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헤리슨은 낡아 빠진 도시 속 한 아파트 방에 앉아있었다. 그녀가 앉은 의자와 그 앞에 있는 책상만이 방 안에 있는 유일한 가구였다. 그녀의 맞은편에는 검은색 시트로 가려진 4개의 물건들이 있었다. 헤리슨은 자신의 갈색 머리를 빗은 뒤 자신의 손에 몸을 기대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윽고 헤리슨은 자신의 시계를 확인해봤다. 헤리슨의 시계와 그녀가 입은 옷은 그녀가 무언가를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에 익숙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헤리슨이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그녀를 15분이나 기다리게끔 만들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한 사내가 아파트에 들어서면서 헤리슨 뒤에 있던 문을 살며시 열었다. 사내는 대머리에다가 얼굴이 창백한 기색이었다. 사내가 문을 닫자 그가 쓰고 있던 안경이 그의 코에서 미끄러 내려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헤리슨 씨." 사내가 책상 맞은편을 가로질러 가면서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 끔찍한 숙박 시설도 포함해서 말이죠. 고용주 사업 특성 때문에, 이분들 시선을 피해야 하거든요."

사내는 손을 뻗어 악수를 건넸다. 헤리슨은 몇 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사내와 악수를 나누었다. 사내의 손은 기분 나쁠 정도로 축축하고 차가웠기에, 헤리슨은 후회감이 들었다.

"저는 미스터 세이커라고 합니다." 사내가 작은 미소를 띄면서 말했다. "이제 자문회의를 시작해볼까요?"

"혼란스럽네요." 헤리슨이 대답했다. "전 오늘 앤더슨을 만날 줄 알았는데요."

"죄송하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헤리슨 씨." 세이커가 고개를 저었다. "저희 경쟁사들 중 몇몇은 비리를 저지르고 댕겨서, 앤더슨 씨께서 신경을 쓰지 않으실 수가 없거든요. 죄송하지만 오늘은 저뿐입니다."

"사정이 그렇다면야, 저는…" 헤리슨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고개를 돌려 시트로 가려진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세이커가 그녀의 반응을 알아차리면서 말했다. "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저희와 연락한 것을 보면 헤리슨 씨는 신뢰할 만하고 저희가 가지고 있는 드로이드 중 하나를 구입할 돈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이군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제품을 원하십니까, 헤리슨 씨?"

"제 관심을 사로잡을 뭔가를 가지고 계신다면, 지금 저한테 보여주세요. 그러면 용건을 말해주도록 하죠."

"좋습니다." 세이커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그러고 나서 세이커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은 뒤 3개의 작은 고무 공을 책상 위에 놓았다. 3개의 공들 중앙에는 빨간 점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공들은 재빨리 방향을 틀었고, 빨간 점들이 헤리슨을 쳐다보았다.

"이 콩알만한 녀석들은 아무르 시리즈 무인정찰기입니다. 일종의 스파이 로봇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세이커가 손으로 틱 소리를 내자, 공들이 회전을 하면서 세이커를 바라보았다. "아무르 시리즈, 데모 버전!"

공들은 책상을 데굴데굴 굴러갔다. 때론 공들이 제자리에 멈춰서 바늘처럼 뾰족한 다리를 꺼내 책상을 기어다닌 뒤 다시 다리를 몸 속에 집어넣어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이 친구들은 48시간 동안 영상 녹화 및 음성 녹음을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주어진 환경에 따라 색깔을 바꿔 위장도 할 수 있고, 자신의 표면 크기를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약물 주사를 위한 작은 바늘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헤리슨 님의 선택에 따라 더욱 치명적인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도 있죠. 이 친구들은 한 개씩 사거나 세 개짜리 세트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들은 오직 헤리슨 씨의 명령만을 따를 수 있습니다. 이는 저희가 생산한 모든 제품들한테서 나타나는 특징이지요."

헤리슨은 공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온 뒤 그녀의 손을 기어올라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조심스럽게 미니어쳐 드론을 집어들어 책상 위에 다시 올려다 놓았다.

"정말 멋지네요. 그렇지만 이건 제가 찾고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세이커는 고개를 끄덕인 뒤 그의 앞에 있던 로봇들을 끌어다 모았다. 그러고 나서 세이커는 시트로 가려진 두 물건 사이에 다가간 뒤 두 물건을 가리고 있던 시트를 가볍게 잡아당겼다.

세이커의 왼쪽에 있는 물건은 60센티미터 크기에 뚜껑이 달린 커다란 검은색 꽃병을 닮아 있었다. 꽃병의 다리에서 굵고 거미 다리처럼 생긴 4개의 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꽃병은 다리를 곤두세우면서 크기를 1미터 정도 늘렸다. 가느다란 붉은 선이 꽃병의 중앙 부분에 드러나면서 희미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꽃병의 양쪽 금속판이 열리면서 4개의 총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이커의 오른쪽에 있는 물건은 약 3분의 2미터정도 되는 길이에 날개폭이 3분의 1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제트기를 닮아 있었다. 헤리슨은 각각의 날개 중앙에 달려 있는 회전식 날개들이 마치 헬리콥터같아 보였다. 드로이드가 허공을 맴돌기 시작하자 회전식 날개들이 조용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작은 카메라 하나가 드로이드의 하부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허공을 맴돌면서 카메라 초점이 헤리슨을 향해 맞춰졌다.

"그러면 헤리슨 씨는 치안 담당 로봇에 관심이 있으시군요." 세이커가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두 개의 드로이드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제 왼쪽에 있는 로봇은 아폴로마도 시리즈 시설방어 유닛입니다. 이 로봇은 다양한 무기들을 장비할 수 있고, 열화상 처리 능력이 있으며, 두꺼운 방탄갑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오른쪽에 있는 로봇은 메를린 시리즈 공중무인기입니다. 이 녀석도 마찬가지로 열화상 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무기를 장비할 수 있으며, 최대 96시간 분량의 영상 녹화 기능이 갖춰져 있습니다. 게다가 이 친구는 비행하는 동안 소음을 발생시키지 않고 투명상태를 유지하기에 대부분의 영상 녹화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두 로봇은 포괄적인 보안 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도 있고, 다른 시리즈의 로봇들과 동행할 수도 있습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 두 녀석도 헤리슨 씨의 명령만 따를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습니다."

"얘들은… 뭐랄까, 제가 생각했던 것하고는 완전 차원이 다른데요. 이 로봇들이 갖춘 화력은 별로 필요하지 않아요…" 헤리슨이 킥킥거렸다. 세이커는 짧게 웃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커가 오른쪽에 있는 시트가 씌여진 두 개의 물건들을 향해 다가가자, 두 드로이드는 제자리에서 가만히 대기하였다.

"저는 가끔씩 모든 고객들이 높은 수준의 사생활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까먹기도 합니다." 세이커가 시트를 벗겨내면서 말했다. "아마도 가정용 로봇을 더 선호하겠죠?"

시트를 걷어낸 자리에는 아주 작은 가죽 받침대를 닮은 작은 큐브 하나가 있었다. 아폴로마도 시리즈 로봇처럼, 큐브의 하부 쪽에서 거미 다리처럼 생긴 4개의 다리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 크기가 족히 1미터는 넘는 것으로 보였다. 큐브의 앞쪽에 붙어 있는 커다란 파란색 구멍은 마치 눈을 연상케 했다. 허리에서는 4개의 가느다란 팔이 나타났고, 각각의 팔에는 집게발이 달려 있었다. 큐브가 헤리슨을 향해 팔을 뻗어 악수를 건넸다. 헤리슨은 피식 웃으면서 큐브와 악수를 나눴다.

"이 로봇은 케스트럴 시리즈 가정용 유틸리티 유닛이에요." 세이커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평소에는 4개의 팔을 가지고 있지만, 추가 경비에 따라 더 많은 팔들을 갖출 수 있습니다. 이 4개의 팔들은 최대 4미터까지 뻗을 수 있고,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어서 드로이드가 뭘 하고 있는지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나머지 팔들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로봇도 다양한 가정용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프로그램하실 수 있습니다."

"얘는 꽤나 괜찮아 보이는데요." 헤리슨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그밖에 다른 제품은 없나요?" 세이커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휴머노이드같은 거요?" 세이커가 물었다.

"그게 더 나을 것 같네요." 헤리슨이 답했다. 세이커가 마지막 시트에 다다르자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어냈다.

"운이 좋으시군요, 헤리슨 씨. 제가 마지막으로 준비해 놓은 것이 있죠. 소개하겠습니다, 저희 회사 최고 인기 제품인 페리그린 시리즈 인간형 유틸리티 드로이드입니다!" 세이커는 열정적으로 마지막 시트를 벗겨냈다. 시트를 벗겨내자 충돌 실험용 인형같이 생긴 로봇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로봇의 몸은 튼튼한 검은색 직물로 덮여져 있었다. 두 개의 흰색 플라스틱 디스크가 헤리슨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고, 드로이드는 왼쪽 팔을 흔들고 있었다. 붉은색의 일련번호 045가 드로이드의 팔에 뚜렷이 꿰메져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헤리슨 씨." 드로이드가 컴퓨터 음성으로 대답했다.

"PSHUD 로봇들은 저희 회사의 특수 아라미드 외장 및 자가 수리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표준 기능은 최대 3개 언어에 대한 완벽한 이해력이지만, 추가 비용을 지불하시면 더 많은 언어들을 별도로 프로그램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PSHUD 유닛들은 고도의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사전 프로그래밍된 자아 7개 중 하나가 갖춰져 있습니다. 이러한 자아들은 당신의 유닛 사용 방식에 따라 진화하고 적응할 수 있으며, 다른 로봇하고 비교도 할 수 없는, 주종을 넘어선 친구 비슷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세이커는 드로이드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움직임이 그쳤다. 헤리슨은 방을 가로질러 드로이드 옆에 꿇어 앉은 뒤
드로이드의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이윽고 헤리슨은 세이커를 올려다 본 뒤 계속해 보라고 손짓했다.

"무엇보다도, 저희는 전투용 혹은 가정용 업무를 각각의 로봇들에게 인식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모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저희가 생산한 모델들 중 가장 유연한 모델이기도 하지요. 원하신다면, 부득이한 일이 생겼을 경우 PSHUD한테 사용 권한을 넘겨줘서 다른 시리즈의 로봇들한테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메를린과 아폴로마도, 그리고 아무르 시리즈 로봇들을 지휘할 수도 있고, 케스트럴 시리즈 유닛을 감독할 수 있습니다." 세이커는 드로이드의 뒤통수를 긁어댔다. "사실, 이 친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로봇이기도 합니다."

헤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시리즈의 로봇들을 보고 난 뒤 다시 PSHUD한테로 돌아갔다.

"오늘 매상 하나 올리실지도 모르겠네요, 세이커 씨."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오늘 구입한 물건을 저희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지, 아니면 새 드로이드를 수령하기 위해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지 알고 싶네요. 괜찮으시다면 오늘 이 로봇들을 가져가도 될까요?"

"죄송하지만 그럴 순 없습니다." 세이커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로봇들은 아직 데모 버전입니다. 무기도, 모듈도, 자아도 별로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가 오직 저희가 만든 기본 프로그램만이 갖춰져 있습니다. 헤리슨 씨는 저희가 추후에 몇 가지 특성을 추가시킬 겉모습만 보고 있는 겁니다."

"훌륭하군요." 헤리슨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리고 있네요." 이윽고 그녀는 훈련받은 대로 자신의 재킷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낸 뒤 손가락을 방아쇠 쪽에 올려 세이커를 향해 총을 겨눴다. 그러고 나서 헤리슨은 자신의 몸에 숨겨진 마이크를 통해 말했다. "이상 없음. 수사 팀 진입 바람!"

세이커는 재미없다는 듯이 권총을 내려다 보았다.

"헤리슨 씨, 저를 속이셨군요." 세이커가 고개를 저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당신이었다면 손을 머리 뒤로 젖히고 바닥에 엎드리는 것부터 걱정했을 걸요." 헤리슨이 뒤로 물러섰다. 세이커는 그녀의 말을 거절했다.

"누구 밑에서 일하고 있는 겁니까? 세계 오컬트 연합의 성격상 이 건물을 아직 날리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프로메테우스 밑에서 일하고 있는 그 도둑놈들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일을 일으킬 놈들이 아닌 데다가, MC&D라면 아마 거래부터 먼저 맺었을 것이니, 당신은 재단 밑에서 일하고 있는…"

"엎드려!" 헤리슨이 말을 끊었다. 세이커는 그녀의 말을 따르면서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재단이 언제 이런 일을 벌일지 궁금했습니다. 이 자리를 마련한 것과 아무것도 안 걸리고 이렇게까지 진행한 것을 축하합니다. 솔직히, 당신들이 #31을 우습게 여기는 것을 보면, 앤더슨 씨는 이 일이 훨씬 더 일찍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조용히 해." 헤리슨이 소리쳤다. 세이커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해야만 해서 죄송합니다. 모든 유닛들은 재단 프로토콜을 활성화해라."

이윽고 방 안은 끔찍한 굉음으로 가득 찾고, 헤리슨은 고통 속에서 귀를 막고 있었다. 헤리슨이 굉음의 주인을 알아보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자, 헤리슨은 로봇들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고 겁을 먹었다. 아무르 시리즈 로봇은 납작해지고 녹아 내리면서 작은 무더기가 되어 책상 위에 놓여졌다. 아폴로마도 시리즈 로봇은 뒤집혀지고 외부 균열이 일어나면서 내부 장치가 녹슬어있는 모습을 드러내면서 수천 조각으로 나눠졌다. 메를린 시리즈 로봇은 바닥에 나뒹굴면서 자욱한 먼지가 되었다. 페리그린 시리즈 로봇은 피부가 오그라들고 하부 쪽에 있는 플라스틱 외장이 검정색 직물을 통해 부풀어 올랐다. 로봇들은 방 안이 조용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굉음을 냈다. 방 안이 조용해지자, 세이커의 웃음소리만이 남아있었다.

헤리슨은 세이커 쪽으로 돌아서면서 "허억!"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이커의 피부는 흰색 거품처럼 녹아내렸고, 흰색 거품이 피와 뒤섞이면서 분홍색으로 변했다. 피부 밑에는 검정색 직물이 없는 상태의 PSHUD 플라스틱 골격이 있었다. 머지않아 골격도 녹아버리고 말았다. 웃음소리가 그치자 방 안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헤리슨은 주위에 있는 검은색 물웅덩이를 살펴보았다. 나머지 수사 팀이 불쑥 방 안으로 진입하였지만, 모두 소용없는 짓이었다. 앤더슨이 다시 한 번 우위를 차지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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