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있었다

오전 9시, 제51기지에서 격리 실패가 발생했다.


그날 오전 11시가 돼서야 나는 그 소식을 받았다. 기지간 비상대응 시스템의 통상 채널에서. 소식함에 들어오고 20분은 지나서야 나는 제일 최근 보고서 작업을 멈춰놓고 메시지를 열었다.

"13명 사망. 4명 치명상. 변칙개체 재격리됨."

메시지를 닫고 다시 일하기까지, 약간 걸렸다. 이유는 말 못한다. 이런 메시지야 몇십 번씩 받고 산다. 그래도 모르겠다. 숫자 때문에 뭔가 조금 눈길이 갔나 보지.

창문을 딸깍 열고 바깥바람을 좀 쐬었다. 하늘이 온통 우중충했지만 비 한 방울 안 내렸다. 배려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구름이 지성 개체일지도. 나야 모른다. 한참 동안 나는 하늘만 쳐다봤다.


오후 1시쯤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다. 다들 그 소식 들었냐는 질문부터 했다. 물론 나야 들은 소식이다. 그다음에는 그 기지에 누구 아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누가 새로 전근갔으면 몰라. 재니스Janice는 81기지고, 가브리엘Gabriel은 3년간 33기지에 박혀 있었잖아."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아무 말 없이 점심만 먹었다.

"리처드 웨더스Richard Wethers 51기지로 몇 달 전에 안 갔어?" 테니슨Tennison 박사가 물었다.

"어, 맞아." 거디넬Gerdinel 박사가 대답했다. "몇 시간 전에 전화했는데 안 받던데."

"격리 실패 중에 폰 떨궈서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말했다.

"아님 거기 격리됐던 놈이 통화권을 어떻게 했을 수도." 누가 덧붙였다.

또 잠시 아무 말 없이 점심들만 먹다가, 누가 대화 주제를 바꿨다.


오후 3시, 누군가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테니슨이었다. 딱히 무슨 표정은 아니었지만, 바깥 저쪽에서 누가 조용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처드 때문에 조그맣게들 모여 있어." 테니슨이 말했다. 나는 끄덕하고 따라가 식당으로 갔다. 열세 명이 동그랗게 둘러선 채로 있었다. 우는 사람도 있었다. 시선을 떨구며 고개만 젓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리처드랑 그렇게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가끔씩 출퇴근길 왜 이따위냐고 노가리 까거나, 작년 기지 전체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인간형 개체한테 he/she/they라는 대명사를 써야 하니 마니 열띠게 토론하거나 한 적은 있었다만.

누군가 몇 마디를 말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시 그대로 말없이 서 있었다. 전에도 이렇게 한 번 한 적 있는지, 우리 기지 출신이 격리 실패 때 죽은 게 내가 여기 발령받고 이번이 처음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나는 다른 사람과 같이 고개를 숙이고 몇 마디를 하려 했다. 허허로운 말들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오후 5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해져서 소파에 풀썩 주저앉고, 뉴스를 틀었다.

"피츠버그 회당에서 총기난사로 11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다수 발생했습니다. 용의자는 체포되었습니다."

TV를 끄고 나는, 어둠 속에서 그냥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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