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돌아다녔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화장실 문을 잠가두었다. 대체 이 사람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애초에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은 아는 걸까? 나처럼 화장실이 급한 사람이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으니 화장실 문 정도는 항상 열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화장실을 열어두면 노숙자들이 지들 욕실인 마냥 쓰거나 몰상식한 놈들이 흡연실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열려있는 화장실을 찾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런 못된 녀석들이 아니라 나처럼 갑작스레 길거리에서 배가 아픈 상식 있고 선량한 사람들이다. 젠장, 잠가둔 놈들은 길거리에서 똥이나 지리라지.
1시간 같던 10분 동안 거리를 헤매던 중 공원을 발견했다. 공원이라 하면 주변 사람들이 찾아와 여가를 즐기는 대표적인 공공장소 중 하나다. 공공장소에는 당연히 공공화장실이 있고, 공공화장실이란 바로 개방된 화장실을 의미한다. 서둘러서, 하지만 엉덩이에 힘이 풀리지는 않게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상록공원’이라는 이름의 이 공원은 보기보다 넓었다. 나무도 제법 빽빽해서 그냥 둘러보기만 하는 것으로는 어디에 뭐가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순간 불안해져서 아랫배가 쿡쿡 쑤셔왔지만, 다행히 입구 근처에 안내판이 있었다. 힘들지만 차분하게 읽어보니 내가 있는 현재 위치에서 안쪽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화장실이 있다고 나와 있었다.
마침내 화장실 앞에 도착했다. 낡은데다가 청소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여기까지도 구린내가 풍겨오는 것 같았지만, 지금만큼은 그 어떤 성보다도 아름답고 웅장해보였다. 안심이 되어서 긴장이 풀렸는지 힘이 빠지려는 엉덩이를 쥐어 잡고 화장실 안에 들어가려던 순간 한 소년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냉큼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저기 꼬마야.” 내가 말했다. “아저씨가 지금 화장실이 급해서 그런데 좀 비켜주지 않으련?”
“지금은 들어가시면 안 돼요.” 소년이 말했다. “문제가 좀 있거든요.”
“왜, 변기가 막히기라도 했어? 아저씬 그런 거 상관없단다. 나중에 청소부가 다 치워줄 거야.”
“그게 아니라 화장실이 잠겨서 그래요.”
“잠겼다고?”
“네, 잠겼어요. 그래서 지금은 들어가실 수가 없어요.”
“꼬마야, 너 방금 화장실에서 나왔지?”
“그랬죠.”
“그럼 열려있는 거잖아.”
“열려있죠.”
“그런데 왜 잠겨있다고 했니?”
“사실은 그거 말고 다른 문제가 있어요.”
“꼬마야, 아저씨도 농담 따먹기 엄청 좋아하는데 지금은 화장실이 급하니 나중에 하자. 원한다면 화장실 안에서 해도 된단다. 아저씨가 똥 싸면서 상대해 줄게. 그러니 어서 비키렴.”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진짜 문제가 있어요.”
“하, 뭔데?”
“냄새가 심해요.”
“그게 다냐?”
“숨도 못 쉴 만큼은 아니긴 한데, 사실은 다른 문제가 —”
“뭐? 무슨 문제? 벌레가 많아? 휴지가 없어? 불이 안 들어와? 꼬마야, 아저씬 지금 배 아파 죽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부탁인데, 제발 꺼져.”
“여긴 여자화장실이에요.”
“꺼지라고.”
“알겠어요, 알겠어. 고집 엄청 센 아저씨네. 좋아요,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화장실 안에 귀신이 있어서 그래요. 위험하니까 들어가시지 못하게 계속 막고 있는 거예요.”
“귀신?”
“네, 귀신이요. 사람 엉덩이를 잡아먹는 화장실 귀신. 이제 아시겠어요?”
“하아, 그래.”
나는 소년의 머리를 힘껏 걷어찼다. 내 발에 맞고 날아간 소년은 공원 땅바닥에 떨어지고는 잠시 꿈틀거리더니 곧 축 늘어졌다. 분명 코가 깨져서 피가 줄줄 나겠지만 미안한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다 자업자득이다. 자업자득이지. 젠장, 다리를 크게 움직였더니 조금 새어나왔다. 서둘러 화장실 안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화장실은 열려있고, 냄새도 별로 없는 남자화장실이었다.
변기칸 문을 열자 시커멓고 거대한 형체가 보였다. 눈과 이빨이 가득했고, 근육질의 촉수가 수없이 달려있었다. 문을 닫고 곧바로 뛰쳐나가려 했지만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끈적거리는 촉수 몇 개가 내 팔다리를 붙잡고는 휴지처럼 찢어버렸다.
젠장,
괄약근에 힘이 쫙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