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서 현서는 분한 마음이 차올랐다. BE를 거쳐 UT로 옮겨와 활동을 하며, 한 변칙종이 그의 발목을 잡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소는 지금까지와 달랐다. 그런 점에서 그 소는 분명 대단한 존재였다. 그리고 분명히 끝없이 불을 내뿜는다는 것을 결코 얕볼 수 없는 힘일 것이었다. 만약 그 소가 수백년만 빨리 나타났더라도 그 소는 신적인 존재로 숭배받고 있었을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변칙종은 다른 지구 생명체들과 다르다. 그렇다면 그 소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현서는 지금껏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 소가 나타난 것에는 어떠한 계기가 있을 것이었다. 그 계기를 알 수 있다면 그 소를 죽이거나 제압할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수도 있었다. 더 나아가 그 소를 재현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현서는 소와 싸웠던 숲을 가로질러 운전하고 있었다. 그때 현서가 보았을 때와 같이, 숲은 불타고 있었다. 이미 한 차례 불이 번졌기 때문에 대치 장소에는 잔불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현서는 소에게서 나온 불길이 만들었을 패턴이 만들었을 나란한 길을 발견했다. 현서는 검게 타오른 길의 중심을 따라 소가 지나왔을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현서는 어떻게 그 소가 계속해서 직선에 가깝게 걸어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현서는 그 길의 끝에서 거대한 석회동굴을 발견했다. 흔적은 그 동굴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현서는 손전등을 들고 동굴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얕게 물이 깔린 동굴을 굽이굽이 돌아가며, 현서는 긴장감을 느꼈다. 그렇게 한 발짝 씩 내딛던 중, 현서는 빛을 보았다. 현서는 다시 손전등을 끄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현서는 탁 트인 수직 공간을 보았다. 동굴 천장의 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내려오고 있었고, 석순 사이에 돌로 쌓은 집 한 채가 있었다. 그리고 집 근처에는 여기저기에 돌로 만든 조형물들이 있었다. 현서는 조심스럽게 가파른 경사를 타고 내려왔다. 집을 중심으로 여기저기에 등불이 박혀 있었고, 집 안에서도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바닥에는 그을음이 사방팔방 흩어져 있었다. 현서는 그것이 그 소와 관련된 흔적이라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어떤 생명체가 그 소와 함께 살아온 것이었을까? 현서는 숨을 죽이고 집의 벽에 달라붙었다. 벽 너머로 누군가의 기척을 느껴졌다. 현서는 총을 뽑으며 심호흡을 했다. 이후 그는 문을 열어젖혔다.
집 안에는 누더기를 걸친 대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정체불명의 고기 수프를 먹다 나를 지켜보았다. 꾀죄죄한 모습이었지만 순한 인상을 주는 이들이었다.
"한 가지 물으러 왔습니다. 제가 식사를 방해했나요?"
그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말뜻은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싸우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현서는 부드러운 어조로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저는 이 위에서 왔습니다. 당신들은 불타는 소와 함께 살고 있었죠?"
"네…"
"그리고 그 소는 여기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죠?"
그의 말문이 터져 나왔다.
"오떻게 아신 거죠?"
"제가 바로 그 이유로 왔으니까요. 저는 여러분들의 고민을 해결해주시기 위해 여기로 온 것입니다."
"진짜로 당신은 하늘에서 오신 건가요?"
이 동굴에서는 당연하게도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동굴 천장을 하늘이라고 부른다면 현서는 하늘 위에서 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이죠. 이제 그 소가 있던 곳으로 가볼까요? 소가 있던 곳을 한번 보고 싶은데, 당신이 길을 안내해 주실 수 있습니까?"
희망적인 것은 그들이 너무도 원시적이고 또 단순해서 현서를 믿어주었다는 사실이다. 현서는 이들을 통해 포획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지금 식사 중이라 끝나고 출발할 수 있나요?"
"네. 그렇게 하도록 하죠."
"혹시 배고프면 같이 식사할래요?"
"저는 괜찮습니다."
당연하게도 그걸 먹고싶은 마음은 없었다.
식사를 마친 뒤, 노인은 바닥에 꽂힌 횃불 하나를 들고 동굴의 가장자리 방향으로 걸어갔다. 현서는 그에게 물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식사를 하시나요?"
"오늘은 운이 좋아요. 평소에는 버섯이나 먹었는데, 오늘은 박쥐를 잡았어요."
"기쁜 일이군요."
"네. 슬픈 일이 계속 있었는데 오늘은 좋아요. 여기에요."
그는 횃불로 동굴 벽면에 난 또 다른 굴을 비췄다.
"혹시 더 가야 하나요?"
"이제 다 왔어요."
동굴 벽은 진흙 같은 것이 칠해져 있었으며, 그 위에 여기저기 그을음이 있었다. 그 그을음은 가면 갈수록 더 강해졌다. 그리고 그을음으로 인해 완전히 어두운 암흑 같은 동굴 끝에 돔 모양의 공간이 있었다. 그는 벽면의 등불에 불을 지폈다. 그러자 소가 있던 공간이 드러났다. 특별할 게 없는 빈 공간 중심에 바위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바위 중앙에는 진주 재질의 염주가 있었다.
현서는 바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곳에 소가 있었던 것입니까?"
"맞아요."
현서는 동굴 중심으로 걸어가 염주를 집어 들었다. 염주에서는 무언가 영적인 아우라가 느껴졌다. 현서는 이 염주가 포획 시설의 핵심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또한 염주를 들고 있으니 왜인지 힘이 나는 듯했다.
"이것도 소에게 쓰던 물건인가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제 슬슬 돌아가도록 하죠. 이건 잠시 빌리도록 하겠습니다."
소와 같은 신비한 외계 존재와 싸우려면 똑같이 신비한 힘이 필요한 법이다. 이 노인 덕분에 이제 그 소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동굴을 나오게 되자 그에게 감사하며, 현서는 앞장서고 있던 노인의 목을 손날로 가격했다.
"다음에 또 만나도록 하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신을 잃은 그에게 현서가 말했다. 현서는 그들에게 꼴사납게 절벽을 기어올라가는 꼴을 보여주긴 싫었다. 굳이 의심 살 행동을 할 필요는 없었다. 현서는 그를 눕히고 곧바로 출구로 향했다.
처음 현서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을 단순한 원시인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들 역시 계속해서 동굴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들의 세계는 동굴 속에 한정되어 동굴 밖의 세계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현서가 그들을 동굴 밖으로 이끈다고 해서 그것이 그들에게 좋은 미래를 가져다 줄까? 그들은 문명에 쉽게 적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현서는 홀로 동굴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동굴 안의 사람들은 그들만의 삶을 살며 나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와 같이 동굴 안에 적응해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현서는 그 소가 필요했다. 현서는 동굴을 빠져나오며 그 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것 역시 자신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