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 뒤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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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요.

이건 뭐지?

정신을 차려봐요.

여기는 어디지?

어딘가의 틈이에요.

여기에 얼마나 있었지?

그리 오래 지나진 않았어요. 제가 아는 한에는.

왜 이리 어둡지?

눈을 감고 계시거든요.

내가 눈을 왜 감고 있지?

눈 뜨기가 두려워서요.

……

떠보실래요?

아니야, 그래도 무서워.

무섭다뇨, 당신을 드려움을 모르던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아니야. 여긴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아. 텅 빈 것 같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여기는 비었어요. 당신의 생각으로 채워진 곳이거든요.

뭐로 채워졌기에 이리 외롭지?

그러니까 눈을 떠봐요.

싫어.

그러지 말고 떠봐요. 당신은 눈을 뜬 게 어울려.


왜 아무 말도 안하시나요?

감탄할 말도 잊어버려서 그래.

너무 아름다우시나요?

우주는 분명 아름다우리라 생각을 했지. 하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어.

은근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별들이란 참 아름답죠.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우주야…

당연하죠. 여긴 당신의 생각으로 만들어낸 아무도 못 본 우주거든요. 미래에 저희가 찾아낼 답이라고도 할 수 있죠.

내가 생각했던 답이.

당신은 항상 미지에 대한 답을 찾아왔죠.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더 큰 답을 찾을 수가 있어요.

어디로 가야 하지? 이미 도착한건가?

아뇨, 여긴 찰나의 여정일 뿐. 당신은 따라가야 할 곳으로 가야죠.

별과 은하의 향연. 그 사이 전기와 불도 없었던 인류를 위한 빛. 그 공간 너머에 이질적인 하얀 문이 스르륵 열렸다.

가면 무엇을 얻지?

당신이 원하던 답을 찾을 기회요.

대가는?

당신의 전부였던 거요.

마지막 하나만 묻고 싶어.

뭔가요?

넌 누구지? 네 목소리만 들리고 형체가 보이지 않아.

당신이 연지에게 처음 데이트 신청을 했을 때를 생각해봐요. 속으로 뭐라고 되뇌었죠?

용기Mut

어서 가요. 얼른 돌아오지는 못하겠네요.


흰색 문이 점점 커지면서 우주를 차지하더니, 우주는 이내 익숙한 사무실의 광경으로 돌아왔다. 귀에 들리던 익숙한 목소리는 잦아들면서 이내 머리 깊은 곳으로 사그라들었다.

페테르 린제 브릴러 박사는 이렇게 두번째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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