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만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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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으로 오게."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저 서울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면서. 이번 PT 회원은 잘만 잡으면 초대박이라니까요, 필리핀에서 사업을 엄청 크게 하신다는데…"

임한영이 내뱉은 그 말의 무게를 아는 자는 거의 없을 것이었다. 지금  운전석에서 툴툴거리면서도 곧바로 네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창원으로 지정하는 백발의 청년 역시도.

임한영이 창원으로 같이 가자고 했던 남자가 누구였었는지, 그리고 그 남자에게 어떤 걸 제공하려 했는지 알았다면, 백태양은 지금같은 반응을 보이진 못했을 것이다.

"가는 동안은 조용히 있지."

"하아. 알겠습니다."

임한영은 눈을 감았다.


창원에 도착하자, 임한영은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백태양은 그 시간동안 우수 고객을 놓치지 않을까 끙끙대었지만, 감히 회장 앞에서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인자이재발신 불인자이신발재."

"또 어려운 문자 쓰시네. 이번엔 어디 나오는 말 인가요?"

"대학에서 나오는 말일세."

"대학이요? 회장님 대학 독일에서 나오셨지 않나요? 거기서 한문 수업 들으셨어요?"

그 물음에 임한영은 백태양을 빤히 쳐다보다가 그답지 않게 고개를 푹 숙였다.

"…되었네."

"에이, 뜻은 알려 주셔야죠."

해맑게 웃는 백태양을 다시 쳐다보며 임한영은 생각에 잠겼다. 백태양. 마스터에 비하면 사업을 일구는 재주가 부족하며, 정철민에 비하면 힘도 잔인함도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 보여주는 모습처럼 그는 순수하다. 바보같다는 소리는 아니다. 녀석은 공부가 부족할 뿐 지혜롭지 않은 자는 아니었으니.

순수하고, 자기 감정에 솔직하다. 자기 성처럼 하얀 성격이었다.

"어진 자는 돈으로 몸을 일으키고, 어질지 못한 자는 몸으로 돈을 일으킨다."

"음…여전히 무슨 뜻인지 잘은 모르겠네요."

"…난 어질지 못한 자였지."

"회장님이 머리보단 힘이 더 대단하신 분이긴 하지만, 어질지 못하다니요. 어르신이 어질지 못하면 전 뭐 아메바입니까?"

임한영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삼대천의 기원을 아느냐."

"예, 어느 정도는 압니다. 회장님께서 북에 있다가 중정에 발탁되시고…"

"아니, 그건 내 인생의 기원이고, 삼대천의 기원 말이다."

"서울 정벌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 전에."

"아, 일본에서 야쿠쟈들을 다 쓸어버리신…"

임한영은 살짝 미간을 구겼다.

"정말 그게 삼대천의 기원이라고 생각하는 게냐?"

"그게, 회장님의 과거는 대부분 그런 것이지 않습니까. 위대한 업적이죠."

"업적은 무슨. 물론 네 관점에선 그렇긴 하겠지만 말이다…"

"아! 생각났습니다. 독일에서 보신 신의 주물. 그거 때문 맞죠?"

"그래. 그것도 아주 큰 이유지. 그 전에 네가 말했던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 생활을 청산하고 양지로 올라가기 위함도 있었어.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백태양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제서야 그도 임한영이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그게 뭡니까?"

"교통사고를 당한 날 악마를 만났다. 아니, 저승사자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존재를 만났다. 어릴 때였지. 네가 말한 그 모든 행위들을 하기 전이었다. 그때도 목숨을 반 내놓은 채 폭력뿐인 삶을 살았었지만."

"예?"

"그는 나를 지옥으로 데려가려 했다. 그곳이 진정한 지옥인지, 아니면 어떤 대단한 존재가 만든 차원에 불과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 들어가면 어쨌든 내 인생은 끝장날 거라고 직감했다. 나는 그 악마에게 달려들었다. 정말 필사적인 싸움이었지."

"에…"

"난 전신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결국 그 악마를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그 녀석이 가진 책에는 내 이름이 있더군. 그래서 찢어버렸다."

"…"

갑작스러운 허무맹랑한 소리에 백태양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러자 다시 정신이 번쩍 들더군. 일어나보니 난 병원에 있었다. 모두가 살아있는게 기적이라고 하더군."

"엄청난 꿈이었군요."

"그래, 꿈이었을지도 모르지. 그게 끝이었다면 말일세."

"더 있다고요?"

"꿈에서 또 다른 악마가 나타났지. 내가 싸운 그 악마가 저승자라라면, 이번 악마는 염라대왕 정도는 되어 보였네. 도저히 싸울 엄두가 나지 않더군. 그 존재는 내게 말했지. 무한한 힘을 줄 테니 자신의 수하가 되라고."

"그 이후로 그렇게 강해진 겁니까?"

"아니, 거절했다. 그 지옥같은…아니, 지옥 그 자체인 곳에서 살 수는 없을 것 같았거든. 그리고 이 세상에 미련도 남아 있었으니."

"…"

백태양은 임한영이 말한 미련이 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거절하자, 악마는 돌변하더군. 이름을 지워버려 직접적으로 날 해할 순 없지만 그에 상승하는 저주를 내리겠다 엄포를 놓았네."

"저주…말이십니까?"

임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넌 자살할 수 없다. 노화는 널 약하게 만들 것이나 죽음에 이르게 하진 못할 것이다. 병환 역시 널 고통에 몸부림치게 할 수는 있지만 끝내 죽음에 이르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오직 살의에 의한 타살만이 네놈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렇게 네놈이 다시 내 앞에 당도한다면, 네놈은 영원히 고통 속에서 그 어떤 존재보다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라고 하더군. 그렇게 나는 불완전한 불사를 얻었지."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쉽게 믿을 순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겠지…그럼 두 번째 이야기를 해주지. 나는 일제강점기 당시 부호부대에 납치당했고, 마루타 실험을 당했다. 작전명 다케토리. 난 거기서 불사의 저주를 얻었지. 불완전한 실험이었으니까. 두 이야기 중 뭘 믿는가는 자네 자유야.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백태양이 느끼기에는 두번째 이야기가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허나 자신이 아는 회장님이라면 굳이 첫번째 거짓말을 덛붙이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백태양은 혼란스러운 머리를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회장님 말씀이 맞다면 삼대천을 세운 이유는 불완전한 불사를 완전한 불사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겠군요."

"그렇지. 그 이후 나는 강함을 찾아다녔네. 그동안 너무 많은 업보를 쌓았기에, 날 죽이려 하는 자는 많았네. 나는 그 저주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려 했지. 무슨 짓을 해도 죽지는 않는다. 그걸 이용해 범인은 결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몸을 혹사시켰다. 그 덕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결국 노화를 막을 수는 없는 모양이야."

그제서야 백태양은 이해했다. 임한영이 그 많은 범죄자들을 무릎꿇린 이유를. 마스터에게 회장님 답지 않게 특혜를 줬던 이유를. 항상 당당한 그가 재단에게만큼은 고개를 숙이는 이유를.

"…그 이야기를 지금 제게 하시는 이유는."

"정철민이 날 죽이려 한다."

"예? 이런 씹새끼가…! 아, 죄송합니다."

"난 외부에 있는 적을 죽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 나 자신이 가장 강한 칼이었을때는 아무 문제 없었지만, 사냥감이 없어진 사냥개는 주인을 무려고 하더군."

백태양은 한글자 한글자 씹어뱉듯 말을 이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임한영은 그 말에 오랬동안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세계가 반전되었다.

"…이게 무슨?"

"생각해 보면, 이곳 창원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행운이었지. 악마를 만날 수 있던 것도, 불사라는 저주를 얻은 것도 내가 쓰러진 곳이 그림자 도시였기 때문이니. 여기가 아니었다면 난 대나무만도 못한 처지가 되었을 꺼네."

백태양은 변화한 도시의 동태를 살폈다.

"그동안 나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악마와 다시 만나 좋을 건 없다고 생각했으니. 허나, 사냥개들은 그 이유를 잘못 해석한 모양이더군. 무지한 게지."

"정철민이 이곳에 둥지를 튼 모양이군요. 회장님께서 이곳만큼은 악마가 살기에 접근하지 않았던 것이고요."

"그래. 그동안은 삶에 대한 미련이 많았었네. 하지만 이제 나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기로 했네. 죽음이라는 것 역시 축복일 수 있으니."

백태양은 임한영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분위기에서, 이상함을 눈치챌 수 있었다.

"회장님!"

회장은 백태양을 어루만졌다.

"이소정이 죽고서야, 배신을 겪고서야 죽음이 축복이란걸 알았지. 그리고 되돌아보니, 이렇게 도망치기에는 너무나 많은 죄를 범하였다는 걸 깨달았다. 이 모든 걸 바로잡을 사람이 필요하다. 업보가 없는 자가, 내가 이룬 모든 걸…올바른 신념으로 사용하도록."

이젠 눈치가 느린 편인 백태양도 확실히 알았다.

이건 유언이다.

"말이 안됩니다! 아직 신의 주물도 다 모으지 않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불사자시라면서요! 대체 왜…!"

죽으려고 하시는 겁니까? 라고 말하려고 할 때, 임한영은 백태양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림자 도시는 악마들의 도시다. 그들은 방문객들을 기본적으로 꺼리지. 정철민이는 잘못된 선택을 한 거야. 하지만, 특정한 존재들을 만나기 위한 절차를 재대로 밟는다면, 우리는 방문객으로서 조촐한 식사 정도는 그들에게 받을 수 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저는 정철민이 회장님을 죽일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합니다! 회장님의 평소 지론이 언제나 전력을 다해라 아닙니까! 저는 회장님이 전력이라면 정철민이 결코…"

"악마를 만나라."

임한영은 그 말만을 남기고 어루만지던 손으로 백태양의 경동맥을 움켜쥐어 기절시켰다.

백태양은 어두운 그림자 도시 어딘가에 풀썩 쓰러졌다.

평소의 그림자 도시라면 백태양은 정철민의 패거리가 이곳에 유기한 시체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그림자 도시의 괴이는, 이 백발의 청년을 방문객으로 인정해 주었다.


"임한영이 실종되었습니다."

정철민은 그 소식에 깜짝 놀랐다. 임한영은 결코 어딘가로 불쑥 사라지거나 하지 않는다. 집착적일 정도로 자신의 위치를 공개한다. 그것이 양지에 대한 집착인지, 자신이 결코 살해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일지는 몰라도, 암살. 아니, 사냥에 가까운 '임한영 죽이기'를 기획하는 정철민으로서는 나쁠 것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사라졌다.

"실종 직전에 뭘 하고 있었나?"

그 말에 이성재는 답했다. 그리고 그 답에 정철민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백태양과 함께 창원에 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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