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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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직접적으로는 처음이잖아.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거야?"

"…50년이다. 이젠 부사장직도 정년을 한참 넘긴 셈이지. 사장은 정년이 없으니."

"그래. 문제없이 처리할게."

"고맙군."

문세희는 사냥감을 바꾼 후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을 계속 하는 것밖에 길이 없었다.

문세희가 할 줄 아는 것은 그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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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작은 시골 동네에 두 사내가 마주앉았다.

"허먼 풀러의 공연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뇨…"

"그러시군요. 서울에서 한번 열리니 가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그 공연에 기꺼이 거액의 돈을, 또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무언가를 지불합니다."

민수는 자꾸만 뜸을 들이는 이 사슴 수인의 말이 불편했다. 저자가 삼대천 스포츠의 사장이 아니었다면, 스리포틀랜즈에서 동물 학대로 의심되는 신고를 받아 출장오지 않았더라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터였다.

하지만 민수는 팀 윌슨의 직원으로서. 또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사내에게서 월록을 돌려받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민수는 마음을 모르는지, 사슴 수인은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저는 생각했어요. 왜 그렇게까지 허먼 풀러의 공연은 압도적인 인기를 가졌을까…화려해서? 자극적이어서? 아닙니다. 그게 '유일'했기 때문입니다."

"…"

사슴 수인은 민수의 손을 잡았다. 민수는 그 보드라운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저는 저희 삼대천 스포츠의 '경기'가 그런 지위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의…"

"저, 저희는…그저 윌록을 돌려받으로 온 겁니다."

"윌록? 아, 저거넛트 말씀이시군요."

저거넛트. 민수는 살짝 얼굴이 굳었다. 삼대천 투기장에서의 윌록의 이름. 말하자면 링 네임이었다.

"네…입양 조건 중에 하나는, 동물 학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슴 수인은 웃었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별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사슴을 많이 봐온 민수는 확실히 알아차일 수 있었다.

"저는 정식 절차를 받고 그 소를 '입양'했습니다. WWS여러분께도 적지 않은 기부금을 냈고요. 그리고 그 소와, 그 비슷한 존재들은…아시다시피 이렇게 싸우지 않으면 지치지도 않고 날뛰더군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렇게 될 걸 알고도 저희에게 입양을 허용한 것 아닙니까?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아서?"

사슴 수인의 말을 크게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안락사라는 책임을 떠안기 싫어서, 혹은 많은 돈에 눈이 멀어서 별다른 자료 조사도 하지 않고 삼대천에게 윌록을 넘겨줬던 것은 사실이다.

"맞습니다…저희의 실수였습니다. 이제 그걸 바로잡으려 합니다."

"말은 좋지만, 결국 책임지지도 못했고, 돈도 다 받았으면서, 이 개체들이 죽지 않게 잘 관리하고 있는 저희들이 잘못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진심으로요?"

사슴 수인의 반문에 민수는 고개를 숙였다.

"저는…당신이 좀 더 온정적으로 동물을 대할 줄 알았습니다."

그 말에 사슴 수인은 한숨을 쉬었다.

"왜죠?"

"그야…"

"보기만 그럴 뿐, 저는 인간입니다. 여러 논란이 있긴 해도 제가 이곳에 사장 자리에 오르는데 소싸움 사업은 꽤나 큰 지분이 있습니다."

"투기장 만큼이나 돈이 되더군요. 변칙전 크리쳐들끼리의 싸움 말입니다. 언제나 흥미를 끌기 좋죠. 이번 일이 잘 풀린다면, 인간과 크리쳐의 대결 같은 걸로 확대 해 볼 생각도 있었습니다."

"……"

"저거넛트는 못 돌려드립니다."

민수는 예상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그라고 대응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물러가더라도, '팀 윌슨'은 그리 나약한 단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답에는 민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학대 때문 아닙니까? 주의사항은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경기 수를 줄이고, 녀석이 상처 입지 않도록 잘 관리하겠습니다. 언제든지 감시하셔도 됩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전 이 쇼를 유일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당신과 좋은 관계를 맺고, 윈윈을 추구하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

"언젠가 다시 오실 때에는, 반드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시길 기대하-"

그때, 사슴 수인의 머리가 펑! 터졌다.

방금 전까지 살아 움직이던 사슴인간의 살점과 털, 피가 한데 섞여 민수의 얼굴을 뒤덮었다.

민수는 처참하게 죽은 사슴 수인의 사체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저자의 궤변을 잠자코 들어주었던 이유, 그가 싫지만은않았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저마다의 슬픈 사연으로 윌슨 야생동물 보호소에 오게 되며 비틀린, 혹은 원래부터 비틀려 있던 그 동물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연민이자 공감이었다.

민수는 피칠갑을 한 채로 입을 굳게 다물로 시체를 살폈다.

총상이었다.

"엽총…"

수많은 동물들을 보아왔던 민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사슴 수인이자 삼대천 스포츠의 사장을 죽인 살인자는 사냥꾼의 방식으로 상대를 죽였다.

처참하게 파괴된 신체. 보통 가죽이나 고기를 얻기 위해 죽이는 생계형 사냥꾼들의 사냥 방식과는 달랐다.

그보다는, 동물들을 죽이는 행위 자체에 쾌락을 느끼며, 사냥을 유흥으로서 즐기는 자들의 사냥 방식에 가까웠다.

하긴, 민수는 자꾸 착각하지만, 이 자의 본질은 인간이다.

이 '사냥'의 목적은 이자의 죽음 그 자체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왜 하필 엽총인가…답은 간단했다.

민수는 사슴인간의 뿔을 집어들었다.

온 몸이 처참히 찢겨진 가운데서도, 뿔만큼은 멀쩡했다. 이것을 보전하기 위해서, 사냥용 총을 쓴 것인가. 민수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거 내려놔."

민수는 본능적으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복면을 쓴 여자가 총구를 민수에게 겨누고 있었다.

"나는 죽이지 않나?"

여자는 삼대천 스포츠의 사장을 반응도 못하게 죽여버린 실력자였다. 민수 정도는 충분히 죽이고도 남았었다.

"표적 아닌 사람을 죽이는 건 재수없어서."

민수는 뿔을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여자는 민수를 내리쳤다.


"정신이 드나?"

민수는 눈 앞에 인물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페오윈 윌슨.

"예…"

"한국인이라고 무턱대고 보낸 내 잘못이 크다. 재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데에만 너무 몰두한 내 탓이야. 이런 문제는 앞으로 재단을 이용하는게 맞겠어. 하마터면 좋은 친구를 잃을뻔 했잖아."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된 겁니까? 전 기절했었는데."

"한 여자가 데려다 줬다. 앞으로 한국에 대해서는 신경 꺼라. 더 높은 쪽에서 해결해 줄 테니까."

민수는 자기 눈 앞에서 죽은 사슴 수인을 생각했다. 그는 악당이었다. 그렇다고 사냥당한 것이 좋은 일이었을까? 그는 자기 일을 한 거였다. 민수의 상념을 깬 건 윌슨이었다.

"두 가지 선택지를 주지. 이주 더 쉬던가, 아니면 스리포틀랜즈 강변에 갑작스럽게 대량발생한 황금 피라냐를 조사하러 가던가."

민수도 다시 자기 일을 하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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