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과 돈에 친한 사람들 2편
평가: +4+x





주먹과 돈에 친한 사람들

2. 주먹도 돈을 받을 때는 손을 편다.

이화천을 따라가 수십 개의 철제 서랍이 놓여있는 방에 도착했다. 그 방에 도착한 사람은 나와 이화천 뿐이었던 걸로 보아 회수팀은 나 혼자인 듯했다. 이화천은 한 철제 서랍을 열고 문서 하나를 뽑고서 물었다.

"이름이 한성도, 맞나?"

"아, 네. 맞습니다."

이화천은 내 대답을 듣고서 문서의 페이지를 넘기고 어떤 표정 변화도 없이 문서를 읽어내렸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불안함도 여유로움도 느껴지지 않는 이화천의 태도가 나를 더욱 긴장하게 했다. 이화천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서류를 철제 서랍 위에 던져놓았다. 서류는 서랍과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상부에서 어련히 잘 배정해서 그런지 회수팀을 하는 데 큰 문제가 되는 사항은 없군."

이화천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이화천의 얼굴은 다른 삼대천 직원과 다르게 유난히 흉터 없이 말끔했다.

"방금 기초 오리엔테이션 때 나누어준 서류는 갖고 있나?"

나는 이화천의 말을 듣고 주머니에 꽂아둔 탈출노예 인적사항 서류를 꺼내 이화천에게 보여줬다. 이화천은 내가 꺼낸 서류를 가져가 훑어보며 말했다.

"그래, 잘 가져왔군."

이화천은 말을 마치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그 서류를 태우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서류를 뺏으려고 했지만 이화천의 분위기에 압도당해 움찔거리는 수준에 그쳤다. 이화천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피식 웃고 입을 열었다.

"내가 무서운가 보지?"

나는 이화천의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고 말을 했다.

"아뇨. 상사의 생각을 따를 뿐입니다."

나 같은 대답은 처음 들어봤다는 듯이 이화천은 웃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금세 표정은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이화천은 말했다.

"사익이 아니라 이상한 충성심을 부리는 놈은 처음이군."

이화천이 들고 있던 서류가 모두 타버리자 이화천은 손을 털고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방금 내가 한 행동이 너에게 이상하게 보였더라도 그 서류는 너에게 필요 없었다. 회수팀은 지정된 탈출노예를 잡아 오는 것이 일이고 이 일은 굉장히 오래 걸리고 지쳐서 눈 돌릴 만한 일거리는 오히려 방해되기 때문이지. 회수 한 건당 최대 기한은 일주일, 그보다 빠르게 잡거나 기한을 놓치면 다음 회수 업무를 수행한다. 물론 놓치면 급여는 지급되지 않는다."

이화천은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기본적으로 정보요원 한 명과 현장요원 한 명으로 한 팀이 되어 활동한다. 너는 현장요원으로 탈출노예를 제압해 이곳으로 데려오는 것이 임무다. 마침 정보요원이 도착했을 시간이니 로비로 나가서 검붉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여해류라는 사람에게 가라. 그 사람이 이번 임무를 안내해줄 거다."

나는 짧게 대답을 하고 방을 나왔다. 나는 로비로 걸음을 옮겼지만 삼대천의 그림자라는 말에 걸맞게 삼대천 스포츠 건물은 모두 로비에 멀리 떨어져 건축되어 있어 꽤 오랜 시간 동안 걸어야 로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로비에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화천이 말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몇 초간 주변을 서성이니 갑자기 옷깃이 뒤로 잡아당겨졌고, 나는 갑작스러운 일에 반응하지 못 하고 뒤로 넘어졌다.

"네가 새로 들어온 회수팀 신입이구나."

검붉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쓴 한 여성이 넘어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여해류야. 잘 부탁해."

여해류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손을 잡자 여해류는 나를 쉽게 일으켜 세웠고 주차장으로 나를 안내했다. 이동하면서 여해류는 임무를 설명했다.

"오늘은 크게 별거 없어. 간단히 휴가 중이었던 격투노예 한 명을 데려올 거라 전체적으로 회수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만 알면 돼. 아, 물론 휴가라고 해도 행정 처리상 탈출로 집계했으니까 급여는 지급될 거라 걱정-"

나는 그 말을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리고 여해류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노예를 잡아 오는 것도 아닌데 급여를 왜 줍니까?"

여해류는 자신도 잘 모른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행정상 그러니까 어쩔 수 없잖아? 사장실에 가서 '나 사실 노예 택시 운전이나 했습죠.'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뭐, 정 그렇다면,"

여해류는 말을 잠시 멈추고 뜸을 들였다. 그리고 여해류는 약간의 기대를 포함하는 듯한 미소와 함께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정 그렇다면 그 격투노예랑 싸움 붙여줄 수는 있어. 한번 해볼래?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야."

여해류는 내가 수락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나는 여해류의 제안을 승낙했다.

"당연히 싸워야죠. 돈이 달린 일인데."

여해류는 만족하는 미소를 짓고 앞으로 돌아 걷기 시작했다. 몇 초 걸어간 후에 여해류는 약간의 조소인지 기대감인지 모를 웃음이 섞인 말을 했다.

"특이한 신입이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침묵을 지킨 채 걷기 시작했다. 여해류와 걸은 지 몇 분이 지나자 꽤 넓직한 주차장이 나왔고, 여해류는 나를 차고가 낮은 하얀색 차로 안내했다. 여해류는 운전석에 탑승해 능숙하게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해 주차장에서 나왔다. 약간의 정적 후에 여해류가 나에게 다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사장님 첫인상은 어때?"

"사장님이요?"

"이화천 씨 말이야. 격투 대회를 운영하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삼대천 스포츠 사장님이거든."

난 여해류의 말을 듣고 이화천의 모습을 떠올렸다. 주변에서 계속 들리는 이화천이 잔인하다는 소문, 오리엔테이션 때 격투노예의 손톱을 뽑던 모습, 회수팀 설명 때 보여줬던 태도까지 모두 떠올려 이화천의 첫인상을 종합해보았다.

"소문처럼 제정신 아닌 사람이던데요."

여해류는 내 말을 듣고 소리 나게 웃었다. 그리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천천히 꺾으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 외부적으로는 그렇게 행동하곤 하지."

여해류는 무언가 비장한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잠시 뜸을 들이고 침을 삼킨 후에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내부적으로도 그렇게 행동하고."

"네?"

여해류는 작게 미소를 보이며 웃었다. 자동차가 정지 신호에 걸리자 여해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미치기만 한 사람은 아닐 거야. 그런 말 있잖아. 남한테는 잔인하지만 자기 사람한테는 친절하다는 말. 화천 씨도 그런 사람일 수 있지."

"뭐, 그래요. 그럴 수도 있죠."

나는 여해류의 말이 미심쩍었지만, 딱히 반박하고 싶지 않아 어중간한 대답을 했다. 이야기를 나눈 지 몇 분이 지나자 여해류는 근처 한 아파트에 차를 세웠다.

"자, 이제 내려. 여기가 목표지야."

나는 여해류를 따라 아파트에 들어섰고 엘리베이터에 타자 여해류는 5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묵직한 구동음을 내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5층에 도작하자 여해류는 주변을 살피면서 내렸고 나도 여해류는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아무 일 없이 왔네."

나는 처음에는 여해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해류가 손잡이로 열쇠를 잡은 손을 뻗자 드러난 손목의 무수한 상처로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미행이 붙나 보죠?"

"조금, 자주 붙는 편이지. 삼대천에 원한이 있거나 탈출 노예를 중간에 가로채려고 하는 사람이 꽤 많거든."

여해류는 말을 마치고 열쇠를 넣어 문 손잡이를 돌리려던 때, 그 특유의 모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열어볼래?"

여해류는 말을 하면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나는 의심과 호기심이 섞인 마음을 가지고 대답했다.

"네. 그러죠, 뭐."

내가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열자 갑자기 내 얼굴만 한 주먹이 내 눈앞으로 날라왔다. 나는 가까스로 팔을 올려 치명상은 면했지만 그 손이 가드를 뚫고 나를 벽까지 날려 보냈다. 여해류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듯이 비상계단 쪽에 피해서 나에게 미소만 보내고 있었다.

"신념만큼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길 바랄게."

여해류가 말했다. 나는 여해류의 말을 들은 후 나를 공격한 사람을 바라봤다. 2m를 족히 넘어 보이는 거구에 신체에 전체적으로 인간임을 거부하는 듯한 근육이 분포해있었다. 하지만 그 거구의 사내가 여해류를 보며 놀라며 말했다.

"그, 어-"

그 사내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허리를 깍듯이 꺾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 보는 분이셔서 삼대천에서 온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여해류가 손을 내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니야, 괜찮아. 걔가 너랑 한번 싸워보고 싶대서 일부러 그런 거야."

그 사내가 나를 바라보고 여해류에게 질문을 했다.

"이분도 이화천 씨 같은 분이십니까?"

"평범한 사람이야."

여해류는 약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붙였다.

"아직은 그럴 걸?"

"그럼 조심해야겠네요."

나는 사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힘의 격차가 분명한데 조심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 안 그러면 신입이-"

여해류의 말이 다 들리기도 전에 사내는 빠르게 나에게 다가와 내 오른쪽 옆구리를 공격하려는 듯이 팔을 휘둘렀고, 나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해 몸을 웅크리고 오른팔을 최대한 밀착해 공격을 막았다. 확실히 사내의 손은 내 왼팔에 부딪혔지만, 충격은 고스란히 내 몸에 전해졌고 나는 충격을 버티지 못 하고 의식을 잃었다.

의식을 차린 곳은 이화천과 면담을 했던 방이었다.

"첫 임무가 그렇게도 어려웠나?"

이화천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히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만 하고 오면 되는데, 그걸 못 하고 싸움을 왜 걸었지?"

이화천은 화를 낸다기보다 경멸의 어조로 말하는 듯했다.

"상사의 말을 듣지도 않고, 네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충성이 아니라 흔한 고집 따위였나?"

나는 입을 굳게 닫고 말을 하지 않았다. 이화천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노예가 돌아오긴 했으니 급여는 지급하겠다."

이화천이 돈이 든 봉투를 나에게 건네며 인상을 썼다.

"다음부터는, 여해류의 제안은 승낙하지 마라. 능구렁이 같은 놈이라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으니까. 아무리 달콤한 제안이더라도 승낙하는 순간 이용당하는 거다."

나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며 답했다.

"제가 원한 겁니다."

그리고 나는 이화천이 건네는 돈을 손등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제 선택은 제가 책임지는 게 맞습니다."

나는 계속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감싸며 천천히 문으로 향했다. 문 앞에 도착하자 뒤에서 경멸인지 놀라움인지 모를 헛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고 방을 빠져나왔다. 나는 마음속으로 결코 펴지지 않을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