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톱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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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저녁입니다. 굳이 이야기할 장소로 당신의 무덤을 고른 이유는, 당신이 재단과 아무런 연관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제 인생 한탄에 관심이 있다면 조금만 그 시간을 할애해 주세요. 해가 지려면 멀었으니까요.

그 기지에 전근 간 건 오래전 일입니다. 이제는 저도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늙은이가 되었습니다만 그때는 달랐습니다. 혈기에 넘쳤죠. 솔직히 말해서, 그 "몬톡 절차"라는 일도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어요. 아무도 그 정확한 절차를 말해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때의 저는 이렇게 생각했죠. "내가 직접 하는 것도 아닌데. 설마." 그 기지에 있던 친구들이, 만약 기억을 지우지 않았다면, 한 한 시간쯤 웃다가 두들겨 패 줄 소립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멍청하고 젊었는데.

재단은 그렇게 많이 사악하지 않아요. 예, 저희는 사디스트가 아닙니다. 많이 놀랐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정말로 저희는 사악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하나의 거대한 사람일 뿐입니다. 첫사랑을 단념해본 적 있나요? 현실은 늘 만화처럼 아름답지 않죠.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랑을 잊기 위해 영혼을 천천히 마모시켜 갑니다. 현실을 핑계로 대면서. 재단도 마찬가지예요. 저희는, 세계를 구한다는 단순한 현실을 핑계로 대면서 인간을 마모시키고 있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기계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제가 그 기지에 전근되었을 때는 기지가 굉장히 어수선했어요. 대상의 탈주가 막 종료된 시점이었고, 탈주 작전에서 대규모로 손실된 인원이 보충되었죠. 오래된 선임 근무자들은 추가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저희를 교육했습니다. 저는 의료 관련 의원으로 파견되었는데, 저를 맡은 사람은 어느 박사분이셨습니다. 그분은 항상 대상을 물체로 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말을 씹어 삼키면서 반복적으로 말하셨죠. 이 기지가 설립된 단 하나의 목적은 대상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기 위함이다. 대상을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보지 마라. 예,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슬픈 일이지만 그분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대상을 "소녀"라고 지칭했습니다. 자기 자신조차 이해 할 수 없던 일을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그 박사분은 기지에서 꽤 오랫동안 근속하고 계셨습니다만, 그분의 근무 일수는 기지 관리자보다 적었습니다. 기지 관리자는, 그래요. 아무도 그 사람이 언제 왔는지 몰랐습니다.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고 다들 말했죠. 최소 십 년 이상 근무했다고 주장하는 인원도 있었어요. 흰 머리가 나기 시작했던 그분은 매일 그 빌어먹을 "몬톡 절차"를 관람했습니다. 그분은, 보안 책임자나 다른 4등급 인원에게 한 번도 그 일을 미루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는 자신이 짊어지겠다. 항상 하셨던 말입니다. 그분은 기지의 상주 인원 전부를 매일 돌아가면서 한 번씩 불렀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죠. 보아라, 이게 네 죄악이다. 버틸 수 있다면 기지에 남고, 아니라면 두 달 후에 전근을 요청해라. 네. 두 달 후에 기지에 남은 사람은 아주 소수였습니다. 그분이 방 안에서 매일 흐느끼고 있다는 건 기지 인원 전부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모른 척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 사람 이야기를 하려면 역시 탈주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저는 탈주를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탈주 이후에 보충되어 온 인원이었으니까요. 제가 탈주에 대해 직접 들은 사람은 바로 격리 대상을 관리하던 선임 연구원이었습니다. 간호사로서 하루에 두 번 영양 튜브를 들고 들어가던 사람이었죠. '격리 대상의 탈주'라는 일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적어도 격리 인원의 주도로 탈주가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동정이나 연민을 아주 심하게 불러일으키는 아주 소수의 예를 제외하면 말이죠. 그래서, 그 넘치는 동정으로 인해, 격리 인원 하나가 대상과 탈주하기로 결심하고 그걸 실행에 옮겼을 때, 그 인원은 모든 걸 말했습니다. 왜 대상이 격리당하고 있는지.

하지만 우리의 격리 대상은 너무나도 어른스러웠습니다. 외견상 보이는 나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젓했죠. 채 청소년도 안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빌어 처먹도록 의젓했단 말이에요. 대상은 기억 소거를 거부하고 다시 고문받으러 돌아왔습니다. 대상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이 짓을 하루 종일 당한다고 해도, 자신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들을 죽일 수는 없다. 당신들은 죽도록 밉지만, 이게 유일한 해결책이라면 어쩔 수 없다. 마음대로 해라. 그때를 기점으로 은퇴한 인원이 갑작스럽게 많아졌습니다. 이야기로만 들은 저도 이렇게 욕지기가 나오는데 그걸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어땠는지 상상이라도 가십니까?

예, 그 의젓함이 모든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의연해지기 시작하면 외부 충격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합니다. 그건 대상도 그랬죠. 무력감을 의무감이 채우고, 공포를 책임감이 대체하는 순간 몬톡 절차는 그 힘을 잃었습니다. 애초에 대상의 정신적 고통을 기반으로 한 격리 절차입니다. 대상이, 한 톨 만큼이라도, 책임감을 느끼게 되면 무력화되는 아주 안일하고 나약한 절차. 제가 일을 시작할 때부터 몬톡 절차의 효력은 떨어져 가기 시작했어요. 제 담당 박사님 이하 저희 팀은 어떻게든 닥쳐올 재앙을 막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연구했습니다. 밤이 새도록 연구한 결과는 슬프게도 없었답니다. 대상의 정신적 고통만이 모든 효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 확실하게 증명했죠.

박사님은 본부에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 중 허가된 방안을 처음으로 실시한 후, 그분은 연구실 천장에 목을 맨 채 발견되었어요. 그분 밑에서 가장 높은 등급을 가지던 연구원이 담당 박사로 승격되었습니다. 새로운 담당자는 언제나 긴 소매 옷만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좁디좁은 기지에서 숨길 수 있는 사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하루에 한 번씩 손목을 그었습니다. 몬톡 절차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서. 음성 변조기로도 숨겨지지 않는, 고통에 쥐어짜 이는 목소리로 모든 일을 지시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그 기지에서 전근 가기 전까지도 그분은 일하셨습니다.

또한, 기지 관리자님은 그 방안을 보고 고민하셔야 했습니다. A급 기억 소거제는 보기보다 귀중한 자원입니다. 지금이야 달라졌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하루에 하나씩 소모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하는 귀중한 약이었죠. 기억 소거제의 지속적인 투여가 격리 대상의 신체에 내성을 가져올지, 아닐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한 후에 꽤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어요. 다른 격리 기지에서 근무하던 변칙 개체 한 명을 데려왔지요. 아시다시피, 재단에는 특이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 소년 또한 그랬어요. 머리가 갓 내린 눈처럼 하얀 소년이었죠. 제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사람이 바로 그 소년이었습니다.

아까 소년이 변칙 개체라고 말씀드렸지요? 그 소년의 변칙성은 간단했습니다. 소년은 원하는 대로 기억을 소거할 수 있었어요. 단지 상대방과 대화하는 것만으로, 소년은 자신이 지우고 싶어하는 기억을 지울 수 있었습니다. 소년은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몬톡 절차가 일어나고 정확히 여섯 시간 뒤, 소년은 기지 관리자의 감독하에 격리실로 투입되었고 10분 후에 나왔습니다. 그 일은 매일 반복되었죠. 소년은 매일 얼굴을 찌푸린 채 들어가고, 찌푸린 채 나왔습니다.

소년의 표면적인 직함은 기억 소거 전담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지에는 기억 소거를 요청하는 사람이 매우 많았죠. 전근을 가기 전에 가짜 기억이나 기억 소거를 요청하는 사람은 셀 수도 없었습니다. 소년은 그들에게 자신의 기억 소거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기지의 기억 소거제 소모량이 떨어졌고, 소년의 눈은 그 빛을 점점 잃어갔습니다.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죠. 그저, "아. 기억 소거제를 아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하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소년은 기지에서 약 일 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그 이후에 그는 전근을 요청했죠. 격리 대상의 기억 소거가 하루 한 번에서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전환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입니다. 그 이후로 제가 전근을 가기 전까지 기지는 말도 안 되는 분량의 기억 소거제를 소모했습니다. 기억 소거 전담 요원은 세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고참 인원들은 다들 그 소년이 다시 돌아오길 빌었고,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3등급으로 승급해서 그 문서를 보기 전까지는요.

3등급은 꽤 큰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지 기록 보관소의 문서는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만, 제 흥미를 끈 건 그 소년에 대한 보고서였습니다. 원칙적으로 격리 기지에 231을 관리했던 인원의 기록을 남기는 건 허가되지 않으니까요. 변칙 개체라서 예외로 쳤나, 하고 그 보고서를 보는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 보고서는 변칙 개체의 기록 같은 삭막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 보고서는, 소년에게 주는 훈장이었습니다. 소년의 이름도 외견도 남기지 않은 보고서에는 짧은 문장 두 개와 그 분석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 문장은 이랬죠. "기지 기억 소거 자문으로 8개월 2일동안 근무했다. 개체는 타인의 기억을 자신에게 옮기는 변칙성을 띠고 있었다." 네, 당신이 생각하는 그대로입니다. 그 하얀 머리 소년은 8개월 2일이라는 빌어먹을 시간 동안 격리 대상과 함께 매일 몬톡 절차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기지 인원의 모든 기억 소거를 담당했죠.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시에 체험하는 그 끔찍한 시간을 어떻게 버텨냈는지 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보고서를 자리에 떨어뜨리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기지 관리자는 매일 방 안에서 울었습니다. 선임 박사는 자살했고, 후임 박사는 자해했습니다. 저희는 격리 대상에게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짓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저희 스스로에게도 끔찍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전근 이후 첫 두 달 동안 자살한 사람의 숫자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첫 두 달 이후 정신병의 징후를 보인 사람의 숫자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하나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책임감과 의무감을 들고 우리 자신의 영혼에게 몬톡 절차를 집행했습니다.

재단은 기계로서 설계되었습니다. 세계를 지키는 정의의 로봇이죠. 하지만 이 기계의 설계자들도 하나의 사실은 바꿀 수 없었습니다. 이 기계를 이루는 수많은 톱니바퀴는 너무나도 인간적이랍니다. 마모를 견뎌내지 못하고 부서져 가는 그 기지의 인원들은, 다른 이들이 손가락질하더라도, 분명 인간적인 톱니바퀴였습니다. 단백질로 만들어져 재단을 지탱하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톱니바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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