도 없고 정전이라 못 쓸 거 같지만,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곳 주위에 피뢰침이 꽤 많잖아요. 휴대폰이라던가, 철근이라던가. 서버실은 자체 동력이라 전기도 넘치고.”

“당신은 무사할 거 같습니까? 하지도 못할 거, 허세가 심하군요.”

“글쎄요.”

뒷걸음질 치는 비서관에게 스트링이 씨익 웃었다.

“그건 해봐야 알지.”


막 전력이 복구되었던 57-2 기지는, 다시 정전이 되었다.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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