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에모에 공부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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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참배움 연구소가 무슨 촌스런 단체명이야? 게다가, 명함은 또 뭐야? 원래 이름은 어따가 두고 태학? 이게 뭐야?"

"히히. 요즘 아이들은 공부의 진짜 가치를 몰라. 대학이 공부의 목표이자 종착지가 되어서는 안될 일이지! 대학에 가는 건 좋지만 공부는 그보다 더 상위의 가치가 있고, 그 가치는 모든 학생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태학이 뭐냐고."

그 녀석은 해맑게 웃었다.

"그래서, 난 대학보다 더 큰! '태학'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진정한 배움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고 싶어!"

"바보같아."

내 말에 녀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히히…그런가? 난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선 잘 지내냐, 태학."

태학은 이상주의자였다. 그리고 그 이상은 현실로 가지고 올 만한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 태학 님. 여기 계셨군요."

머리를 짧게 깍은 남자가 내 어깨를 잡았다.

말쑥한 양복으로도 숨길 수 없는 근육, 흉터와 문신. 빌어먹을 삼대천 스포츠 놈들의 특징이다.

"맨날 이분 앞에 계시던데, 대체 누굽니까? 남동생?"

"…"

"네, 뭐 저희가 이런 이야기 나눌 사이는 아니긴 하죠. 그럼 공적인 이야기를 할까요? 3개월째 이자 연체되신 거 아시죠? 이러면 저희도 이자율을 올릴 수밖에 없어요."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소름끼치는 남자였다. 사채라는 건, 복리라는 건 정말 무서운 존재였다.

약간의 연구비용을 위해, 직원의 월급을 위해 잠깐 빌렸던 금액은 한 두번의 연체로 눈동이처럼 불어났다.

그리고, 태학의 능력은 셀레스트, 그리고 삼대천이 탐낼만큼 너무나 뛰어났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삼대천과 셀레스트는 한패였고, 우리는 그걸 몰랐다.

더 치욕적인 것은 이 수십억대의 빛은 셀레스트의 일개 계열사, 삼대천 스포츠의 일개 팀 하나가 꾸린 자그마한 업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태학은 자신의 발명품이 변질되어 사용되는 것을 보다 못해 자살했다. 무책임한 놈이다. 그런다고 삼대천 스포츠가 물러설 리 없는데 말이다. 그들은 죽은 자를 심령 독립체로 만들어서 까지 빛을 값게 할 놈들이었다. 자살로도 결코 도망칠 수 없는 악랄한 놈들이었단 말이다.

태학에게는 자식이 있었고. 그 이름을 쓰는 한 불똥은 그 가족에게 튈 터였다. 난 태학을 좋아했지만, 그 무책임함을 저주했다.

불행중 다행으로 난 책임질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구 친구의 이름을 빌려 그이의 책임을 나눠 지기로 했다.

"…신제품이 곧 나올 겁니다."

남자는 내 말에 과장되게 머리를 짚었다.

"하아, 태학 님. 전 이번달 이자를 받으러 온 거에요. 돈으로 보여 주셔야지요. 아니면 그 '지배의 가루'를…"

"없습니다. 제가 여러 번 말했을 텐데요. 그건 지금 만들 능력도 없고, 있더라도 절대 만들지도 않을 거라고."

내 말에 남자는 코앞까지 다가와 위협하듯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태학님. 저희가 변칙세계의 중요 인물도 아닌, 고작 이름도 이상한 군소 연구소의 당신과 그 조그만 부하 5명을 살려 두는 이유는 딱 하나에요. 그 가루. 그 가루만 있으면 나 같은 놈도 삼대천 스포츠의 사장 자리에 도전해 볼 수 있으니까. 이해하겠어요?"

남자의 눈빛은 욕심으로 가득했다.

이 남자는 그 약의 진짜 의미를 알기나 할까? 학교에서 '공리주의'라는 말을 들어보기나 했을까?
삼대천 놈들이 '지배의 가루'라고 부르는 그 약의 정식 명칭은 코드네임 '벤담'. 일명 공리주의의 알약이다.

이 알약을 먹으면 모든 행동을 공리주의로 생각하게 만드는 약이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이타적인 약이다. 이걸 먹는 순간 나만 생각하던 놈도 그 약을 먹은 사람 모두를 고려하게 되니까.

문제는 알약을 2개 먹으면, 2개를 먹은 사람은 하나만 먹은 사람보다 2배 더 중요한 사람으로 취급되게 된다는 점이었다. 알약을 먹은 사람 모두에게 그 법칙은 적용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삼대천 스포츠 일당은 알약 복용자 리스트를 압수한 뒤 그 리스트에 있던 아이들을 모두 살해하고 남은 알약을 탈취했다. 그리고 알약을 분해 후 소분하여 아주 적은 용량의 가루로 만들었다.

그들은 용량을 멋대로 조정해 자신들의 말에 절대복종하는 노예로 만들었다. 알약 용량의 100분의 1만 먹은 존재에게, 알약을 10개 먹은 삼대천 인원은 어떻게 보이겠나? 그들은 그 '주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기꺼이 뭐든 할 터였다.

참으로 역겨운 짓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태학에게 '공리주의의 알약'을 엄청나게 만들어 태학 혼자 전부 복용한 뒤 삼대천 일당에게 자살을 명령하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태학은 그 제안에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그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야."

그때 본 태학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 슬펐다. 그때 그를 잡았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날, 프로젝트 벤담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폐기처분한 뒤 자살했다.

"이해하겠냐고 이-"

"알았으니까 놓으세요. 난 태학. 참배움 연구소의 소장이고, 비록 채무자일지언정 삼대천의 말단에게 협박당할 위치는 아닙니다."

"난 당신의 채권자…"

"당신의 사장에게 가서 따져볼까요? 누가 내 진짜 채권자인지? 그리고 당신이 무슨 짓을 하려 하는지? 그 사람, 최고의 칼잡이라고 들었는데."

남자는 나를 한참동안 노려보았다.

"…제가 잠시 흥분했습니다. 그래도 이번달 이자를 내지 않으면, 연구소의 자재를 담보로 가져갈 수밖에 없다는 걸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후우."

나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태학'의 자리는 그만큼 무겁다.


"태학님! 드디어 신제품을 발명했어요! 이름하여, 모에모에 학습안경!"

"모에모에…뭐?"

"헤. 3D안경인데요, 왼쪽과 오른쪽에 서로 다른 책을 놓고, 합쳐서 읽으면, 짠! 그 두 책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섞여요! 이 자연스러움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생각하면, 휴…"

"음…좋은데 그게 왜 모에모에지?"

"참배움 연구소의 목적은 돈도, 입시도 아니잖아요. 제가 기사를 봤는데, 교실에서 몰래 라이트노벨을 읽던 학생이, 교사가 그걸 지적하고 반에서 지적을 하자 수치심에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어요."

"……"

"너무 안타깝잖아요. 아이들이 교실에서 교과서와 자기들이 좋아하는 만화책이나 라이트노벨을 당당히 펴고 같이 공부할 수 있으면, 멋질거 같지 않아요? 공부 자체도 더 재밌게 할 꺼고요. 제 사촌동생도 주기율표는 못 외워도 포켓몬스터는 전국도감을 통째로 외우니까요."

"일리는 있네. 근데 꼭 라이트노벨이나 만화일 필요는 없지 않나?"

"그렇긴 하죠…그런데 셀레스트 놈들이 또 우리껄 베끼면, 이건 백퍼 막 교과서 2개를 섞어 2배 더 빠른 효율 공부법! 이러면서 아이들을 학대하는 물건이 될 게 뻔하잖아요."

"그래서 그걸 막기 위해 애초부터 '모에모에 학습안경'으로 팔자 이거지? 변칙성을 셀레스트가 탐내지 않게."

"네!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만드는 거니까요."

나는 밝게 웃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이 재능, 천재성. 이상적인 생각. 녀석이 훨씬 더 '태학'의 이름에 걸맞다. 하지만 난 절대 그 이름을 주지 않을 것이다. '태학'이라는 이름에 따라오는 책임은 오롯이 내 것이 되어야 한다. 이 녀석을 포함한 우리 연구원 아이들은, 책임 없이 올바른 교육을 위해 연구하고 투자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하, 돈이 될 구석이 없잖아요. 학부모들이 이딴 걸 사주겠어요? 그냥 만화책 하나도 서점에서 애들한테 팔지 말라고 클레임 거는게 학부모들인데."

"……"

"이딴 안경은 치우고, 지배의 가루 아니면 연구소 자재. 돈 없으면 둘 중에 하나를 내놓으세요. 솔직히 저도 지쳐요 이제. 그거 빼면 돈 나올 구멍이 없잖아."

"……"

"연구소 건물 명의도 우리꺼고요. 응?"

분했다. 이들은 이 안경이 가진 가치도 후려칠 게 뻔했다. 제대로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감정평가를 한다는 셀레스트 인물도, 그 가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최대한 가격을 후려칠 생각만 하고 있다.

"아, 그러니까 태학 님 이-"

펑!

내게 음흉한 미소를 보냈던 남자의 머리가 사라졌다. 곧이어 붉은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남자가 죽었다.

나를, '태학'을 그렇게 지독히도 괴롭혔던 존재가 너무나 허무하게 죽은 것이었다.

"언니, 괜찮아? 많이 놀랬나보네."

내게 말을 건 건 소녀였다.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 소녀의 운동화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이 예쁜 소녀의 발길질 한방에 그 남자가 죽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쇄골에 작지만 분명하게 삼대천 문신이 있었다. 그녀 역시 삼대천 스포츠의 멤버였던 것이다.

나는 온 몸의 떨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왜 죽인 겁니까? 그 남자는 저희에게는 지독한 악마였지만, 삼대천 스포츠에게는 아주 휼륭한 직원이었을 텐데요."

소녀는 그 말에 따분한 듯 하품을 했다.

"하암. 무슨 질문을 하나 했네. 수익은 사장이 신경쓸 일이라 내 알빠는 아니고, 냄새나는 아저씨가 맨날 날 기분나쁘게 쳐다보잖아. 그래서 징그러워서 죽였어."

무슨…

"어머, 언니 그렇게 동공이 흔들릴 필요까지는 없잖아. 음…무서울 수도 있긴 하겠네. 그치만 난 둔감한 사람들과 달리 눈이 많이, 엄청 많이 좋거든. 사람들의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적나라 하게 내 눈에 다 보인단 말야. 그러면 기분이 너무 나쁜데 죽여야지 어떻게. 그래서 살아있는 남자놈들이랑은 한시도 같이 있기 싫어. 음흉한 생각이 다~보이거든. 정철민 아저씨같이 내 눈만 보고 감정이 안 읽히는 예외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다 그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 앞의 소녀가 너무나 무서웠다. 외모는 예뻤지만, 살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 삼대천이긴 한 모양이었다.

동공만으로 남의 생각과 시선을 다 읽은 수 있다는 게 진실이든, 아니면 그냥 피해망상 환자에 불과하던 간에, 이 소녀는 날 찰나의 순간에 머리를 터트려 죽여버릴 수 있는 발차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심기를 건들이고 싶지 않았다.

"언니 너무 쫄아있어. 나 언니 안 죽일거야 약속."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소녀의 손을 잡았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그녀의 손은 굳을살이 배겨 있어 힘을 거의 주지 않았는데도 억세었다.

"난 여민지라고 해. 외부활동은 거의 안하는데…뭐, 만나서 반가워. 언니 이름은 뭐야?"

"…전 태학이라고 합니다."

"태학? 요상한 이름이네. 어? 이 안경은 뭐야?"

나는 떠듬떠듬 '모에모에 공부안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심드렁하던 소녀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그, 그럼 둘 다 만화면 어떻게 돼?"

"…그 두만화가 섞이겠죠?"

"내 생각이 개입되고?"

"네…이야기 두개가 섞이면 특히 더 그러겠죠."

"그럼…조로랑 사스케 연성이…다, 당장 살게!"

이 아이…덕후였나?


여민지에게 실제 새상은 너무나 추악했다. 인간은 모두들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녀의 눈은 보고 싶지 않아도 그 가면 아래를 꽤뚫어 보았다.

하지만 만화와 애니메이션에는 그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진실되었고, 추악한 모습이 그녀에게 보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여민지는 만화에 빠지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순정만화에, 지금은 신작 애니라면 빠지지 않고 보는 오타쿠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두 권의 책을 가지런히 놓았다.

"후후…사스케가 쿨해 보이지만 집착할 땐 또 집착하니까…조로랑 엮으면 재밌겠다."

여민지는 약간의 홍조를 띄운 채 안경을 쓰고 책을 펼쳤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아악!"

여민지는 빛의 속도로 안경을 집어 던지고 화장실로 향했다.

"우윽…키사메랑 돈 클리크가 왜 나오는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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