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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공학 입문
작가: thd-glasses
이미지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ale_mudang.jpg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ark_Jeong_Young_%EB%B0%95%EC%A0%95%EC%98%81_scientist_at_KAIST.jpg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D%8E%98%EB%A3%A8_%EC%9C%A1%EA%B5%B0%EC%B0%B8%EB%AA%A8%EC%B4%9D%EC%9E%A5_(7445553304).jpg
- https://pixabay.com/photos/791050/
- http://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100100500196800000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SA_7.62mm_143gr_AP.png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arge_Plasma_Device_Interior_2020.jpg
기타 이미지는 thd-glasses가 제작 및 편집했음.
…아, 물리학 교실 아닙니다. 걱정 마세요.
안녕하십니까, 무속학부 기성진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비물질적인 원천으로부터 유용한 작용을 만들어내는 기술 중 하나를 학습하기 위해 이 강의에 참석하셨을 겁니다. 무속공학은 현대 초상과학기술의 대표격인 기적학이나 흄 물리학, 귀기공학 등에 비해 다소 젊은 학문입니다. 많은 부분이 아직 이론보다 경험에 의존하고 있고, 현재의 이론체계로 실제 무속 의식과 작용의 모든 부분을 설명하기엔 어려움이 있죠.
하지만 그런 만큼 앞으로 탐구해나가야 할 잠재성이 무궁무진한 학문이기도 합니다. 실용 분야에선 현재의 성취로도 상당한 응용기술이 개발되어 있고요. 저는 오늘 여러분께 현재의 무속공학이 현상을 바라보는 가장 기초적인 틀을 설명드림으로써 앞으로의 무속공학 연구, 또는 개발된 무속공학 제품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미 공학 교육을 이수한 분도 계시고, 수학과는 조금 거리가 먼 분야에서 활동하던 분도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가급적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만… 방금 칠판에 적은 이것까지는 일단 여러분이 이해를 하셨으면 합니다.
아, 설명을 해주면 좋으시겠다고요. 알겠습니다.
첫 번째 식은 뭘까요? 네, 뉴턴의 운동 법칙 제2법칙이죠. "힘을 받은 물체는 운동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물리적 기호로 표시한 게 바로 이 운동방정식입니다. 거시세계에서 거의 모든 운동을 설명할 때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등식이죠.
$F$ 는 힘 — 즉 물체를 움직이려는 요인,
$m$ 은 질량 — 즉 물체가 갖는 관성의 크기,
$v$ 는 속도 — 즉 물체에 발생한 운동입니다.
이때 단위시간 동안 운동이 얼마나 변화했느냐를 속도의 변화량인 가속도 $a$로 얻는 거고요. 그런데 사실 이 식에서 힘 $F$ 는 물체에 작용하는 모든 힘을 합한 합력, 알짜힘, Σ$F$ 입니다. 여기서 일반적인 직선 운동에서 물체에 작용하는 가장 큰 두 힘을 분리해서 써보겠습니다.
하나는 운동을 시키려는 힘입니다. 아까까지 사용하던 Σ$F$ 에서 분리해낸 이 "가해진 힘"을 $F$ 로 재정의하겠습니다.
하나는 주변 환경이 그 운동을 방해하면서 발생하는 저항, 즉 마찰력입니다. 뭐 점성마찰, 정지마찰, 쿨롱마찰, 운동마찰 등 실제 물체에서 발생하는 마찰은 너무 많지만, 여기선 우리가 원하고 갖고 있는 물리량과 연관되는 것만 선택해서 아주 간략하게 $Bv$, 점성마찰계수와 속도의 곱으로 나타내겠습니다.
마찰력은 당연히 물체가 움직이려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나타나며, 이를 수학적으로 나타낼 땐 부호를 반대로 적어서 나타냅니다. Σ$F = F - Bv$ 라는 거죠. 그리고 맨 처음 식에서 가속도 $a$ 는 속도의 시간에 대한 변화량, 즉 미분이죠. 이를 다시 완성된 식으로 적으면…
(2)이런 미분방정식이 됩니다.
…아, 공학수학 안 할 겁니다. 걱정 마시고 앉아 계세요. 이 식을 굳이 적은 건 나중에 제가 보여드릴 다른 방정식들과 구조와 원리와 얼마나 똑같은지 눈으로 보여드리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캐치하셔야 하는 것은, 물체의 직선 운동은 크게 네 가지 요소로 분리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운동을 일으키려는 요인, 힘($F$),
운동을 방해하는 환경, 마찰($B$),
운동을 유지하려는 성질, 관성($m$),
그리고 최종적으로 발생하는 운동($v$).
다시 처음에 썼던 두 공식으로 돌아가봅시다. 뒤의 식은 뭐죠? 그렇죠, 옴의 법칙입니다. 운동방정식 때처럼 한마디로 정리하면 "전압은 전류를 만든다"가 핵심이죠. 이때 회로의 저항이 클수록 흐르는 전류도 줄어들고요. 그런데 이때, 평범한 루프 하나짜리 회로에 코일 소자를 하나 넣어 RL회로를 만든다고 가정해봅시다. 코일은 전자기 유도에 의해 전류의 급격한 변화를 감쇠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따라서 단일 루프에 대해 키르히호프의 전압법칙으로부터…
(4)이런 방정식이 도출됩니다.
어때요, 눈에 익지요? 기호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일계선형미분방정식입니다. 앞서 살펴본 직선운동의 수학적 모델링은 마찰의 수학적 표현을 단순화한 탓에 어느 정도 오차가 나오지만, 회로이론에선 거의 완벽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네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죠. 심지어 각각이 의미하는 바도 똑같습니다. 원래 교류로 나타내야 하지만, 여러분께 익숙할 직류 기호로 그려보면…
전하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전위차, 전압($V$),
전하의 흐름을 방해하는 회로 환경, 저항($R$),
전하의 흐름을 유지하려는 코일의 성질, 인덕턴스($L$),
그리고 발생하는 전하의 흐름, 전류($i$).
이래서 자연은 수학의 언어로 쓰여있다고 하는 겁니다. 여기에 회전운동을 나타내는 $τ -Bω=Jω'$ 까지 똑같은 형태지만, 근본적으로 직선운동과 별 다르지 않으므로 동어반복은 생략하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그래서 그 신기한 사실이 무속공학과 무슨 관련이 있지?" 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무속공학에서 나타나는 수학적 모델도 똑같습니다. 정확히는 똑같은 모델을 적용해서 현상을 서술하는데 성공했다는 겁니다. 1970년 뇌-홍 연구팀이 아키바 방사선량을 이용하여 처음 실증한 이래로, 지금까지 측정 가능했던 모든 무속공학 시스템은 이 모델을 만족해왔습니다.
(5)이 식을 도식으로 나타내어 각 요소들의 물리적 의미를 해석해보면 이렇게 되는데요…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힘, 신통력($D$).
작용에 방해가 되는 환경, 매개저항($ρ$).
작용이 유지되고자 하는 성질, 기적관성($m_θ$).
그리고 최종적으로 발생하는 무속공학적 작용($μ$).
이러한 수학적 모델이 의미하는 바는 다른 경우와 같습니다. 신통력이 클수록, 매개저항이 작을수록, 초기에 기적관성이 작을수록 — 무속공학적 작용은 강하고 빠르게 일어납니다. 더 축약해서 한 문장으로 만들면, "통제된 신통력은 작용을 일으킨다"가 되겠군요.
이렇게 들으면 대충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은 것도, 아리송한 것도 있으시겠죠. 자, 백 번을 설명하는 것보다 실제 사례를 말씀드리는게 제일 이해가 잘 되는 법이죠. 예시들을 통해서 하나 하나 뜯어봅시다.
영상 자료를 보시면, 이것은 실제 강신무 무속인이 굿을 하며 "귀신 들린" 병자를 치료하는 모습입니다. 예… 황당하실 수도 있습니다. 굿은 미신적 행동이고 박수·무당은 전통무형문화 계승자 내지는 주술적 사기꾼이며 굿의 효과는 공연문화 보존과 심리적 플라시보 효과 뿐이라는게 대체로 합리적인 시각이니까요. 문제는, 안타깝게도 무속문화 중 특수한 일부분은 현대 정상과학에서 해명을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무속은 우리 초상과학의 손에 떠밀려왔죠.
우리도 그 원리와 근원은 여전히 잘 모릅니다. 그저 분류하고 경향성을 분석해보니 희한하게 잘 들어맞는 수학적 모델을 찾아내게 되었고, 그것으로 현상을 서술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앞뒤 들어맞는 설명이 발견되기 전에 계산 가능한 식만 알아내는 일은 물리학에 드물지 않게 있는 일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무속이 물리학적 현상이라는 가설에 기댄 채 계산식이라도 열심히 뽑아낸 것입니다.
자, 각설하고. 아까까지의 이 박수 영상에 필터를 하나 씌우겠습니다. 이것은 흄-아키바 연구를 위해 개발된 흄장 시각화 필터를 이용해 굿을 촬영한 결과물입니다. 박수가 전형적인 외인성 이중매개 신통력기관으로 동작하는 모습이 잘 찍혔군요. 보시다시피 이 무속인은 어디선가 흘러들어오는 힘을 받아서 환자에게 쏘아주고 있는데요. 무구(巫具) 중에서 신칼은 신의 위엄을 나타내는 도검을 이용해 신의 힘을 빌려온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데, 이 경우 실제로 신의 힘을 받아들이는 통로로 신칼을 활용하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신에게서 빌려오는 힘이기 때문에 신통력이라고 명명되었죠. 그리고 받아들인 신통력을 방울을 통해 환자에 보내는 것으로 굿이 진행됩니다.
이 상황에서 박수와 환자의 몸이라는 환경에서 무속작용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도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왼쪽이 무속인, 오른쪽이 환자, 그리고 맨 오른쪽은 환자에게 머무르고 있는 영귀를… 보기 편하게 환자와 분리해서 그려보겠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신통력이, 무당과 환자의 몸을 거쳐서, 영귀에게 작용해 물리치는 겁니다. 이때 신통력이 거쳐가는 두 매개에서 매개저항이, 작용을 받는 영귀에게서 기적관성이 발생하게 되지요.
결론적으로 무속작용을 벌이는 근본적인 힘은 신통력이고, 그 원천은 초자연적 존재자들이죠. 여기서는 현장의 용어를 그대로 인용해서 '신'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당연히 강한 신일수록, 신이 빌려준 힘이 클수록, 기적작용은 강해집니다. 따라서 모시는 신이 강할수록, 그 신과의 연결성이 강할수록 더 "용한" 무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들은 기본적으로 적극적이지 않아서 대개는 자의로 일을 막 벌이지를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신의 힘을 빌리고자 한다면 그들과 통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죠. 무당은 전수받거나 깨우친 기술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몸을 신통력을 받아 흐르게 하기에 적합하도록 만듭니다. 더구나 무당은 신통력이 잘 흘러서 영귀에 직접 작용할 수 있도록 환자의 상태도 조율해서 매개저항을 최소화시키죠. 환자로 하여금 치성을 드리게 하고, 악기를 이용해 흄 진동을 공명시키고, 춤을 추며 회전력을 만드는 등 전통적으로 매개저항을 줄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전수되고 있습니다.

중부지역 강신무들이 입는 울긋불긋한 무복이 사실 군복에서 비롯했다는 걸 아십니까? 이것은 관의 위엄을 빌려 잡귀를 주눅들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무속공학적으로 해석하면 이는 작용의 대상인 악귀의 기적관성을 약화시켜, 굿의 작용을 더 수월하게 일으키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효과가 있습니다! 현대의 재단 무속공학자들은 그러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 현대 군복을 착용하기도 합니다. 저는 육군 병장 만기제대에 민방위도 끝났지만, 이런 이유로 지금 육군 장교 정복을 입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더해서 무속인이 모시는 신과 다루려는 영귀의 기질 상성에 따라서도 기적저항이 달라집니다. 이것을 수치화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 일반유도식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실제 조합별로 기적저항이 대략 얼마나 변화하는지 통계적으로 파악하고 있을 뿐입니다.
살펴보면서 느끼신 게 있을 겁니다. 무속공학 방정식에서 가장 중요한 팩터는 물론 신통력이지만, 그것을 포함한 모든 변수는 거의 전적으로 무속인 술자의 기량에 달려 있다는 것이죠. 어떤 신을 모시고 있는지, 자신과 대상자의 신체를 얼마나 잘 컨트롤해서 신통력의 길을 열었는지, 영귀에 맞는 조치를 취하고 기질 상성을 잘 따져서 영귀의 기적저항을 최소화했는지에 따라 굿의 효능은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속은 수행하는 무당을 중심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고, 그 결과가 바로 "신통력기관" 모델입니다.
방금 환자를 치료하는 무당을 "외인성 이중매개 신통력기관"이라 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이 예시에서 무당은 신통력의 근원이 아닙니다. 모시는 신에게서 신통력을 받아오지요. 따라서 "외인성" 기관입니다. 그리고 무당 자신과 환자라는 두 매개를 통해서 신통력을 실현시킵니다. 따라서 "이중매개" 기관입니다.
용어만 줄줄 늘어놓지 말고 그림과 비유로 설명해볼까요?
이것은 가장 단순한 무속작용 모델 중 하나인 "외인성 단일매개 신통력기관"입니다. 무속인 본인만을 매개로 삼아, 술자와 작용대상이 직접 상호작용하는 모델이죠. 기관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무속작용을 일으키는 무당의 시스템을 동력기관에 비유할 수 있기 때문이죠. 증기기관은 외부에서 가열한 수증기 분자의 운동에너지를 받아들여 터빈축의 회전 운동에너지로 집속해 작업장치에 전달하죠. 그래서 외연기관이라고 부릅니다. 외인성 신통력기관도 외부로부터 신통력을 받아들여 활용 가능하도록 수속하고, 그로써 대상에 무속작용을 일으킵니다.
그럼 매개를 늘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맨 처음 예시에서 살펴봤던 "외인성 이중매개 신통력기관"을 살펴봅시다.
이 모델은 기어박스를 거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축의 회전운동은 기어박스를 거치면서 RPM이나 토크 같은 특성이 변화하고, 10% 안팎의 에너지를 손실합니다. 신통력기관에서도 매개가 늘어나면 증가한 매개저항 만큼 최종 작용으로 향하는 신통력이 더 감쇠되지요. 그럼에도 이중매개 기관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어박스를 쓰면 무식한 터빈 출력을 우리가 유용하게 쓸 수 있는 RPM과 토크로 바꿀 수 있듯이, 매개를 늘리는 것도 실용적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다루려는 대상에 직접 접근할 수 없을 때죠. 사람이나 사물에 깃들어 있다면 그 사람/사물을 추가 매개로 삼아 손상을 주지 않고 대상에만 무속작용을 가할 수 있습니다. 거리가 너무 먼 경우에도 경유지 삼아 매개를 설정하면 제한적인 작용이 가능합니다.
기계적 엔진과 달리 신통력기관은 추가 매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상황을 잘 살펴서 가장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앞서 살펴본 환자의 치료를 위한 굿은 환자가 직접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 안의 영귀를 공격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환자를 제대로 매개화해서 무속작용을 오롯이 영귀에만 집중시켜야 안전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중매개 기관을 설정하는 것이죠.
학구열이 있는 학생들을 모시고 있어서 기쁘군요. 계속 이어갑시다.
여기서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면, 우리는 방금 신통력이 무당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외인성" 기관으로 명명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신통력을 밖에서 빌려오기만 한다면 분류할 필요가 없겠죠? 세상에는 신통력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존재들이 실존합니다. 이들이 바로 무속적 관점에서의 "신", 즉 "내재성 신통력기관"입니다.
자 어떨까요. 외인성은 외연기관이었으니, 내재성은 내연기관으로 비유해볼까요?
위 이미지의 4기통 엔진은 각각의 실린더마다 연소실이 있고, 그곳에서 연료를 점화시켜서 피스톤을 밀어내는 것으로 축에 회전력을 발생시킵니다. 증기 같은 외력이 필요 없는 것이죠. 마치 내재성 신통력기관이 다른 원천을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가 신통력의 원천이 되어 무속작용을 일으킬 수 있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내재성 신통력기관도 여러 매개를 활용할 수 있죠. 많은 경우 외인성 기관이 끌어올 수 있는 신통력보다 훨씬 강한 신통력을 뿜어내기 때문에 다중매개 기관을 구성하더라도 강력하고 정교한 무속작용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무속공학 입장에선 정말 꿈과 같은 존재지만, 인위적으로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이 아쉬울 뿐입니다.
내재성 신통력기관에 대한 연구 대부분은 제02K기지의 SCP-987-KO를 동원한 실험들을 통해 진척되었습니다. 987-KO는 더구나 실험적 용도에 한해서라면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신통력 원천이었기 때문에, 대상의 협조를 통해서 우리 전문가들이 이론적으로 규명하거나 고안한 신통력기관 모델을 실제로 구현해서 실험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죠. 그러한 성과나, 무속공학 장비들에 사용된 모델, 또는 실제 사건에서 관찰된 복합모델들을 몇 개만 더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것은 "전환식 저장매개 신통력기관"입니다. 그래픽은 외인성으로 해뒀습니다만, 신통력 원천에 무관하게 성립 가능한 일종의 단일매개 기관이죠. 어! 그거 이상하군요. 그림을 보면 분명 술자와 작용 사이에 매개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데 잘 보면, 술자에게서 다음 대상으로 가는 화살표에 이미 기적작용이 일어났다는 표시가 되어 있네요? 그렇습니다. 이 술자에 한해서는 이미 이 빨간색 화살표까지의 외인성 단일매개 신통력기관이 완결되었고, 주황색으로 표시된 이 객체는 술자의 무속작용을 받는 대상입니다. 그와 동시에 그 무속작용을 저장 가능한 형태의 신통력으로 전환해서 담아두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바로 부적입니다.
이렇게 올바르게 제작된 전환식 저장매개 신통력기관은, 이후에 술자 본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저장된 신통력기관을 작동시켜서 무속작용을 벌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델이 성립함으로써 우리는 극소수의 무속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사용할 수 있는 무속공학 장비와 무기들을 만들 수 있게 되었죠. 부적과 사인검 같은 전통적인 무기 뿐만 아니라 사인탄, 시작형 M장 생성기, SCP-1000-KO 등 다양한 저장매개 기관이 재단 최일선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엔진의 회전 운동에너지를 발전기를 통해 전기에너지로 바꾼다거나 배터리에 충전한다거나 하는 과정에서 에너지의 형태가 바뀌고 효율이 감소하는 것처럼, 전환식 저장매개 기관은 실현할 수 있는 기적작용의 종류가 극히 제한되고 신통력도 크게 약화됩니다. 대부분의 저장매개 신통력기관은 다른 무속적 에너지나 심령독립체의 활동을 방해하고 해체시키는 방향으로만 작동하므로, 이런 용도 외의 무속작용이 필요하다면 전문 무속공학자를 직접 대동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건 어떨까요? 잘 전환시켜둔 저장매개 기관을, 스스로 신통력기관인 무속인이 직접 들고 활용한다면?
그게 바로 "비전환식 저장매개 신통력기관"입니다. 술자가 사용하는 신통력에 전환식 저장매개 기관에 담겨있는 신통력을 더해서 더 강력한 무속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이 모델의 목적이죠. 전환식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최종 작용의 성질이 저장매개가 아닌 술자 쪽의 신통력 특성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인검을 사용한다고 할 때, 보통 인원은 대상을 쳐내거나 간혹 베는 정도의 활용만이 가능하다면, 무속 전문가는 능동적인 거부장을 펼치거나 상처에 치유력을 불어넣는 식으로 술자의 본래 무속술 특성에 따른 응용법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모델이 성립하기 위해선, 술자와 저장매개가 거의 단일매개로 기능할 수 있을 만큼 근접해있어야만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투척용 부적이나 사인탄 등 저장매개가 술자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하는 도구는 비전환식 기관으로 활용하기가 매우 어렵죠. SCP-987-KO같은 강력한 내재성 기관이라면 어느 정도의 물리적 거리에서 나오는 매개저항은 뚫듯이 무시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무당에겐 불가능합니다.
지금까지는 하나의 술자가 수행할 수 있는 신통력기관들을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각각 하나의 신통력기관인 무당들의 협력을 통해 더 강력한 결합매개 신통력기관을 구성할 수 있거든요. 참고로 미리 말씀드리자면 아래 모델들도 참여하는 술자들이 외인성이냐 내재성이냐에 구애받지 않고 구성 가능합니다. 그림은 예시일 뿐이니 착오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병렬식 결합매개 신통력기관"입니다. 둘 이상의 술자가 하나의 매개를 공유하여 각각 이중매개 신통력기관을 구성하듯이 신통력을 투입함으로써, 최종적으로 하나의 결합된 무속작용을 일으키는 모델이지요. 이때 최종 작용을 일으키는 신통력은 두 술자가 투입한 것이 합쳐져서 구성된 완전히 새로운 단일 신통력입니다. 이 때문에 모든 신통력을 병렬식 기관으로 병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두 술자의 신통력 특성이 어느 정도 유사해야 합니다.
신통력 특성이 합치하는 다수의 술자와 이들 모두가 투입하는 신통력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매개만 갖춰진다면, 병렬식 결합매개 신통력기관은 이론적으로 최대의 무속작용을 출력할 수 있는 모델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뒤이어 소개할 직렬식 모델에 비해 동수 대비 실질 최대 출력도 더 높은 편이죠.
어째서인지 비교해보기 위해 "직렬식 결합매개 신통력기관"도 살펴보도록 합시다.
직렬식은 술자 중 한명이 최종매개의 역할을 합니다. 즉 술자가 다른 술자에게 직접 신통력을 투입하고, 이렇게 투입한 신통력이 해당 술자가 사용하는 신통력과 술자 안에서 결합되어 작용으로 출력되는 구조입니다. $D_1$ 측 술자에게는 이중매개, $D_2$ 측 술자에게는 단일매개와 같이 동작한다는 점에서 제일 특이한 모델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직렬식도 병렬식과 마찬가지로 참여하는 술자들의 신통력을 결합해서 증대시킬 수 있고, 유사한 성질의 신통력을 통합해 새로운 단일 신통력으로 만들어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앞서 말씀드렸듯 최대 신통력 투입량이 더 작다는 것인데, 최종 매개가 인간인 무당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대량의 신통력을 버틸 수 있는 별도의 매개용 도구가 없더라도 강력한 결합매개 기관을 사용할 수 있다는 대체 불가능한 장점이 있죠. 때문에 재단 무속공학자들은 위급 상황에 직렬 결합을 시도해야 할 때를 대비하여 철저한 훈련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자, 먼 길을 왔습니다. 이론적 배경과 다양한 일반화 모델을 살펴봤으니 이제 여러분이 실제로 현장에서 접하게 될 무속공학의 실용화 및 응용 사례들을 다룰 순서입니다. 차례로 각 장비 및 무기의 구성과 작동원리를 설명하고, 실제 작동까지 시연하는 것으로 진행할 겁니다. 처음 순서론 무엇이 좋을까요? …물을 것도 없겠죠? 거두절미하고 모두가 기대하셨을 사인무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접할 첫 사인검이라 생각하고, 일부러 실전용 말고 유물 형태의 레플리카를 가져왔습니다. 실전용은 좀 더 쥐기 쉬운 현대식 칼자루를 사용하는데 아무래도 멋은 덜하죠. 레플리카라곤 했지만 이것도 2010년 경인년에 제작한 정식 사인검입니다.
운철을 사용하는 귀하디 귀하신 SCP-1000-KO와 달리 일반철을 사용했고, 2010년 2월 21일 새벽에 타조해서 순양의 기운을 깃들게 함으로써 전환식 저장매개 신통력기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별자리와 시구를 새겨넣어 기관의 신통력 출력을 안정화시키고 작동 양식을 지정해줬기 때문에, 비전문가도 올바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이러한 사인무기의 특징입니다.
그러면 시연을 해볼 건데, 이런 기회에 직접 써보지 않으면 섭하겠죠? 지원자를 받겠습니다. …네, 거기 대원님, 좋습니다. 나와서 검을 받아주세요. 이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착용해주시고요. 그리고 여러분은 앞에 있는 모니터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흄-아키바 응용 M장 시각화 장비로 강단을 촬영해서 어떤 작용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여드릴 겁니다.
이것은 악귀 파편이 봉인된 부적입니다. 화면을 통해 보이다시피 제가 조금 기를 밀어주면… 이렇게 부적 밖으로 비대하게 부풀어오르죠. 짙은 검붉은색으로 보이죠? 자, 이제 사인검으로 이 녀석을 베어봅시다. 부적 말고 악귀만요. …슥삭! 완벽하게 악귀를 베어냈고, 그 결과 칼에 닿지도 않은 부적까지 두동강이 났습니다. 이렇듯 잘 작동한 무속공학적 작용은 물리적 세계에 피드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여러분께 사례로 보여드리기 너무 좋은 세팅이라서 이렇게 오리엔테이션마다 실제 시범으로 보여드리고 있죠. 잘 하셨습니다. 모두 박수로 화답해주세요. 검이랑 장비는 반납해주시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사인탄입니다. 사인검과 마찬가지로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단조한 철을 탄심으로 삼아 구리를 덧씌워 탄자로 완성하는데, 제작일시가 한정되고 공정이 복잡하다보니 탄환이라는 용도의 수요에 비해 양산하기가 매우 까다로워요. 이 때문에 인년이 아닌 해에도 삼인탄을 제작하고 있으며 여러분이 현장에서 주로 쓰게 될 탄종도 보통은 삼인탄일 겁니다. 오늘 가지고 나온 이건 2022년에 제작된 사인탄 실탄이지만, 말씀드렸듯이 귀한 물건이라 실제 발사는 생략하겠습니다.
사인탄도 사인검과 마찬가지로 전환식 저장매개 신통력기관입니다. 다만 발사 후 날아가서 대상을 맞추고 작용하는 특성상, 술자가 비전환식 기관으로 추가적인 작용을 컨트롤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사인검보다 사용법이 제한됩니다. 물론 비전문가가 무속적 제압대상을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다는 장점이 그정도 단점은 상쇄하고도 남죠. 여기서 재밌는 점은 사인탄이 위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인데요… 강선을 거치면서 회전하게 된 사인탄은 마치 제자리에서 돌며 춤을 추는 무당처럼 회전력을 통해 매개저항을 줄이게 됩니다. 이런 절묘한 작용 덕분에 검에 비해 사인철 함량도 유효 각인도 적은데도 필요한 무속작용 위력을 확보할 수 있답니다.
다만 신통력을 충분히 저장하기 위해선 철 탄자를 소형화하기 곤란해서, 탄환 구경을 일정 이상 줄일 수 없다는 것은 유의하셔야 합니다. 위력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 구경은 권총탄 기준 10mm, 소총탄 기준 7mm로 판단되며, 이에 따라 사인탄은 주로 .45 ACP 탄과 7.62mm 나토탄 규격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나온 건 7.62mm 소총탄이에요. 탄자가 거뭇하고 탄두에는 탄종 표식으로 보라색이 칠해져 있는 걸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사인탄 또는 삼인탄을 사용할 때 꼭 주의하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탄은 절대로 영적 에너지만 공기포처럼 쏴대는 게 아닙니다! 질량이 있는 실제 금속 탄자가 총기로부터 발사되어 날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이 탄으로 공격할 상대는 물리적 존재일 수도 있지만 실체가 없는 심령독립체 같은 것일 수도 있죠. 이 경우에도 사인탄은 대상과 만나 신통력기관으로 제대로 작동하지만, 그런 후에 실물 탄자가 역할을 다 하고 증발해주지는 않습니다. 신통력을 소모한 탄은 그대로 계속 날아가서 사물에 부딪힌다는 겁니다. 심령독립체 등을 상대로 이 탄을 사용할 땐 대상의 뒤에 무엇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자칫 동료나 민간인에게 맞으면 일이 쉽게는 안 끝나겠죠.
마지막으로 보여드릴 것은 시작형 M장 생성기입니다. 무속공학에서 일정 영역에 작용을 유지하는 것은 엄청난 신통력이 소모되는 고난이도의 과제입니다. 미터 이상의 반경, 분 이상의 지속시간을 갖는 M장은 오직 뛰어난 무속공학 전문가만이 — 그것도 미리 갖춰둔 다수의 저장매개 기관을 이용해서만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SCP-987-KO가 신통력을 직접 주입한 저장매개 장비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 장비에는 앞서 보여드린 사인검의 150배가 넘는 전환신통력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거의 반영구적으로 유지되는 사인검과 달리, 역장을 펼쳐가며 신통력을 소비하는 장비 특성상 가동 시간은 제약됩니다. 가동하면 최대 30분간 반경 15m의 M장을 펼칠 수 있죠. 사용하는 입장에서 결코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최악의 순간 무속공학이 제공할 수 있는 최후의 방어선으로는 충분히 유의미한 시간입니다.
제한된 성능과 생산성으로 아직 시작형 딱지를 떼지 못한 장비임에도, 국소 현실성 침강이나 스크랜턴 닻과는 다른 범주의 보호능력을 가진 덕에 본 장비에 대한 기대는 큽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에버하트 공명기처럼 전기 등의 통상 에너지원으로부터 신통력을 생산하여 M장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만 갈 길이 멀지요. 그럼에도 이 시작형 버전은 몇몇 중요시설에 이미 실전 배치가 되어 있으니, 해당하는 근무자분들은 사용법을 숙지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이처럼 무속공학은 제법 견고하게 누적된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응용지식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기초 이론체계도 어느정도 틀이 잡혀가고 있습니다. 실무 장비도 여럿 개발되어 일선에 투입되고 있고요. 앞으로도 급격한 발전이 기대되는 분야인만큼 관심을 두신다면 후일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어려운 이야기도 적지 않았는데 끝까지 배석해주신 여러분 모두, 이번 강좌에서 무속공학의 기초 지식을 잘 습득하셨기를 바랍니다. 특히 무속학부 신규 배정자나 각 기지 보안 책임자로서 무속공학 심화 강좌를 수강하셔야 하는 분들은 오늘 학습한 기초 파트가 정말 중요합니다. 교안과 영상강좌로 꼭 복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