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어찌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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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비틀거리며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옷은 평소와 같은 복장으로, 사제답게 무언가 정갈한 기운을 풍겼다. 몇 시간 전이었다면 옷매무새도 그러했을텐데 말이다. 지금은 옷이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졌으며, 군데군데 찢어진 부분도 있었다. 아무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사제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의 모습이었다.

성당 안은 어두웠다. 책에 묘사된 대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달빛은 없었다. 유일하게 보이는 불빛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빛나고 있었다. 고해소에서 불빛이 나오고 있다. 아직 안에 사제가 있다는 말이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사제가 있나?

사제는 고해소로 다가가다가 본능적으로 사제가 앉는 곳으로 다가갔다. 문은 잠겨있었다. 사제는 고개를 들고 다시 불빛을 보았다. 눈을 멀 정도로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결심할 것처럼 옆에 신자가 들어가는 문 앞에 섰다.

사제는 걸음걸이만큼 떨리는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았다. 잠시 심호흡을 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말해야하는 내용을 속으로 다시 되뇌었다. 이제 손은 걸음걸이보다 더 세게 떨렸다. 그래도 문을 그대로 열고 들어갔다. 걸음걸이는 이제 조금만 휘청거렸다.

건너편에서 무언의 공허함이 들어온 이를 몰아세우듯 밀려왔다. 하지만 그런 공허감이 오히려 저 쪽에 사람이 있음을 느끼게 해줬다. 사제는 가만히 앉아 철창 너머가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

아무 말도 없이, 침묵뿐이었다.

사제는 순간 잘못 생각한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자기가 미쳐서 보는 환각이 아닐까 했다. 그렇지만 건너편 존재가 풍기던 공허감은 너무나도 생생했기에, 저 너머에는 자신의 죄를 들어 사할 인간이 있지 않을까란 희망이 자꾸 내려왔다.

“계십니까?”

사제의 대답은 돌고돌아 다시 사제의 귀로 들어갔다.

“말해도 되겠습니까.”

아무 말도 없었지만 사제는 왠지 그래야 하는 기분이 들어서 입을 열었다. 반대편은 이야기에 받아주지 않았지만 사제는 그저 말을 이었다. 그저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에.


“사제라는 게 너무 힘든 직업이라는 생각 안 드십니까? 신앙심을 얻고 너무나도 많은 것을 저버려야 하니까요. 저희에게 있어 ‘사랑’이라는 감정은 저희가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신께 돌려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그렇게 빚어진 존재가 아니죠. 결국 사제란 사제에게만 주어지는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말이 너무 길었군요. 제가 신앙심이 부족해졌다는 걸 고백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거 하나로 뭉뚱그리기엔 그나마 남아있던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질 테지만, 막지는 않을 것 같으니 계속 말하겠습니다.

혹시 미사 볼 때 사람이 가장 없을 날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당신도 사제일 테니 잘 아실 것 같은데요. 마을에 유랑 서커스나 유랑 극단이 오는 날입니다. 신앙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아이들은 미사보다는 공연을 즐기고 싶어 하고, 부모님 중 한 명은 그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정말 신앙심 깊은 사람 빼고는 미사의 인원은 거의 절반이 됩니다. 전 그래도 그들을 딱히 탓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일이 있는 거고, 아이들은 아직 아이들이기 때문이며, 부모들은 부모로서의 도리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이것만큼은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떠난 다음날, 저는 아침에 제 성당 마당을 쓸고 있었습니다. 성당 앞에는 광장이, 광장에는 분수대가 하나 있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제가 있던 마을에 오신 적 있으신가요? 거기엔 남자와 여자가 조각된 조각상이 있죠. 어느 누구도 이게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전 개인적으로 그 둘을 타락하기 전의 아담과 이브로 부르고 있습니다.

아침에 그 분수대를 보니 처음 보는 여자가 분수대에 고인 물을 마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물론 다가가서 말렸습니다. 거기 물이 영 깨끗하지는 않거든요. 여자는 제 나이 또래처럼 보였습니다. 날씬하다는 말도 모자랄 정도로 바싹 마른 몸에, 눈에는 생기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며칠 썩은 시체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녀의 손이 움직이고, 입이 움직여 말을 하면서 저는 살아있는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저희는 거기에서 서로가 누군지에 대한 얘기를 했죠. 여자는 자신이 어제 떠난 유랑 서커스에서 버려졌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유를 묻자, ‘버려질만한 이유가 있었을 뿐’이라고만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태어나자마자 성당 앞에 버려졌다는 애기를 했나요? 탁 트인 광장이라서 부모님의 모습을 봤다는 얘기는 많았지만, 모두 마을 사람도 아니고, 그 뒤로 마을에 나타난 적도 없다는 얘기로 끝났죠. 같이 버려졌다는 동질감이었을까요? 아니면 어려서부터 성당에서 자라서 얻은 남다른 믿음 때문이었을까요? 지금 제가 여기 앉아있는 걸 보면 전자겠네요. 그렇게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껴서 전 그녀에게 괜찮은 여관을 소개시켜 줬고, 사비를 들여 여자가 이곳에 지낼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축복을 내려주길.

저는 정기적으로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이제 겨우 온전한 시체처럼 보일 때까진 매일 찾아갔습니다. 볼에 살이 좀 올라 사람처럼 보일 때까지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찾아갔습니다. 눈에 반쯤 생기가 돌아오고, 몸에 살이 좀 붙을 때까지 일주일에 한 번 찾아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희는 또 애기를 했습니다. 언제까지 머물러도 되냐는 질문에 언제든 머물러도 되지만 제 주머니 사정도 생각해달라는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

몇 주 전에 그녀가 여관 일을 돕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저는 제 일처럼 기뻐해줬습니다. 사제로서, 신 앞에서 함께할 영혼 하나를 구원하였다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어렸을 때 받은 신앙심의 일환 같군요. 그 이후로 전 한 달에 한 번 오거나 다음 방문을 마지막으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생기가 없었지만, 그녀를 마지막으로 일으키는 건 그녀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리석었던 겁니다. 처음부터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임종을 지켜보고 그 후의 길을 축복하면서 오는 길이었습니다. 오는 길에 여관에서 그녀의 방에만 불이 켜져있는 걸 봤습니다. 오랫동안 들리지 않았기에 마침 생각난 김에 들리기로 했습니다.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 씩 올 때 여관 주인이 여분 열쇠를 맡겨둬서 별로 신경은 안 쓰였습니다. 그녀의 방문 앞에서 차분히 노크를 했습니다. 아무런 낌새도 없었습니다. 다시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었습니다.

저는 결국 불안해져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인 건 그녀와 그녀에게 엉킨 낯선 남자, 두 사람의 나체였습니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처음 얼어붙었다가, 여관에 일을 구했다는 그녀의 말이 눈앞의 광경과 부딪쳐 머리를 두들기자 부끄러움이 찾아왔습니다. 느리게 몸을 위아래로 움직이던 그녀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저는 황급히 문을 닫고 빠져나갔습니다. 예비 열쇠는 여관 입구에 던져버렸습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성당으로 뛰어가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이것도 고백해야겠죠?

그녀와 전 이렇게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는 관계의 끈을 느슨하게 풀려고 했지만, 결국 이런 식으로 끊어져버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결국… 그 끈이 끝까지 휘감겨 버렸기에 제가 여기까지 와버렸습니다.

제가 왜 제가 있는 곳의 고해소가 아닌 여기까지 와서 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까지만 해도 전 여기 근처 마을에 있었거든요. 근처에 일이 있어서 그곳에서 묵었습니다. 바로 어제 일이죠. 딱히 묵을 곳이 없어서 여관에서 묵었습니다. 그냥 침대에 누워서 자려고 했죠. 그런데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며칠 전 생각이 나서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문을 열었을 때 그건 사실이 되었습니다.

전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그 짧은 순간에 그녀는 발을 들이밀고 들어왔습니다. 문을 닫고 문까지 잠그고, 아주 철저하게 제 퇴로를 막았습니다. 그 때처럼 멍해진 제 앞에서 그녀는 제 손을 잡았고, 전 빼려고 했지만 그녀는 들어올 때만큼 단호하게, 그리고 빼지 못할 정도로 세게 잡았습니다. 그 상태에서 저희는 말다툼을 했습니다. 그녀는 예상한 일 아니었냐고, 먼저 멀어진 쪽은 그쪽이 아니냐는 말을, 전 이러려고 찾아왔던 게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말싸움의 어려운 점은, 서로의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면 침묵이 시간이 온다는 점이겠죠. 누군가에겐 어색한 공백일 뿐이지만 그녀에게는 하나의 기회였었나 봅니다.

그녀는 제가 이제까지 자신의 눈을 오랫동안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전 기억나는게 없기에 아니라고 했죠. 그녀는 제 얼굴을 잡고 서로 눈을 마주보게 했습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생기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자, 몸이 말을 안 듣기 시작했습니다. 눈에서 퍼져 나오는 느낌이 제 주변을 에워싸서 몰아넣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머리를 서서히 저에게 다가왔고, 전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이마와 이마가 맞닿고, 서로의 눈이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에, 그녀의 입술이 제 입술을 스쳐지나가다가 다시 낚아챘습니다. 그 때부터 더 깊숙이, 더 깊숙이 들어오더니… 마지막에는 저에게 모든 걸 밀어넣었고, 모든 걸 자기 몸에 담아 넣었습니다.

더 자세하게 설명해야 합니까? 제가 이제까지 생각하던 세계는 그녀의 움직임 하나에 뭉뚱그려져 그대로 지워졌습니다. 제가 여기 온 건 단순히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제가 그 순간을 기쁘게, 그리고 즐겁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사람의 호감을 얻고, 그 호감의 결실을 맺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너무나도 이상하고 괴랄해진 이 괴리에 저는 이렇게까지 흘러들어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세계가 무너졌습니다. 그걸 견디지 못해서 저는 여기로 와 모든 걸 무너뜨리고 새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제 신앙심을 되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대답은 없었다.


사제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마지막까지 답은 없었다. 홀가분해지긴 커녕, 속의 공허함만을 더욱 넣어버렸다.

걸어 나가려던 사제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누군가가 나와서 자기 뒤를 잡고 죄를 사해주십사 하지 않을까란 미련이었다.

불이 꺼져있었다.

막상 닥치자 사제는 다시 얼이 빠져 꺼진 불빛을 바라봤다. 그러자 사제가 들어가는 방의 문이 서서히 열렸다.

거기엔 신부와 같은 성직자는 없었다. 원피스를 입은, 마치 죽은 자와 같은 걸음을 걷는 여자가 나왔다. 사제는 그 여자를 잘 알았다. 방금 전 까지 자기의 모든 걸 가져갔던 그 여자.

“로잘리아…”

사제는 움직이지 못했다. 여자가 서서히 다가오자 뒷걸음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을 통과하지 못했다. 기어서라도 나가고 싶었지만 몸은 응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가 허락하지 않았다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여자는 사제의 턱을 잡았다. 몸은 사람의 몸이었지만 눈은 처음 만났을 때, 생기가 없었던 그 눈이었다. 여자는 그 상태로 처음엔 이마에, 그리고 입술에, 그리고 목덜미에 키스했다.

그리고 입술의 온기가 가시지 않은 사제를 남기고 먼지로 흩어져 사라졌다.

사제는 다시 공허감을 느꼈다. 이제는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공허감이었다. 사제는 출구를 쳐다보다가, 고해소를 쳐다봤다. 사제가 들어가는 입구가 열려있었다. 문이 환영하듯 앞뒤로 흔들렸고, 불빛도 거기에 맞춰 깜빡였다.

‘보속: 다른 이들과 관계 맺지 말 것이며, 앞으로 모든 관계는 스쳐 지나갈 것이다.’

기어나가려는 출구를 뒤로 하고 고해소를 향해 사제는 기어갔다. 가빠지는 숨을 딛고 겨우 일어서서 문을 닫았다. 불이 켜지기만을 기다렸다.

“아멘”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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