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더러운 흙먼지 덩어리
평가: +7+x

“인간이란 얼마나 위대한 걸작품인가.”

루이즈는 보라색 예복을 걸치고 서 있었다. 스포트라이트가 아래를 비추자, 극장의 다른 부분들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루이즈는 햄릿의 광기로 괴로워하였고, 악마가 방문하기라도 한 듯이 엄청난 고통이 얼굴에 역력했다. 루이즈가 그 고통을 한가득 표현하면, 관객들은 그걸 전부 받아들였다.

“이성으론 얼마나 고귀하며, 능력엔 얼마나 무한대이며 그 형상과 활동성에선 얼마나 멋지게 완비되고 경탄할만한가!”

그는 길던스턴과 로젠크런츠에게로 다가가, 그 흐릿하고 무관심한 눈동자에 비춰 보이는 영혼을 응시했다. 이 자들은 예술가가 아니었다. 그 이름을 쓸 자격이 없었다.

“행위에 있어선 마치 천사와 같고, 그 분별력에 있어선 얼마나 과 같은가!”

루이즈가 예복 자락을 펄럭이며 젖히자, 섬광등이 무대를 가로질러 비추었다. 루이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너무 놀란 나머지 도취되어 넋을 잃은 관중을 보았다.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만큼은, 관중들은 루이즈를 보기 위해 살았던 것이었다.

“온 세상의 아름다움이며, 완벽한 만물의 영장이다!”

관중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루이즈뿐이었다. 지금 루이즈는 그들의 정신 속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루이즈의 본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루이즈가 해야 하는 모습, 보이고 싶은 모습, 되고 싶은 모습, 루이즈가 생각하기에 본인의 본모습인 것을 보고 있었다. 광인들이 제정신인 척하는 세상에서 광인인 척하는 제정신인 사람. 여기, 이 세상에서, 루이즈 뒤샹이 진정한 햄릿이다.

“그러나 내겐 이게 가장 더러운 흙먼지 덩어리로만 보이니 대체 어찌 된 것인가?”

불이 꺼지고 스포트라이트가 내려가자, 루이즈는 우주에 홀로 있었다.

“그러, 그러, 그러나…내겐 이게 가장 더러운 흙먼지 덩어리로만 보이니 대체 어찌 된 것인가? 여자…아니지. 인간 자체가 날 즐겁게 하지 않는다.”

루이즈가 공허를 바라보자 공허는 무한한 무관심을 담아 바라보았다.

“인간 자체가 날 즐겁게 하지 않는다. 여자도 아니다. 너희들 미소 짓는 꼴을 보니 너희들에겐 즐겁게 해주나 보지.”

그리고는 불빛이 되돌아왔다. 햄릿에게는 로젠크런츠와 길던스턴이 있었고 공연은 계속되었으며, 모두가 알듯이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뒤샹 씨?”

“응? 뭐요?”

루이즈는 눈을 비벼 눈곱을 떼어냈다. 갤러리 한복판에서 잠이 들었었다. 대낮에, 몇 시간 동안이나, 일어선 상태로. 처음도 아니었다.

“루이즈 뒤샹 씨?”

“네, 접니다, 저에요. 죄송합니다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은 아니라서 말이죠. 뉘신 지?”

“우체붑니다. 소포가 왔어요. 서명해주셔야 합니다.”

“네, 네, 네….”

루이즈는 배달부가 내민 패드에 비틀거리면서 성의 없는 X표를 그렸다.

“가져다 드릴까요, 뒤샹 씨?”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래 주시겠어요? 그냥, 어, 저기다가 놔주세요. 저기 저지선 쳐진 곳에요. 좀 위험하니까 뭐 건드리지 않게 조심하고요. 뭐라고 해야 할까, ‘수리’ 중이라 말이죠. 헤.”

“물론입니다, 뒤샹 씨. 곧 직원들이 가지고 올 겁니다.”

“수고하세요.”

루이즈는 오른쪽 손목에 찬 디지털 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 45분이었다.

루이즈는 왼쪽 손목에 찬 아날로그 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 45분이었다.

루이즈는 눈앞의 그림에 그려진 회중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나뭇가지 위에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한동안 감아주지 않은 시계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루이즈는 초현실주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믿으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림을 보며 입을 삐죽였다. 그래도 여전히 시간은 오후 3시 45분이었다.

루이즈는 접수처를 지나쳐 문밖으로 나가, 세 개의 출입문을 지나친 뒤, 좋아하는 커피숍에 들어가 두 배로 진한 에스프레소를 주문하여 매일 먹는 카페인제와 멀티비타민, 항우울제와 함께 삼켰다.

그러고 나서야 루이즈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썅! 캐롤, 오늘 무슨 요일이지?”

바리스타는 눈앞의 화난 예술가를 보고 당황하였다.

“어…수요일?”

“좋아, 됐어. 신경 쓰지 마. 오늘이 목요일인가 싶어서 그랬어.”

“괜찮은 거야, 루이즈?”

“그래, 그냥…정신이 없달까? 계속 바빴거든.”

“가엽기도 하지. 앉아. 얘기라도 해봐.”

루이즈는 계산대로 의자를 가져왔다. 캐롤은 반대편에 앉기 전에 앞치마를 매만졌다.

“눈에 거슬리고 정말로 무례한 작품을 다른 집에다가 보내면서 지루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단조로운 쓰레기나 반복해서 만드는 굶주린 예술가 한 무더기랑 전쟁을 벌이려고 했는데 그 대표단 중 한 명이 말 그대로 다른 쪽에 붙기로 해버렸거든 근데 다른 쪽에 붙지 않는 게 내가 생각해뒀던 ‘큰 계획’의 필수 요소여서 내가 의도했던 계획을 망쳐버린 거나 다름없게 됐지만 어제 종일, 밤을 꼴딱 새우고 오늘 아침도 절반 정도 새우고 나서 각본을 좀 고쳐서 금요일의 ‘큰 전시회’ 이전에 내 장단에 놀아나게 하면 그때쯤 내 궁극의 작품을 궁극의 비평가, 작은따옴표를 양 끝에 붙여서 '비평가'라고도 부르는 그 인간한테 선보이면, 그 결과로 엄청나게 흥분해서 영원히 은퇴하고는 다시 내가 계속 밀고 나가는 영리하면서 기발한 농담이자 작은따옴표도 붙여놓는 칭호인 '아무도 아닌 자'로 되돌아가겠지.”

“…뭐?”

“적어도 1막은 끝났다는 거야. 지금 약간 즉흥적으로 행동하고 있는거라 말이야.”

“있지, 네가 여기 와서 알약을 삼킬 때마다, 그 빌어먹을 알약 안에 뭐가 들었는지가 궁금해져.”

“꿈과 예술이 들었다고, 캐롤. 꿈과 예술 말이야. 작별의 의미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세 잔 더 줘.”

캐롤은 커피 머신을 향해 돌아서고는 잠깐 뒤 루이즈에게 그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음료 세 잔을 주었다. 루이즈는 가게에서 나와 갤러리에 도착할 즈음에 세 잔을 모두 마셨다. 그는 접수 담당자 옆을 지나가고 저지선을 지나쳐 빛이 거의 없는 방으로 들어갔다. 배달원은 큼지막한 갈색 상자를 작업장 한가운데에 두었고, 그와 동시에 한 줄기의 빛이 비쳐 꼭 천국에서 온 선물같이 보였다. 루이즈는 노란색 원형 톱을 집어 들어 겉 포장을 뜯은 뒤, 상자를 열고는 바닥에 떨구었다. 루이즈는 그 안에 자신이 찾던 가장 중요한 물건이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전기의자였다.

그냥 전기의자가 아니라, 바로 전기의자였다. 1891년 싱싱 교도소에서 네 명의 죄수를 사형시키는 데에 처음 사용되었던 전기의자로, 진정한 감옥 안의 감옥이자 죽음의 집이라 불리던 특수한 방에 있던 의자였다. 만약 루이즈가 전기의자를 사용하게 된다면, 이게 아니고서는 안될 일이었다. 루이즈는 나무 부분을 손으로 어루만진 뒤, 한 바퀴 둘러보고는, 많은 사람이 차가운 죽음의 받아들이던 그 자리에 앉았다.

루이즈는 여자애처럼 꺅꺅거리기 시작했다.


'연출자'는 바빴다.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언제나 적어도 세 개의 연극과 한두 편의 영화, 셀 수 없이 많은 부가 프로젝트의 제작을 조직하고 있었다. 그중 일부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본인도 젊었을 적에는 배우 일을 하였다. 발목 인대가 손상되어 무대에서 내려올 때까지는. 그녀는 대신 연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게 거들먹거리며 굴어도 되었고, 질책당하는 것이 아니라 질책하는 것이 일의 일부가 되었다. 그녀는 지금 주연 배우이자 트린쿨로의 왕, 곤잘로 역을 맡은 배우와 그의 부당한 무대 공포증을 가지고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봐요, 팀. 오늘이 초연이에요. 이미 엄청나게 연습했고, 대사도 다 알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이렇게 숨어버릴 작정이었다면 이 역할을 맡기지 않았을 거예요. 이제 이 물 한 병 비우고, 뺨도 몇 번 때린 다음에 혼자 힘으로 빌어먹을 무대 위에 10분 안에 올라오라고요. 알겠어요?”

“알겠어요, 대장. 알겠다고요. 어우. 좋아요. 알겠어요.”

어느 쪽이냐 하면, '연출자'는 자기 사람들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보좌관이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저, 겁주려는 의도는 아니지만…관객들이 왔어요. 극장이 가득 찼다니까요. 어서 가야 해요.”

“좋아요, 좋아. 마리Mary가 확실히 분장을 끝내도록 하세요. 손꼽아 기다려온 시간이니까요, 여러분!”

“알겠습니다.”

'연출자'는 손뼉을 치며, 화려하게 빛나는 대도구 옆으로 활기차게 걸어나갔다. 모퉁이를 돌자, 느닷없이 루이즈 뒤샹과 마주쳤다.

“안녕, 연출자. 이 엄청난 개막 공연 보러 왔어.”

'연출자'는 대꾸하는 데에 시간을 들이지도 않은 채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어서는 그 즉시 루이즈에게 찔러넣었다. 루이즈는 칼을 잡아 그녀의 손아귀에서 비틀어 빼내었다. 그 와중에 손가락이 깔끔하게 베였다. 루이즈는 뒤로 잽싸게 물러나서는 다른 손으로 상처를 눌렀다.

“지금 그거 무진장 무례한 짓이었어. 그냥 인사나 하러 온 거라고.”

“꺼져, 뒤샹. 이건 내 공연이야.”

“네 공연이라고? 네가 쓴 것 같지는 않은데.”

“꺼져, 뒤샹.”

“사라졌다가 재발견된 고전. ‘목매달린 왕의 비극’이라.”

꺼지라고, 뒤샹.

“이게 뭘 할건지는 알고 있는 거지?”

'연출자'는 움찔거렸다.

“뭐?”

“너…너 이게 뭘 할건지 모르는 거야?”

“뭐가 뭘 한다는 거야?”

“연극! 이 연극 말이야! 모르겠어?”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꺼져.”

“샌드라, 제발 내 말 좀 들어. 이 연극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이건-”

꺼지라고!

루이즈는 서서 옛 학우를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최대로 창백한 화장이 되어있었고, 보라색 립스틱에 맞추어 보라색 아이섀도가 그려져 있었다. 나이 많은 여성처럼 화장하고, 옷을 입고, 절름거리며, 완고함을 갖고 있었다. 정말로 기발하고 번뜩이는 정신을 가졌지만, 슬프게도 평생 다른 이들의 무대를 연출하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다. 루이즈는 그녀의 눈을 통해 어떤 말로도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가서 내가 경고하지 않았다고는 하지 마. 나가라고 하니, 나가줄게.”

그는 피 묻은 칼을 발로 차 그녀 쪽으로 보냈다.

“적어도 그건 잘 갖고 있어. 곧 필요하게 될 테니까.”

루이즈는 돌아서서는 뒷문을 통해 나갔다. 빛이 희미해지자 그 위의 초록색으로 빛나는 출구 표시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다. '연출자'는 머릿속의 의심을 털어내며 뒤로 돌아섰다. 올려야 할 공연이 있었다.

“움직이세요! 5시에 시작합니다! 다들 힘내세요!”


'연출자'는 피곤했다. 그녀는 감방에서 천천히 의식을 되찾았다. 양팔과 다리가 묶이고 돌로 된 벽에 괴어 세워진 상태였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일어날 시간일세, 귀염둥이. 일어나야지.”

모래 갈리는 듯한 쉰 목소리가 나무문을 너머에서 들려왔다. 잠깐 열쇠끼리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열리며 그린 요원이 나무 의자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는 '연출자' 앞으로 걸어오더니, 의자를 내려놓고는 쿵 소리를 내며 앉았다.

“다시 보는군, 폴슨 양?”

'연출자'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우린 처음부터 관계가 꼬인 모양이군. 뭐, 지난번에 얼굴을 마주했을 때는 자네가 내 눈에다가 막대기를 쑤셔 넣으려고 했으니 어떻게든 관계가 꼬인 것이겠지만.”

'연출자'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샌드라 폴슨Sandra Paulson. 어젯밤 ‘목매달린 왕의 비극’의 상연을 조직한 것이 그쪽인가?”

'연출자'는 움찔했다. 루이즈가 옳았다.

“변호사 불러.”

“아, 그러지. 그러고 말고. 여기 전화기가 있고, 누를 버튼도 몇 개 있군. 이제 망할 회선 몇 개만 거치면 즉시 여기서 나갈 수 있겠지. 아니, 폴슨 양. 여기서는 변호사고 뭐고 없네. 내가 어디서 일하는지,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알고 있겠지. 폴슨 양, 내가 자네한테서 원하는 유일한 것은, 그쪽이 평생 이 감방에서 썩는 거야.”

'연출자'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좋아. 자, 폴슨 양. 이제 질문 몇 개-”

“난 몰랐어.”

“뭐라 했나, 폴슨 양?”

난 좆도 몰랐어! 그 망할 대본 말이야. 누가 보낸 건지도 몰라. 확인도 안 해봤어. 그냥 '썅, 이거 쩌는데!'라고만 생각했단 말이야. 제대로 된 클래식한 작품인데다가, 이제 막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Titus Andronicus를 끝낸 참인지라 '알게 뭐람' 이랬지! 구글링해보니까 괜찮아 보였단 말이야. 올려도 되겠다 싶었지! 좆도 몰랐다고!

그린 요원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실실 쪼개는 루이즈 새끼. 그 새끼가 한 게 분명해. 나한테 그 대본을 보내고는 날 엿먹인게 분명하다고! 그 개쌍놈의 좆같은 씨발 호로새끼! 씨발!

그린 요원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씨발…씨발. 그 사람들. 팀에게는 무대 공포증이 있었어. 그래서 내가 꼬드겼는데. 내가…내가….”

검은 마스카라가 눈물을 타고 샌드라의 얼굴에 번졌다. 그린 요원은 담배를 한 대 꺼내고는 불을 붙이고, 깊게 들이마셨다.

“폴슨 양, 솔직히 말해서 자네가 지금 뱉은 말들이 전혀 믿기지 않는 데다가, 믿는다고 해도 도움이 될만한 정보는 주지 않았네. 그렇지만, 내가 이전에 들어본 이름을 얘기하더군. 폴슨 양, 이제 질문을 딱 하나 할 거야. 그 질문에 대해 아는 것은 뭐든지, 별로 상관없는 세부사항 하나하나까지 전부 말해주길 바라네. 그러고 나면 내 동료들에게 넘기도록 하지.”

그린은 '연출자'의 우는 얼굴에다가 연기를 한가득 내뱉었다.

“폴슨 양, 루이즈 뒤샹에 대해 말해보게나.”

그러나 내겐 이게 가장 더러운 흙먼지 덩어리로만 보이니 대체 어찌것인가? 인간 자체가즐겁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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