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돌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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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건물 안에서는 발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이리 저리 흩어져서 불규칙하게 울리던 발소리들은 점점 한 장소로 모이면서 점차 규칙적으로 변해갔다. 마침내 발소리들이 모두 한 곳에 모였고 모두 일제히 멈추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무대에 조명이 하나 켜졌다.

무대 위에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서있었다. 나름 신경 써서 입은 것인지 목에 두른 넥타이부터 발에 신은 구두까지 맵시가 아주 뛰어났다. 왼쪽 어께에서부터 흘러내린 핏자국만 없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남자의 오른손에는 지휘봉이 하나 들려있었다.

“여러분, 오늘 밤, 저희 한낮의 떡갈나무 유랑극단의, 마지막 공연에 찾아오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대의 나머지 조명들이 일제히 켜졌다. 조명 아래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하프가 반짝였으며 그 뒤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트럼펫, 트롬본, 튜바, 그리고 북과 팀파니가 아름답게 늘어져있었다. 하지만 무대 위에 사람이라고는 앞서 말한 남자 한 명밖에 없었다. 무대의 조명이 흐릿하게 퍼진 관람석 자리에서는 화약과 기름 냄새가 피어올랐다.

“오늘,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곡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레퀴엠 D단조 K.626입니다.”

남자는 오른손에 든 지휘봉을 들어 올렸다. 왼손도 들어 올리고 싶었던 모양이었지만 왼팔이 움직이지 않아 포기했다. 그리고 천천히, 지휘봉을 움직였다.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이. 조용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연주가 시작되었다.

관람석에 서있던 사람들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살을 찢을 것만 같은 쇳소리가 울려 퍼졌고 실제로도 무대 위에 남자의 살을 찢어내고 있었다. 쏟아지는 탄피가 관람석 바닥을 더럽혔고 매캐한 화약 내음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연주는 끝나지 않았다. 남자는 근육을 파고든 납탄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지휘봉을 더욱 힘차게 휘둘렸고 악기들도 그에 발맞춰 쇳소리를 덮으려는 듯 힘차게 연주하였다.

쇳소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탄피와 화약 내음도 끊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피를 흘렸다. 내장과 뇌수 또한 흘렸다. 오른팔은 힘줄 몇 가닥으로 몸뚱이에 겨우 붙어있었고 왼팔은 진작 저 멀리 떨어져나갔다. 하지만, 지휘는 멈추지 않았다. 대부분의 악기가 부서지고 불이 붙었지만 연주도 멈추지 않았다. 끊이지 않고 무대 위에서 울려 퍼졌다.

한참이 지나자 쇳소리가 무대를 뒤덮었다. 현악기는 모든 줄이 끊어졌고 관악기는 소리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졌으며 타악기는 모조리 찢어져버렸다. 남자는 납탄과 그을음에 뒤덮인 나머지 살점과 핏자국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무대 위에서는 그저 지방과 나무가 타는 눈 아픈 냄새만이 가득 차있었다.

하지만 음악만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계속, 무대를 넘어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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