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의 향기에, 여름은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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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여름. 나무에는 녹섬석의 반짝임이 가득하고, 꽃의 그림자는 돌멩이에 어른거린다. 씻어내린 듯한 하늘의 푸르름과 달콤하고 부드러운 바람에 마음 전부를 맡기고, 유리 무늬의 쓸쓸함을 사랑했다. 청결한 햇빛에 구석구석까지 사랑받던 토요일의 아침 광경은 달이 지켜낸 밤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상쾌한 아름다움 속에서 무상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늘의 깊은 흰색도 맑은 오월. 모든 것이 완벽한 균형 안에 있었다.

 조화 꽃다발을 들고 있는 나에게조차도 초여름의 손길은 고독하지 않았다.
 바람의 형태로, 아이의 손 같은 천진난만함으로, 나를 쓰다듬고 있었다.


 사랑하던 이가 죽었다.
 장래를 약속했던 문학소녀였다. 흰 백합 빛 피부, 연분홍빛 뺨에 주근깨가 흩뿌려진, 둥근 안경을 쓴 명랑한 소녀, 사키모리 치에チエ. 치에는 본래 병약하여 어려서부터 쓰러진 적이 많다고, 그녀의 어머니에게 들은 적이 있다. 틀림없이 그 여윈 몸은 처참한 병증의 경험, 그 흔적을 말해주었다. 척추의 울퉁불퉁한 등을 덧그릴 때마다 나는 사랑과 애처로움을 삼켜야만 했다. 하지만 치에는 그 불행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는 발랄한 미소와 똑 부러진 결단력, 그리고 쾌활한 수다로 모든 사람을 대했다. 결코 경박하지 않고 싫지도 않은, 순수무구한 여름빛을 소녀의 틀에 넣어 만든 듯한 사람이었다.

「나는 사랑이, 당신이 좋아. 누가 뭐라고 해도 소녀인 걸. 당신을 만나서 행복해요. 당신은 내 오렌지 조각 같아.」

 치에는 주눅 든 기색조차 없이 그런 말을 했다. 오렌지 조각은 외국의 속담에서 "딱 맞는 운명의 사람"이라는 의미인 듯했다. 오렌지라는 과일을 반으로 갈랐을 때 처음처럼 겹치는 것은 본래 하나였던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렇게 낭만과 꿈을 사랑하고, 그리고 그들에게 사랑받았던 나의 애인. 자라나면서 아프기 일쑤였던 신체도 건강해졌고 한없이 멋진 사람이 되었다. 내가 곧 제대로 청혼하려고 생각하던 즈음이었다.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눈을 뜨고 어머니와 함께 아침을 준비하던 중 그녀는 쓰러졌다. 곧 소란이 일어나 의사를 불렀지만, 치에는 쓰러진 채 깨어나지 않았다. 최후의 말도 남기지 않고 그녀는 영영 떠나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검시했을 때, 치에의 심장, 즉 인공 내장이 불량품이었던 것이 그녀의 사인으로 밝혀졌다. 치에는 가족 몰래 돈을 모아서 병든 심장을 인공 내장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조악한 품질의 심장이 그녀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다. 심장에 제조원이나 품번은 명시되어 있지 않아 어느 병원에서 수술했는지, 의사는 누구였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 일련의 이야기를 치에의 부모님에게서 들었을 때, 딱한 마음에 오장육부가 타들어 가는 듯했다. 고요하게 진행된 장례식 뒤, 불에 타서 진주 같은 뼈만 남은 치에를 보았다.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얼음덩어리가 맺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매화 꽃봉오리가 아직 단단했던 시절, 겨울 끝자락의 이야기다.


 그리고 계절과 자연은 우리들의 상실에 시치미를 떼는 얼굴로 풍요롭게 자라났다. 꽃이 피고, 지고, 새잎이 가볍게 흔들리는 초여름이 왔다. 눈부신 소녀는 이윽고 차가운 돌 밑에 흔적 없이 묻혔고, 사키모리 치에라는 사랑스러운 이름도 애착이 가지 않는 몇 글자의 나열로 변하고 말았다. 나는 치에가 세상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상실을 본떠 만든 묘지를 찾았다. 표식은 제일 새 것인 묘석과 많은 꽃이었다. 나는 예절을 따라 하여 꽃과 향을 올리고 무덤 앞에 주저앉았다. 사랑스러운 여러 추억의 종언을 고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치에의, 눈이 부실 정도의 빛과 그 열을 잊기 위함이었다. 말과 영상의 머뭇거림. 목소리가, 모습이, 소녀의 은은한 향기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아, 사랑했어. 그리고 내가 사랑한 것보다 나는 네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았어.

 네 사랑은 물처럼, 대기를 에워싼 바람처럼 항상 그곳에 있었다. 모든 것을 삼킬 수 없는 양으로 나를 적시고, 잡을 수 없는, 만질 수 없는 조심스러움으로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의 절망 위에 양손으로 꽃잎을 가득 뿌리며, "괜찮아"라고 말하곤 성모처럼 미소 지었다. 내 슬픔의 덩어리를 통째로 삼켜버리고는, 짠맛이 난다며 웃다가 울었다. 입을 맞출 때면 언제나 그곳에 희망의 감촉을 남기고 갔다.

 그 모든 것에 얼마만큼 구함을 받게 된 걸까.
 처음으로 알게 된 상실의 아픔.
 미숙한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어 했다.


 그런데, 사람은 죽으면 목소리부터 잊힌다고 한다.
 때마침 내 수중에는 촬영기로 찍은 그의 모습과 목소리가 있었다.

 「이거 정말 나오는 거야? 굉장하다! 그러니까, 저는 사키모리 치에입니다. 열아홉 살입니다. 들리시나요? 음… 좋아하는 작가는 후타바테이 시메이1고요, 음……」

 낭랑하고 방울 같은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하는 치에의 얼굴을 잘 기억하고 있다.

 거기서 떠올렸다.
 자동인형 기술로 나만의 치에를 만들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일개 봉급생활자일 뿐이다. 공학에 대한 지식은 일천하다. 그러나 인생을 걸어본다면 어떨까?
 나의 열은 순식간에 화염으로 타올라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불가능을 도외시한 사랑의 형태가 분명 이 가슴에 자리하고 있다.

 시작해볼까. 여기 다시 사랑은 창조되리라.

 우선 작은 전시기(電視機) 한 대와 머리가 없는 여체 자동인형을 사는 것으로 시작했다. 자동인형은, 될 수 있는 한 치에에 가까운 여윈 몸뚱아리로 구했다. 그 몸에 생전 치에가 입던 것과 비슷한 흰 원피스를 입힌다. 머리 부분에 전시기를 달아 치에의 얼굴 부분을 비추었다.
 자동인형의 움직임은 본래 입력되어 있던 것이 반영되었다. 치에의 목소리로 말하고 치에의 얼굴이 비치는 자동인형이 만들어졌지만, 거동이나 몸짓은 아직 치에가 아니다. 목소리도 자기소개만을 반복할 뿐. 나는 치에가 더 말해주길 바랐다. 역시 근본 토대, 자동인형의 정보나 동작부터 고쳐 쓸 필요가 있다.
 자동인형의 목소리, 자동 성대는 실제 인간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조성하고 있다고 한다. 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면 찍어둔 동영상에서 목소리를 추출해 전산기로 편집한다면, 치에에 한없이 가까운 것이 완성되지 않을까? 그리고 동영상에 비친 치에의 거동을 관절마다 나누어 복사한다면 치에 본연의 움직임을 이루는 자동인형이 만들어질 것이다.
 치에가 생전에 했던 말을 통해 만들어낸 목소리로 재생할 수 있다면. 치에가 생전에 읽던 책의 어휘를 출력할 수 있게 된다면. 감정 표현을, 눈 깜빡임을, 호흡을, 마주쳤을 때의 감각을.

 재현할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전문서나 기술 입문서를 사들였다. 전문 도구도 갖춰 아파트먼트의 내 방을 공방처럼 만들어버렸다. 직장 생활을 하는 한편, 치에를 재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과학 기술이 전부인 세상.
 그렇다면 잃어버린 오렌지 조각의 반쪽조차 조각이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재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재현된 게 너 그대로가 아니더라도 내가 바라보던 네가 완성된다면. 이제 그걸로도 좋아. 그게 내 애도니까.

 오 년. 오 년. 내 집념의 불길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 성과는 눈부셨고, 삼 년째에는 치에의 손을 잡자 치에도 수줍은 얼굴로 「나도 좋아」라고 대답하게 됐다.
 오 년째의 치에는 예전처럼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문법에 미비한 부분이 있으면 그때그때 고쳤다. 목소리도 한숨의 양이나 유창함의 좋고 나쁨도 감정의 높낮이에 따라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아, 나의, 나만의 치에. 나는 아직 네게 사랑받은 만큼 되돌려 주지 못했어. 나의 꺼지지 않는 열. 나의 미숙한 사랑. 그걸 실제와 비슷한 네가 받아들이게 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거야. 장례는 보내는 쪽이 하는 마음 정리니까. 이게 치에를 보내는 나의 진정한 장송이다.


 어느 날, 꿈속에서 다이쇼제를 뵌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 피곤해서 돌아와 그대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사이 잠들어버린 것 같다. 꿈속에서는 아름다운 기계의 거리가 펼쳐져 있었고, 그 한가운데 다이쇼제께서 홀로 계셨다.

「젊은이, 무얼 하고 있는 건가」

 다이쇼제께서는 내게 미소를 짓는다. 나는 최대한의 예를 표현한 후,

「떠나보낸 애인을 만들고자 합니다」

 하고 정중히 말했다. 그러자 다이쇼제는,

「어려운 일을 하고 있군. 어디, 손을 빌려주기로 할까. 지금 눈을 뜬다면, 젊은이여, 천황기관에 의해 그대의 연인은 다시 완전히 되살아난다. 어찌할 텐가」

 라고 말씀하셨다.

「그건……」

 망설임이 생겨난다. 완전한 치에를 만나는 것은 바라지도 못했던 행복이다. 그러나 나는 대답한다.

「송구스럽습니다만 말씀 올리겠습니다. 저는, 제 손으로 애인을 만드는 것이 그녀에 대한 유일한 조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진짜 그녀를 만나는 것은 괜찮습니다. 정말로 고귀한 제안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무엄을 무릅쓰고 거절하겠습니다. 가짜로도, 좋습니다」

 그리 대답하니, 다이쇼제께서는 푹 웃으셨다.

「호오, 위작에만 깃든 갸륵한 미를 사랑한다고나 할까. 그 또한 백성의 소원이라면 좋다고 하지. 젊은이여, 건강하게」

「망극한 성은입니다」

 그러자 아름다운 기계의 거리가 짙은 안개에 가두어지기 시작하고는 다이쇼제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몸에는 부유감이 생겨 의식이 단번에 현실로 되돌아간다. 신체에 명확한 감각이 돌아오고, 나 자신의 고동을 분명히 가슴 속에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아. 이것이 제 사랑입니다.
 여름의 화신과 같은 너와 죽을 때까지 함께 있고 싶었어.

 그리고 눈을 떴다. 이미 밤도 이슥해지고 있다.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투명한 쪽빛 어둠이 아파트먼트를 에워쌌다. 우리는 체온을 나누듯 단둘이서 손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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