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수스』의 지난 이야기:
달래와 쑥: 제2부
나무로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여러 명의 사람들을 지나쳤다. 몇몇은 인상을 찌푸리고 그들을 보았고, 몇몇은… 이상하게 행동했다…
클로에는 그 행동이 나무가 나타났을 때 보았던 그 광경임을 알아보았다.
그들의 눈앞에서 차 한 대가 벽에 들이박았다.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괴성을 지르며 차문이 열릴 때까지 차 안쪽에서 차문에 몸을 던졌다. 이 광증은 다른 곳들로 계속 번졌고, 저번에 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광기를 보였다.
사람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쓰러지면서 비명이 들렸다. 몇몇 광인들은 클로에 파티를 표적으로 삼아왔다.
“딘?” 엘리가 움직이지 않고 그를 불렀다. “아까처럼 때려눕힐 수 있겠어?”
“제시간엔 무리겠는데.” 그도 미동 없이 대답했다.
“도움이 필요하신가?” 호야가 의기양양히 물었다.
엘리가 몇 초 뒤에야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오는 광인들을 주시했다.
호야가 점멸하더니 공격자들이 몽땅 묶여서 그들 앞의 땅에 뒹굴고 있었다.
“짜잔!” 호야가 거슬리게 말했다.
엘리는 입을 비죽이며 자족적인 웃음을 크게 지어줄 뿐이었다.
하지만 웃는 것도 한 노파가 다희의 뒤를 공격하기 전까지 일이었다. 광인들은 사방에서 몰려왔다…
기남은 영창을 준비했지만 도중에 허둥지둥 후퇴해야 했다. 그동안 호야는 미친 늙은이를 동지에게서 떼어냈다.
“젠장, 기적술이 필요해!” 엘리가 황급히 말하며 후라이팬을 꺼내들었다.
“왜 직접 하지 않고요?” 딘의 팔이 점점 자기를 짓누르는 것 같자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며 클로에가 물었다.
“나 술 취했잖아, 클로에. 잘못된다고” 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호야는 이제 자기 몸을 간수하면서 다른 광인들과 문자 그대로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 엘리에게 기적술을 빌려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 결과 나머지 파티원들은 분절되어서 먹자골목 쪽으로 계속 밀려났다.
뚱뚱한 남자가 자신에게 곧바로 달려와 들이받으려 하는 것을 본 딘은 충돌하기 직전에 클로에를 놓아주었다.
몸통박치기에도 딘은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한 노점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 바람에 그릇과 잔들이 흩날렸다.
클로에는 한 십대 소년이 자신을 쫓아오자 허둥지둥 기어서 도망쳤다.
그녀의 손에 무언가 풀 같은 질감의 것이 잡혔다.
공격자는 이제 그녀 바로 위까지 와서 그녀의 코를 물어뜯으려 들었다. 엘리도 여러 명의 공격자들에게 둘러쌓여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클로에와 달리 후라이팬을 무기로 삼아 적들의 머리통을 소리나게 후려치고 있었다.
소년이 머리를 아래로 들이밀었다. 클로에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꼭 쥐고 두 팔을 가로질러 얼굴을 가렸다.
말인즉슨 그녀의 의사는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실수로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소년은 맞아서 아픈 것보다도 놀란 것 같았고, 클로에의 주먹에 쥐어져 있던 푸성귀가 입술에 닿아오자 그것을 씹었다.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그는 혼란스러운 듯 자문하더니 뒤에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광인과 싸움을 벌였다. 클로에는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공황 상태에서는 뇌가 "파괴"라는 것 이외의 모든 과정에 대해 멈추어 버린다. 그래서 집단공황이 벌어지면 밑에 깔려 죽는 사람들이 나오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클로에는 그와 정반대였다. 그녀는 여전히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었고, 그녀의 뇌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모든 선택지를 고려하느라 쌩쌩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한 분석을 마친 그녀의 뇌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저 풀을 잡자!”
그녀의 뒤에 뒤집힌 스테인리스강 용기들 옆에 작은 풀더미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들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두 가지 풀때기가 섞인 상태였다. 클로에는 양 손에 최대한 쥘 수 있을 만큼 쥐어서, 좀전에 제정신으로 돌아온 소년을 공격하고 있는 남자의 입에 처넣었다.
그리고 그것이 통했다. 남자는 갑자기 소년에게서 손을 떼더니,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클로에는 이 성공사례를 보고는 남자에게 신경을 끄고 엘리에게로 달려갔다. 엘리는 여전히 후라이팬을 들고 세 명의 공격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뇌의 고등기능을 잃어버린 듯, 엘리가 휘두르는 후라이팬에서 거리를 두고 맴돌기만 하는 것이 그들에게 유일한 행운이었다. 그 세명 뒤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린 화분에 맞아 땅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들이 네발로 기면서 엘리에게만 신경쓰고 있었기 때문에, 클로에는 쉽게 살금살금 다가가서 세 명 중 유일한 여자의 입에 풀을 넣을 수 있었다.
엘리는 그 성과를 빠르게 이해하고, 나머지 두 남자에게도 클로에가 가르침을 줄 수 있도록 두 남자를 유인하며 거리를 벌렸다.
“달래와 쑥이라니.” 엘리가 클로에가 쥐고 있는 것들을 보고 물었다. “이건 어떻게 알아낸 거야?”
“우연히요.” 라는 숨찬 목소리가 나왔다.
클로에는 엉망이었다…
“이 풀때기 좀 더 가져오자. 다른 애들이 도움이 필요해.”
기남은 이미 땅에 쓰러져서 한 무리의 광인들과 문자 그대로 밀고 당기는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 좀전과 같이 클로에와 엘리는 기습으로써 한 사람을 치료했고, 그에 따른 혼란을 틈타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풀들을 먹일 수 있었다.
기남은 이 상황 개선을 못 믿겠다는 듯 바라보았다.
“어떻게-”
“쑥과 달래를 잡아. 너희 라이네케 아가씨를 도와야지.”
클로에는 “도와”라는 말을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호야는 부상당한 다희 옆에 선 채 한 무리의 감염자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감염자들 중 일부는 희한한 모양의 권총에 맞아 생긴 상처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권총은 1차대전 때나 쓰이던 것처럼 생겼고 탄창이 약실 바로 위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총에 맞은 상처들은 이상하게도 화상처럼 보였다…
포위자들 중 이빨을 드러내고 눈을 찢은 채, 다가오는 놈들은 약속된 죽음을 내려주겠다는 기세를 발하는 여우에게 감히 덤벼드는 이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젊은 여자 한 명이 그녀를 뒤에서 붙잡으려 했지만, 여자가 닿은 순간 호야는 공기 중으로 점멸해 사라졌다.
호야는 환상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공격자의 바로 뒤에 다시 나타났다. 몸통에 주먹질을 몇 번 빠르게 지르자 미친 여자는 바로 쓰러졌다. 그리고 이상한 권총에서 분리된 레이저에 또다른 광인이 거리를 벌렸다.
엘리는 이 싸움통에 사람들의 주의가 분산된 틈을 타 검증된 방법으로 사람들을 정상으로 돌려놓았다. 싸움터 건너편의 광인들만이 이것을 알아채고 표적을 금발의 여자로 바꾸었다. 그들은 호야 주위로 완만한 활꼴을 그리며 엘리 쪽으로 가지를 쳤다.
그리고 그들은 앞에 동시에 나타난 여러 개의 광고 기둥들에 부딛었다. 그리고 모두가 갑작스럽고 조심스럽게 입을 씹기 시작했다… 호야가 기적술을 사용하고, 엘리가 재빠르게 그 틈을 이용한 것이다.
그들은 못 믿겠다는 듯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방금 그게 우리가 친구라는 뜻은 아니다.” 호야가 신랄하게 말했다.
“난들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거든.” 불퉁한 대답이 돌아왔다. “근데 딘은 어디 갔어?”
그 말에 대답하듯 뚱뚱한 한국인이 엘리 뒤의 포석에 내려앉았다. 그는 착지한 즉시 엘리를 물어뜯으려 덤볐지만, 클로에가 제 때 더 많은 풀떼기로 대처했다.
차림새가 너절해진 딘이 발을 구르며 나타났다. 그는 마치 구내식당의 모든 음식물을 끌어당기는 자석이 된 것 같은 행색이었다.
“내 생각을 해주기는 하다니 참 고맙다.” 그가 건조하게 말했다.
건조하다 함은 순전히 말투의 이야기였다. 그는 온갖 종류의 양념과 기름의 방울들을 떨어뜨리고 있었으니까.
한편 호야는 제정신을 차린 무진시민들을 바라보았다. 시민들은 정신없이 이야기하며 부상당한 이들을 챙기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설명해줄 사람?”
“아무래도 이 착란증은 달래와 쑥으로 치료될 수 있는 것 같군요.” 기남이 말했다.
“엄밀히 말해서 이건 병조차 아냐.” 엘리가 신중하게 첨언했다. “풀때기를 삼키자마자 나았단 말이지. 이건 치료라고 할 수 없어. 어떤 조건이 충족된 거지. 이건 병을 고치는 치료가 아니라 저주를 푸는 해주라고 봐야 해. 기남, 달래와 쑥이 이런 상황에 관련된 사례를 얼마나 알고 있니?”
“하나도 없습니다.” 기적사가 대답했다. “하지만 단군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호랑이와 곰에게 인간이 되려면 쑥과 달래만 먹으라는 임무를 주었는데 곰만 성공해서 인간 여자가 되었고 환웅과 결혼했다는.”
“어, 마늘이죠. 달래가 아니고.” 다희가 정정했다.
“아니, 달래가 맞아.” 기남이 우겼다. “그 이야기는 청동기 시대가 배경이야. 마늘은 0년경 이후에야 중국에서 한반도로 수입된 작물이니까.”
“음, 나는 마늘이 나오는 이야기밖에 들은 게 없는데.” 영매사가 자기를 변호했다.
“뭐, 뿌리가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 엘리가 말했다.
“호랑이 무늬,” 클로에가 지금 진행되던 이야기는 완전히 무시하면서 딴소리를 중얼거렸다. “나무에 묶인 천조각하고 그 이야기가 무슨 상관이 있지 않을까요?”
“그 호랑이가 나무에 봉인되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호야가 물었다. “그럴듯한 얘기이긴 한데. 분명히 인간에게 증오를 품을 만하니까. 어쩌면 그래서 봉인당한 걸지도 모르지. 인간들을 자기 같은 짐승으로 만들려 하는 걸수도 있고.”
“그럼 방랑자의 도서관이 그걸 왜 몰랐을까?” 엘리가 의문을 제기했다. “내 말은, 그게 뭐 대수로운 사실도 아니잖-”
땅이 다시 흔들렸다.
엘리가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 고양이가 튀어나오기 전에 봉인을 갱신하자고. 그러니…”
그녀 근처의 집 입구에 넥수스포르탈이 만들어졌다.
“…괜찮다면 좀 지름길을 쓰도록 할까.”
“그 말은-” 다희가 물었으나 물음을 마치가 전에 엘리가 즉답했다.
“그래. 안으로 들어갈 거야. 그러니 아무 것도 건드리지 마. 알아들어?”
신단수의 발치에 검은 구멍이 생겨나더니 기남이 거기서 튀어나왔다. 하얗게 질린 다희가 그 뒤를 따랐고, 넥수스에서 옷을 갈아입은 딘이 클로에를 어깨에 싣고 그 다음, 마지막으로 엘리가 나왔다.
엘리는 여과경 가장자리를 훔쳐보아 주변이 여전히 두터운 안개로 덮여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다희야, 괜찮냐?” 호야가 물었다.
영매사는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안색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서둘러야 합니다.” 기남이 거의 다 타버린 호피무늬 천조각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딘이 클로에를 내려놓았지만, 클로에는 그것을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의 두 눈은 나무에 붙박혀 있었다. 가까이에서 본 나무는 말 그대로 거대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나무는 황금의 산처럼 그들 앞에 우뚝서 있었다.
기남이 뿌리에서 무언가 몸짓을 시작했고, 딱히 잘 아는 것이 없는 클로에는 그것을 태극권과 비교했다. 건강에 좋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태극권…
몸짓은 무언가 효과가 있었다. 그들의 앞에 무슨 홀로그램 같은 것이 실체화되었다. 밝은 흰색의 만다라 같은 그것은 번역 패치 없이는 클로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자들을 점묘로 만들어냈다. 그 의미는 “흙”, “물”, “봉인”, … “호랑이” …
“그래서 뭐냐, 기남아?” 호야가 성마르게 물었다.
“잠깐만요. 무언가 말이 안 되는 점이 있습니다.” 기적사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제가-”
땅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진앙인 신단수 바로 밑에 있었기 때문에, 일행 모두 땅에서 발이 떨어질 정도로 들썩였다.
“으와!” 엘리가 앞으로 넘어지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과음을 했나봐. 나 지금 바닥에 누웠고 이대로 좀 있어야겠어…”
“이제야 인정을 하는군.” 딘이 팔다리 사지를 모두 땅에 딯고 말했다.
클로에는 엉덩방아를 찧고, 무언가가 자신에게 닿으려 함을 느꼈다. 무언가 증오하는 것, 무언가 복수를 바라는 것이.
그리고 그것은 마치 클로에가 달구어진 무쇠인 것마냥 그녀를 도로 놓아 버렸다.
쿠인가?
그녀는 혼란스러워 엘리를 바라보았다. 엘리 역시 방금 비슷한 것을 느낀 것 같았다.
마침내 지진이 가라앉았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언가 그녀의 뒤에서 괴성을 냈다.
클로에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딘이 먼저 튀어나갔다. 그가 붙잡은 무언가가 불쌍한 소리를 냈다.
뒤를 돌아본 클로에는 딘이 다희의 목덜미를 잡아 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다희는 딘을 걷어차고 그의 팔을 할퀴었지만 딘은 딱히 수고로워 보이지 않았다.
“기남이 너까지!” 호야가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호야는 자기를 물어뜯으려 드는 기남에게 헤드락을 걸어 제압했다.
“그 녀석들도 그렇게 됐구나.” 엘리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두려움은 일절 없고 그저 학문적 호기심만 있음에 클로에는 분개했다…
“흠, 클로에하고 나는 아직 멀쩡하고, 호야도 그렇고… 아무래도 이게 뭐든 간에 이건 한국인 인간에게만 영향을 미치는가 봐. 흠…”
“거 연구에 대한 열정은 인정하는데, 당장은 더 중요한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아!” 호야가 불평했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게다가 기남이 없이는-”
“내가 읽을 수 있으니까 됐어.” 엘리가 말을 끊고 홀로그램을 살폈다.
“흠… 흠… 오! 오 오…”
클로에는 엘리가 “오 오…”거리는 순간들이 정말 싫었다.
“뭔데? 뭔데 그래?” 호야가 다급하게 물어왔다.
“음, 이 봉인을 하기 위해서 희생이 이루어진 것 같군. 게다가 그 제물이 신급이야.” 엘리가 말했다. “그럼 새로운 제물이 필요할 텐데… 제물로 바칠 다른 신이라… 이 봉인을 환웅 본인이 한 것임은 분명해. 잠깐만,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한국인들에게만 한정되는 저주를 호랑이가…?”
“뭐가 어째-” 호야의 놀란 소리에 엘리가 사색에서 빠져나왔다. “어딜 가서 제물이 되어주겠다고 나서는 신을 잡아와?!”
엘리는 이미 열심히 진지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흠, 어떻게 해야 이차원에 갇힌 호랑이가 탈출하는 걸 막는다…”
하지만 정작 정답을 먼저 내놓은 것은 호야였다.
“어딘가 다른 공간으로 보내 버린다던가…”
엘리는 호야가 자기보다 먼저 답을 찾은 것에 놀람과 동시에 짜증이 나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간발의 차이로 진 거야…”
“제대로 읽은 거 맞냐?” 호야가 물었다.
그녀는 엘리와 함께 초록빛 풀밭에 서 있었다.
“내 생각엔 그런 거 같아.” 엘리가 대답했다. “봉인은 알고리듬을 따르고 있었어. 그걸 풀 때도 그렇지. 운 좋게도 기남이 그걸 발견했어. 하지만 일단은 놈을 여기에 유인부터 해야겠지.”
그녀가 바지에서 무전기를 뽑았다.
“딘? 어떻게 되어가?”
“천조각들이 완전히 다 불타 버렸어. 당장 가시적인 변화는 없음.”
호야는 그들 앞의 작은 검은 균열을 골똘히 바라보며 다시 환술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천조각이 불타면서 나무의 뿌리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지진과 함께 무진시의 한국인들 중 달래와 쑥을 먹지 않은 이들은 모두 이성이 없는 야수가 되어 제정신을 유지하는 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괴물은 이것을 느끼고, 뿌리 아래 출구를 향해 느리지만 영광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는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다. 마침내 이 저주받을 신에게서 해방되는 것이다. 마침내-
괴물은 신단수 아랫둥치를 벗어나 땅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갑자기 돌을 던진 물처럼 시야가 일렁였다. 그리고 두 명의 여자가 서 있는 푸른 들판의 광경이 펼쳐졌다.
“그래, 호랑이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금발 여자 쪽이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무진시의 재단 기지 제64K기지는 폭동에 휩싸여 있었다. 거의 모든 직원들이 몇 초만에 광기에 휩싸였다. 그러다 다시 급작스럽게 모두 제정신을 되찾았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기지는 물론이고 같은 현상이 일어난 도시 전체에 거대한 혼란이 일었다…
황금이 수놓아진 고대의 한국 옷을 입은, 키가 4 미터는 되어 보이는 동양인 여성이 엘리와 호야 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은 치솟아 있었고, 시선만 던져도 필멸자의 뇌를 (4차원으로 사고하는 엘리 같은 존재가 아닌 이상) 뒤틀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호박색 눈이 혼란스러움으로 가득차 둘을 바라보았다.
엘리와 호야 역시 마찬가지 시선을 돌려주었다.
그럴 것이 여자의 머리에 불쑥 튀어나온 한 쌍의 짐승의 귀는 곰의 귀였기 때문이다…
“이게 만약 무슨 방치형 게임이었다면, 환웅은 참 취향이 고약한 신이었나봐…” 엘리가 그 귀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여기는 무엇이냐?” 웅녀가 노하여 물었다. “이 곳이 무엇이냐 묻지 않느냐?”
“어, 그건 이따 얘기할 테니,” 호야가 역시 웃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일단… 일단 우리한테 한가지 설명 좀 먼저 해주시겠수? 우리는 그… 호랑이 여사님을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요.”
그녀는 모욕스럽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동안 호야는 담배를 빨기 시작했는데, 웃음을 참기 위함인 것 같았다.
“호랑이는… 내 망할 남편이 나를 가두려고 그애의 가죽을 벗겼다.”
“호랑이를 사용해서…” 호야의 목소리가 울리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럼 어째서 방랑자의 도서관이 아무 것도 몰랐는지 설명이 되네.” 엘리가 말했다. “환웅은 자기 손으로 자기 마누라를 잡아 가두었다고 자기 백성들한테 밝힐 처지가 못 되었을 테고. 하지만 당신이 한 짓은… 아아…”
엘리의 입이 웃음기로 뒤틀렸다.
“어쨌든 댁의 풀때기는 아마 더 푸르렀겠지, 아냐? 댁은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려고 했고, 당신의 정당한 권속인 한국인들이 인간성을 잃게 된 건 당신의 변신의 대가였던 거야… 그런데 무진시 하나만 가지고는 고작 귀밖에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한 거고., 아이고, 맙소사. 호야. 이거 얼마나 쪽팔린 일이니!”
두 여자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반응으로 웅녀는 분노해 발을 굴렀다. 그 힘에 땅이 여기저기 갈라졌다. 열극이 자기에게까지 닿자 호야는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그러다 곧 엘리가 그녀의 추락을 막아주고 있기에 위험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헛소리일랑 이제 집어치우고, 여기가 지금 어디냐! 나를 내보내라!”
“불쌍하셔라.” 호야가 씩 웃으며 모자를 당겨썼다. “하지만 우리에겐 한반도의 안전이 당신의 후생보다 더 중요해서.”
그녀가 다시 담배를 빨고 연기를 내뿜었다.
거대한 여인이 괴성을 지르며 여우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갑자기 두둥실 떠오르더니 다시 땅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뒹굴었다.
호야는 그 광경을 당황스럽다는 듯 바라보다 엘리에게로 돌아섰다.
“네가 한 거냐? 나는 여기 들어와서 아무 기적술도 쓴 게 없거든.”
“맞아.” 엘리가 대답했다. “여긴 내 세상이야. 넥수스 안에서는 내가 법칙을 만들어.”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는 자기 코에서 제비꽃을 꺼내 보였다.
“예컨대 지금 보고 있는 건 무중력이고.”
갑자기 웅녀가 다시 땅바닥에 처박히더니 숨 막혀하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이건 과중력이랄까.”
“죽이지 마!” 호야가 경고했다. “죽었다가는 한국에 무슨 영향이 미칠지 모른다고.”
엘리가 중력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웅녀는 분노에 눈이 뒤집혀 엘리를 덮쳐들었다. 엘리는 살짝 떠올라 웅녀를 후려쳤다. 웅녀는 땅바닥에서 떠올라 세로로 두들겨 맞았다.
“솔직히 주먹다짐은 내 취향이 아닌데.” 엘리가 말했다. “매트리스 깔고 하는 게 아닌 이상…”
웅녀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다시 일어섰다.
“잠깐- 뭘 하려는 거야?”
엘리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거대한 여자 주위로 육면체 금속 골조가 지어졌다.
“한국의 안전을 생각하면 당신을 풀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속편히 죽여버릴 수도 없으니. 나한테 뭔가 좋은 방법이 떠오를 때까지 거기 안전하게 갇혀 계셔.”
웅녀의 눈이 커졌다.
“네가 감히 무슨 권리로-”
그리고 엘리가 웅녀의 시간을 멈추자 그녀의 움직임도 멈추었다.
“나한테 그 소리 하는 애들마다 10 센트씩 걷었으면 난 지금쯤 술을 사일로로 마실 수 있었을… 너 괜찮나, 클로에?”
클로에는 좀 떨어져서 이 장관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녀는 떡 벌어진 턱을 닫느라 두 손을 다 써야 했다.
엘리는 힙플라스크를 홀짝였다.
호야는 위기를 수습한 기념으로 엘리와 그 동무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신단수의 뿌리 밖으로 나오니 나무는 다시 흐려지면서 사라졌다. 딘에게 묶였던 다희와 기남은 곧 제정신을 찾았다. 그리고 호야는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한 것을 후회했다. 다행한 것은 딘은 아무 것도 주문하지 않았다는 것 뿐이었다.
“이런 일은 다시는 없을 거야.” 엘리가 고기 구이를 먹으며 말했다. “그 곰을 가둬 두는 데 나도 동의하긴 했지만, 내 넥수스는 쓰레기장이 아니라고. 여신을 장기숙박시켜서 무슨 결과가 벌어질지 나도 몰라.”
다희가 소리나게 침을 삼켰다.
“참 기분나쁜 이야기에요.” 클로에가 화제를 바꾸었다. “무슨 말이냐면, 결국 호랑이 여신은 제물로 희생당하고 아무도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는 거잖아요…”
호야가 닭고기를 뜯으며 껄껄 웃었다.
“글쎄, 내 생각엔 호랑이의 희생은 자발적인 것이었고 그에 따라 명예로운 대우를 받은 것 같은데.”
“왜요?”
호야가 스마트폰을 꺼내 클로에에게 한국의 상징 동물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참 좋은 사람들이네요. 더 알아갈 기회가 있으면 좋겠는데…” 넥수스가 그들의 앞에서 닫히자 기남이 말했다.
“전화번호라도 받아놓을 걸 그랬나.” 호야가 말했다. “뭐, 다음 주 토요일에 술자리 있으니까, 혹시 아냐. 운이 좋으면 또…”
“저 괴물하고 또 엮이고 싶다고요?!” 다희가 소리쳤다.
그녀의 두 동지는 왜 그러냐는 듯 바라보았다.
“야, 다희야. 왜 그러냐. 너도 넥수스 안에 들어갔었으니까, 너도-”
다희가 몸짓을 해가며 호야의 말을 잘라먹었다.
“나도 알아요, 대장. 하지만 제가 본 걸 대장은 못 봤죠!”
여우가 눈썹을 치켜떴다.
“봐? 뭘 봐? 넥수스 안에 뭐가 있었는데?”
다희는 대답하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었다. 입술에서 말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죽음이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망자들의 영혼이요. 속죄자는 그 영혼들이 평안을 찾지 못하게 섭리를 거슬러 가며 붙잡아 놓고 있는 것일 거에요. 하지만 그 망령들의 원한만은 거기 여전했다고요. 마치 독기처럼 그 외부차원 안에 원한이 가득했어요. 그 여자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글로만 읽었었지만, 이렇게 그 결과를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니…”
“뭐, 어쨌든 우리를 구해 줬잖아.” 기남이 말했다…
“하지만 그게 우리가 저 여자하고 계속 엮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죠, 기남씨.” 다희가 말했다. “저 여자는 괴물이라고요!”
호야는 방랑자의 도서관의 학사들이 했던 얘기를 떠올렸다. 뱀의 손은 입에 올리기도 힘든 위험들을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엘리는, 그녀가 한 짓은 가장 어두운 신들 중 몇몇을 상회한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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