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뒷처리
평가: +3+x

"여기가 예술 도시라는 게 비로소 실감 나네."

"그러게… 완전 난장판이고."

유정원과 유정헌은 대응반원들이 푸른 요원복을 입은 인원들과 함께 변칙예술품들을 치우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명천구 안전가옥으로 오는 길에 바로 연락을 받고 오는 길이었다. 이곳 ‘ROK ArtRoom’은 번지르르한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는 온통 난장이 벌어져 있었다. 대응반장 차진태가 그들 옆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광경이라니, 쪼매 미안하긴 하구만."

차 반장이 흘끗 쌍둥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가 웃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눈웃음이 갈라졌다. 자주 웃는 사람인 모양이라고, 정헌은 생각했다.

"아닙니다. 익숙해져야죠."

푸른 요원복을 입은 인원들 가운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부서진 줄 알았던 예술품 중 하나가 누군가의 발목을 물고 있었다.

"아유, 그러니까 내가 거 조심 좀 하랬더니."

반장은 작업을 끝내고 도열한 대응반원들에게 손짓했다. 그들은 이내 허둥지둥하는 인원들 사이로 들어갔고, 재빠르게 응급처치를 시행했다. 수백 번은 해본 듯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반장님! 아이고, 언제 오셨습니까?"

반장의 옆에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쌍둥이는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푸근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 역시 푸른색 요원복을 착용한 상태였다.

"아, 김 팀장. 방금 왔습니다. 요로코롬 둘러보니 상황이 크긴 큰 듯합니다그려."

"아이고, 말도 마십쇼. 벌써 세 건째입니다, 세 건! 이 소위 ‘예술가’란 치들이 얻어맞고 쓰러진 채 발견된 것두요."

김 팀장이라고 불린 사내는 격분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데… 옆에 있는 친구들은?"

"아, 대응반 새 멤버요. 이쪽은 유정헌, 그리고 이쪽은 유정원."

차 반장의 소개와 함께 정헌과 정원이 고개를 숙였다. 팀장은 조금 의아한 투로 입을 뗐다.

"아, 그래요. 그런데… 굳이 어깨동무를 하는 이유는… 뭐요? 혹시 자네들이 그러고 있어야 여기 더 끔찍한 게 안 나타나고, 그런 건가?"

"아닙니다, 팀장님." 정헌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저흰 결합쌍생아입니다."

"결합쌍생아?"

"샴쌍둥이 말입니다."

"오…" 팀장은 놀란 얼굴이었다. "그럼 정말로…?"

"예에, 이어져 있습니다. 왜, 옆구리라도 까드릴깝쇼?"

정원이 심드렁한 투로 내뱉었다. 정헌은 말없이 그의 귀를 세게 잡아당겼다.

"아! 야, 이 씨 아퍼!"

"아프라고 했다."

"김 팀장, 현장 사태 브리핑 좀 해 주슈. 듣기로는, 최초 신고가 여기 있던 요주의 인물 중 하나의 휴대폰에서 왔다지?" 차 반장이 대뜸 물었다.

"그렇죠." 팀장이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정확히는 이 작업실의 주인 '팩토리' 최영만의 문하생 중 하나였습니다. 그 작자를 비롯한 여기 모두가 메이저 부류는 아니었지만, 언더계에서는 꽤 인지도가 있었다는데… 아, 녹음 파일이 여기 있구만."

이윽고 팀장은 주머니에서 자기 휴대폰을 꺼내서는, 음성 파일 하나를 불러냈다. 파일 속에서 누군가가 심하게 왜곡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거 반갑수다! 여기 명천구 상평동 이상로 20-1, ROK ArtRoom인데. 허가받지 않은 예술품을 작업 중인 버러지 몇 놈이 쓰러져 있습니다. 빨리 와서 병원에 처박든 감옥에 처박든 하십쇼. 그럼 이만!"

"자수는 아닌 게 확실하고?"

"네. 정신을 차린 범법자 몇을 즉석에서 심문해봤는데, 죄다 광대 분장을 한 어떤 또라이가 습격했다고 하더군요."

"광대라." 차 반장이 얼굴을 찡그렸다. "뭔가 들어본 것 같은데…"

"그 광대 분장을 한 작자가 언급되는 게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팀장은 휴대폰을 다시 집어넣으며 대꾸했다.

"벌써 지난번 10대 크루 사건 중 하나에 이 녀석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게 드러났고, 아까 말했던 다른 두 건도 모두 이 작자의 짓이외다. 지난번 삐에로 살인 사건의 주요 용의자기도 했고. 어디 사는 누구인지, 원."

김 팀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동네에 큰일 한번 날 것 같습니다. 그놈이 저런 걸 그려놨거든요."

그러면서 그는 그때까지 주목을 받지는 못했으나 모두가 알고 있었던,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그래피티를 가리켰다. 정헌과 정원은 입을 벌린 채 벽을 쳐다보았다. 기하학적인 무늬와 함께, 그래피티는 ‘UNCOOL’과 ‘히피카이예이’라는 글자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 동네 사람들이 좋아하진 않겠군요."

정헌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자 반장은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까이 있던 한 대응반원을 불렀다.

"데이터베이스에 ‘광대’란 이름을 쓰거나 이에 관련된 변칙 예술 계통 인물이 있는지 찾아봐."

그리고는 김 팀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혹시 그것 말고는 특별한 사항은 없었습니까? 아 글쎄, 지금 물건 나온 거 보면은 범상치는 않은 것 같던데?"

"하나 있긴 했지요?" 팀장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며칠 전에 실종되었던 어린아이가 발견되었어요."

"살아는 있었습니까?"

"아뇨. 처참하게 죽은 채로 발견되었죠."

팀장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참… 처음에는 그게 시체인지도 몰랐다니까요. 처음에는 무슨 거대한 고깃덩이인 줄 알았다니까. 이 작업실 한 켠에 방수포로 덮여 있었는데, 뭔지도 모르고 열었다가 여러 사람 봉변 봤지."

"그 아이도 광대가 죽였답니까?"

"웬걸요. 정반대였수다. 저 히피족들 말로는 자기네 ‘연습용 재료’였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광대 녀석이 훼방을 놓았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말하며 팀장은 그들에게 한 문서를 건네줬다. 문서는 이리저리 구겨지고 피가 튀어있었다. 차 반장이 눈으로 읽고, 쌍둥이에게 넘겼다.

제목: 프로젝트 《생(生) — 어쩌면 빛보다 빠른》

물자 소요:

공유 물자

13세 미만의 인간

최면제 10ml

외과용 나이프

양 가면 9개

나무 의자 다섯 개

악보 거치대 다섯 개

제1기획

아크릴 물감과 붓

빈 캔버스 세 개

나무 의자 세 개

축산업자 옷 한 벌

제2기획

조각용 목재 네 개

조각용 나이프 네 개

도끼 네 자루

붓 네 자루

공업용 압축기 한 대

제3기획

유대교 제사장 의복 한 벌

천주교 사제 의복 한 벌

불교 승려 의복 한 벌

정장 다섯 벌

늑대 가면 8개

초록: 공연 시작과 동시에 작품의 메인 재료가 될 아이가 단상에 올라올 것이다. 이 아이의 손발은 구속되어 있지 않으나, 사전에 준비된 최면제로 행동을 제어할 것이다. 관객들은 아이를 보며 이후에 준비될 공연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될 것이다.

대략 오 분 뒤, 먼저 바이올린과 비올라 두 대의 사중창이 연주된다. 이들은 대략 삼십 분간 라 단조 풍으로 전체 공연의 주제를 제시한다. 이때 음악에는 사취에 무감각해지게 하는 미약한 정신재해가 사용될 것이다.

이후 음악이 끝나가는 자락에 제1기획이 시도된다. 제1기획의 주제는 ‘인간의 삶’으로, 양 가면을 쓴 네 명의 예술가가 등장한다.
이 중 축산업자 옷을 입은 예술가가 외과용 나이프를 들고 단상 위에 올라가고, 다른 세 예술가는 캔버스 앞에 착석한다. 신호에 따라 축산업자가 아이의 목을 그어버리면, 축산업자가 의도한 대로 아이의 피가 세 예술가의 발치로 흘러올 것이다. 세 예술가는 이 피로 아이의 일생을 그려낼 것이다. 기한은 아이가 완전히 의식을 잃을 때까지로 한다.
왼쪽 자리에 앉은 예술가부터 시계 방향으로 현재의 모습, 청년기의 모습, 노년기의 모습을 그려낼 것이다. 화풍은 해당 예술가의 의향에 전적으로 맡긴다.
유화가 완성된 이후 예술가들은 모두 단상 위에 올라가 아이의 몸을 정돈하고, 관중에게 인사하고 퇴장한다. 퇴장과 함께 짧은 기악곡이 연주된다. 이때부터 콘트라베이스가 연주에 동참한다.

음악이 끝나면 제2기획이 시도된다. 제2기획의 주제는 ‘인간의 죽음’으로, 양 가면을 쓴 네 명의 예술가가 등장한다.
네 예술가는 각기 지정된 자리에 앉아 준비된 목재를 조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소재는 아이의 ‘가능했던 죽음’들로, 그 세부는 예술가들의 의향에 맡긴다.
조각이 끝나면 예술가들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도끼를 들고 아이의 육신을 난도질할 것이다. 이때 흘러나올 피가 이번 기획의 마지막 재료다. 의식을 마친 예술가들은 아이의 피를 자신의 조각품에 바를 것이다.
조각이 모두 완성되고 나면, 예술가들은 모두 단상 위로 올라가 한 켠에 준비되어 있던 압축기에 시신과 잔해를 모두 밀어 넣고 기계를 작동시킨다. 그리고는 관중에게 인사하고 퇴장한다. 퇴장과 함께 기악곡이 연주된다.

음악이 끝나면 제3기획이 시도된다. 제3기획의 주제는 ‘인간의 부활’로, 늑대 가면을 쓴 여덟 명의 예술가가 등장한다.
먼저 유대교 제사장 의복, 사제복, 승려복, 그리고 정장을 입고 성경을 든 차림을 한 예술가가 압축되어 패티처럼 뭉개진 시신으로 다가가 절을 한다. 그리고는 각자의 경전을 펼쳐 읽으면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Are We Cool Yet?을 물을 것이다. 이 행동이 대략 5회 정도 이어졌을 때, 사제 역의 예술가들은 신도 역의 예술가들에게 “허락되었다”라고 말할 것이고, 그때부터 역할의 구분 없이 뭉개진 시신을 먹어치울 것이다. 예술가들은 다 먹고 난 뒤에 일괄적으로 구토할 것인데, 이때 구토물들이 한데 뭉쳐 사람의 형상을 취할 것이고, 이 형상은 환희에 찬 모습으로 “나는 쿨해졌어!”라고 선언한 뒤 소멸할 것이다.
공연이 끝나면 모두 모여 가면을 벗고 관중에게 인사한다. 이때 기악곡이 연주된다.

이 공연은 반복되지 않으며, 남은 기간에는 공연을 촬영한 영상을 부스 안에서 지속적으로 상영할 것이다.

의도: 합동 프로젝트 《생(生) — 어쩌면 빛보다 빠른》은 모든 예술 장르가 모여 화합을 일궈낸 융합 예술 공연이다. 그간 숱한 크루들이 시도해왔던 기법에 우리 크루 역시 발을 내딛게 되어 기쁨이 크다.

이 공연은 인간 의식의 심연에 내재된 실존주의적 자문을 예술적으로 끄집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생애란 궁극적으로 부조리하고 허무하다. 무정형의 길고 검은 손아귀를 뻗쳐오는 저 공(空)을, 우리는 모두 인지하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경우는 바로 인간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린 자라나면서 이 세상의 모순과 빈틈을 강제적으로 주입 당하고,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차가운 허무주의적 담론에 익숙해진다. 결국은 전혀 쿨하지 못한 인간이 되어버린단 것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현실에 대한 변혁 의지도 없는 그런 쭉정이 같은 인간.

우리 크루는 그러한 유년에 대한 애상(哀想)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실존에 대한 고찰을 표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의 이러한 의도가 잘 전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랄 따름이다.

협찬 — M C&D 홍콩 지사, DetErKwAn Corp., 광흥전자, OJM…

정헌은 그 다음이 찣겨져 나간 것을 발견하고 정원과 시선을 교환했다.

"이거, 이 크루원들이 아닌 다른 사람이 만졌나요?"

"그래. 뒤에 보면 그 광대란 작자가 써놓은 글이 있어. 한 번 읽어봐. 정신재해니 밈이니, 뭐 그런 건 전혀 쓰질 않았더라고."

정원이 종이를 뒤집었다. 종이 뒤에는 생각보다 깔끔한 글씨체로 장문의 글이 쓰여 있었다.

방자들과 양복쟁이들에게.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건 아마 내 신고에 충실히 반응해서 달려왔다는 거겠지. 아주 장하다, 우리 민중의 곰팡이들.

거두절미하고,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다. 당신들이 날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걸 알아. 당연한 일이겠지. 벌써 이 모지리들을 세번이나 줘패고 다녔으니.

하지만 그래야 할 일이었어. 당신들이 치우고 있을 그 ‘자칭 예술가’들은 실상 ‘예술 테러리스트’들이야.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술을 무기 삼아 자기들의 가학욕을 채우려고 하는 무시무시한 중2병 찐따들이란 말이지. 앞에 쓰인 글만 봐도 알 수 있을걸? 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미사여구를 좀 봐. 화룡점정은 맨 아래 협찬 목록이지. 씨발, 이 좆같은 작품에도 돈을 쳐바르는 새끼들이 있다는 말이라고.

지금 언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가장 혐오스러운 예술’을 만들어내고 있어. 누가 누가 제일 많이 죽이나. 누가 누가 제일 기괴하게 만드나. 당신들이야 보는 게 돈 많은 머저리들이나 졸졸 따라다니는 소위 네임드 예술가밖에 없겠지만, 메이저하고 언더는 천지 차이야. 언더는, 메이저에서 밀려나고 현실에 대한 분노로 찌들은 새끼들이 모인 언더는, 당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더러운 걸 들고 나올 거야.

여파는 지난 ‘위대한 예술 전쟁’ 때보다 더 크겠지.

난 비록 변칙예술가지만 무관한 사람들이 다치는 꼴은 두고 보고 싶지 않아. 그래서 며칠 뒤에 열릴 전시회에 그놈들이 참가하지 못하게 둘 거야. 제발 날 방해하지 마. 여간한 등신이 아니라면 알아듣겠지.

실례. 너넨 여간한 등신이었지. 엄청난 등신으로 고칠게.

마지막으로, 이건 너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내심 걸려서.

고깃덩이가 되어버린 여자애 이름이 이예림이야. 나이는 7세고 집은 경기도 양평이라고 들었어. 이건 너네가 더 잘 알겠지. 그냥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써둔 거야.

그 아이 부모에게 시체 보여주지 마.

이제 너네가 공표하면 부모도 죽었다는 건 알게 되겠지. 그런데 그런 꼴로 죽은 아이를 목격한다고? 글쎄… 제정신일 수가 있을까? 그들은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살아갈 거야. 애를 그 지경이 되도록 냅두었다는 자책과 함께.

난 휴머니스트는 아니지만 제안 하나만 하자고. 보여주지 마. 당신들이 잘하는 말 지어내기라도 하란 말야. 그왜, 해리포터처럼 ‘시신 중 가장 많이 남은 게 그거였다고’ 같은 말이라도 하던지.

둘 다, 좀 부탁한다.

광대.

"이거 골 때리는 새끼네." 정원이 툴툴거렸다.

확실히 이상한 양반이라고, 정헌도 생각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반장님?"

“광대 녀석 말이냐?”

“예. 자체적으로 자경단 활동을 하려는 모양인데, 제 생각엔 유사시를 대비해서 행적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뭐, 그래야겠지.” 차 반장이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그래도 큰 제재는 필요 없겠는데 말야. 우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겠구만.”

정헌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얼굴을 찡그렸다. 쉽게 이야기하는 차 반장과는 달리, 그의 육감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했다. 마치 앞으로 닥쳐오는 거대한 파도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 왠지 이 일에 아주 강하게 휘말릴 것 같다는 느낌이 그의 뇌리를 강타하고 있었다.

그 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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